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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없던 감각(2024.09.01) - 수전 배리 - 기록중

동선(冬扇) 2024. 9. 1. 21:35

책소개

내게 없던 감각이 생기면 어떤 느낌일까?
신경생물학자가 들려주는 감각과 지각의 본질
10년이 넘는 깊은 유대가 빚어낸
감각, 장애, 학습에 관한 감동적이고 놀라운 통찰

유년기 내내 앞을 보지 못하다가 어느 날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또는 난생처음 소리를 듣게 된다면? 사람들은 시력이나 청력을 회복한 성인들이 큰 기쁨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무의미한 장면과 소리에 시달리고, 심지어는 어쩔 줄 모르고 비관하여 삶의 의욕을 잃기도 한다.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거의 없었던 소년 리엄과 청각장애를 안고 태어난 소녀 조흐라가 감각을 회복하기 위한 수술을 받고 이에 적응하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시각과 청각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감각에 적응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는지, 왜 같은 세계를 각자 다르게 지각하는지를 따뜻한 마음으로 자세히 탐구한다. 인간의 회복탄력성과 학습하고 적응하는 능력에 대한 찬가이자, 보고 듣는다는 심상한 능력을 완전히 새롭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책.


저 : 수전 배리 (Susan Barry)

마흔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 수전이 바라보는 세계는 ‘완전히 평평했다.’ 어렸을 적부터 사시였고, 입체를 보지 못했던 수전 배리는 이 책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2차원 세계에서 3차원 세계로의 놀라운 변화를 다뤄 40여 년을 지속되어온 신경과학계의 정설을 깬 장본인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저명한 신경과학자 올리버 색스가 <뉴요커>에 수전 배리의 이야기를 담은 “스테레오 수”라는 글 이후 <뉴사이언티스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뉴요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 유수의 매체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앞다투어 다루면서 수많은 주목을 받았다. 올리버 색스의 글은 2007년 ‘Best American Science Writing’에 뽑히기도 했다.

프린스턴 대학교 생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마이애미 의대와 미시간 대학교에서 신경과학을 연구했다. 미국 나사(NASA) 존슨우주센터, 우즈 홀 해양생태연구소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교에서 생물학 및 신경과학과 교수로 있다. 사시이자 신경과학자로서의 독특한 삶 그리고 마법과도 같은 3차원 세계로의 여정이 펼쳐지는 이 책은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시각’이라는 감각을 아름답고도 매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역 : 김명주
성균관대학교 생물학과,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주로 과학과 인문 분야 책들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 『생명 최초의 30억 년: 지구에 새겨진 진화의 발자취』(2007년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를 비롯해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 Vol. 1: 인류의 탄생』『신 없음의 과학』『호모데우스』『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디지털 유인원』『우리 몸 연대기』『위험한 호기심』『다윈 평전』『과학과 종교』 등이 있다.

                                                                                                                                                                                          -  yes24

 

서론

축복인가 저주인가?

 

리처드 그레고리와 진 월리스는 시드니 브래드퍼드를 만날 생각에 설렜단다. 이 쉰두 살 남성은 각막 수술을 막 마치고 난생처음으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단다. 처음으로 보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는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했을까? 병상에서 벌덕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며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가 매혹적이라고 생각했을까? 실제로 SB(그레고리와 월리스는 그 남성을 이렇게 불렀단다)는 처음에는 흥분과 호기심으로 가득했단다. 쾌활하고 외향적인 사람인 그는 지나가는 차량을 구경하며 승용차와 트럭을 구별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단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기분이 달라졌단다. 시력을 되찾았는데도 그는여전히 글씨를 읽거나 자동차를 운전할 수 없었단다. 그는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왔으며 시력을 되찾는 수술을 받을 당시 완벽하게 건강했지만, 수술을 받은 후 1년 반동안 점점 우울해지고 건강이 나빠져서 결국 사망하고 말았단다. 

올리버 색시의 에세이 <보고 있된 보지 못하는 것>의 주인공인 버질도 별반 나을 게 없었단다. 어릴 때 백내장으로 시각장애인이 된 버질은 중년에 백내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단다. 그는 이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수술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중병에 걸려 시력을 잃었단다. 

베벌리 비더만은 <<소리를 위한 배선>>에서 인공와우를 이식받은 직후 느낀 절망감을 이야기한단다. 비더만은 어릴 때 청력을 잃기 시작해 30년 넘게 뒤가 들리지 않는 상태로 살다가 인공와우를 이식받았단다. 하지만 그는 다시 소리를 경험한 후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느낌에 압도되었다." 그렇다고 다시 청각장애인으로 돌아갈 수 업는 노릇이지만 새로운 상황이 견딜 수 없었단다. 평정심을 완전히 잃은 그는 "딱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힘들까? 왜 눈이 안 보이던 사람이 시각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왜 귀가 안 들리던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무작정 반기지 않을까? 이 질문이 특히 흥미로웠던 이유는 저자도 마흔여덟 살에 갑자기 시력이 극적으로 개선되었기 때문이란다. 그 변화 앞에서 저자는 자꾸만 어린아이처럼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단다. 어릴 때부터 사시였던 저자는 주로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다가 중년에 시훈련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두 눈을 함께 사용하는 법을 배웠단다. 두 눈을 사용하자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단다. 저자는 입체감을 느낄 수 있었고, 사물들 사이의 공간을 3차원으로 볼 수 있었단다. 나뭇가지가 저자를 향해 손을 뻗었고 조명기구가 머리 위에 두둥실 떠 있었단다. 슈퍼마켓 농산물 코너에 가서 갖가지 색깔과 모양을 볼 때는 황홀한 느낌마저 들었단다. 저자는 이렇듯 입체시를 얻고 기뻤는데, 왜 처음으로 앞을 볼 수 있게 된 사람은 기쁨으로 벅차오르지 않을까?

새로운 방식으로 보는 것과 처음 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단다. 새로운 입체시가 저자에게 기쁨을 가져다준 이유는 그것이 저자가 보는 세상을 교란하지 않고 오히려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입체시를 얻기 전에도 항상 한쪽 눈으로 본 단서를 이용해 사물들이 놓여 있는 순서를 알 수 있었단다. 예를 들어 전경의 물체는 뒤에 놓인 물체에 닿는 저자의 시야를 가렸단다. 그녀는 한쪽 눈으로 뭐가 앞에 있고 뭐가 뒤에 있는지 알 수 있었지만 공간이 압축되어 보였단다. 그런데 입체기가 생기자 공간이 부풀어올랐단다. 그녀는 특정 사물과 그 뒤에 놓인 것들 사이의 공간을 그저 유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단다. 새로운 입체시로 본 세상은 앞뒤가 딱딱 맞았단다. 

난생처음으로 시각이나 청각을 갖게 된 성인이나 청소년은 그녀와는 경우가 다르단다. 새로 시력을 얻은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자마자 알아보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하단다. 우리 대부분은 한번 흘깃 보면 장면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단다. 하지만 새로 시력을 얻은 사람들은 사물과 사람으로 가득한 3차원 풍경이 다양한 선과 색깔들로 뒤죽박죽된 평면으로 보인단다. 예를 들어 스물다섯 살의 한 여성은 처음 본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단다. "나는 사방에서 빛과 그림자의 혼합, 길이가 다른 선들, 둥글고 네모난 사물들을 본다. 나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감각 정보의 모자이크에 깜짝 놀라지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앨버트 브레그먼이 자신의 책 <<청각적 장면 분석>>에서 지적하듯이, 감각 정보는 난데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란다. 녹색인 무언가가 없으면 우리는 녹색을 볼 수 없단다. 소리를 유발하는 사건이 없으면 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단다. 색, 질감, 윤곽, 삐걱거림, 쾅 소리, 목소리는 모두 무언가 또는 누군가에게서 나온단다. 난생처음 보거나 듣게 된 성인은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새로운 감각들의 포화에 압도된단다. 감각 정보들은 뜬금없고 무의미하단다. 안과 의사 알베르토 발보는 시력을 회복한 한 환자의 말을 인용했단다. "이 멀고 불행한 길은 나를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 나는 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다. 약해진 것 같고 자주 심한 피로감에 사로잡힌다."

다음 그림에는 컵, 숟가락, 대접, 세 가지 사물이 있단다. 컴이 숟가락을 부분적으로 가리고 있지만, 우리는 숟가락의 끊긴 두 부분이 같은 사물에 속한다는 것을 안단다. 하지만 이제 막 시력을 새로 얻은 성인이나 청소년은 이 사진이 평평하게 보여서 숟가락의 두 부분을 별개의 사물로 인식한단다. 사진 속의 그림자는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란다. 그런데 이 사진은 우리가 평소에 보는 부엌, 마당, 거리, 풍경과 비교하면 훨씬 단순한 장면이란다. 

'소속'의 문제는 청각에서도 발생한단다. 그녀는 덥고 습한 날이 문장을 타이핑하면서 열린 창문 너무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 책상 옆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자판 두드리는 소리,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단다. 그리고 라디오를 켜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단다. 바이올린과 플루트가 동신에 같은 음을 연주하고 있지만, 그녀는 각 악기가 내는 소리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단다. 각각의 소리(비, 선충기, 키보드, 바이올린, 플루트)는 그녀의 귀에 음파들이 합쳐진 형태로 동시에 도달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소리의 출처를 자동으로 분류할 수 있단다. 그녀는 어떤 음파가 비에 속하고 어떤 음파가 플루트에 속하는지 안단다. 하지만 난생처음 소리를 듣는 성인은 그 소리들을 이해할 수 없는 불협화음으로 인식한단다. 소리는 무의미하고 실체가 없으며,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단다. 성인이 되어 새로 습득한 감각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풍성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든단다. 

 

나는 사람들이 '침묵'이라고 부르는 것 속에서 40변을 보낸 후 그 상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서(소라게가 껍데기에 익숙하듯) 내일 청각이 돌아오면 좋기보다는 괴로울 것 같다. 들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 아니라, 손을 사용하는 것처럼 청각장애가 존재의 필수 조건이 되었을 정도로 장애에 적응되었다는 뜻이다. 그것을 청각의 회복이라고 해야 할지 청각장애의 상실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다시 듣게 된다면 손이 잘리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위 문단은 일곱 살에 청각을 잃은 시인 데이비드 라이트가 다시 듣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곰곰이 생각하며 쓴 글로, 어디까지나 가정상의 고민이었단다. 그가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청각을 회복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었단다. 하지만 몇 년 후인 1972년에 최초의 인공와우 이식술이 도입되었단다. 그때 많은 청각장애인이 인공와우 이식에 반대했단다. 그들 고유의 언어 수어와 고유의 문화가 있는 농인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은 청각 회복이 개인적, 사회적으로 엄청난 조정을 요구한다는 것을 청인(聽人)들보다 잘 이해했단다.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에게 유년기 이후 새로운 감각을 습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체성을 다시 만들라는 말과 같단다.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잘 살아왔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가 어린아이처럼 취약한 존재가 된단다. 계단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단다. 들을 수는 있지만 들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단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존 캐루스는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잘 찾던 사람이지만, 나이 서른에 시력을 되찾은 후에는 자신감이 없어서 어둠 속에서 조심조심 움직였단다. SB는 시각장애인이었을 때는 자신 있게 길을 건넜지만 시력을 되찾은 후에는 달리는 차들이 무서워서 혼자서는 길을 건너지 않았단다. 시력이나 청력을 새로 얻은 사람들이 엮는 이런 무력감은, 그들이 짐작했던 것보다 남들이 시각과 청각을 통해 훨씬 자세한 정보를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심해진단다. 실제로 발보는, 시력 회복 후에도 외출할 때 검은 안경과 지팡이를 계속 사용하는 환자의 사례를 보고 했단다. 그 남성은 시각장애가 있을 때는 걸을 때 존경받는다고 느꼈지만, 시력을 얻은 후에는 앞이 보이는데도 주춤거리며 걷는 자신을 남들이 동정하는 것이 싫었단다.

시각이나 청각이 새로 생기면 공간 감각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단다. 새로 시력을 얻은 사람은 사물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눈으로 파악해본 경험이 없단다. SB가 처음으로 지상 9~12미터 높이의 창밖을 내다봤을 때, 그는 손을 사용해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보지 못하면 거리와 공간을 다른 방법으로 판단해야 한단다. 중년의 시각장애인 존 헐은 이렇게0 썼단다. "공간은 내 몸으로 축소된다. 따라서 내 몬의 위치를 파악하는 기준은 어떤 사물들을 지나쳐갔는지가 아니라 움직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느냐다. 위치를 측정하는 기준은 이렇듯 시간이다." 발보가 보고한 시력 회복 환자 TG도 헐과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단다. "수술 전에는 공간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달랐다. (...)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특정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필요한 시간만 고려했다. 하지만 수술 후에는 거기까지 가는 데 필요한 시간과 시각을 함께 고려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각을 새로 얻은 사람은 공간과 거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발달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각 방식을 개발해야 한단다. 손과 귀를 사용할 때 우리는 순차적으로 세상을 탐색한단다. 즉 한 지점씩 차례로 만지고 일련의 소리를 차례로 듣는단다. 하지만 눈으로는 한 번에 많은 것을 본단다. 

시각은 멀리 있는 사물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지만, 사이에 장애물이 있거나 대상이 모퉁이 너머에 있거나 어두운 곳에서는 볼 수 없단다. 하지만 들을 수는 있단다. 우리는 보지 못해도 소리가 사물과 벽에 부딪혀 튕겨나오는 방식을 통해 우리가 좁고 밀폐된 방에 있는지, 아니면 넓고 탁 트인 공간에 있는지 알 수 있단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지각하는 세계는 그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에 의해 구성되는 동시에 제한받는단다. 청각장애인이 인공와우를 이식하면 소리 인식에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그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파악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단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소리들과 메아리는 청각장애인이 자신과 사물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는 데 혼란을 준단다. 

우리 대부분은 새로운 감각을 얻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없지만, 새집으로 이사하면 일상이 얼마나 흐트러지는지는 잘 알고 있단다. 새집이 더 살기 좋은 곳이라 해도 정겹고 익숙한 동네를 떠나는 건 두려운 일이란다. 새로운 장도는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고, 우리는 습관과 동선을 바꿔야 한단다. 이런 적응을 위해서는 뇌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는데, 과학자이자 작가인 I. 로젠필드가 <<기억을 발명>>에서 지적하듯, 이는 불안과 우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단다. 새로운 감각을 습득하면 그동안 알던 세상을 떠나 두변의 거의 모든 것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단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런 변화에는 새집으로 이사할 때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뇌 재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불안과 우울이 더 커질 수 있단다. 

 

시각과 청각은 언뜻 생각하면 순전히 기계적인 과정일 것 같단다. 광자가 망막의 빛 감지 색소에 닿으면 일련의 전기, 화학적 사건이 발생하여 뇌에 빛, 색, 움직임에 대한 신호를 보낸단다. 서로 다른 주파수의 음파는 속귀(내이)에 있는 달팽이관의 각기 다른 부분을 진동시키고, 그 결과 우리는 음높이를 감지할 수 있단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단다. 모두 동일한 감각 구졸고 되어 있다 해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필요, 욕구를 바탕으로 저마다 다른 매우 개인적인 버전의 세살을 지각한단다. 

존 헐은 시각장애를 '상태'로 표현했단다. "젊거나 늙은 상태, 남성이나 여성인 상태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는 인간의 여러 상태 중 하나다. (...) 하나의 상태는 다른 상태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각이나 청각을 처음 얻은 성인이나 청소년은 우리 대부분과는 너무도 다른 지각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처음 본 광경이나 처음 들은 소리에 대한 그들의 묘사를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단다. 이들의 사례를 보면, 눈과 귀만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 전체가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저자는 입체기가 생겼을 때 세상이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보여서 깜짝 놀랐단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세상에 살았기 때문에 그동안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추정했단다. 어쨌든 그녀는 주변 사믈들을 식별할 수 있었고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 나무는 그대로였지만, 입체시가 생기니 나무가 완전히 새롭게 보였단다. 우거린 나뭇잎들은 어리아이가 그린 그림에서처럼 평평하지 않았단다. 가지와 잎이 겹겹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단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그녀 모습이 유리 표면에 비치는 게 아니라 거울 뒤 반사된 공간에 있었단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변화는 그녀가 순간적으로 한쪽 눈을 감았을 때 일어났단다. 그렇게 해도 입체맹이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보이지 않았단다. 그녀 모습은 여전히 거울 뒤에 있었단다. 한쪽 눈으로 볼 때도 이제는 두 눈으로 본 경험의 영향을 받았단다. 항상 입체시로 보던 사람들에게 그녀의 새로운 시각을 설명하자 그들은 당황했단다. 그들은 자기 모습이 거울 뒤가 아니라 거울 표면에 있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단다. 한편 입체맹인 사람들에게 입체시를 말하자 그들은 자기 모습이 거울 표면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단다. 항상 입체시로 보는 사람과 입체시로 본 적이 없는 사람 사이에는 완전히 메울 수 없는 지각의 격차가 존재했단다. 마찬가지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난생처음 보거나 듣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온전히 상상할 수 없단다. 

실제로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이 지각 세계를 주조하기 시작한단다. 신생아는 우리 눈에는 무력해 보일지 몰라도 주변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단다. 아기는 출생 직후 엄마의 목소리를 인식할 수 있으며, 며칠 내에 엄마의 얼굴도 알아본단다. 생후 1년 동안 아기는 모국어 소리와 자주 보는 얼굴들에 특히 민감해진단다. 또한 아기들에게는 탐색하고 실험하려는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이 있단다. 생후 약 4개월이 지나 손을 뻗을 수 있게 되면 아기는 물건을 쥐고 흔들고 떨어뜨리는 실험을 하며, 두 가지 사물을 서로 맞부딪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단다. 이런 식으로 아기는 사물들의 성질과 3차원적 형태를 스스로 터득한단다. 우리 모두는 똑같은 메커니즘과 뇌 영역을 사용해 감각 정보를 분석하고 처리하지만, 한 아이의 지각 체계는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각자가 처한 환경 속 사람들과 사물들에 맞추어 독특한 방식으로 발달한단다. 

올리버 색스는 지각의 그런 사적인 성질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단다. "당사자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모든 지가그, 모든 장면은 본인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각자가 만들고 있는 영화의 감독인 동시에 그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모든 프레임, 모든 순간에 자기 자신이 담기기 때문이다." 촬영감독과 음향 엔지니어가 카메라와 마이크의 방향을 관걕이 주목했으면 하는 사건으로 돌리듯, 우리는 자신의 몸과 머리와 눈을 움직여 무엇을 보고 들을지 선택한단다. 사람의 시각에서 가장 예리하고 예민한 곳은 망막 중앙에 있는 중심오목(중심와)이란다. 그래서 사물을 자세히 보려면 똑바로 쳐다봐야 한단다. 흥미로운 소리를 가장 잘 듣기 위해서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객를 돌려야 한단다. 우리는 어떤 장면을 훑어볼 때, 눈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이다가 중요한 부분에서 멈추어 잠시 응시하거나 집중한단다. 사람들에게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고 그동안 그들의 눈 움직임을 모니터링한 연구를 보면, 우리는 특정 장면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보지 않는 듯하단다. 전부 받아들이기에는 들어오는 자극의 용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무시할지 선택해야 한단다. 시선을 어디에 두고 무엇에 주의를 기울일지는 주변 환경에 대한 사전 지식, 과거 경험과 선호, 당면 과제, 그리고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에 달려 있단다. 

장면과 소리는 사적인 기억과 감정을 형성하고, 그런 경험은 다시 일생에 걸쳐 우리가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고 무엇을 지각하는지에 영향을 미친단다. 예전 어느 여름날 그녀는 열 살짜리 아들과 함께 케이프코드 해안 근처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산책을 했단다. 산책하는 동안 그녀는 새와 나무를 감상했지만, 아이는 그녀가 하는 말을 거의 듣지 않았단다. 그 대신 아이는 전봇대를 가리키며 거기 달린 전깃줄과 변압기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그녀에게 작동 원리를 설명해 주었단다. 그들은 같은 길을 걸으며 대체로 같은 방향을 바라봤지만 전혀 다른 것들을 보고 있었고, 자신이 인식한 것과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만 걸러 내고 나머지는 무시했단다. 그녀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생각한 나무들이 아이에게는 배경 소음에 불과했고, 아이가 그토록 매혹적이러고 생각한 전깃줄이 그녀에게는 배경 소음일 뿐이었단다. 하지만 그 뒤로 그녀는 전깃줄과 변압기를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이제는 그 사물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으며 행복한 기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란다. 지각은 경험을 형성하고 경험은 지각을 형성한단다. 아들과의 산책처럼 평범한 일상의 사건이 지각에 그런 변화를 일으킨다면 새로 획득한 감각은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고 그런 변화는 개인마다 다른 사적인 성질을 띨 거란다.  

우리는 일생에 걸쳐 각자의 환경, 필요, 전문 지식에 맞추어 감각 체계를 계속 조정한단다. 정비공은 자동차 엔진을 볼 때 일반인보다 한눈에 더 많은 것을 본단다. 숲에서 산책하는 동안 그들은 모두 같은 새를 뱔견할 수 있지만, 조류 관찰자는 자신이 보는 것에서 더 많은 정보를 추출한단다. 그는 특정 종을 식별하려면 어떤 특징과 패턴(예를 들어 부리, 깃털, 비행 행동, 울음소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안단다. 심리학자 엘리너 깁슨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 가장 관련도가 높은 요소와 패턴을 골라내는 습관을 들이는 과정을 '지각 학습'이라고 불렀단다. 지각 학습은 학교에서 지식을 습득하거나 야구공 치기 같은 새로운 운동 기능을 배우는 것과 다르단다. 우리는 유아기부터 지각 학습을 통해 지식을 습득해왔는데도 불구하고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 일일이 알지 못한단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떻게 세인트버나드와 소형 닥스훈트를 모두 개로 인식하는 걸까? 이런 판단을 내리는 데 우리가 어떤 정보를 사용하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가? 이제 막 시력을 얻은 성인은 시각적 공간 속에서 지각 학습을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단다. 시력을 새로 얻은 사람이 자신이 보고 있는 새가 어떤 종류의 새인지 식별하려면, 먼저 그 새를 새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와 분리된 개별 단위로, 그리고 다른 동물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시각적 범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단다. 

그녀는 매년 마운트홀리요크 칼리지에서 생물학 입문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지각 학습을 지켜보았단다. 예를 들어 학생들을 데리고 캠퍼스 주변으로 현장학습을 떠난 날, 호수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학생들에게 새로운 식물을 발견했는지 물었단다. 한 학생이 뒤늦게 꽃을 피운 국화과 식물을 가리키며 "저 꽃들 말씀하시는 건가요?"라고 물었단다. 그녀가 고개를 흔들자, 또 다른 학생이 양치식물을 가리켰단다. 

"그것도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단다. "계속 찾아보세요." 몇몇 학생들은 물가까지 내려갔지만 별다른 것은 찾지 못했단다. 마침내 그녀가 몇 가지 힌트를 주자 한 학생이 물었단다. "저기 있는 녹색 줄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녹색 줄기'가 바로 그녀가 학생들이 보기를 바랐던 식물인 속새였단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속새는 5억 년 전 숲을 시배했던, 꽃을 피우지 않는 아주 오래된 식물이라고 설명했단다. 걸어가는 동안 학생들은 내내 속새를 가리켰단다. 전에는 그 식물이 그들의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녀가 주의를 끌어당긴 순간부터 그들의 시선에 계속 잡혔단다. 외부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거기서 새로운 정보를 추출하고 있었단다. 그들의 개인적인 지각 세계가 바뀐 거란다. 

우리가 세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은 '무엇을 지각하는가'뿐만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에도 영향을 미친단다. 타인의 표정, 몸짓, 음색을 잘 알아채는 사람은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 특히 민감할 것이란다. 이동하는 동안 하늘에서 태양의 위치를 추적하는 사람은 방향 감각이 뛰어날 거란다. 개인의 호불호는 그 사람이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고 무엇을 지각하는지와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강화한단다. 우리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르 잘할 수 있도록 지각 능력을 연마하는 동시에 자신이 가장 잘 지각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한단다. 피아노 소리에 매료되면 피아노 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게 되고, 피아노를 더 많이 연주할 거란다. 그러면 더 섬세한 청취자가 될 것이고, 그 결과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쁨이 더욱 커질 거란다.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모두 자기만의 지각적 편향과 지각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각자의 감각과 행동을 인도하는 동사에 제한한단다. 지각은 개인적인 행위이란다. 더 나은 관찰자와 청취자가 되고 싶다면, 자신이 눈과 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인지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단다. 

"지각은 우리에게 닥치는 일도,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누리가 하는 무언가다." 철학자 알바 노에는 이렇게 말한단다. 우리는 보고 듣기 위해 자신의 몸,머리, 눈을 움직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단다. 무엇을 보고 들을지는 본인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므로, 성인이 되어 시각이나 청각을 발달시키는 일은 대단히 적극적인 과정이란다. 눈과 귀를 새롭게 얻는다 해도 그 소유자가 자신이 보고 듣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 그 의미를 파악하지 않으면, '보기'나 '듣기'로 이어지지 않는단다. 마리우스 폰 센덴은 <<공간과 시각>>에서, 선천적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백내장 수술을 받고 시력을 회복한 다섯 살 짜리 두 소년이 겪은 경험을 기술한단다. 소년들은 수술 후에도 외과 의사가 깜짝 놀랄 정도로 보이는 것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계속 손으로 세상을 탐색했단다. 시각을 사용하는 방법을 교육받은 후에도 소년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무시했단다.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뭔가를 의도적으로 봏지 않았으며, 새로운 감각 정보를 자신의 지각 세계에 병합하지 않았단다. 

SB는 볼 수 있게 된 후에도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눈을 돌리거나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고,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듯이 주변 환경을 탐색하지도 않았단다. 그가 세상을 탐색할 때 사용하는 주된 수단은 촉각이었단다. 그레고리와 월리스는 이렇게 썼단다. "학습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지각 습관과 전략을 촉각에서 시각으로 바꾸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올리버 색스도 우리가 습관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강조했단다. 버질은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사람, 자동차, 동물 모양의 장난감을 사서 그 장난감을 실제 사람, 자동차, 동물의 모습과 연결시켜 보았단다. 동물원에 갔을 때 버질은 처음에는 고릴라를 보고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단다. 근처에 있는 고릴라 동상을 손으로 만져보고 나서야 둘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단다. 동물원에서 버질을 지켜본 후 색스는 이렇게 썼단다. "고릴라 동상을 손으로 빠르고 세밀하게 탐색할 때 버질은 눈으로 무언가를 살펴볼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그가 시각장애인으로서 얼마나 능숙하고 부족함 없이 살아왔는지, 손으로 세상을 을마나 자연스럽고 쉽게 경험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지금 그를 얼마나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우리는 그에게 쉽게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엄청나게 어렵고 이질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감각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유년기 초기를 지나 보고 듣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지각 습관과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지각 세계를 완전히 재정리해야 하며, 적극적인 탐색, 실험, 분석이 필요하단다. 

 

따라서 선천적 청각장애인이었다가 듣는 법을 배우는 데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유아기나 유년기에 인공와우를 이식받았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단다. 그리고 유년기를 지나 보는 능력을 회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단다. 새로 볼 수 있게 된 성인이 시각에 순응한 사례를 보고되어 있지만 시력 회복 사례 66건을 검토한 폰 센덴은 처음으로 본 순간의 흥분 뒤에는 거의 항상 심리적 위기가 뒤따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단다.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은 이런 비관적 보고에 과학적 무게를 싣는단다. 이런 실험에 따르며, 생애 초기 중요한 발달 시기에 감각을 잃으면 평생 돌이킬 수 없는 감각 장애로 이어지는 것 같단다. 예를 들어 (성체는 그렇지 않지만) 갓 태어난 고양이나 원숭이의 한쪽 눈을 가리면, 가리지 않은 눈으로 들어오는 인풋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뇌 연결이 바뀌어 양안시를 잃게 된단다. 따라서 여덟 살이 넘은 선천적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에게 시력과 청력을 회복시키는 시도는 최근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단다. 여덟 살 무렵이 되면 뇌는 더 이상 새로운 감각을 발달시킬 수 있는 가소성을 갖지 못한다고 여겨졌단다. 

그래서 그녀는 유년기 초반을 지나 새로운 감각을 획득한 두 사람을 2010년에 처음 만나고 큰 흥미를 느꼈단다. 두 사람 모두 새로운 감각을 수요6ㅇ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단다. 리엄 매코이는 아기 때부터 사실상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열다섯 살에 일련의 과감한 수술을 받고 시력을 얻었단다. 조흐라 담지는 열두 살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인공와우를 이식받을 때까지 청력이 심각하게 떨어졌단다. 실제로 조흐라의 담당 의사는 조흐라의 이모에게 조흐라가 청각장애로 살아온 기간과 장애의 심각성을 알았더라면 수술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단다. 

리엄과 조흐라는 초기 유년기를 지나 새로운 감각을 회복하고 거기에 적응한 드문 집단에 속한단다. 베벌리 비더만도 처음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청각을 받아들였단다. 폰센덴과 발보는 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몇몇 환자들의 사례를 보고했단다. 시력을 되찾은 마이클 메이는 <<기꺼이 길을 잃어라>>에 묘사된 것처럼 자신의 시각에 적응했고, 시력 회복 프로그램 프라카시 프로젝트를 통해 치료받은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새로운 시각을 잘 활요하고 있단다. 처음에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새로운 지각 세계를 어떤 사람은 잘 헤쳐나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이 질문에 한 가지 정답은 없단다. 각자의 인생 이력 및 경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을 지각하고 세상에 적응한단다. 

그녀는 리엄을 수술 5년 후인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처음 만났고, 조흐라는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받은 지 10년 후인 스물 두 살 때 만났단다. 두 사람이 자신의 유년기와 처음 보고 들은 순간의 충격에 대해 들려주었지만, 우리는 그들이 새로운 감각에 적응하는 과정을 하루하루 재구성하기보다 현재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지각하는지를 탐구했단다. 그녀는 그들의 어린 시절에 대해 듣고 그들이 영위하는 일상의 작은 부분을 공유했을 때 비로소 두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지각 세계를 재구축하고 재정렬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단다. 우리는 두 사람이 유년기에 겪은 도전과 성공, 가족과 의사로부터 받은 지원, 그들이 받은 교육, 그들의 목표, 그리고 모든 사람이 보고 들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사회에서 자기만의 방식을 찾기 위해 두 사람이 개발한 지각 훈련과 전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우리는 수많은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그녀는 그들의 집을 방문하고 가족을 만나 그들이 일상에서 겪는 좌절과 즐거움을 함께 경험했단다. 리엄과 조흐라는 10년에 걸쳐 그녀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단다. 그 이야기들은 지각이 개인적이고 사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들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물리적. 사회적 세계에 맞추어 각자의 지각 체계를 바꾸고 적응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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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엄

 

선천적 시각장애인에게 시각을 되찾아주는 것은 외과 의사의 일이라기보다는 교육자의 일에 가깝다. - F. 모로, M. 폰 센덴의 (공간과 시각: 수술 전후 선천적 시각장애인의 공간과 형태 지각)

 

01 - 엄마는 어디까지 보여요?

 

한 베스트셀러 소설의 첫 부분에 유명 박물관의 큐레이커가 총에 맞아 살해당하는 장면이 나온단다. 범인은 백색증을 앓은 백발 남성으로 밝혀진단다. 하지만 리엄 매코이는 범인의 인물 설정이 많이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본인도 백생증이 있어서 백색증인 대부분의 사람은 시력이 너무 나빠서 살인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안과 의사 로런스 타이크슨 박사를 통해 리엄을 처음 만났단다. 박사가 저자인 그녀에게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교 안과에 와서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였단다. 다른 의사들이 검사와 치료를 포기할 정도로 심각한 신경장애를 지닌 아이들을 치료하는 'T선생님'(리엄은 그를 이렇게 부른단다)은 그녀가 성인이 되어 입체시를 되찾았다고 하자 흥미를 보이면서 놀라운 시각 회복 스토리를 가진 한 환자에 대해 말했단다. 그러면서 "리엄을 꼭 만나보세요"라고 했단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수차례의 전화통화, 이메일, 방문을 통해 리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단다. 

 

산부인과 간호사는 리엄의 머리가 나오는 순간 그가 다른 아이들과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단다. 리엄의 머리카락은 은색으로 반짝였고, 매우 창백한 피불르 통해 혈관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단다. "맙소사!" 간호사가 분만실에서 달려나오며 소리쳤단다. 잠시 후 간호사는 의사와 함게 돌아왔고, 의사도 신생아를 한번 보더니 황급히 자리를 떴단다. 의사가 돌아왔을 때 리엄의 어머니 신디는 몹시 걱정이 되어 의사에게 뭐가 잘못됐느냐고 물었단다. 의사는 "머리털이 아마색이에요. 아기 머리카락이 목화처럼 하얘요."라고 대답했단다. 그렇지만 다음 날 병원 소식지에 "그런 아마빛 머리카락을 지닌 아기는 처음 보았다."라고 쓴 건 생각이 짧았단다. 아기를 보려고 낯선 사람들이 병실로 계속 찾아왔기 때문이란다. 신디는 안정을 취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리엄을 데리고 집으로 왔단다.

리엄은 모호크족처럼 뒤통수에서부터 이마 언저리까지 은빛 머리카락이 돋아나 있었단다. 신디가 은빛 머리카락을 카메라로 촬영했지만 모든 사진이 노출 과다로 나왔단다. 아기어 머리색이 너무 하얘서 사진에 잘 나오지 않았던 거란다. 신디는처음부터 백색증을 의심했단다. 이 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몇 명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공교롭게도 전 직장의 구내식당 직원들이 모두 백색증을 앓고 있었단다. 그래서 리엄이 생후 1주일이 되었을 때 신디는 소아과 의사에게 자신이 우려하는 것이 맞는지 물었단다. 하지만 소아과 의사는 신디의 의심을 일축했단다. 리엄의 눈동자는 옅은 파란색이었단다. 의사는 아이 아버지 쪽에 북유럽계 친척이 있다는 걸 알고 아기가 그쪽을 닮은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돌이켜보면 의사가 오진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란다. 머리카락, 눈동자, 피부에 색소가 부족한 백색증은 1만 7000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나는 희귀 질환이란다. 그리고 언론 매체의 부정확하고 종종 잔인하기까지 한 묘사와는 달리, 백색증인 사람들의 눈동자는 분홍색이나 붉은색이 아니란다. 그들의 눈동자는 리엄처럼 푸른색이거나 회색, 때로는 보라색이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전질환 전문의가 리엄의 백색증을 확인해준 것은 생후 17개월이 지나서였단다. 

리엄과 같은 푸른색 눈동자는 홍채에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서 생긴단다. 홍채는 눈에서 눈동자의 크기와 지름을 조절하는, 색깔 있는 부분이란다. 멜라닌은 눈동자를 녹색 또는 갈색으로 만들며, 눈을 프르게 만드는 색소는 존재하지 않는단다. 홍채는 여러 조직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푸른 눈동자는 이 조직층에 의해 빛이 산란된 결과란다. (하늘이 파란색인 것과 비슷한 원리란다) 백색증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푸른 눈을 가진 모든 사람은 홍채 앞부분에 멜라닌 색소가 부족하단다. 백색증인 사람은 백색증이 아닌데도 푸른 눈동자를 지닌 사람과 다르게 홍채와 눈의 다른 부분, 그리고 대체로 피부와 머리카락에도 멜라닌 색소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단다. 실제로 백색증을 유발하는 여러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되었는데, 그 돌연변이들은 전신의 멜라닌 합성에 영향을 미친단다. 

많은 사람이 백색증이 있는 사람은 색소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단다. 멜라닌은 우리 몸에서 발견되는 많은 색소 중 한 종류에 불과하단다. 다른 색소로는 혈액에서 산소와 결합하는 분자인 헤모글로빈과, 눈의 막대세포와 원뿔세포에서 발견되는 빛 감지 색소들인 롭도신과 포톱신이 있단다. 백색증인 사람도 이런 다른 색소들은 지니고 있으며 부족하거나 없는 것은 멜라닌뿐이란다. 

신디는 초보 엄마로서 분명 외로웠을 거란다. 그는 밝고 호창한 날 아기를 데리고 산택을 하거나 공원에 갈 수 없었단다. 백생증이 있는 많은 아기와 마찬가지로 리엄은 밝은 빛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빛 공포증을 보였단다. 그 또한 멜라닌 생소가 부족해서란다. 멜라닌은 홍채 앞부분뿐만 아니라 뒤쪽에서도 발견되는데, 그 부분에서는 빛이 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단다. 멜라닌 때문에 빛은 눈의 한 지점, 즉 동공을 통해서만 들어온단다. 우리는 밝은 햇빛 속에서는 동공을 수축시켜 망막에 닿는 빛의 양을 줄이고, 어두운 곳에서는 동공을 챙창시켜 더 많은 빛을 들여보낸단다. 백색증인 사람은 홍채 뒤쪽에 멜라닌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빛이 많은 곳에 가면 눈이 부셔서 고통스럽단다. 신디는 그래서 밤이나 새벽, 또는 해질녘에만 리엄을 데리고 외출했단다. 그리고 해가 진 후 리엄을 지켜보기 위해 집 주변에 특수 조명을 달았고, 이웃의 허락을 얻어 두 집 사이에 그늘이 지는 이웃집 담벼락 엎에 리엄의 노리 풀장을 설치했단다. 

리엄이 생후 4개월이 되었을 때, 신디는 리엄의 시력에 대해 점점 더 걱정하기 시작했단다. 신디는 이제 막 먹이기 시작한 고형식을 한 숟가락 가득 채워 리엄의 눈앞에서 앞뒤로 천천히 움직였단다. 리엄은 배가 고파도 숟가락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지 못했단다. 그래서 신디는 리엄을 소아과 의사에게 데려가 시력에 대해 물었단다. 의사는 리엄의 눈동자가 빛을따라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들고 방을 한 바퀴 돌더니 보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단다.

하지만 신디는 전문 언어치료사로 일하면서 시각장애 아동과 청각장애 아동을 접한 적이 잇었던 터라 의사의 결론을 믿을 수 없었단다. 신디는 이렁므이 지각을 자극하기 위해 기저귀 교환대에 조명을 고정하고 항상 켜두었단다. 그리고 빨간색과 검은색이 많이 포함된 아이스크림 가맹점 데어리 퀴의 광고지를 아기침대에 테이프로 붙였단다. 신디는 눈동자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도 알아챘단다. 그런 안구 정렬 오류(사시)는 리엄이 나이을 먹어도 개선되지 않았단다. 리엄이 걷고 엄마와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컸을 때, 신디는 리엄의 오른쪽 눈이 마치 자신의 왼쪽 어깨 너머를 보는 것처럼 위쪽과 바깥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단다. 리엄은 자신이 눈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기억한단다. 대부분의 백색증 환자와 마찬가지로 리엄도 눈을 불수의적으로 떨리는 현상인 안구진탕(안진) 증상을 보였단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볼 수 없었단다. 

시각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리엄의 운동 능력은 대부분의 아기보다 빨리 발달했단다. 어느 순간 팔다리로 몸을 일으키더니 금방 기어다녔단다. 균형 감각도 뛰어났단다. 움직이는 흔들의자 위에 올라가 균형을 잡고 있는 리엄을 발견한 신디가 내려오라고 하기 전에 찍어둔 사진도 있단다. 리엄은 보통 아이들보다 빠른 생호 7~9개월 즈음 걷기 시작했지만, 겅을 때 신디의 손가락을 꼭 잡고 놓지 않으려 했단다. 그건 균형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대신 보고 안내해줄 사람이 필요해서였단다. 엄마와 함께 집 안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던 리엄은 생후 1년을 막 넘긴 어느 날, 60~90센티미터 떨어진 서류 캐비닛에 밝은 빛이 비치는 것을 보았단다. 그때 신디는 방 건너편에서 빨래를 개고 있었지만, 리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단다. 리엄은 그게 뭔지 살펴보기 위해 빨래바구니에서 손을 떼고 반짝이는 캐비닛으로 혼자 비틀거리지도 않고 걸어갔단다. 리엄의 운동 능력과 활기찬 모습에 대해 들을 때는 저자는 앤설리번이 묘사한 어린 헬렌 켈러가 떠올랐단다. 켈러는 시각과 청각을 잃었음에도 하루 종일 뛰고, 점프하고, 빙빙 돌고, 수영하고, 심지어 나무에 오르기까지 했단다. 설리번에 따르면 켈러는 "요정처럼 우아했다."

생후 16~17개월이 되었을 때 리엄에게 발진이 생겼단다. 신디는 리엄을 소아과 의사에게 데려갔지만 담당 의사가 자리를 비워서 대신 동료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단다. "아이가 누구를 보는 거죠?" 의사가 진료실로 들어오자마자 물었단다. 담당 의사와 달리 그는 리엄의 양 눈이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챘단다. 리엄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신디의 의심이 마침내 확인되었단다. 그 의사는 리엄을 소아 안과 의사에게 의뢰했고, 신디와 리엄은 곧바로 그 사람을 찾아갔단다. 하지만 진료는 상처만 남겼단다. 안과 의사는 리엄을 진찰한 후 돌연 "아이가 앞을 보지 못하는군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아이는 시력검사표의 맨 윗줄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라고 선언했단다.

같은 날 오후 신디는 장을 보러 가는 길에 리엄을 데려갓단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단다. 신디는 장난감을 몇 개 골라 쇼핑카트에 있는 다른 물건 아래 숨겼단다. 계산원이 장난감을 계산하기 시작하자 리엄이 자기 거냐고 물었단다. '앞을 못 본다고? 나 참, 기가 막혀서!' 신디는 이렇게 생각했단다. 

 

우리 눈은 태어날 때 완전히 형성되어 있지 않단다. 실제로 여덟 살 때까지 눈이 계속 발달하고, 시각이 성숙하기까지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단다. 유아는 글을 읽을 수 있어도 약 6미터 떨어진 시력 검사표의 글자를 식별할 수 없단다. 신생아의 시력은 성인의 시력보다 훨씬 낮단다. 백색증인 사람의 시력은 여러 면에서 신생아의 시력을 닮았단다. 시력검사표로 측정하면 안경을 착용해도 시력이 정상 시력 1.0에 미치지 못하고 대략 0.5에서 0.1 사이로 나온단다. 시력이 0.5인 사람은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이 12미터 거리에서 볼 수 잇는 것을 6미터 거리에서 볼 수 있고, 0.1인 사람은 시력이 1.0인 사람이 60미터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을 6미터 거리에서 볼 수 있단다. 시력이 0.1인 사람은 시력이 너무 나빠서 법적으로 시각장애인으로 간주된단다. 

인간의 눈을 처음 조사하는 사람은 눈의 구조가 배열된 방식에 깜짝 놀랄 거란다. 앞뒤가 바뀐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란다. 눈에서 빛을 감지하는 부위인 망막이 빛이 들어오는 안구 앞쪽이 아니라 뒤쪽에 있단다. 또 망막에는 여러 층의 세포와 신경돌기가 자리하고 있는데, 빛을 감지하는 세포들인 막대 세포와 원뿔세포는 거의 맨 뒤에 위치한단다. 막대세포는 빛이 별로 없는 곳에서 중요하고, 원뿔세포는 색깔을 보는 데 중요하단다. 이 세포들은 포톱신과 로돕신이라는 빛 흡수 화학물을 포함하고 있으며, 백색증인 사람들에거도 이 화합물이 존재한단다. 그래서 광자는 눈과 망막으로 들어와 막대세포와 원뿔세포의 빛 감지 색소에 흡수되기 전에 여러 구조와 세포를 통과해야 한단다. 눈 배열이 이런데도 우리가 볼 수 잇는 것은 눈의 내부 구조 대부분이 빛을 투과시키기 때문이란다. 한편 아기가 성장하면서 성인의 좋은 시력을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변화가 망막에 생긴단다. 

출생 후 몇 달 내에 망망의 중앙 부분이 눈 뒤쪽을 향해 구덩이 모양으로 접혀 들어간단다. 이렇게 하면 표면적이 증가해서 빛을 감지하는 원뿔세포를 더 많이 축적할 수 있단다. 실제로 이런 모양 때문에 망막 중앙의 이 부위를 라틴어로 '구덩이'를 뜻하는 '중심 오목'이라고 부른단다. 중심오목에서는 원뿔세포만 발견된단다. 하지만 이 부위 밖에는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모두 존재한단다. 망망이 성숙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원뿔세포가 망막 주변주에서 중심오목 부위로 이동하면서, 망막의 다른 어떤 곳보다 중심오목에 원뿔세포가 더 빽빽하게 밀집한단다. 원뿔세포 바깥층인 포톱신을 함유하는 부분도, 망막의 다른 곳보다 중심오목의 원뿔세포에서 더 길게 성장한단다. 게다가 겹겹이 놓인 다른 세포와 신경돌기들이 중심오목 구덩이 앞쪽에서 멀어진단다. 따라서 망망 중심오목에 도달한 빛은 다른 세포층을 거치지 않고 원뿔세포로 직행한단다. 

이 배열을 떠올려보면, 우리가 사물을 똑바로 볼 때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란다. 대상을 똑바로 보면 상이 중심오목에 맺히기 때문에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거란다. 중심오목 시각이 얼마나 선명한지 알고 싶다면, 이 페이지를 읽을 때 눈은 정면을 바라보되 책을 약간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든 채로 읽어보단다. 이렇게 하면 글자를 볼 때 중심오목이 아니라 망막 주변부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단다. 이렇게 해도 글자는 보이며 딱히 흐릿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해상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글자를 읽으려면 폰트 크기를 키워야 한단다. 

그러나 리엄처럼 백색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중심오목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않는데, 이 역시 멜라닌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멜라닌 색소는 홍채뿐만 아니라 망막색소상피에서도 발견된단다. 망막의 맨 뒤에 있는 이 조직판은 막대세포와 원뿔세포를 감싸며 영양을 공급한단다. 이 상피조직의 세포들은 멜라닌 알갱이로 꽉 차 있단다. 색소가 있는 다른 신체 부위와 마찬가지로 망막색소상피의 세포들도 아미노산의 일종인 티로신으로부터 일련의 화학적 단계를 거쳐 멜라닌을 자체적으로 합성한단다. 티로신은 먼저 도파라는 화합물로 전환되고, 그다음에 여러 다른 분자로 전환된 후 최종적으로 멜라닌으로 전환된단다. 그런데 백색증의 여러 형태에서는 이 경로가 존재하지 않는단다. 도파와 멜라닌은 망막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중심오목 형성과 망막세포 이동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하단다. 이런 화합물들이 없으면 중심오목이 정상적으로형성되지 않고, 중심오목으로 이동하는 원뿔세포의 수가 줄어들며, 망막의 다른 부분에 막대세포의 수가 즐어든단다. 따라서 백색증인 사람의 망막은 중심오목 구덩이가 얕거나 존재하지 않고 원뿔세포가 촘촘하지 않다는 점에서 신생아의 망막과 닮았단다. 중심오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안경으로 교정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나빠진단다. 

 

리엄은 자신이 가진 시력을 최대한 활용했단다. 새로운 장난감을 살펴볼 때는 장난감을 가장 잘 보이는 오른쪽 눈구석에 거의 닳을 정도로 가까이 가져왔단다. 그는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장난감을 꼼꼼히 살펴보고 세세한 부분까지 샅샅이 본 후, 다음부터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는 눈으로 보는 대신 기억에 의존했단다. 신디가 장난감을 새로운 장소로 옮길 때마다 리엄은 자세히 지켜보며 장난감이 놓인 곳을 기억해두었단다. 저자는 시각에 심각한 문제가 있더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중 기억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단다. 리엄의 기억력도 어릴 때부터 단련되었을 거란다. 

그래도 신디는 리엄이 어느 정도까지 볼 수 있는지 알아야 했단다. 리엄이 두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신디는 몰래 자기 침실로 들어갔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엄이 엄마를 찾기 시작했단다. 이 방 저 방을 차례로 들어갔다 나왔고, 그럴 때마다 시각보다는 기억과 촉각에 의지해 움직였단다. 리엄은 방마다 들어가 "엄마"하고 불렀지만 신디는 대답하지 않았단다. 신디의 침실에 들어갔을 때 리엄은 신디 바로 앞까지 다가가 "엄마?" 하고 불렀단다. 신디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러자 리엄은 돌아서서 엄마를 계속 찾았단다. 마침내 리엄이 침실로 되돌아와 엄마를 다시 부르자 신디는 대답을 했단다. 신디는 그 일을 잊지 못한단다. 리엄이 부를 때 대답할 수 없어서 괴로웠고,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지만, 신디는 리엄이 얼마나 잘 볼 수 있는지 알아야만 했단다. 

리엄은 생후 17개월부터 34개월까지 소아 안과 의사를 네 차례 만났단다. 리엄은 그 의사를 몹시 싫어했단다. 검사를 하는 동안 눈에 밝은 빛을 비추는 것이 리엄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해보란다. 두 번째인지 세 번째 진찰 때 신디가 리엄의 사시를 봐달라고 강하게 요구하자, 안과 의사는 리엄의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진찰실을 나갔단다. 리엄은 손을 올려 안대를 만지작거리지도 않고 신디의 무릎에 얌전히 앉아 있었단다. 하지만 잠시 후 의사가 돌아오자 곧바로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단다. 의사는 안대를 벗기며 신디에게 리엄의 시력이 나무 나빠서 안대도, 그 박에 다른 사시 치료 방법도 소용이 없을 거라고 말했단다. 그것으로 끝이었단다. 

사시가 있으면 두 눈이 같은 곳을 보지 않기 때문에 뇌에 상충되는 인풋을 주게 된단다. 그래서 사시가 있는 사람은 한쪽 눈을 찡그려 가늘게 뜨는 방법으로 적응한단다. 저자의 아기 때 사진을 보면 저자도 그런 식으로 사시에 대처한 것을 알 수 있단다. 저자의 아버지도 80대에 왼쪽 눈에 사시가 생겼을 때 오른쪽 눈을 크게 뜨고 왼쪽 눈을 거의 감은 채 그녀를 보았단다. 영국에서 사시를 노골적으로 '사팔뜨기'('눈을 가늘게 뜨고 보다'라는 뜻도 있단다)라고 부르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란다. 리엄도 자신의 오정렬된 눈에 적응하기 위해 오른쪽 눈으로 무언가를 보려면, 왼쪽 눈을 완전히 감고 오른쪽 눈꺼풀이 걸리적 거리지 않도록 오른쪽 눈썹을 강하게 치켜올려야 했단다. 

그런데 왜 백색증을 앓는 사람에게 사시, 즉 눈의 정렬이 맞지 않는 증상이 생길까? 사시는 인구의 약 4퍼센트에서 발견되지만 백색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흔하단다. 백색증이 있는 사람들은 좀 다른 이유로 사시가 생기는 것 같은데, 그들의 눈과 뇌가 연결되는 방식이 백색증을 앓고 있지 않은 사람의 방식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컵을 잡으려고 오른손을 뻗는 경우, 뇌 왼쪽에 있는 뉴런이 발화하며 손을 움직이라고 지시한단다. 오른손이 컴에 닿으면 감각 신호가 뇌 왼쪽으로 전송된단다. 왼발을 탁 치면 오른쪽 뇌의 뉴런이 활성화된단다. 이렇듯 몸 한쪽의 운동 제어와 감각 처리는 뇌 반대쪽에서 이루어진단다. 언뜻 생각하면 시각도 팔다리와 마찬가지로 오른쪽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왼쪽 뇌에서 처리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질일 것 같단다. 실제로 토끼처럼 눈이 측면에 위치한 동물은 그렇단다. 하지만 우리처럼 눈이 정면을 향하는 동물은 그렇지 않단다. 

사람의 눈은 얼국 측면이 아니라 정면에 위치하기 때문에, 각 눈은 시야의 오른쪽 절반과 왼쪽 절반을 모두 볼 수 있단다. 한 눈으로만 무언가를 보려고 시도해보면 저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란다. 따라서 두 눈에서 오는 인풋이 뇌 반대쪽에서 따로따로 처리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단다. 그 대신 시야의 왼쪽에서 오는 시각 정보는 뇌의 오른쪽에서, 시야의 오른쪽에서 오는 정보는 뇌 왼쪽에서 처리된단다. 우리 왼쪽에 있는 밝은 사물에 반사된 광선이 우리를 향해 온다고 상상해보란다. 이 광선은 직선으로 이동해,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양쪽 망막의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닿는단다. 즉 왼쪽 시야에서 오는 빛은 양쪽 망막의 오른쪽에 닿아 뇌의 오른쪽에서 처리된단다. 오른쪽에서 오는 빛은 그 반대란다. 그 결과 양쪽 눈에 비친 한 사물에 대한 인풋은 뇌 시각중추에서 동일한 뉴런에 모인단다.

이렇게 되려면 눈과 놔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 시신경 안의 신경섬유는 망막에서 출발해 시각교차(시신경교차)라는 뇌 영역을 통과해 다른 시가영역들로 간단다. 시각교차에서는 망막에서 뇌의 나머지 부분으로 이동하는 신경섬유 일부가 교차된단다. 오른쪽 시야에서 오는 인풋은 왼쪽 눈의 왼쪽 망막을 자극한 다음 시각교차에서 교차되지 않고 뇌 왼쪽으로 간단다. 하지만 같은 인풋은 오른쪽 눈의 왼쪽 망막도 자극한단다. 이 경우 시각교차에서 교차되어 왼쪽 뇌로 가서 왼쪽 눈으로 들어온 인풋과 합쳐져야 한단다. 왼쪽 시야에서 오는 지삭 자극은 그 반대란다. 따라서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은 각 눈에서 오는 시신경 섬유의 약 절반이 시각교차에서 교차되어 노 빈대쪽으로 간단다. 

그러나 백색증인 사람은 망막의 신경섬유가 이 경로를 따르지 않고 뇌의 같은 쪽에 있어야 할 일부 신경섬유들이 대신 교차되는데, 이런 변칙적인 교차는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단다. 그 결과 오른쪽 시야 일부에서 오는 시각 정보가 뇌의 왼쪽과 오른쪽 모두로 전달된단다. 왼쪽 시야에서 들어오는 인풋도 마찬가지란다. 이런 잘못된 경로는 백색증의 색소 부족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눈 운동 제어에 교란을 일으켜 눈의 오정렬과 입체시 장애를 일으키는 것 같단다. 리엄이 좀 더 성장했을 때 실시한 검사에서 시신경의 지나친 교차가 발견되었는데, 아마 이것이 그의 사시에 원인을 제공했을 거란다. 

하지만 시각 및 시각 발달에 대한 불완전한 지식에 근거하여 누군가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섣불리 예측해서는 안 된단다. 예를 들어 백색증을 지닌 사람도 사물이 시야의 어느 쪽에 있는지 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단다. 백색증을 앓고 있으며 눈 -뇌 경로가 잘못된 사람들 중 일부는 눈이 똑바로 정렬되어 있고, 어느 정도 입체시를 가지고 있으며, 입체시를 사용해 심도와 크기를 판단할 수도 있단다. 

 

리엄이 태어나고 2년 후 신디는 둘째 아들을 낳았단다. 둘째는 첫째와는 또 다른, 치료하기 어려운 의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단다. 소아과 의사는 둘대 아들을 위해 신디에게 한 전문의를 소개해주었는데, 그 의사는 리엄 가족이 사는 미주리주 컬럼비아가 아니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어린이 병원에 재직하고 있었단다. 그래서 신디는 그곳에 훌륭한 소아 안과 의사도 있는지 물었단다. 그 소아과 의사는 "그럼요"라고 대답한 후 사무실로 가더니 같은 날짜에 두 의사의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예약을 잡아주었단다. 

리엄과 신디가 타이크슨 박사를 처음 만난 4월의 그날은 정말 길고 힘든 하루였단다. 아침에는 리엄 동생의 검사와 상담이 있었단다. 오후에 드디어 안과 진료실에 도착했을 때 접수원이 리엄을 흘깃 보더니 안경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단다. 신기가 리엄은 안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하자 접수원은 놀란 표정으로 리엄 같은 아이들은 그 나이 무렵이면 대개 안경을 쓴다고 말했단다. 접수원조차 리엄이 지금쯤은 치료를 받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란다. 리엄은 여러 가지 시력검사를 받은 후 미침내 타이크슨 박사를 만났단다. 신디는 이 기니긴 오후가 불러올 후폭풍이 걱정되었단다. 지난번 안과 의사에게 네 차례 질료를 받는 동안 리엄은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완전히 위축되어 2주 동안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았단다. 하지만 두 의사의 차이는 이보다 더 클 수 없을 정도였단다. 타이크슨 박사는 조용한 존재감을 지닌 사람이었단다. 그는 재촉하는 법이 없었고 고집을 부리지도 않았단다. 진료실을 나서면서 리엄은 "엄마, 내일 다시 와서 나를 사랑하는 T 선생님을 만나면 안 돼요?"라고 물었단다. 

타이크슨 박사는 리엄이 "흐릿한 시각이라는 고치" 속에서 살고 있다고 설명했단다. 리엄이 또렷하게 볼 수 있는 범위는 기껏해야 코에서 약 7.5센티미터까지였단다. 리엄의 시각장애는 세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단다. 즉 심한 근시(병적 근시), 사시(복시, 깊이 인식 불가, 시각적 혼란을 일으키는 눈 오정렬), 그리고 백색증이었단다. 근시는 두꺼운 안경으로 교정할 수 있었고, 안경을 썼더니 시력이 0.01에서 0.1로 좋아졌단다. 그리고 사시를 치료하기 위해 타이크슨 박사는 리엄이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 때 차례로 안구 근육 시술을 시행했단다. 첫 수술 후, 사실은 치료를 받을 때마다, 누구보다 현명하고 예리하고 헌신적인 엄마인 신디는 리엄이 무심코 툭툭 던지는 말에 거듭 당황했단다. 첫 번째 사시 수술을 받은 후 리엄은 "엄마 뒤에 있던 재미있는 다른 엄마는 어디 갔어요?" 라고 물었단다. 수술 전 리엄에게는 복시가 있었단다. 그는 첫 번째 엄마 위쪽으로 두 번째 엄마의 상을 보았는데, 그 엄마는 테이블 위를 걷거나 공중을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단다. 

리엄은 완전한 맹인은 아니었지만 시각 발달이 심각하게 저해되어 있었단다. 안경을 써도 몇십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얼굴이나 사물이 보이지 않았고 공간 배치도 이해하지 못했단다. 첫 질료를 한 지 13년 후 타이크슨 박사는 일련의 새로운 수술을 통해 리엄에게 거의 정상에 가까운 시력을 줄 수 있었단다. 하지만 유년기 내내 시각적 경험이 부족했던 것이 리엄에게 오랫동안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단다. 곧 알게 되겠지만, 그 수술들은 리음의 시력 회복 여정의 시작에 불과했단다. 

 

어릴 때 리엄은 고양이와 개를 구별하지 못했단다. 나중에 그녀에게 보낸 이메일에 고양이와 개는 둘 다 "땅에 살고 털이 있는 생물"이었다고 썼단다. 누군가의 얼굴을 보면 입과 코가 뭉개져 하나의 흐릿한 얼굴으로 보였단다. 눈은 두 개의 검은 반점으로 보였단다. 그래서 리엄은 얼굴이나 표정을 알아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단다. 그는 헤어라인, 피부색, 옷차람으로 사람을 식별했고, 그 때문에 신디는 입을 수 있는 옷에 심한 제한을 받았단다. 한번은 교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평소 입던 검은 블라우스와 바지 대신 치마와 부츠로 멋을 내고 부엌으로 내려왔는데, 그것을 본 리엄이 몹시 화를 내며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냑고 물었단다. 신디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리엄을 안심시켜며, 교회에 가려고 이번 한 번만 멋지게 차려입었다고 대답했단다. 컬럼비아에 있는 의료센터에 다니던 날들 중 하루는 리엄이 검은 옷을 입은 낯선 부인을 엄마로 착각하고 그를 땨라 엘리베이터에 탄 일도 있었단다. 당황한 신디는 병원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다가 다른 층의 엘리베이터 로비에서 보안요원과 함께 있는 리엄을 발견했단다. 그날부터 리엄은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는 항상 엄마와 동생의 손을 잡으며, 동생을 챙기는 형처럼 동생을 일어버리지 않도록 그렇게 다 같이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신디는 리엄의 시력 때문에 되도록 모자도 쓰지 않으려 했단다.

하지만 리엄은 나쁜 시력에도 아랑곳업쇼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단다. 리엄이 다섯 살 반이 되었을 때 집 앞에 어린이용 자전거 한 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놓여 있었단다. 그건 불가사의한 선물이었는데, 신디와 리엄은 지금까지도 그 자전거를 누가 선물했는지 모른단다. 반짝이는 새 자전거는 리엄의 몸집에는 컸지만 리엄은 근처 주차장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익혔고, 다른 아이들처럼 12월의 눈밭에서 미끄려져 넘어지기도 했단다. 

그 무렵 어느 날 신디가 리엄을 차에서 내려놓고 차 앞쪽으로 걸어갔을 때, 리엄은 그 자릿에서 공포로 얼어붙었단다. 엄마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리엄의 시야는 물보라처럼 뿌예서 아주 가까이에 있는 선명한 이미지만 볼 수 있었고, 약 1.2미터 이상 떨어진 흐릿한 이미지는 알아보지 못했단다. 신디는 리엄의 키가 자라 1.2미터를 넘으면 자전거 위에서 지면이 보이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었단다. 아니나 다를가 그렇게 되자 리엄은 자전거 타기를 그만두었단다. 

어느덧 학교 다닐 나이가 가까워왔지만 리엄은 가족과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사람들 앞에서 몹시 수줍음을 타서 사람들이 시키는 일은 해도 말은 하지 않았단다. 리엄의 유치원 선생님은 리엄이 자신의 질문에 "네" 또는 "알았어요"라는 간단한 대답을 하게 되었을 때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단다. 우리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을 관찰하면서 상대에 자신의 움직임을 맞춘단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 표정, 시선, 몸짓을 무심코 따라한단다. 하지만 리음은 상대방의 행동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사회생활이 남들보다 어렵고 고통스러웠단다. 

리엄에게 점자 교육을 시켜달라는 신디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유치원 측은 리엄을 위해 점자와 "O&M'(힌 지팡이 사용를 포함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방향 및 운동 훈련)을 가르치는 교사를 배정했단다. 리엄이 선생님과 친해져 점자를 배우기 시작하기까지는 약 1년이 걸렸단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마침 담임교사로 리엄이 잘 아는 O&M 교사가 배정되자 리엄은 그제야 마지못해 수업 시간에 말을 하기로 했단다. 말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고빙을 피우는 것보다 말하는 쪽이 더 쉬웠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리엄은 여전히 에세이 숙제를 싫어했단다. 사사로운 일을 털어놓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란다.

리엄은 점자와 인쇄된 단어를 둘 다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인쇄된 텍스트에 중점을 두었단다. 1학년 때만 해도 리엄은 안경을 쓰고 

폰트를 읽을 수 있었단다. 

어린이책 대부분이 그 크기로 인쇄되어 있어서 리엄은 읽는 걸 즐겼단다. 리엄의 문제가 백색증뿐이었다면 시령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을 거란다. 하지만 근시가 계속 악화도고 있는 걸 보면 다른 요인이 잇는 것이 틀림없었단다. 책을 계속 읽으려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폰트 크기를 키워야 했지만 교과서의 글씨는 점점 작아지기만 했단다. 

근시나 원시가 있으면 광선의 초점이 망막에 맺히지 않고 망막 앞이나 뒤에 맺힌단다. 따라서 또렷하게 보려면 초점이 망막에 맺히도록 빛을 굴절시키는 렌즈를 처방받아야 한단다. 렌즈의 굴절력은 대옵터(D) 단위로 측정된단다. 도수가 -0.1디옵터인 렌즈는 경미한 근시를 교정해주는 반면, +1.0디옵터인 렌즈는 경미한 원시를 교정한단다. 유아는 태어날 당시 대략 +1.0디옵터의 약한 원시로 시작해서 유년기를 거치며 굴절력이 높아진단다. 초고도 근시로 인해 초등학교 4학년에 안경을 맞추는 사람은 대략 -6에서 -8디옵터 렌즈를 처방받는단다. 하지만 리엄은 두 살 때부터 그보다 도수가 훨씬 높은 -14디옵터의 렌즈가 필요했고, 아홉 살에는 118디옵터로 도수가 더 높아졌단다. 열두 살이 되자 렌즈 도수는 -20디옵터가 되어, 중학교에서 글자를 읽기 위해서는 안경을 쓰고도

폰트가 필요했단다. 리엄은 과제를 받으면 그것을 여러 장의 종이에 큰 폰트로 확대 복사하여 테이프로 이어붙인 다음, 네 번 접어 원래 종이 크기로 만들어야 했단다. 

리엄의 안경은 보기에도 어머어마했단다. 렌즈가 너무 두껍다보니 안경다리가 완전히 접히지 않아서 안경집에 넣을 수도 없었단다. 또 기존의 안경다리는 렌즈를 지탱할 만큼 튼튼하지 않아서 머리 둘에게 감는 끈을 사용했단다. 렌즈 가장자리는 너무 날카로워서 빰이 베일 정도였고, 렌즈가 너무 두껍다 보니 광학적 왜곡이 일어났단다. 그런데도 그 이중 오목렌즈는 일반 소재로 만든 것에 비하면 두께가 3분의 1에서 2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단다. 캔자스시티의 한 연구소에서 굴절륭이 높은 특수 플라스틱으로 제작해준 렌즈란다. "정말 튼튼했어요" 리엄이 그녀에게 말했단다. "안경을 떨어뜨리면 안경이 망가지는 대신 안경이 떨어진 곳이 손상될 정도였으니까요."

그 무렵 리엄은 글자를 읽는다기 보다는 해독하고 있었단다. 그는 일단 문자의 무양이 둥근지 네모난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다시 일곱 가지 범주로 나누었단다. 예를 들어 소문자 c와 e는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범주에 속했단다. 그는 그런 식으로 해당 문자가 무엇인지 추측하여 외은 후 다음 문자를 해독했단다. t는 끝이 삐죽 튀어나온 모양이므로, 끝이 삐죽 튀어나온 문자가 포함된 세 문자 단어는 '고양이cat'일거라고 추측했단다. 말할 나위 없이 맥락이 단어 해독에 큰 역할을 했단다. 그러다보니 책 읽기는 지루했고, 리엄은 곧 읽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단다. 

숙제는 당연히 오래 걸렸단다. 리엄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숙제를 시작했단다. 눈이 보이지 않거나 시력이 좋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그는 남들보다 청각이 예민했고 청각 처리 속도가 보통 사람들보다 빨랐단다. 리엄은 대부분의 사람이 볼륨을 너무 크게 올린다고 생각했단다. 컴퓨터 화면의 글자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는 대부분의 사람은 따라갈 수 없는 고배속으로 들었단다. 집에 오면 밤 11시까지 숙제를 했고, 그러고도 아침 일찍 일어나 과제를 마무리했단다. 

다행히도 리엄은 경이로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단다. 어렸을 때 엄마가 책 한 페이지를 읽어주면, 가만히 앉아 있기 싫어했던 리엄은 소파에서 뛰어내리며 페이지 전체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외워서 말했단다. 중학교 시절에는, 큰 폰트로 확대핻조 소수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력이 나빴음에도 수학 우등반에 들어갔단다. 리엄은 긴 연산을 외워서 머릿속으로 풀 수 있었단다. 시력이 심하게 나쁜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부족한 시력을 보완하기 위해 작업기억이 비상하게 발달했단다. 

하지만 그 모든 시도는 눈에 무리를 주었단다. 학창 시절을 보내는 종안 리엄의 시력은 점점 더 나빠졌고 색깔됴ㅗ 점점 희미하게 보였단다. 가장 알아보기 힘든 색은 빨간색이었단다. 빨간색은 갈색으로 변색되어 보였단다. 반면 가장 좋아하는 색인 파란색은 희미해지는 정도가 가장 덜했단다. 시력이 가장 좋았을 때도 주황색과 빨간색을 구분하기 어려웠단다. 리엄이 그렇게 빨간색을 잘 아아보지 못하고 파란색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시각 체계가 색을 감지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결과일 거란다. 우리 눈은 중심부에서 빨간색과 녹색을 가장 선명하게 본단다. 실제로 중심오목이 보는 영역인 시야 정중앙에서는 빨간색과 녹색이 가장 잘 보이고 파란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단다. 반면 파란색은 정중앙을 제외하고는 시야 전체에 걸쳐 잘 보인단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파란색은 그렇지 않은데 빨간색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을 때 리엄은 아마 눈 중심부의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을 거란다. 

리엄의 수학 교사는 어느 날 색깔 블록으로 수업하던 중 리엄이 색깔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챘단다. 리엄에게 더미를 정면이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더미의 모양이 바뀌지 않도록 블록 한 개를 뺀다면 어떤 걸 빼야 하는지 물었을 때 리엄은 문제를 풀 수 있었지만, 블록을 색깔로 구별하지는 못했단다. 

하지만 리엄의 문제를 알아챈 사람은 수학 교사뿐었던 것 같단다. 리엄은 말하자면 두 세계 사이에 갇혀 있었단다. 즉 완전히 눈이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은 아니었지만, 거의 볼 수 없었단다. 차라리 시각장애인이었다면 학교에서 점자 교과서를 제공했을 테니 훨씬 수월했을 거란다. 중학교 시절 리엄의 독서 교사는 백색증인 사람들은 시력이 나빠도 안정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글자 크기를 키우기만 하면 읽을 수 있다고 교육받은 사람이었단다. 그래서 리엄이 심한 근시를 무시한 채 리엄이 단순히 품행 장애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편의 제공의 필요성을 일축했단다. 학교 측은 리엄에게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지 지시했고 리엄은 그 요구에 맞춰야 했단다.

언제나 아들을 지지했으며 재치 있었던 신디는 '어두운 밤'이라는 특별한 가족 행사를 만들어 아들의 힘겨움을 덜어주려고 했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등을 모두 끄고 어둠 속에서 저녁을 먹고 점자 보드게임을 하는 것이었단다. 신디는 리엄이 항상 불리한 상황에 놓였지만 '어두운 밤'만은 예외일 거라고 추측했단다. 어둠 속에서 리엄은 시각보다는 촉각과 청각 단서, 그리고 공간 기억에 더 많이 의존함으로써 어느 누구보다 잘 움직일 수 있었단다. 

"엄마는 어디까지 보여요?" 신디는 리엄이 이렇게 묻던 날을 기억한단다. 그 질문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신디는 "가슴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라고 썼단다. "그날 하늘의 색깔이 어땠는지, 내 시야의 한계를 발견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며 무엇을 보았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신디의 시야는 한계가 없었단다. 밤중에 몇 광년 떨어진 별도 볼 수 있었단다. 하지만 리엄에게는 멀리 있는 사물이 단순히 흐릿하게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보이지 않았단다. 좋은 시력 덕분에 우리는 멋진 전망을 볼 수 있고, 멀리 있는 사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만, 리엄에게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단다. 

리엄이 열두 살 때 시력이 더 나빠지자 타이크슨 박사는 눈에서 자연 수정체를 제거하는 수술인 수정체 적출술을 제안했단다. 각막과 수정체는 안구로 들어오는 빛을 굴절시켜 망막에 상이 맺히도록 한단다. 리엄은 안구가 너무 길어서 물체에서 반사된 빛의 초점이 망막보다 훨씬 앞에 맺혔단다. 자연 수정체를 지거하면 각막에서만 빛이 굴절되기 때문에 상이 뒤로 물러나 망막에 맺힐 거란다. 이렇게 하면 리엄의 시력이 좋아져서, 타이크슨 박사가 지적했듯이 먼 거리를 보기 위해 두꺼운 안경을 쓸 필요가 없어질 터였단다. 하지만 자연 수정체가 없으면 근거리에서는 초점을 맞울 수 없게 되므로 이중초점렌즈나 돋보기를 사용해야 했단다. 리엄과 신디는 수술에 대해 고민했지만 결국 하지 않기로 했단다.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리엄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추워서 스웨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단다. 그날 오후 신디는 리엄과 함께 리엄의 동생이 말을 타는 모습을 보러 마구간에 갔지만, 리엄에게 열이 나는 것을 알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단다. 열이 40도가 넘었고 신디는 열을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단다. 

그 얼마 전 리엄은 독서 교사를 만나 시험을 치렀단다. 그때까진 괜찮았단다. 하지만 3주 후 몇 가지 시험을 더 치렀는데 그때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단다. 두 번째 시험을 치르는 동안 리엄은 글자를 전혀 읽을 수 없었단다. 이해도 되지 않았고 기억도 나지 않았단다. 8학년 때 수학 우등반에 들었던 리엄은 9학년과 10학년이 되자 어려움을 겪었단다. 리엄은 날이 선 짦은 문장으로 말했단다. 전에는 운동을 잘했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지만, 이제는 항상 피곤하고 기운이 없었단다. 마른 체격이었던 몸도 불었단다. 그리고 걸핏하면 울었단다. 우는 법이 없던 리엄이 울기 시작하자 신디는 깜짝 놀랐단다. 머리카락가지 바지고 있었는데도 많은 사람이 리엄의 머릿속이 문제라고 말했고, 독서 교사는 계속해서 리엄이 품행 장애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편의 제공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단다. 

신경과와 기타 전문의를 찾아다녔지만 진단을 받기까지는 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단다. 마침내 내분비과 의사가 원인을 알아냈단다. 리엄은 갑상선기능저하증이었단다. 바이러스 감염 때문으로 추정되는 고열로 감상선이 파괴된 것이었단다. 리엄은 갑상선 호르몬인 티록신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호전되기 시작했단다. 실제로 그는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남들이 6년에 걸쳐 마스터하는 것을 1년 만에 배울 정도로 빠르게 실력이 늘었단다. 한 피아노 경연대회에서 리엄은 내분비과 의사와 마주쳤는데, 그 의사는 리엄을 처음 진찰한 날 리엄이 축약된 단문을 구사하는 것을 듣고 발달 지연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었단다. 하지만 그날 의사는 리엄에게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칠 수 있다면 또 뭘 할 수 있니?"라고 물었단다. 

리엄은 소리와 촉각, 공간 기억을 통해 세상을 지각했단다. 그런 기술들을 가지고 자신의 부족한 시각을 너무나도 잘 보완했기 때문에, 리엄의 시력이 얼마나 나쁜지 제대로 몰랐던 사람이 독서 교사만이 아니었단다. 리엄은 대부분의 사람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할 때 자동차 엔진 소리를 듣고 집에 누가 오고 있는지 알았단다. 리엄은 밝을 때나 어두울 때나 집 안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녔단다. 교회에서도 새 건물이 들어서서 유리문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그랬단다. 리엄의 할머니조차 리엄이 시력이 얼마나 나쁜지 몰랐단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리엄은 눈을 점점 덜 사용했단다. 굴절 이상은 -23.5디옵터까지 증가했고, 안경을 써도 시력이 0.08밖에 나오지 않았단다. 그 정도면 법적 실명보다 더 나쁜 시력이었단다. 리엄은 물건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 걸을 때 발을 질질 끌었단다. 탁자 위에 있는 유리컵을 잡을 때는 손에 컵이 닿을 때까지 탁자 표면을 따라 손을 기끄러뜨리곤 했단다. 그리고 무언가에 초점을 맞추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더 이상 움직이는 사물을 추적할 수 없었단다. 어느 날 신디는 리엄을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한 무리의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리엄의 모습을 보았단다. 다른 친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잡담을 나누는데 리엄만 흰지팡이를 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단다. 신디는 리엄이 사실상 실명 상태라고 생각했고, 당시만 해도 평생 그런 상태로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단다. 

 

02 - 리들리 박사의 발명품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2004년 리엄이 시력 검사를 받던 날 신디는 의사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단다. 그날 오후 신디와 리엄은 인공수정치(IOL)를 삽입하는 새로운 수술에 대해 들었단다. 그건 리엄의 눈에 두 번째 수정체를 추가하는 수술이었단다. 인공수정체는 원거리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줄 것이고, 그러면서도 자연 수정체를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원거리뿐만 아니라 근거리에서도 초점을 맞출 수 있을 터였단다. 신디는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서 몇 시간 동안 그 수술에 대해 알아보았단다. 다음 진료일에 타이크슨 박사와 함께 일하는 검안사인 제임스 헤켈 박사가 그 수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고, 신디와 리엄에게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여주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말했단다. 

이제 열다섯 살이 된 리엄은 수술 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나이였단다. 아직 진단되지 않은 감상선기능저하증 때문에 피로와 싸우고 있었던 탓에 리엄은 수술을 망설였단다. 게다가 리엄은 안경이 마음에 들었단다. 물론 두껍고 무거운 데다 머리에 두르는 끈으로 고정해야 했지만, 리엄은 (그녀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극단적인 것을 좋아했단다. 리엄과 그의 어머니는 리엄의 시각장애를 한탄하고 낙심할 일, '고쳐야' 하는 끔찍하고 괴로운 질환으로 여기지 않았단다. 시각장애는 리엄의 중요한 일부였단다. 시각장애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그저 극복해야 할 특성이었을 뿐이란다. 그들은 기적의 치료법을 찾고 있지 않았단다. 하지만 인공수정체를 이식받으면 리엄의 시력이 개선되어 몇 가지 실질적인 혜택과 생활의 편의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단다. 그래서 그들은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했던 비행기 조종사와 관련한 일련의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최초의 인공수정체로 이어졌고, 그 렌즈는 수십 년 후 리엄의 시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현재의 인공수정체로 이어졌단다. 히틀러가 연국 공군을 공격하던 1940년 8월 14일, 공중 중위이자 비행 에이스였던 고든 '마우스' 크리버가 기지로 돌아가고 있을 때 총알이 전투기 조종석을 관통했단다. 클리버는 그날 너무 서두른 나머지 비행 고글을 착용하지 않았는데, 그 실수 때문에 조종석 덮개창의 파편에 양쪽 눈이 머는 비극을 겪었단다. 그럼에도 클리버는 전토기를 거꾸로 뒤집어 낙하산으로 안전하게 탈출했고, 구조된 후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치료를 받았단다. 

클리버는 얼굴과 눈에 총 열여덟 차례 수술을 받았단다. 안과 의사 해럴드 리들리가 눈 수술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을 집도했단다. 한쪽 눈은 실명된 반면 다른 눈은 살릴 수 있었단다. 하지만 그 눈에도 아크릴 플라스틱 파편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단다. 리들리는 8년 동안 클리버를 지켜보면서 클리버의 눈이 플라스틱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단다. 조종석 덮개창의 플라스틱 파편이 눈에 박힌 다른 조종사들의 눈 역시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단다. 그 플라스틱은 불활성 물질로 보였단다. 

전쟁이 끝난 후 리들리는 백내장 제거와 같은 보다 일상적인 안과 수술로 돌아갔단다. 하지만 그의 환자들은 수술에서 회복하고 제거된 수정체를 보완하기 위해 두꺼운 안경을 착용해도 여전히 시력이 잘 나오지 않았단다. 그러다 1948년, 리들리가 가르치던 의대생 중 한 명인 스티븐 페리가 리들리에게 백내장이 생긴 혼탁한 수정체를 제거한 후 환자의 눈에 새로운 수정체를 삽입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단다. 리들리도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아이디어였단다. 조종사들과 그들의 눈에 박힌 플라스틱 파편이 떠올랐단다. 같은 재료로 인공수정체를 만들어 눈에 넣으면 어떨까?

리들리는 광학 회사 레이너 앤드 킬러에 연락하여 비행기 덮개 창에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아크릴 플라스틱으로 인공수정체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단다. 1949년 11월 29일, 리들리는 한쪽 눈에 백내장이 생긴 마흔다섯 살의 간호사 엘리자베스 애트우드를 수술하며 인공수정체를 삽입했지만 수술 직후 제거했단다. 그리고 1950년 2월 8일, 애트우드이 눈에 사시 인공수정체를 삽입했단다. 그 수술은 인공수정체로 자연 수정채를 대체한 최초의 사례였지만, 리들리는 수술 과정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하거나 수술 기록에서 그 플라스틱 렌즈를 언급하지는 않았단다. 오히려 동료들의 거센 반대가 두려워 애트우드에게도 인공수정체를 비밀로 해달라고 말했단다. 

리들리 박사의 두려움에는 근거가 있었단다. 1951년 7월, 여러 차례의 수술을 추가적으로 성공시킨 후 그는 옥스포드 안과 학회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단다. 하지만 그의 발표는 동료들에게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 적대감마저 불러일으켰단다. 당시 안과 의사의 일은 환자의 눈에서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이지 새로운 물질을 삽입하는 것이 아니었단다. 백내장 수술에서 자연 수정체를 디체하기 위해 아크릴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수정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기까지는 그 후로 30년이 더 걸렸단다. 해럴드 리들리는 평생에 걸친 좌절 끝에 아흔두 살이 되던 해 마침내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단다. 그의 혁신적인 인공수정체는 백내장 환자 수백만 명의 시력을 개선했을 뿐만 아니라, 인공심장판막과 인공관절 같은 다른 많은 보철 장치의 발명을 촉진했단다. 

리들리는 백내장으로 혼탁해진 자연 수정체를 대체하기 위해 인공수정체를 사용했지만, 혹시 심각한 굴절 이상(근시 또는 원시)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렌즈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렌즈는 시력을 떨어뜨리는 안구 길이 변화를 보정해야 한단다. 안경도 같은 역할을 하지만, 시력이 몹시 나쁘면 안경이 너무 두꺼워져 다른 광학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단다. 인공수정체를 눈에 직접 넣으면 이런 심각한 시력 장애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보정할 수 있단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단다. 잘 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시거리에서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렌즈가 필요하단다. 우리가 먼 곳을 보다가 가까운 곳에 초점을 맞출 때 자연 수정체는 모양이 변한단다. 하지만 리들리의 인공수정체는 한 가지 거리에서만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단다. 

1989년 유럽의 안과 의사들은 백내장 말고 심각한 굴절 이상을 지닌 환자들의 눈에 인공수정체를 삽입하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그 의사들은 자연 수정체를 그대로 둔 채 제2의 렌즈를 삽입했단다. 이렇게 하면 환자는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자연수정체를 인공수정체와 함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가시거리에서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단다. 이런 인공수정체의 개선된 버전이 2004년 미국에서 최초로 사용 승인을 받았단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리엄과 그의 담당 의사 로런스 타이크슨이 다시 등장한다. 

타이크슨은 젊은 의사일 때 자신이 시각장애인인 줄 알고 있는 중증 뇌성마비 아동을 진찰한 적이 있었단다. 하지만 소년의 시각 시스템이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타이크슨 박사는 한 선배 의사에게 이 소년은 좋은 안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단다. 그러자 그 선배 의사는 냉담하게 "감자는 눈이 있지만 안경은 필요 없지"라고 답했단다. 타이크슨 박사는 이런 냉소적 태도에 충격을 받았지만, 다른 의사들이 포기한 심각한 환자들을 자신이 돕고 싶어하며 그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았단다. 오늘날 그는 심각한 신경장애와 시각장애를 지닌 많은 어린이 환자를 치료하고 있고,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 중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단다. 그의 환자 중 일부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각적 자극이 끔찍하고 두렵게 느껴지는 희뿌연 고치" 속에서 살고 있을 정도로 시력이 나쁘단다. 타이크슨 박사는 2005년부터 안경이나 콘택트렌즈가 도움이 되지 않거나 그런 장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린 환자, 그리고 레이저 수술로 시력을 교정할 수 없는 어린 환자들에게 인공수정체 이식하기 시작했단다. 리엄도 그런 환자 중 한 명이었단다. 

 

03 - 뇌를 들여다보는 창

 

리엄은 열닷섯 살이던 2005년 12월, 첫 번째 눈에 수술을 받았단다. 두 번째 눈에 대한 수술은 5주 후에 시행되었단다. 수술 후 갑자기 "보인다!"는 순간이 찾아오지는 않았단다. 신체 대사를 저하시키는 감상선기능저하증을 앓고 있던 리엄은 마취에서 회복되는 데 보통 사람들보다 오래 걸렸단다. 리엄의 시력은 원래는 6주 후 선명해져야 했지만 실제로는 몇 달이 걸렸단다. 하지만 회복되자 시력이 엄청나게 개선되었단다. 수술 전 시력은 안경을 쓰지 않을 때 0.01, 두꺼운 안경을 쓰면 0.08이었지만, 수술 여섯 달 후에는 안경을 쓰지 않고도 0.4가 나왔단다. 백생증 때문에 1.0은 불가능했단다.

회복 속도는 느렸지만, 외래 수술 후 한 시간 내에 리엄의 시각적 행동에 변화가 일어났단다. 리엄은 간호사의 격려를 받고 일어서려고 시도했지만 넘어졌단다. 하지만 그는 빠르게 적응했고, 걸음이 안정되자 신디와 함께 복도를 걸었단다. 그때 복도에서 한 소녀가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리엄은 엄마에게 왜 소녀가 팔을 들어올리고 이리저리 움직이는지 물었단다. 신디는 당황했단다. 리엄이 어렸을 때 함께 산책을 나가면 지나가던 버스 기사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곤 했단다. 신디는 리엄이 버스 기사를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버스 기사님이 네게 손을 흔들고 있어, 너도 손을 흔들어 인사하렴" 하고 말했었단다. 리엄이 손을 흔들었기 때문에 신디는 리엄이 그 제스처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짐작했단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란다. 리엄은 손을 흔드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알지 못했단다.

두 번째 수술 후 아홉 달이 지났을 때 인공수정체 중 하나가 제자리를 이탈하면서 리엄은 복시를 경험하게 되었단다. 그는 인공수정체를 교체하는 수술을 받았고, 이번에는 시력이 즉시 개선되었단다. 처음 두 번의 수술에서 시력 개선이 더뎠던 이유는 뇌가 눈이 제공하는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일 거란다.

리엄의 시력은 의사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개선되었단다. 시력이 엄청나게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색각도 정상으로 돌아왔단다. 날이 갈수록 빨간색이 흐릿하게 보이지도 않았단다. (그래도 리엄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여전히 파란색이었단다.) 백색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안구의 불수의적인 반복 움직임인 안진도 줄었단다. 양안시도 개선되었고, 깊이 지각도 더디긴 했지만 좋아졌단다.

하지만 그런 개선은 혼란스러웠단다. 수술 후 날카로운 선과 모서리로 이루어진 세상에 내던져진 리엄은 색들이 섞여 뭉개져 보였던 수술 전이 그리웠단다. 수술 후 시력이 크게 좋아지자 선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특히 색상이나 명도, 또는 질감에 변화가 있는 부분에서 선이 뚜렷하게 보였단다. 그런 변화는 사물 내부나 사물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단다. 한 사물이 끝나고 다른 사물이 시각되는 곳, 앞의 사물이 뒤에 있는 사물을 가리는 곳, 또한 표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곳에서 리음은 선을 보았단다. 사물이나 그림자의 테두리에서 선을 볼 때 우리는 그런 선들이 어느 사물에 속하는지 안단다. 하지만 유년기를 거의 보이지 않은 상태로 보낸 리엄은 선을 사물의 테두리로 인식하지 못했단다. 그가 보는 세상은 뒤엉키고 파편화 되어 있었단다. 

리엄과 그의 의사들이 곧 깨닫게 되었듯이, 선과 색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해서 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우리는 무언가를 흘깃 볼 때 선이나 색 같은 특징들을 따로 인식하지 않는데, 그건 선과 색이 사람, 동물, 사물, 풍경 속의 한 부준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곧바로 알아본단다. 즉 보는 즉시 그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하나의 통합된 단위로 인식한단다. 실제로 실험에 따르면 우리는 사진을 0.02초 동안만 봐도 그 사진에 동물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단다. 

하지만 리엄이 눈으로 본 선과 색으로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집중과 분석이 필요했단다. 물론 해가 갈수록 사물을 점점 잘 인식할 수 있게 되었지만, 수술 후 리엄은 처음 본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단다.

 

제게 선은 색이 달라지는 곳, 즉 두 색이 만나는 지점이에요. 이런 선들이 제가 보는 모든 것을 이루고 있어요. (...) 표면은 선이 나타날 때까지는 인관되게 보여요. 그러다 표면에 선이 나타나면, 그건 방의 모서리처럼 수평에서 수직으로의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고, 계단이나 연석처럼 깊이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바닥 타일이나 보도블록 사이의 균열처럼 물리적 구조에 속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의미할 수도 있어요. (...) 게다가 전혀 쓸모없는 정보도 존재하는데, 다른 사람드ㅡㄹ은 이런 것들을 걸러낼 수 있어요. 시각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빛은 어떤 표면에든 선을 추가할 수 있는데(저는 이것을 '거짓말'이라고 불러요). 저는 그 선이 무얼 뜻하는지 알아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떤 선을 무시해도 되고 어떤 선을 무시하면 안 되는지도 판단해야 해요.

 

성인이 되어 시력을 얻은 사람들은 보통 리엄처럼 색깔에 의존해 선을 구분하고 본 것을 분석한단다. 두 사물을 색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데는 이전의 시각 경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마이클 메이도 각막 줄기세포 이식 후 43년 만에 눈이 보였을 때 처음으로 본 것이 아내와 의사의 옷과 얼굴색이었단다. 어릴 때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실라 하켄은 수술 후 붕대를 제거했을 때 색깔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단다. 병원 직원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 색깔은 놀라음 그 자체였단다. 리처드 그레고리와 진 윌리스가 연구한, 쉰두 살에 시력을 얻은 SB도 초기에는 색에 자극을 받았고, 올리버 색스가 보고한 시력 회복 환자 비질도 마찬가지였단다. 하지만 많은 사물이 두 가지 이상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색을 토대로 사물을 분리하고 식별하는 것은 위험하단다. 

리엄은 처음에는 깊이 변화를 인식하기 어려워서 보도를 걷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에서도 시력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했단다. 보도에 선이 보이면 그것이 보도블록 사이의 경계인지, 시멘트에 금이 간 것인지, 막대기의 윤곽인지, 가로등이나 전봇대가 드리운 그림자인지, 도보에 계단이 나타난 것인지 판단해야 했단다. 그 선을 딛고 올라가야 하나, 닏고 내려가야 하나, 넘어가야 하나, 아니면 완전히 무시해야 하나? "그래서 저는 걸을 때는 항상 제가 보고 있는 선에 눈을 고정하고, 저 앞에 보이는 선을 통과하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어디를 밞아도 되고 어디를 밟지 말아야 하는지 계산헤요." 리엄은 눙앞의 선에 극도로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주변을 전체적으로 보는 감각을 키울 수 없었고, 맥락을 보지 못하니 본 것을 해석하는 것이 훨씬 어려웠단다. (그림 3.1을 보란다) 리엄이 한 번 보는 데 필요한 분석의 양은 피곤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단다. 

 

리엄의 수술 후 시각은, 성인이 되어 서서히 시력을 잃었다가 15년 후 시력을 회복한 로버트 하인의 경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단다. 로버트 하인은 시력 회복 수술을 받다마다 아내의 얼굴뿐 아니라 진료실의 병과 기구들을 알아보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정원에 핀 꽃들을 알아볼 수 있었단다. 어린 시절이 시각 경험 덕분에 하인은 수술 직후 선과 색만이 아니라 사물을 통째로 볼 수 있었단다. 우리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그는 얼굴, 꽃, 자동차이 특징들을 노력하지 않고도 의미 있는 전체로 통합할 수 있었단다. 

전시된 모든 것을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미술관에 가본 적이 있을 거란다. 미술관에서 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피곤해진단다. 바닥은 딱딱하고 의자는 불편한데 봐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란다. 이런 현상을 부르는 이름도 있단다. 바로 '미술관 피로'란다. 리엄에게는 세상 전체가 미술관과 같았단다. 무엇을 보든 집중과 분석이 필요했고, 이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단다.

리엄은 유년기에 시력이 나쁘긴 했지만 약간은 볼 수 있어서 몇 가지 시각적 기술을 발달시킬 수 있었단다. 태어날 때부터 도는 영아기에 시력을 잃었다가 난생처음으로 보게 된 사람들은 단순한 형태조차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단다. 그들은 형태를 전체적으로 보지 보하기 때문에, 삼각형과 사각형을 구분하려면 모서리 개수를 세어야 한단다. 시력을 회복한 많은 환자는 개별 철차를 알아보는 방법은 아주 쉽게 배운단다. 하지만 어떻게 그 철자들이 결합해 단어가 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단다. 점자를 익는데 능숙했던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그래서 시력을 새로 얻은 사람들은 형태와 단어를 볼 때 구성 요소들의 배열에서 전체를 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단다. 

리엄은 수술 전 종이에 그려진 단순하고 평면적인 기하학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고 인쇄물도 읽을 수 있었단다. 하지만 유년기에 습득한 그런 기술들로는 의자처럼 3차원 공간에 배치된 큰 사물을 알아볼 수 없었단다. 실제로 리엄이 선과 색을 묘사하는 방식은 스물다섯 살에 시력을 얻은 선천적 시각장애인 여성이 처음 본 풍경을 묘사한 방식과 흡사하단다. "나는 사방에서 빛과 그림자의 혼합, 길이가 다른 선들, 둥글고 네모난 사물들을 본다. 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자이크를 보며 깜짝 놀라지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자주 보고 식별하면 그만큼 기억하기도 쉬워진단다. 리엄도 자신이 사물의 모습을 기억했다가 떠올릴 수 잇는지 궁금했단다. 수술 6년 후인 2011년 어느 날 아침 그는 그것을 시험하기 위해 몇 점의 간단한 만화를 따라 그려봤단다. 그리고 그날 오후 자신의 시각적 기억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단다. 리엄은 기억에 의존해 만화를 재현할 수 있었을까? 그림 3.2에서 보듯 그는 실제로 재현할 수 있었지만, 리엄이 자신이 실수한 부분에 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그녀는 다소 놀랐단다.

오른쪽에 있는 리엄의 꽃 그림은 왼쪽의 원본과 비슷해 보인단다. 리엄은 이렇게 설명했단다. "처음에는 '원' 가운데서 막대가 나오게 그렸는데, 원과 원 사이에서 나오는 게 맞는 것 같아서 고쳤어요." 원들은 꽃잎을 나타내지만, 그는 그 구성 요소들을 실제 꽃의 일부분으로서가 아니라 기하학 형탤호 묘사했단다. 

고양이 그림에서도 리엄은 '삼각형'을빠뜨렸다고 생각했단다.(그림 3.3) 삼각형은 고양이의 코를 나타내지만, 여기서도 그는 그것을 얼굴의 일부분이 아니라 기하학적 형태로 취급했단다. 리엄의 그 발언은 수술 6년 후에도 그가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기보다는 선과 기하학 형태의 조합으로 보고 있음을 암시한단다. 

그 시기에 대학생이었던 리엄은 컴퓨터과학과 교수와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는데, 교수를 리엄의 말을 들으며 최근 회복한 리엄의 시각이 컴퓨터 시각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교수는 리엄이 있는 그대로보고 세부에 중점을 준다는 점에 주목했단다. 2011년 어느 날 이엄이 교수실에 있다가 출입문 위에서 밝은 형상을 보고, 교수에게 왜 문에 '십자가가 박힌 원'이 있는지 물었단다. 교수는 처음에는 리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얼마 후 리엄이 가리킨 것이 바닥에떨어진 종잇조각이 유리문에 반사된 형상임을 깨달았단다. 문을 전체적으로 본 교수는 빛이 반사되어 생긴 그 패턴이 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를 무시했던 거란다. 

그녀는 리엄이 수술을 받은 지 5년이 지났을 때인 2010년에 처음 그를 만나 서신 교환을 시작했고, 리엄이 수물두 살이 되던 해인 2012년과 스물네 살이 되던 해인 2014년에 그를 다시 만났단다. 그녀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능력, 예컨대 사물 인식이나 계단오르기 등이 리엄에게는 일종의 시각적 퍼즐임을 깨닫게 되었단다. 실용적이고 분석적인 스타일인 리엄은 그 퍼즐을 풀기 위해 나름이 전략들을 개발했단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애쓰지 않고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보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고 낯선 장소에서는 특히 그렇단다. 

세부에 주목하는 것은 시력을 회복한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흔한 현상으로, 유명한 착시 그림을 본 그들의 반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단다. 2014년에 그녀는 리엄을 만나러 가면서 몇 가지 착시 그림을 가져가서 리엄과 함께 그의 시각을 탐구했단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그런 착시에 속는다는 점에서 착시는 '맥락에 기반한단다'. 예를 들어 뮐러-라이어 착시에서 두 개의 선은 실제로는 길이가 같지만 달리 보인단다.(그림 3.4) 위쪽 그림에서는 화살표가 선을 향하지만, 아래쪽 그림에서는 선 반대쪽을 향한단다. 대부분의 사람은 위쪽 선을 더 길게 본단다. 리엄은 그 착시를 보았을때 두 선의 길이를 거의 같게 보았단다. 즉 그는 그 착시 그림에 속지 않았단다. 그레고리와 윌리스가 연구한 SB와, 열일곱 살에 시력을 잃었다가 53년 후 한ㅉ혹 눈의 시력을 되찾은 남성인 KP도 마찬가지였단다. 반면 프라카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이들과, 발보가 보고한 시력 회복 환자 LG는 착시에 속았단다. 

리엄은 수술 전에는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단다. 둘 다 땅에 있고 털이 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였단다. 수술 후 그녀가 개와 고양이가 함께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리엄은 둘을 구분할 수 있었단다. 하지만 실루엣 사진에서는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지 못했단다. 생후 3~4개월이 되면 보통 두 동물의 실루엣을 구별할 수 있지만, 리엄은 실루엣에서는 두 동물을 구분할 만한 특징을 찾지 못했던 거란다. 그는 지금도 부분은 볼 수 있지만 전체를 보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단다. 

세 번째 방문 후 1년이 지난 2015년, 그녀는 리엄에게 이메일로 그림 3.6을 보냈단다. 요제프 알베르스의 저서 <<색체의 상호작용>>에 나오는 그림이란다. 이 그림은 우리가 투명도를 보는 방법을 보여준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그림을 두 장의 종이로 해석한단다. 오르쪽의 밝은 종이는 반투명하며, 왼쪽의 깉은 종이 위에 놓여 그 종이에 닿는 우리의 시야를 부분적으로 가린단다. 리엄은 이 그림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단다. "두 개의 직사각형이 있고....두 직사각형 가운데에 화살표 몽양이 있어요." 그는 이 그림을 깊이가 약간 다른 두 장의 종이로 보지 않고, 기하학적 형태들로 이루어진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도안으로 보았단다. 그는 그림의 요소들을 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단다. 현재 리엄은 수술 직후에 비하면 많은 사물을 인식할 수 있지만, 여전히 사물의 전체를 보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단다. 우리가 어떻게 사물으 ㄹ보는 즉시 하나의 단위로 인식할 수 잇는지에 대해 우리는 진진하게 생각해보지 않지만, 방대한 규모의 뉴런과 네트워크가 이 과정에 관여하고 있단다. 실제로 우리 외의 약 3분의 1이 시각과 시각 처리에 사용된단다. 리엄은 유아기부터 사실상 앞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시각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단다. 리엄이 인공수정체를 삽입한 직후 본 장면들과 그 후 겪은 어려움은 그런 시각 네트워크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시각을 얼마나 당연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단다. 

 

리엄이 사물의 전체적인 모습보다 선이나 모서리, 또는 윤곽에 집중하는 것은 시각 생리학자들이 볼 때는 당연한 일이란다. 우리의 시각 체계는 실제로 선에 민감하기 때문이란다. 선은 대개 밝은 곳과 어두은 곳 사이의 경계를 나타내며, 망막의 많은 아웃풋 뉴런은 명암 대비에 가장 잘 반응한단다. 일차시각겉질(V1 또는 줄무늬겉질이라고도 한단다)은 망막에서 오는 시각 인풋을 받는 첫 번째 대뇌겉질 영역이란다. 1900년대 중반부터 데이비드 하블과 토르스텐 비셀은 처음에는 고양이, 그다음에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V1 뉴런의 발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단다. 각 뉴런은 전형적인 수용영역(수용장)을 가지고 있었단다. 즉 시야의 특정 영역에서 오는 빛 자극 패턴에 민감하게 반응했단다. 예를 들어 한 뉴런은 시야의 중앙 정면에 위치하는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또 다른 뉴런은 중앙에서 약간 왼쪽 밑에 위치하는 빛 자극에 반응한단다. V1 영역의 서로 인접한 뉴런들은 망막의 약간 다르지만 중첩되는 부분에서 인풋을 받기 때문에, 약간 다르지만 중첩되는 수영영역을 가지고 있단다. 전체 시야가 이렇듯 지형적, 즉 망막위상적인 방식으로 일차시각 겉질과 대응된단다. 어떤 V1 뉴런들은 각기 다른 파장의 빛(우리가 색으로 인식하는 것)에 선택적으로 반응하지만, 대부분의 V1 뉴런은 어두운 배경 속의 밝은 줄 또는 밝은 배경 속의 어두운 줄에 반응한단다. 이때 줄의 방향이 중요하단다. 어떤 V1 뉴런은 세로줄에 가장 크게 반응하고, 어떤 뉴런은 가로줄, 또는 어떤 뉴런은 중간 각도의 줄에 가장 크게 반응한단다. 즉 V1 뉴런들은 방향 선택적이란다. 

사물의 가장자리는 우리가 명도나 질감의 변화를 보게 되는 부분이고, 이런 대비는 V1에 있는 일군의 방향 선택적 뉴런을 자극한단다. 우리가 눈으로 가장자리를 따라가는 동안 가장바리의 방향이 변할 때마다 각기 다른 방향 선택적 뉴런이 반응한단다. 비슷한 방향을 선호하는 V1 뉴런들 간의 장거리 연결은 길이가 긴 선이나 윤곽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단다. 

리엄이 선이나 색 같은 특징만으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개별 V1 뉴런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는 시각 처리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단다. 1973년에 위대한 신경심리학자 A. R. 루리야는 <<작동하는 뇌>>라는 책을 출간했단다. 그 책에서 루리야는 환자들을 주의깊게 관찰관 결과를 토대로 우리 뇌의 시각중추가 일차영역과 이차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단다. 일차영역에는 일차시각겉질, 즉 V1이 있으며, V1의 일부가 손상되면 V1의 해당 부위와 대응되는 시야 부분을 볼 수 없단다. 일차시각영역의 뉴런들은 이차시각영역의 뉴런들과 신호를 주고받는데, 이차영역에서는 들어온 미처리 인풋을 분석하고 결합하고 종합한단다. 이차시각영역에 손상이 생긴 사람은 시력을 잃지는 않지만 다른 형태의 시각적 실인증(알지 못하는 것)을 겪는단다. 그런 사람들은 사물의 윤곽과 색깔을 포함해 사물의 모든 부분을 '볼 수 있지만' 그런 특징들을 종합하여 사물을 전체적으로 인식할 수는 없단다. 그들은 그 사물을 예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것처럼 인식한단다. 

가장 유명한 시각 실인증 사례는 아마 올리버 색스의 환자인 '모자를 아내로 착각한 남자' P 박사일 거란다. 색스 박사가 그에게 장갑을 보여주며 무엇이냐고 묻자 P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단다. "연속적인 표면에 주름이 잡혀 있어요. 돌출부가 다섯 개군요." P 박사는 장갑의 핵심 특징을 자세히 묘사했지만 그런 특징들을 종합해 전체를 인식하지는 못했단다. P 박사가 장갑이 뭔지 몰랐기 때문이 아니란다. 그는 촉감으로 그것이 장갑임을 알 수 있었단다. 시각 실인증이 있는 P 박사같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은 리엄이 처한 곤경을 거울처럼 보여준단다. 그들은 리엄처럼 사물을 자동적, 무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대신 기본적인 특징들로부터 사물의 정체를 추론해야 한단다. 시각 실인증의 모든 사례에서 이런 문제는 뇌의 상부 시각 경로와 관련이 있단다. 

방향 선택적 세포들이 있는 일차시각겉질(V1)은 시각 말단의 망막과 뇌 상부(중추에 더 가까운 영역)의 시각영역들 사이의 시각 경로를 따라 위치한단다. 말단(눈을 향하는) 방향에서는 V1 뉴런이 망막세포들과 직접 연결된 시상뉴런으로부터 인풋을 받는단다. 중추(뇌를 향하는) 방향에서는 V1 뉴런이 V2(시각겉질 2) 뉴런에 신호를 전달하고 그런 다음에 두 가지 주요 시각 경로를 따라 존재하는 뉴런들에 직간접적으로 신호를 전달한단다. 이 두 가지 경로 중 '무엇' 경로(지각 경로 또는 등쪽 경로)는 사물, 얼굴, 장소 인식에 관여하고, '어디' 경로(동작 경로 또는 배쪽 경로)는 사물의 위치 파악과 동작 안내에 관여한단다. 루리야가 "2차 지대"라고 말한 곳이ㅏ 바로 이 경로들이란다. V1과 V2는 지각 경로와 동작 경로 모두에 신호를 전달하지만, 상부 영역으로 갈수록 한 경로에 더 치중할 거란다. 상부 영역은 다양한 방식으로 불린단다. 어떤 영역은 해당 영역이 시각 위계상 어느 위치인지 나타내기 위해 V 뒤에 숫자를 붙이고, 어떤 영역은 해부학적 위치에 따라 명명된단다. 예를 들어 V4와 가쪽뒤통수 영역은 지각 경로인 '무엇' 경로에 속하고, MT(안쪽관자 영역)라고도 불리는V5는 동작 경로인 '어디' 경로에 속한단다(그림 3.7).

일차시각겉질은 대뇌의 뒤통수엽(후두엽) 겉질 맨 뒤에 위치한단다. 뇌 꼭대기를 따라 겉질 뒤쪽에서 앞쪽으로 이동하면, 뒤쪽의 뒤통수엽에서 중앙 꼭대기의 마루엽(두정엽)을 지나 앞쪽의 이마엽(전두엽)으로 가게 된단다. 네 번째 엽인 관자엽(측두엽)은 이마엽과 마루엽 밑, 뒤통수엽 앞에 위치한단다. 

시각적 지각이 뒤통수엽 겉질의 주요 기능이지만 시각 처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단다. 예를 들어 관자엽 겉질의 영역들은 사물, 얼굴, 장소 인식에 중요하단다. 마루엽의 영역들은 눈, 귀, 접촉에서 오는 인풋을 통합하며, 공간을 인식하고 탐색하는 데 중요하단다. 다시 말해 관자엽 겉질 영역은 지각 경로에 속하고, 마루엽 겉질 영역은 동작 경로에 속한단다. 그리고 이마엽 겉질은 주로 시각 정보에 의해 인도되는 움직임을 조절한단다. 따라서 시각 경로는 겉질의 네 엽 전체에 걸쳐 존재한단다. 

V1에서 V2로, 거기서 다시 뒤통수엽과 그 외의 상부 영역으로 시각적 위계가 높아질수록 뉴런의 수용영역 성질이 변한단다. 하부 영역의 세포들이 상부 영역의 뉴런으로 수렴하기 때문에, 상부 영역의 세포들이 상부 영역의 뉴런으로 수렵하기 때문에, 상부 영역의 세부들은 망막과 시야의 더 넓은 영역에서 오는 정보에 반응한단다. 그 결과 상부 영역의 뉴런은 지형적으로 덜 정밀한 더욱 넓은 수용영역을 갖는단다. 또 상부 영역의 뉴런은 더 복잡한 자극에 반응한다. V1 뉴런은 특정 방향의 빛줄기에 반응하지만, 지각 졍로의 상부 영역에 속하는 뉴런들은 사물의 전체적인 모습, 신체 부위, 얼굴, 또는 장소에 반응한단다. v!과 상부의 사물 인식 영역 사이에 있는 영역인 V4의 뉴런은 선과 전체적인 사물 사이의 중간쯤 되는 자극인 윤곽과 형태에 가장 강하게 반응한단다. 리엄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P 박사는 삼각형과 사각형 같은 기하학적 형태는 쉽게 인식할 수 있었지만 실제 사물을 인식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단다. 따라서 리엄과 P 박사의 경우 형태를 인식할 수 있는 중간 시각영역은 제대로 기능하지만 사물을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데 필요한 상부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단다. 

이런 시각의 위계 구조를 고려하면, 우리는 윤곽과 색상 같은 기초적인 특징들을 결합하여 형태를 인식한 다음에 그것을 의미 있는 사물로 인식하는 방법으로 시각 세계를 구축하는 듯하다. 리엄이 자신이 보는 다양한 선들을 의식적으로 특정 사물의 윤곽으로 배정할 때 바로 이런 작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란다. 하지만 리엄은 분석 방식은 우리 대부분이 보는 방식과는 매우 다르단다(그리고 사용하는 뇌 회로도 다를 것이란다). 우리는 세부 특징들을 전체 사물로 조립하는 과정을 의식하지 않는단다. 새로운 장면을 대면하면 즉시 그 장면의 핵심을 파악한단다. 우리는 주요 랜드마크와 사물을 보면 그것을 산, 나무, 집, 테이블, 의자 등과 같은 기본 범주에 넣는단다. 우리가 보는 즉시 파악하지 못하는 건 정밀한 특징과 세부 사항이란다. 세부를 보고 싶으면 주의와 시선을 그곳으로 돌려야 한단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쇄된 글자를 인식할 때 문자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악곡을 인식할 때도 음표를 일일이 분해하지 않는단다. 시각과학자인 샤울 호크슈테인과 메라프 아히사르는 "전체는 분명 부분들로 구성되는데 어떻게 부분을 모르고 전체에 접근활 수 있게 되는 것일까?"라고 말한단다. 

이런 방식의 지각은 그리 놀라운 게 아니란다. 아마 우리가 태어나 처음 볼 때도 이렇게 할 거란다. 신생아의 시력은 성인의 시력보다 훨씬 떨어진단다. 따라서 신생아에게 가장 잘보이는 것은 배경에서 도드라지는 상당히 큰 사물이란다. 신생하는 사물의 특징까지 볼 수는 없지만, 정지된 배경에서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사물은 쉽게 인식할 수 있단다. 생후 첫 몇 년 동안 유아는 탐색을 통해 환경에서 사물을 시각적으로 분리하는 추가 전략들을 개발한단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 기능이나 명칭을 모를 때도 사물을 통째로 인식하려고 시도한단다. 

호크슈테인과 아히사르는 인간의 시각적 지각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역위계 이론를 세웠단다. 우리가 무언가를 언뜻 볼 때 시각 정보는 순식간에 망막에서 시상을 거쳐 V1, V2로, 거기서 다시 상부 시각영역을 향해 순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한단다. 사물이나 풍경을 모서리나 윤곽, 형태로서가 아니라 의미 있는 전체로 인식하는 최초의 의식적 시각이 생기는 때는 아마도 상부 시각영역이 활성화된 후일 거란다. 우리는 한 장면의 세부를 거의 다 보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심리학 검사에 따르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단다. 세세한 부분까지 인식하려면 다시 돌아가 하부 시각영역이 제공하는 정보에 접근해야 한단다. 

시각 경로의 정보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단다. 상부 시각영역은 하부 영역에 피드백을 준단다. 실제로 상부 시각영역에서 하부 시각영역으로 향하는 방대한 피드백 연결이 존재한단다. 시각 위계의 모든 수준에서 뉴런 및 신경망들 사이에 순방향과 역방향의 지속적인 대화가 이루어진단다. 그림 3.7의 도식에 그 모든 순방향 및 역방향 연결을 화살표로 표시한다면 그 회로는 해독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복잡해질 거란다. 

우리는 의지나 개가 어떻게 생격는지 알고 태어자지 않는단다. 그것을 알려면 의자와 개를 다양한 명암 조합으로 여러 각도에서 보는 경험이 필요하단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고 그 사물을 기본 범주(테이블, 의자, 집, 개 등)에 넣을 수 있게 되면, 뇌의 상부 시각영역에 새로운 회로와 네트워크가 생긴단다. 그리고 하부 영역과 상부 영역 사이에 양방향으로 통하는 새로운 경로가 형성된단다. 리엄이 인공수정체를 이식한 후 어디를 가든 길고 연속적인 선을 보았다는 사실은, 그의 방향 선택적 V1 누런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으며, 그 뉴런들 사이에 장거리 연결이 존재했음을 암시한단다. 리엄이 그 선들을 보는 즉시 개별 사물의 윤곽으로 인식하지 못한 것은 그의 상부 사물 인식 영역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란다. 

 

정상시력을 가진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해석하기 위한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고, 리엄도 그중 일부를 사용한단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장면을 볼 때 모든 부분에 군등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단다. 우리는 장면을 세분화하여 주로 전경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배후에 있는 세세한 부분에는 주의를 덜 기울인단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세상을 전경과 배경으로 나누며, 각 부분은 3차원 공간 속에 배치된단다. 

덴마크 심리학자 에드가 루빈은 전경과 배경에 관한 연구를 정립한 최초의 시각과학자로, 1915년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에서 자신의 이론을 소개했단다. 그는 골판지를 아무 모양으로 잘라 천 스크린에 두영하고, 피험자들에게 스크린에 비춰진 장면의 한 부분은 전경이고 나머지 부분은 배경으로 보라고 지시했단다. 그것이 사소한 실험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단다. 루빈은 사람들이 전경을 배경과는 완전히 다르게 경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전경은 배경과는 별개의 평면상에 있는 것처럼 보였단다. 즉 전경은 앞쪽에 두드러져 보임으로써 배경을 시아에서 차단하는 효과를 냈단다. 스크린에 비춰진 장면에서 사람들은 선과 윤곽을 배경 일부가 아니라 전경의 테두리로 보았단다. 전경은 '객관적 사물성'을 지닌 반면 배경은 형태 없는 바탕이 되어 배후로 사라졌단다. 또한 사람들은 전경을 배경보다 훨씬 잘 기억했단다. 

루빈은 그가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만든 유명한 얼굴/꽃병 착시(루빈의 꽃병이라고도 부른단다)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단다(그림 3.8). 이 착시 그림을 한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검은 배경 속의 흰색 꽃병과 흰 배경 속의 검은 두 얼굴이 번갈아가며 보인단다. 이런 전환이 일어날 때, 우리는 무엇이 전경이고(꽃병인가 얼굴인가) 무엇이 배경인지에 대한 해석을 바꾸게 된단다. 전경은 앞으로 나오고 배경은 형태 없는 바탕으로 물러나게 된단다. 

루빈의 꽃병은 그것을 보는 우리가 전경의 경계선을 어떻게 배정하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는 모호한 형상의 대표적 사례란다. 꽃병이 보이면, 우리는 이 착시 그림의 검은 부분과 흰 부분 사이의 경계선을 꽃병에 배정한 것이란다. 해석을 바꾸어 얼굴이 보이면, 우리가 경계선을 배정하는 방식을 바꾸어 어굴에 배정한 거란다. 얼굴과 꽃병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단다. 그건 모순이란다. 우리가 경계선을 꽃병에 배정하면 꽃병이 그림의 앞으로 나오고, 경계선을 얼굴에 배정하면 얼굴이 전면으로 부각된단다. 꽃병과 얼굴을 동시에 보려면, 꽃병이 얼굴 앞으로 부각되는 동시에 얼굴이 꽃병 앞으로 부각되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한 일이란다. 

상부 시각영역의 뉴런들이 하는 일 중 하나는, 한 장면의 전경에 반응하는 V1 신경망의 발화를 조율하는 것이란다. 우리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모호한 전경을 보며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는 동안 아마 이런 조율이 일어날 거란다. 저자가 전경이 모호한 '윌슨 착시'를 보여주자, 리엄은 두 개의 이미지를 교대로 볼 수 있었단다. 하나는 두툼한 외추를 입고 있는 남자이고, 다른 하나는 얼굴이란다(그림 3.9). 리엄이 윌슨 착시를 보며 이런 식의 지각적 전환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은, V1과 어떤 상위 시각영역 사이에 유연한 소통 경로가 생겼음을 암시한단다. 

하지만 실세계 속의 장면은 일반적으로 형태 없는 배경에 하나 이상의 전경을 포함한단다. 그 장면에는 많은 사물이 보이고, 몇몇 사물들은 다른 사물들을 부분적으로 가린단다. 20세기초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새로운 심리학 학파인 게슈탈트 심리학이 생겨났단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한 장면의 개별적인 특징들을 따로따로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단다. 그보다 우리는 요소들을 지각적 단위로 묶는데, 이런 그룹화는 의식적 사고를 거치지 않고 자동적으로 일어난단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이런 그롭화를 인간 시각 체계의 기본적인 성질로 간주했고, 우리가 한 장면을 분석하고 그 안의 사물들을 구분할 때 자동적으로 사용하는 몇 가지 게슈탈트 원리를 제시했단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림 3.10의 형태들을 보는 즉시 게슈탈트 '유사성 원리'를 토대로 시각적 요소(윗줄은 크기, 가운데줄은 방향, 아랫줄은 명도)에 따라 묶을 수 있단다. 또한 우리는 하나의 경계로 둘러싸인 요소들을 한 덩어리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리를 게슈탈트 '폐쇄성 원리'라고 부른단다. '연속성 원리'는 방향이 비슷하고, 연속적인 선을 이루는 요소들을 지각적 으로 전체로 묶는 경향이 있단다. 그림 3.11을 한동안 집중해서 보면 원이 '부각되어' 보일 거란다. 

위장僞裝은 주로 게슈탈트 원리를 이용함으로써 작동한단다. 동물의 다양한 몸 부위들을 파편화시켜 몸의 일부가 아니라 주변 환경의 일부처럼 보이게 하면 그 동물을 알아보가 어려워진단다. 그림 3.12에서 우리는 아메리카살무사의 가죽 패턴을 나뭇잎을 포함한 주변의 배경과 혼동하여 뱀을 전혀 보지 못할 수 있단다. 

비판자들은 게슈타트 이론이 지각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타당하고 검증 가능한 메커니즘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술적이고 다소 모호하다고 비판해왔단다. 그렇다 해도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이 우리가 보는 것을 기술한 것은 사실이란다. 게다가 시각 뉴런에 대한 연구들에 따르면, 몇몇 뉴런들이 게슈탈트 원리에 따른 그룹화에 반응하며, 상부 시각영역의 뉴런들이 하부 영역 뉴런의 활성화를 조율하는 것 같단다. 

리엄도 장면 속에서 사물들을 찾기 위해 게슈탙트 원리를 이용하는 듯하단다. 하지만 그의 경우에는 이 과정이 항상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고 주의깊은 분석이 필요하단다. "제게 선은 색이 달라지는 곳, 즉 두 색이 만나는 지점이에요" 리엄은 이렇게 말했단다. 게슈탈트 법칙들에 따라서, 리엄은 한 장면을 볼 때 유사성 원리를 이용해 각 색깔 영역을 그룹화한 다음, 연속성 원리를 이용해 선을 식별한단다. 리엄이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그다음에는 자동적으로 사물들을 그룹화함에 따라, 그의 뇌에서 서로 다른 시각영역들 사이에 새로운 경로와 네트워크 형성되고 있었을 거란다. 

리엄은 수술 7년 후인 2012년에 타이크슨 박사를 위한 그림을 그렸단다(그림 3.13). 저자는 화려한 색상(이 흑백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단다)과 대담한 형태로 가득한 이 그림이 몹시 마음에 들어 저자의 컴퓨터의 호면보호기로 사용했단다. 그의 그림은 여러 게슈탈트 원리를 보여준단다. 그림 속에는 비슷한 형태들끼리 묶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단다. 일부 형태들은 굵은 윤곽선으로 묶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폐쇄성 원리를 보여준단다.(예를 들어, 그림의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짙고 두꺼운 윤곽선을 구분되는 원과 직사각형이 있단다. 일부 직사각형언 더 큰 직사각형 안에 들어 있고, 그 사각형은 다신 더 큰 직사각형 안에 있단다)  또 어떤 형태들은 연속된 선을 이루는데, 이는 연속성 원리를 보여주는 예단다.(그림 중간 부분을 통과하는, 사각형들로 이루어진 선을 보란다) 

리엄의 그림에서 대담한 선과 색은 실제 사물들을 연상시킨단다. 저자는 그가 타이크슨 박사를 위해 그린 이 그림을 이메일로 받아보고, 답장에 그림에서 본 몇 가지 이미지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단다. 곡선으로 연결된 두 원은 눈과 안경처럼 보였고, 그림 중간에 있는 감각형과 그 옆에 붙은 직선은 깃대에 꽂힌 깃발처럼 보였단다. 리엄은 저자의 답장에 대한 답에서, 다른 사람들도 그 그림에서 실제 사물들을 보았다고 말했단다. "제게는 그런 사물들이 보이지 않아요." 그가 말했단다. "저는 그려진 그대로를 볼 뿐이에요." 그러면서 특유의 유머 감각을 살려 이렇게 덧붙였단다. "그림 어딘가에 용이 있을지도 머모르죠."

우리는 운곽선을 정하거나 형태를 만드는 등, 보이는 것들을 특징별로 그룹화하여 사물의 범주를 만든단다. 접이식 의자와 리클라이너 의자는 생김새가 매우 다르지만, 우리는 보자마자 공통 성질을 포착해 그 둘을 '의자'라는 범주로 묶는단다. 치와와와 셰퍼트서로 쉽게 구별되지만 우리는 아무런 문제 없이 그 둘을 '개'라는 범주에 넣는단다. 이렇게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가진 공통점을 찾고 추출하는 능력은 자연스럽게 지각학습으로 이어진단다. 우리가 추출해내는 패턴들은 뇌 전체에 위치하는 상호 연결된 뉴런 네트워크에 의해 표상될 것이고, 이런 네트워크들은 가장 자주 마주치는 사물들에 반응해 형성된단다. 따라서 리엄은 새로운 장면들을 보았을 때, 자신이 가진 다른 감감들과 분석 기술을 사용해 이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친숙한 범주에 넣음으로써 시각영역과 기타 감각영역들 사이에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단다.

사물들은 풍경에 속하는데 풍경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단다. 한 뇌 영상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숲, 해변, 산업 단지 같은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었단다. 이때 각 장면의 4분의 1을 흰 종이로 가렸단다. 실험 결과, 흰색으로 가려진 부분에 반응하는 V1, V2 뉴런들은 눈으로부터 아무런 인풋을 받지 못했음에도 가려지지 않은 부분들과 연관된 활성화를 보였단다. 이런 활성화를 일으킨 것은 장면을 전체적으로 보는 데 관여하는 상부 시각영역에서 온 인풋이었단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해당 장면에서 흰 종이로 가려진 부분을 직접 그려 넣으라고 요청하자, 그들은 누락된 정보를 정확하게 채워넣을 수 있었단다. 참가자들이 누락된 부분을 그려넣을 수 있었다는 건, 가려져 생략된 부분에 대한 내적 모델을 만들었음을 암시한한다. 이 모델은 상부 시각영역에서 만들어져 피드백 연결을 통해 하부 영역의 뉴런을 활성화시킬 것이란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 외에 무엇이 있는지 에측하기 위해 이런 종류의 마음의 모델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수정한단다.

리엄은 그림을 잘 해석하지 못하며 풍경 그림을 가장 싫어한단다. 유년기에 넓은 지역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광대한 경관에 대한 적절한 내적 모델을 만들 수 없는 거란다. 리럼의 초기 시각영역(시각 체계의 초기 처리 단계)들에 위치하는 뉴런들이 경관의 개별 요소에 반응하지만, 더 넓은 장면에 대한 내적 모델을 만들지 못한 탓에 그의 시각 뉴런과 신경망은 풍경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구별해야 할 구조나 패턴을 인식하도록 조정되어 있지 않단다. 리엄은 특히 먼 풍경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단다. 

저자의 학생들에게 식물 잎 내부를 처음 보여주었을 때 저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분석하는 데 내적 모델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단다. 나뭇잎은 평평하고 얇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3차원 구조를 이루고 있단다. 예전 경험으로부터 저자는 앞으로 학생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알고 있었단다. 저자는 학생들에게 잎의 외피를 벗겨낸 다음에 그 시료를 현미경으로 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단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뭐가 보이는지 묻자 그들은 "녹색만 보여요."라고 대답했단다. 그들은 의미 있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단다. 그다음으로 저자는 학생들에게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뭇잎의 3차원 모형과, 잎의 내부 구조들을 각기 다른 색으로 염색한 슬라이드를 보여주었단다. 그 후 다시 나뭇잎 시료를 보았을 때 학생들은 녹색 바다 대신 새로운 구조들을 알아볼 수 있었단다. 그들은 조각퍼즐처럼 맞물려 있는 외부 세포와 내부 세포의 구조, 이산화탄소와 산소를 교환할 수 있게 하는 세포 내부의 공기층과 표면의 기공 등 복잡한 구조들을 볼 수 있었단다. 그녀는 무엇보다 학생들이 몇 시간 만에 녹색 바다 외의 것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 고무되었단다. 이것은 지각 학습의 좋은 사례였단다. 학생들의 눈을 통해 들어오는 미처리 데이터는 그대로였지만, 훈련과 집중을 통해 학생들은 그 데이터에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추출하여 자신이 본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단다. 학생들이 나뭇잎을 발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그들 뇌의 시각영역들 사이에 어떤 종류의 연결이 바뀌었을지 궁금했단다. 

대부분의 학생은 몇 달 후 나뭇잎 구조의 세부적인 특징들을 잊어버렸단다. 그 정보는 그들의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시각 기억과 심상화 능력(감각을 통해 경험한 것을 마음속에서 다시 떠올리는 능력)에 뛰어난 학생들은 그 정보를 더 오래 기억했을 거란다. 리엄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물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수년간 보지 못했던 탓에 약해져 있는 시각 기억과 심상화 기술을 개발해야 했단다. 

예상도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큰 역할을 한단다. 그녀는 몇 년 전 부엌 창문을 통해 바깥의 새 모이통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그 사실을 깨달았단다. 원래 새 모이통에는 그녀가 보자마자 알아볼 수 있는 박새와 핀치 같은 작은 새들이 자주 찾아왔단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커다란 야생 칠면조 다섯 마리가 모이통 주변에서 창문 너머로 그녀를 보고 있었단다. 칠면조이 출현은 너무나 기괴하고 예창치 못한 일이어서 그녀는 그 장면을 납득하는 데 한참이 걸렸단다. 칠면조는 박새와 핀치보다 훨씬 크고 형태가 뚜렷이 구분되는데도 그녀가 칠면조를 인식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는 칠면조를 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처음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볼 때 그녀의 시각 시스템은 작은 새들의 특징을 포착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야생 칠면조가 나타났을 때 순간적으로 혼란이 생겼을 수 있단다. 

이런 사례들은 우리의 시각이 '상향식' 처리와 '하향식' 처리가 조합된 결과라는 것을 잘 보여준단다. '상향식'이라는 건 시각 정보의 가장 작은 조각들로부터 시각 세계를 구축한다는 뜻이란다. 이 과정은 하부 시각영역으로 들어오는 인풋에 달려 있단다. 하지만 시각 뉴런이 오직 우리 눈이 보이는 '상향식' 자극에만 반응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란다. 시각 뉴런의 발화는 이웃 뉴런, 즉 시각 위계상의 다른 수준과 뇌의 다른 영역에서 오는 인풋에 의해 수정된단다. 앞선 경험, 과거의 일, 당면 과제를 위한 목표 등이 모두 하부 영역 뉴런의 발화에 영향을 미친단다. 이 과정은 상부 시각영역에서 받는 피드백에 의존한다고 해서 '하향식' 이라고 불린단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다른 경험, 필요, 욕구가 있으므로 '하향식' 처리는 사람마다 다른 영향을 미친단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지각적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단다.

리엄은 이렇게 말했단다. "가까이서 보면, 혼돈보다는 사물에 더 가깝게 보여요. 하지만 멀리 있는 것을 볼 때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그런 장면은 제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특정 색의 막대가 트럭 앞면인지, 버스 옆면인지, 건물 지붕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요. 사람들이 조금만 멀리서 말을 건다든지, 복도를 걸어오며 인사를 건네면, 실제 상황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다른 느낌이 들어요."  인공수정체 수술 후 리엄의 눈은 그의 V1 뉴런이 그동안 내내 기다려왔던 인풋을 제공했단다. 하지만 그는 몇십 센티미터보다 더 먼 곳을 본 시각적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국소적 세부를 일관된 사물과 경관으로 구성하는 '하향식' 처리 과정이 발당하지 않은 상태였단다. 따라서 그는 주로 '상향식' 처리에 의존해 부분들로부터 의식적으로 시각 세계를 짜맞춰야 했단다. 세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먼 곳을 볼 때는 이런 작업이 특히 힘들었단다.

우리 대부분은 어떤 장면을 볼 때 그 장면을 구성하는 사물들을 보지 않은 채 선과 색만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단다. 그러므로 리엄이 보는 장면을 우리가 상상하기는 어렵단다. 우리는 세상을 저마다 다르게 보지만, 특정 순간에 우리가 인식하는 사물들을 근처에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인식한다고 가정해도 무방하단다. 그런 사물들은 우리 모두가 이해하는 기본 범주에 속한단다. 만일 우리가 의자나 개를 본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란다. 하지만 리엄이 보는 시각 세계는 맥락 잃은 요소들로 가득한 파편화된 장면이고 그것을 상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란다. 저자는 입체시를 얻은 후 새로 생긴 3차원 시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며 얼마나 답답했는지 기억한단다. 늘 입체시로 보던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자신들이 무엇을 볼 수 있는지 몰랐고, 또 항상 입체맹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얼 놓치고 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단다. 저자가 그럴진대 리엄이 자신이 본 새롭고 낯선 세계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웠을까.

하지만 도로의 바퀴 자국처럼 뉴런 연결도 사용할수록 깊어진단다. 리엄이 선들의 혼돈 속에서 개별 사물을 인식하기 시작함에 따라, 사물을 인식하는 그의 상부 시각영역에 새로운 네트워크가 생겼을 거란다. 그뿐 아니라, 상부 시각영역의 뉴런들은 해당 사물에만 반응하는 하부 시각 뉴런의 발화를 선택적으로 촉진하고, 배경에 반응하는 뉴런의 발화는 억제했을 거란다. 리엄의 시각이 점점 더 '하향식'이 되어감에따라 그이 시각 세계는 더 많은 의미를 갖게 되었단다. 

얼굴을 인식할 때만큼 부분에서 전체를 보는 능력이 분명히 드러나는 상황은 없단다. 우리 대부분은 수년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포함해 수백 명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단다. 실제로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은 인간의 가장 인상적인 시각 기술 중 하나란다. 리엄은 인공수정체를 이식하기 전에는 얼굴의 개별 요소를 볼 수 없었단다. 그렇다면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가 얼굴만으로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04 - 얼굴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사람 머리가 채소와 나무뿌리로 되어 있는 기괴한 초상화를 그린 르네상스 화가란다. 그가 그린 관습적인 종교화는 오래전에 잊혔지만 채소 초상화는 여전히 인기가 있단다. 채소 초상화는 보는 재미 외에도 우리의 얼굴 인식 능력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준단다. 아르침볼도 그림에서 우리는 무먹코와 둥그런 뺨을 가진 머리를 볼 수 있단다.(그림 4.1) 그런데 그림을 거꾸로 뒤집으면 얼굴은 사라지고 채소들이 담긴 사발이 나타난단다. 

 

그림을 똑바로 놓았을때 보이는 얼굴의 각 부분들은 실제 이목구비가 아니란다. 코는 당근이고 뺨은 양파란다. 그래도 우리는 그림을 보는 즉시 초상화로 인식한단다. 우리는 얼굴을 이루고 있는 채소들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그것들을 인간의 얼굴로 조합한단다. 실제로 (아르침볼도의 채소 얼굴뿐만 아니라) 실제 얼굴을 인식하는 것은 이미지가 거꾸로 뒤집혀 있을 때 훨씬 더 어려운데, 그렇게 하면 이목구비가 완전히 잘못 배열되기 때문이란다.

화가 척 클로스는 널리 알려진 거대한 초상화에서 비슷한 아이디어를 실험했단다. 그는 피사체를 촬영한 후 그 사진을 결자로 나눈 다음, 거대한 캔버스에 결자를 그대로 옮겨놓고 격자 내부를 채웠단다. 각 킨을 채운 이미지는 얼굴 특징과는 전혀 비슷하지 않았단다. 하지만 캔버스의 명암 분포는 사진 속 인물의 얼굴 음영을 그대로 따랐단다. 이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형형색색의 작은 사각형들로 이루어진 추상화로 보인단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모든 사각형이 나라로 합쳐지면서 거대한 얼굴이 나타난단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캔버스에 서서히 다가가면, 초상화가 사각형들로 구성된 추상화로 바뀌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단다. 

아르침볼도와 클로스의 그림은 우리가 얼굴의 모든 세부를 면밀하게 살피는 대신 전체적으로 얼굴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단다. 이는 생태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인데, 얼굴의 세부는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상대방이 찡그리든 웃든, 머리카락을 자르든 머리 색깔을 바꾸든 알아볼 수 있단다. 또한 수염을 기르나 깎으나, 안경을쓰나 벗으나 알아볼 수 있단다. 수년 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도, 심지어 그사이에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했더라도 알아볼 수 있단다.

얼굴 인식 능력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며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뛰어나단다. 그녀는 최근에 비이비샤워에 다녀왔는데, 참석한 친구들은 저마다 자신의 아기 때 사진을 가져오기로 했단다. 그들 대부분이 1950년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사진은 작은 흑백 스냅사진이었고, 따라서 얼굴 크기는 기껏해야 엄지 손톱만 했단다. 그들은 사진들을 큰 게시판에 붙여놓고 각 사진이 누구 것인지 맞춰보기로 했단다. 그녀가 "뇌가 둘인 여자"라고 부르는 친구는 수년 동안 보지 못한 얼굴도 스치듯 잠깐 보고 일아볼 수 있는 불가사의한 능력이 있는데,(그리고 그 사람의 인생사를 세세히 기억한단다), 그 친구는 모든 아기 사진을 보자마자 알아맞혔단다. 그들의 얼굴이 60년 동안 많이 변했으므로 그 친구는 우리 얼굴을 전체적으로 인식한 것이 틀림없단다. 

성인이 되어 시각을 얻은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리엄은 세부에 집중했지만 그것들을 의미 있는 전체로 조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런 까닭에 얼굴을 잘 이해하지 못했단다. 사람을 본 첫인상을 아름답다거나 설렌다고 묘사하는 일도 없었단다. 첫 수술 직후 리엄은 어머니가 말을 할 때 입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역겨움을 느꼈단다. 인공수정체를 삽입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코와 입은 그저 뿌연 얼룩처럼 보였단다.. 그는 말할 때 입이 움직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붉은 입술과 혀를 자세히 보고는 혐오감에 충격을 받았단다. 

실제로 얼굴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순간순간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표정이 바뀌거나 말을 하면 얼굴이 완전히 달라진단다. 저자는 이런 장애에 대해 생각하며 척 클로스의 말이 떠올랐단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던 클로스는 안면인식장애에도 불구하고(어쩌면 그 이유 때문에) 초상화를 그린단다. 그는 2010년 세계과학축제의 강연에서 "어떤 사람이 고개를 1.3센티미터만 움직여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보인다" 어렸을 때 시력이 나빴다가 성인이 되어 시력을 잃고, 그후 백내장 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실라 하켄도 마찬가지였단다. 그는 회고록 <<엠마와 나>>에서 "사람은 얼굴을 한 개가 아니라 수백 개를 가지고 있다"라고 썼단다. 대부분의 사람은 움직이고 있는 얼굴을 볼 때 표정뿐만 아니라 얼굴 이면의 사람을 본단다. 하지만 척 클로스와 실라 하켄은 상대방의 얼굴이 움직이거나 표정이 바뀔 때마다 그가 다른 사람으로 보인단다. 얼굴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얼굴이 된단다. 얼굴과 표정을 인식하지 못하는 장애는 오래 눈이 보이지 않다가 성인이 되어 시력을 회복한 사람들이 매우 흔히 겪는 문제란다. 태어나면서부터 백내장으로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1년 이내에 시력을 회복한 사람들조차, 얼굴을 인식하는 데 약간의 장애를 보인단다. 

아기는 태어나 9분이 되면 벌서 인간의 얼굴에 대한 선호를 보인단다. 신생아의 시야에 세 가지 다른 사진을 내밀어보는 실험에서 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단다. 얼굴 패턴(머리 형태를 닮은 타원과 눈, 코, 입처럼 생긴 도형들)을 아기 앞에서 흔들자 아기는 고개와 눈을 돌려 그 패턴을 따라갔단다. 하지만 그런 특징들을 마구 섞어 패턴이 더 이상 얼굴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자 아기는 그 사진을 적극적으로 따라가지 않았단다. 집 안의 물건들이나 자연물은 인식하는 능력은 타고나지 않아도, 얼굴을 감지하는 기초적인 기술은 타고나는 듯하단다. 

게다가 생후 48시간이 되면 아기는 다른 여성의 얼굴보다 어머니의 얼굴을 선호한단다. 생후 이틀 내에 아기는 자궁에서 듣던 엄마 목소리와 어울리는 얼굴을 찾을 수 있단다. 어떤 사물이 보이는지는 아기가 사는 환경에 따라 달라져도, 모든 아기는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해야 한단다. 따라서 아기는 사람의 얼굴, 특히 주 양육자의 얼굴에 특별한 선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다. 

얼굴을 볼 때 유독 활성화되는 뇌 영역을 방추형얼굴영역(FFA)이라고 부른단다. 흥미롭게도 전문 체스 플레이어가 체스판을 볼 때도 그 영역이 커진단다. 왜 체스 전문가가 체스게임을 할 때 얼굴 인식에 중요한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걸까? 얼굴을 인식하려면 눈, 코, 입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단다. 이목구비의 공간적 관계도 분석해야 한단다. 마찬가지로 체스에서 이기려면 체스 말들 사이의 공간적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란다. 방추형얼굴영역은 전체적인 공간 패턴을 인식하는 데 뛰어나단다. 우리는 태어날 때 또는 태어난 직후부터 뇌 회로를 어느 정도 갖추며, 유아는 본능적으로 얼굴을 보는 것을 좋아한단다. 그러한 선천적 특성을 토대로 방추형얼굴 영역이 얼굴 인식에 특화된 영역으로 발달하는 것 같단다. 그리고 여기에 평생 얼굴을 보는 경험과 일상생활에서 얼굴을 인식하는 일의 중요성이 더해져 그 역할이 더욱 강화된단다. 체스 전문가는 방추형얼굴영역의 공간 관계 회로를 활용해서 체스를 분석하는 듯하단다. 

리엄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체스 클럽에 가입해 체스를 즐겼지만 결국에는 포기했단다. 자신의 공격적인 수와 상대방의 위협적인 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계속 놓쳤기 때문이란다. 일상생활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단다. 리엄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사물을 못 보고 지나치기 일쑤였단다. 그래서 사방에서 오는 공격을 피해야 하는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단다. 리엄은 그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자신이 주변시가 좋지 못하고, 공간 패턴을 잘 인식하지 못하며, 방추형얼굴영역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다는 의심이 들었단다. 

신생아의 시력은 성인의 시력보다 훨씬 떨어지기 때문에 아주 어린 아기는 얼굴의 세부 특징을 잘 보지 못한단다. 그래서 어머니의 얼굴을 코와 입 사이의 거리와 같은 직접적인 얼굴 특징을 통해 알아보기보다는, 머리 모양이나 샐깔 같은 외적 특징을 통해 더 쉽게 알아본단다. 리엄도 얼굴 외적인 특징에 의존해 어머니를 알아봤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모자를 스지 못하게 했던 거란다. 하지만 아기는 성장하면서 얼굴의 세부 특징을 더 잘 보게 된단다. 리엄의 경우는 인공수정체를 이식하기 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단다. 그는 수술 후에도 얼굴 인식에 어려움을 겪었고, 실제 얼굴보다 사진이나 텐레비전에 나오는 얼굴을 더 쉽게 알아봤단다.

습관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단다. 리엄은 인공수정체를 이식하기 전에는 코와 입의 모양 같은 얼굴 특징과 그 특징들 사이의 공간 관계가 모두 흐릿하게 보였기 때문에 얼굴을 관찰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었단다. 따라서 사람의 얼굴에 대한 선천적인 선호를 가지고 있었다 해도 유년기에 리엄은 얼굴을 관찰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했단다. 그런데 도전 앞에서 주눅드는 벖이 없는 리엄은 대학에 다닐 때 소리가 아니라 동작을 기반으로 하는 언어인 수어 수업을 선택했단다. 그 수업은 분명 그의 시각 능력을 시험대에 올렸을 것이란다. 한번은 수업에서 수어 동영상을 시청했는데, 동영상에 등장하는 사람이 안면 틱이 너무 심해서 학생들이 그의 수어를 따라가기 힘들었단다. 하지만 리엄은 안면 틱을 알아채지 못했단다. 다른 학생들은 그 사실에 깜짝 놀랐단다. 그들은 리엄에게 "어떻게 그걸 눈치채지 못할 수가 있지!?"라고 물었단다. 그 일화는 리엄의 얼굴 인식 문제가 어느 정도는 자동적으로 얼굴을 관찰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을 암시한단다. 

리엄이 새로운 시각으로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들 중 한 명은 대학교수 조였단다. 2012년 리엄이 타이크슨 박사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단다. "조 교수님은 머리카락과 콧수염에 검은 가닥과 흰 가닥이 섞여 있어요. 나는 얼굴보다 머리카락을 더 잘 알아봅니다. 특히 여러 색깔이 섞인 머리카락과 얼굴 털을 잘 알아봐요(나중에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요.) 그래서 강의실 밖 캠퍼스에서 교수님을 한눈에 알아봤을 때 나는 교수님에게 다가가 이건 정말 특별한 일이며 교수님은 내가 그렇게 알아본 첫 번째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리엄은 자신이 가장 잘 알아보는 특징(짧은 머리 또는 긴 머리, 안경을 착용했는지 여부 등)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외모를 넓은 범주로 분류한단다. 그런 범주가 사람들 사이의 닮은 점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낀단다. 리엄이 비디오를 보다가 타이크슨 박사와 닮은 사람을 보았을 때도 그랬단다., 어머니에게 저 사람이 타이크슨 박사와 닮았다고 말하자 신디의 답답함이 해소되었단다. 신디는 영상 속 인물이 자신이 아는 사람과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누군지는 생각나지 않았던 거란다. 영상 속 인물이 타이크슨 박사보다 훨씬 어렸기때문에 신디는 타이크슨 박사를 떠올리지 못했단다. 하지만 리엄은 곧바로 알아챘단다.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많은 사람이 얼굴을 알아보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표정을 알아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단다. 하지만 리엄은 표정을 알아보는 데도 곤란을 겪었단다. 수술 8년 후 저자가 리엄에게 다양한 감정(행복함, 놀람, 의심, 못마땅함, 혼란, 두려움, 슬픔 등)을 보이는 얼굴 만화를 보여주었을 때 리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표정은 행복과 슬픔뿐이라고 말했단다. 이 문제는 리엄이 얼굴을 보는 방식(또는 보지 않는 방식)에서 비롯되었을까? 저자는 SM이라 불리는 여성에 관한 기사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단다. 그는 편도체를 손상시키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편도체는 앞뇌(전뇌)에서 두려움을 경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조란다. SM은 정상적인 두려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아무나 믿고 친근감을 표시했단다. 그는 행복, 슬픔, 놀람, 분노, 혐오감을 나타내는 얼굴 그림은 그릴 수 있지만 두려움을 보이는 얼굴은 그릴 수 없었단다. 또한 얼굴 사진에서 두려움을 알아보지 못했단다. 

우리 대부분은 주로 눈을 보고 표정을 판단한단다. 그러나 SM은 과학자들이 그가 얼굴 사진을 보는 동안 눈동자 움직임을 관찰한 결과 눈을 응시하지 않았단다. 입을 보고도 행복 등 많은 감정을 판단할 수 있지만, 두려움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눈을 봐야 한단다. 실제로 얼굴 사진에서 눈을 지우면 대조군에 속한 피험자들도 두려운 표정을 알아보지 못한단다. 그런데 올랍게도 SM에게 얼굴 사진에서 눈을 보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하자, 두려움을 아아보는 능력이 정상 수준으로 높아졌단다. 리엄은 SM이 겪는 신경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SM처럼 특정한 얼굴 표정을 알아보지 못하는데, 이는 유년기의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로 보낸 탓에 타인의 눈과 얼굴을 보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기 때문일 거란다.

하지만 만일 리엄이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면 그 사람은 불편함을 느낄 거란다. 아기는 상대방을 뚫어지게 보지만 대부분의 성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단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상대가 사적 영역을 침범당한다고 느낄 만큼 뚫어지게 보지 않도록 일종의 균형을 찾는단다. 리엄이 사진이나 텔레비전 속 인물을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상대방이 그런 관찰하는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거란다. 

실하 하켄은 회고록 <<앰마와 나>>에서, 시력 회복 후 타인의 표정을 볼 수 있게 되자 표정이 풍부해졌으며 생동감을 띠게 되었다고 썼단다. 리엄을 처음 만났을 때 리엄도 저자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고, 얼굴에 표정이 거의 없었으며, 조용히 차분하게 말했단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활짝 웃기도 한단다. 그런데 표정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타인도 우리의 감정을 알아차릴 거란다. 따라서 리엄처럼 수줍음 많은 사람은 자신을 더 많이 의식하게 된단다.

리엄이 시작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그것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느냐란다. 그는 현재 세인트루이스의 친목 모임에서 편안하게 어울리고 자신의 얼굴 인식 능력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단다. 지금은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 시각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에 집중하고 있단다.

 

05 - 물건 찾기

 

2012년, 리엄이 대학에 다니며 미주리주 컴럼비아의 자택에서 생활하던 중 어머니와 동생이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오클라호마주로 떠났단다. 그래서 리엄은 식료품을 사기 위해 혼자 슈퍼마켓에 가게 되었단다. "쇼핑은 끔찍해요." 리엄은 T선생님에게 보낸 이메일에 이렇게 썼단다. "어디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고, 찾고 있는 물건이 진열대에서 어떻게 보일지도 알 수 없고, 그게 예저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요. (...) 농산물은 도무지 모르겠어요. 색깔이 저마다 다른 것 같다가도 똑같아 보여요. 모순이죠."

구내식당에서 줄을 서서 음식을 구별하고 선택할 때도 리엄은 비슷한 문제를 겪었단다. 밥 요리나 과일 샐러드는 어려가지 모양과 색깔이 혼재되어 있단다. 리엄은 2013년 워싱턴대학교의 포박 프로그램(학사 후 과정)에 등록했을 때 자신이 식당에서 했던 '실험'에 대해 말해주었단다. 그는 벽에 붙은 메뉴판을 읽을 수 없었지만 계산원이 혹시 짜증을 낼까봐 재빨리 고르고 이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단다. 그래서 처음 몇 주 동안은 영양실조 상태였고, 샐러드바를 주로 이용했는데 음식의 종류를 구별하지 못해서 정체불명의 음식을 먹기 일쑤였단다. 하지만 언제나 재치가 있었던 리엄은 온라인에서 구내식당 메뉴를 찾아냈단다. 그 방법은 효과가 있었지만, 한번은 없는 음식을 달라고 하기도 했단다. 직원은 "보이는 게 다예요."라고 말했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지 않단다. 상점에 가면 궤짝에 사과들이 아무렇게나 담겨 있고, 샐러드에는 여러 가지 음식이 섞여 있단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물의 완전한 윤곽을 볼 수 없단다. 보통은 앞에 있는 사물이 뒤에 있는 다른 사물에 닿는 우리의 시야를 부분적으로 가리기 때문에 앞에 잇는 사물만 완전한 윤곽을 볼 수 있단다. 부분적으로 가려진 사물들의 누락된 부분은 유추해내야 한단다.

리엄은 저자에게 "저는 무언가를 묘사할 때 3차원 사물보다는 2차원 도형과 선을 사용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단다. 리엄처럼 장면을 2차원적으로 해석하면, 어질러진 장소에서는 사물의 전체적인 모습을 인식하기가 어렵단다. 실제로 3차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몇 가지 이미지를 보여주었을 때 리엄은 그것을 평면으로 보았단다.

2014년에 저자는 리엄에게 유명한 카니자 심각형(그림 5.1)을 보여주었단다. 

이 그림을 보면, 보통은 바로 놓인 삼각형 위에 밝은 힌색의 역삼각형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단다. 역삼각형의 세 곡짓점을 팩맨같은 도형이 둘러싸고 있단다. 이 팩맨으로 인해 꼭짓점은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삼각형의 나머지 윤곽은 실제로는 없단다. 윤곽은 단시 암시될 뿐으로, 아치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단다. 이 착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역삼각형 똑바로 놓인 삼각형보다 밝고 그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란다. 즉 이 그림은 3차원적으로 보인단다. 리엄은 역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어렴풋이 인지했지만 삼각형의 중간 부분은 보이지 않았단다. 즉 나머지 부분보다 부각되는 밝은 삼각형으로 보이지 않았단다.

리엄은 학교에서 네커 입방체 그리는 방법을 배울 때 설명을 따라 그릴 수 있었단다.(그림 5.2) 하지만 그는 집중해야  그것이 입방체로 보이고, 대충 보면 평명상의 선들로 보일 뿐이었단다. 

마찬가기로, 우리 대부분은 그림 5.3을 세 부분으로 접힌 종이로 본단다. 왼쪽 3분의 1원 앞쪽으로 향해 접혀 있고, 오른쪽 3분의 1은 뒤쪽으로 접혀 있는 것처럼 보인단다. 그런데 이 그림은 바르게도 보인단다. 이번에는 왼쪽 3분의 1이 뒤로, 오른쪽 3분의 1은 앞으로 접혀 있단다. 리엄도 종이가 접힌 방향이 바뀌는 것을 보았단다. 그런데 그는 이 그림을 제3의 방식, 즉 가장자리가 들쭉날쭉한 평면으로도 보았단다. 

그래서 그로부터 2년 후, 그림 5.4의 퍼즐을 리엄에게 이메일로 보내주고 그의 반응을 들었을 때 사뭇 놀랐단다. 왼쪽 그림을 볼 때 우리 눈에는 조각들이 흩어져 있을 뿐 형태는 딱히 보이지 않는단다. 하지만 오른쪽 그림에서는 어떤 형태가 보인단다. 힌트를 주자면, 그림 속에는 동일한 문자 여러 개가 포함되어 있단다. 이제는 검고 두꺼운 선 밑으로 여러 개의 문자 B가 보일 거란다. 오른쪽 그림에서 검은 선 뒤로 보이는 문자 B의 일부분은 왼쪽 그림의 조각들과 정확히 일치한단다. 하지만 왼쪽 그림에서 문자 B를 포착해내기는 매우 어렵단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자 B를 부분적으로 가리고 있는 검은 선이 오히려 B를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된단다.

우리가 오른쪽 그림에서는 B를 알아보지만 왼쪽에서는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윤곽선을 부여하는 방식이 바뀌기 때문이란다. 왼쪽 그림에서 문자 B의 조각들을 볼 때 우리는 윤곽선을 각각의 조각에 부여한단다. 따라서 이 조각들은 한데 모여 문자 B를 이루는 대신 평면상의 개별적인 실체로 남는단다. 반면 오른쪽 그림에서 우리는 검은 부분과 점점이 흩어진 회색 부분이 공유하는 윤곽선을 검은 선에 부여한단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흩어진 조각들을, 검은 선에 부분적으로 가려진 채 뒤에서 계속 이어지는 문자 B들의 일부분으로 인식할 수 있단다. 우리가 공통 윤곽선을 문자 B를 가리고 있는 검은 선에 부여하면 뒤쪽의 조각들이 서로 덩어리로 연결되어 식별 가능한 문자가 된단다.

저자는 문자 B가 숨어 있는 이 그림을 리엄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뭐가 보였는지 물었단다. 그는 왼쪽 그림에서는 조각들이 보였고, 오른쪽은 오래 들여다보자 비로소 문자 B가 보였다고 답했단다. 리엄은 검은 부분이 하나의 표면을 나타내고 회색 부분이 또 다른 표면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단다. 오른쪽 그림의 윤곽선이 문자 B를 덮고 있는 검은 부분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그는 문자 B의 누락된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단다. 즉 이 그림을 3차원적으로 해석한 거란다. 이런 식의 이해는 리엄이 일상생활에서 부분적으로 가려진 물체를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다. 

 

물론 입체시로 볼 수 있으면 세상을 3차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쉽단다. 한 사물을 이루는 표면들 중에는 더 먼 면과 더 가까운 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물을 알아보려면 윤곽선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심도를 추적해야 한단다. 입체시는 이런 심도 변화를 보는 데 도움이 된단다. 저자는 중년에 입체시가 생겼을 때 주위의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서 깜짝 놀랐단다. 사물들의 윤곽이 칼로 자른 듯 또렷했단다. 리엄이 슈퍼마켓에서 채소와 과일들을 잘 식별하지 못하고, 구내 식당에서 샐러드를 알아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도 입체시가 좋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단다. 

입시체로 보기 위해서는 두 눈을 동시에 같은 지점에 맞추고 두 눈에 맺힌 상을 머릿속에서 합쳐야 한단다. 이때 선명한 3차원 시각이 생겨서 우리는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을뿐 아니라 사물들 사이의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도 볼 수 있단다. 영아는 생후 3~4개월이 되면 입체시로 볼 수 있는데, 입체시가 이렇게 일찍 생기는 이유는 아마도 시각 발달에 입체시가 중요하기 때문일 거란다. 반면 생후 6~7개월이 될때까지는 원근감과 명암 같은 '그림 단서'를 사용하여 깊이를 해석하지 못한단다. 실제로 몇몇 시각과학자들은 입체시가 이런 후기 지각 기술의 발달을 이끈다는 가설을 제기했단다. 

유년기에 리엄은 왼쪽 눈으로 볼 때 가장 잘 볼 수 있었단다. 눈의 정렬이 맞지 않는 사시는 복시와 시각적으로 혼란을 초래했고, 그 때문에 리엄의 뇌는 오른쪽 눈에서 오는 인풋을 억제했단다. 그는 오른쪽 눈으로 무언가를 보려면 왼쪽 눈을 감아야했지만, 오른쪽 눈으로 몇 초만 봐도 고통스러웠단다. 그런 탓에 아기 때부터 간헐적으로 오른쪽 눈을 감는 버릇을 기르게 되었단다. 

수술 5년 후인 2010년 여름, 리엄은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더 이상 오른쪽 눈을 감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단다. 그는 오른쪽 눈이 "내 의지를 꺾고" 본다고 말했단다. 놀랍게도 오른쪽 눈으로 보는 것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지만 이제는 "두려워"졌단다. 눈을 감지 않자 오른쪽 시야가 넓어졌고, 그 결과 새로운 시각 인풋이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증가했기 때문이란다. 리엄은 오른쪽 눈을 가늘게 뜨려고 해봤지만 그런 상태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단다. 다행히 날이 갈수록 새로운 방식으로 보는 것이 조금씩 견딜 만해졌고, 일주일이 지나자 익숙해졌단다. 지금은 왼쪽 시야에서 오른쪽 시야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단다. 

타이크슨 박사의 진료실에서 임상검사를 실시한 결과, 리엄은 양쪽 눈으로 본 이미지를 하나로 융합할 수 있으며, 융합된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지만, 두 사물이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깊이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척도인 '입체시력'은 정상 이하(3000아크초)였단다. 유아기에 눈의 정렬이 맞지 않았던 점과 백색증 탓에 눈과 뇌를 연결하는 경로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며, 리엄이 양쪽 눈에 맞힌 이미지를 합쳐서 무언가를 입체시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란다. 자신이 입체시에 호기심이 생긴 리엄은 그림 5.5의 쌍안 이미지를 보면서 눈동자를 안쪽으로 돌려 두 이미지를 하나로 융합해보았단다. 이미지가 융합되자, 안쪽 원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바깥쪽 원 중앙에 있는 것처럼 보였단다. 하지만 안쪽 원과 바깥쪽 원을 각기 다른 깊이로 보지는 못했단다. 

그래서 저자는 2014년 6월에리엄을 만나러 가면서 '벡토크램'을 가져갔단다. 벡토그램은 두 장의 편광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 장에는 고리 형태의 밧줄이 들어 있단다(그림 5.6). 편광 안경(3D 영화를 볼 때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단다)을 쓰면 각 눈에는 두 고리 중 하나만 보인단다. 두 밧줄 고리를 수평 방향으로 떼어놓고 편광 안경을 쓴 채 두 이미지를 융합하면, 고리 하나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단다. 리엄은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자 밧줄 고리가 편광판 앞에 붕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단다. 융합에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리엄이 항상 융합에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란다. 아무 노력 없이도 3차원으로 볼 수 있으려면, 저자가 그랬듯이 리엄도 시각 훈련을 통해 융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란다.

마리우스 폰 센덴은 <<공간과 시각>>에서, 어릴 때 시력을 잃은 사람들이 양쪽 눈의 시력을 회복한 경우 한쪽 눈의 시력만 회복한 사람들보다 시력을 더 쉽게 회복한다고 보고했단다. 리엄은 두 눈을 함게 사용해서 입체시를 보는 데 아주 서투르단다. 그래서 이제 막 보기 시작한 갓난아기의 영우와 달리, 그는 장면을 해석하고 식료품점 궤짝에 든 사과들 같은, 장면에 포함된 사물들을 분리할 때 이 강력한 단서에 의지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단다. 

 

2014년에 세인트루이스에서 리엄을 만났을 때, 저자는 그가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에서 쇼핑할 때 사용하는 전략을 목격했단다. 수술 9년 후 리엄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지만, 그날은 어머니 신디가 컬럼비아에서 왔단다. 그들이 가장 먼저 간 곳은 월마트였단다. 리엄은 펑크난 자전거 타이어에 바까끼울 튜브를 구매하면서 자신이 월마트처럼 크고 붐비는 매장에서 쇼핑하는 요령을 그들에게 보여줄 계획이었단다. 조명이 밝게 켜진 건물 내부로 들어갔을 때 저자가 처음으로 한 생각은 리엄이얼마나 회복력이 뛰어난가였단다. 그는 괴로운 눈부심을 유발하는 매장의 형광등 불빛을 견뎌야 했단다. 침침한 불빛 속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그는 집에 있을 대는 항상 햇빛 차단막을 내려놓는단다.

언제나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리엄은 월마트에서 쇼핑하는 요령을 자세히 들려주었단다. 그는 세인트루이스 사람들이 고향 사람들보다, 운전하는 방식에서만이 아니라 쇼핑하는 방식에서도 과격하다고 말했단다. 매장에서 리엄은 반려동물 코너와 같은 한적한 곳에 슈핑카트를 세워두고 원하는 상품을 찾아다녔단다. 카트를 끌고 사람들을 피해다니는 것보다 그쪽이 더 쉬웠기 때문이란다. 

냉동식품 통로에서 그들은 린 퀴진 브랜드 제품들을 하나씩 살펴봤단다. 리엄은 포장에 그려진 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포장에 적힌 글자를 보았단다. 저자가 통로 위에 매달린 커다란 표지판을 가르키자 그는 표지판에 적힌 글자를 읽을 수 있었지만, 혼자서는 표지판을 알아보거나 이용하지 못했단다. 저자는 안경을 벗고 리엄의 시력과 비슷한 시력으로 표지판을 쳐다봤단다. 그랬더니 표지판의 글자들이 약간 흐릿하게 보였을 뿐 읽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단다. 

그들은 토스티토스 살사 소스 병이 줄줄이 놓인 통로로 갔단다. 중간 맛과 순한 맛 살사 병은 뚜껑의 줄무늬 색깔을 제외하고는 거의 똑같아 보였단다. 병 중앙에 작은 글자로 '중간 맛'과 '순한 맛'이라고 적혀 있었단다. 리엄은 병뚜껑의 줄무늬 색깔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두 병을 구별하기가 어려웠단다. 그 문제는 토스티토스 병에서 끝나지 않았단다. 많은 품목의 포장이 시각적으로 복잡하고 너무 많은 내용이 표시되어 있단다. 리엄이 종종 엉뚱한 맛이나 크기의 제품을 사는 것, 그리고 집에 있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또 사는 탓에 모든 제품이 다섯 개씩 생기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단다. 

그다음으로 그들은 약 코너로 갔단다. 리엄이 신디와 저자를 그곳으로 안내했단다. 그 매장은 리엄이 평소에 가던 월마트가 아니었지만, 월마트는 어느 지점이든 비슷하게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약 코너가 어디쯤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단다. 리엄은 다른 통로들을 기준으로 45도 각도에 위치하는 근처 화장품 코너를 지표로 삼았단다.

그들은 약 통로에 도착하여 뮤시넥스를 찾기 시작했단다. 린 퀴진 상자나 토스티토스 살사 병과 마찬가지로 약 포장과 약병들을 색깔을 빼고는 대동소이했단다. 색깔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리엄은 몸을 제품 가까이 기울여 라벨을 읽었단다. 그 라벨들은 토스티토스 병의 라벨보다 알아보기 쉬웠단다.

 

리엄이 뭔가를 찾을 때마다 항상 좌절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란다. 세인트루이스 한가운데 있는 녹색 오아시스인 포레스트 파크에서 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낸 날 오후에 그렜던 것처럼, 그는 뭔가를 찾는 데서 재미를 느끼기도 한단다. 공원에 다라랐을 때 그들은 물에 젖은 보도를 지나가게 되었단다. 그곳은 보도의 균열 부위에 물이 고여서 주변 시멘트색보다 어둡게 보였단다. 리엄은 그 어두운 지대를 넘어가야 할 낮은 난간으로 착각했단다. 빛과 어둠의 유희와 불쑥불쑥 나타나는 선들이 때때로 거짓말처럼 느껴진다고 리엄은 말했었단다.

그들은 공원에서 '지오캐싱'을 했단다. GPS를 사용해 '캐시'라고 불리는 용기를 숨기거나 찾는 게임이란다. 리엄은 그런 종류의 퍼즐과 보물찾기를 좋아하는데, 그의 시각 세계가 온통 퍼즐 같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란다. 리엄은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된 작은 용기를 찾기 위해, 그것이 숨겨져 있는 곳의 좌표와 지도를 자신의 휴대폰 GPS에 배려받았단다. 캐시 중 두 개는 나무에 숨겨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덤불 속 장난감 쥐 속에 있었단다. 리엄은 그중 두 개를 누구보다 먼저 발견했단다. 봉나무에서 지오캐시를 발견했을 때 그는 "뻔히 보이는"곳에 있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단다. 저자가 신발끈을 묶으려고 하자, 그는 조금 떨어진 곳애 있는 공원 벤치를 가리켰단다. 고요하고 넓은 포레스트 파크에서 리엄은 자신의 시각을 아주 잘 활용했단다. 

슈퍼마켓이나 월마트에서 물건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리엄이 어떻게 포레스트 파크에서 지오캐시를 찾는 일은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을까? 포레스트 파크에는 나무, 벤치, 길처럼 볼 대상이 많았지만 이들은 크기가 컸기 때문에 리엄은 새로 얻은 시력으로 그것들을 쉽게 알아보고 기본 범주로 묶을 수 있었단다. 지오캐시를 찾는 동안 그는 그들이 지나치는 나무의 종이나 벤치의 디자인까지 알일이 알 필요는 없었단다. 역위계 이론에 따르면, 장면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세부는 중요하지 않단다. 무너가에 부딪히지 않고 지오캐시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만 주변을 알아볼 수 있으면 된단다. 케다가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된 작은 용기인 지오캐시는 자연환경 속에서 도드라져 보인단다.

하지만 슈퍼마켓에 가면 모든 진열대가 다양한 물건으로 채워져 있으며, 그 물건들은 포장되어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단다. 원하는 맛의 살사 소스를 찾으려면 먼저 특정 부랜드를 찾은 다음에 해당 브랜드 안에서 원하는 맛을 찾아야 한단다. 리엄이 좋아하는 살사는 범주 안의 범주 안의 범주에 속했단다. 살사의 모든 하위 범주가 비슷한 포장에 담겨 나란히 배열되어 있었으므로, 찾는 하위 범주가 좁아질수록 찾기가 더 힘들었단다.

리엄은 최근에 획득한 시력 덕분에 상품 라벨의 글자를 선명하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색상과 모양, 윤곽선도 구분할 수 있단다. 그림을 잘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로 라벨을 읽는 데 의존한단다. 읽기는 그가 유년기에 숙달한 기술이란다.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건 리엄에게 큰 이점이란다. 시력을 회복한 많은 사람이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았거나 아주 어릴 때 시력을 잃은 탓에 글자 읽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단다. 그들은 시력을 회복한 후에도 문자, 그중에서도 대문자를 알아볼 수 있지만 문자를 단어로 연결해 읽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단다. 리엄의 유년기 시력은 글자 읽는 법을 배우기에는 충분했단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읽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인공수정체를 이식받은 후 그는 과거에 익힌 읽기 기술을 현명하게 되살려 연마했단다. 우리가 매일 수많은 표지판과 라벨을 본다는 사실, 그리고 저자가 일본에 갔을 때 일본어를 몰라서 길을 잃고 헤맸던 일을 떠올리며 저자는 리엄이 비단 마트에서만이 아니라 문자로 이루어진 환경 전반에서 길을 찾는 데 읽기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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