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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소로(2025.01.26) - 존 캐그, 조너선 반 벨 - 기록중

동선(冬扇) 2025. 1. 26. 14:34
책 소개

MD 한마디
『월든』 저자 소로는 은둔자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사회에 저항하는 운동가였고 성실하게 일한 노동자였다. 이 책은 소로의 노동자 정체성을 추적한다. 집필, 강연, 오두막 짓기, 연필 제작 등 다양한 일을 했던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주체적으로 일하라고. - 손민규 인문 PD


불멸의 인문 고전 『월든』으로 200여 년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삶을 새롭게 해석한 『일터의 소로』가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숲속으로 들어간 은둔자이자 사색가 소로에게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간 노동자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 주목한다. 월든에서 소로는 사색하고 글만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부지런한 갓생을 사는 N잡러였다. 그런 삶을 기반으로 다져졌기에 소로의 철학은 시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잠에서 깨어 자유로운 하루를 맞이하길 바라지만, 먹고살아야 하기에 매일 출근길에 오르는 우리에게 소로는 말한다. 영혼도, 시간도, 삶도, 그 어떤 것도 희생하지 말라고. 일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죽어 간다고. 의미 없는 출퇴근의 나날 속에 절망하면서도 한 줄기의 빛을 향해 마음을 열고자 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저 : 존 캐그
메사추세츠 대학교 철학 교수. [뉴욕타임스] [하퍼스매거진]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보스턴 근교에서 아내와 딸과 살고 있다. 저서 『미국철학American Philosophy: A Love Story』은 2016년 NPR 최고의 책 및 뉴욕타임스 Editors’ Choice로 선정되었고, 『심연호텔의 철학자들』은 2018년 NPR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특유의 우아한 문체로 윌리엄 제임스를 통해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아픈 영혼을 위한 철학』 은 2021년 미국출판협회 프로즈상 철학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개인적인 경험과 철학을 매혹적으로 결합하는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
 

저 : 조너선 반 벨
작가이자 독립 연구자이자 철학자. 저서로 『Zenithism』『Thinking through Writing』 등이 있다. 아내와 꼬마슈나우저, 니체와 함께 미국 오리건주에 살고 있다.

                                                                                                                                                                                 * 출처 : 예스24


 

서문

 

먹고사는 일

 

빈둥빈둥 논다는 사람이 44세까지 일기장에 200만 개도 넘는 단어를 적을 수는 없단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일기에 담긴 단어의 개수는 뉴킹제임스 성경보다 120만 개가 많는 200만 개란다. 그럼에도 소로는 게으름쟁이에 한량으로 악명이 높단다. 이렇게 묻고 싶단다. 소로를 생각하면 무엇이떠오르는가? 자연을 숭배하는 자연주의자? 급진적인 노예폐지론자? 도독을 추구하는 생존 전문가? 농땡이 치는 사기꾼?

소로의 모습은 여럿이지만 유독 한 모습만은 주목받지 못한단다. 바로 노동자 솔호의 모습이란다. 소로를 노동자로 보는 시각은 흔치 않지만 사실상 그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생각이 깊은 노동자였단다. 일은 소로 철학의 뿌리에 있으며 소로의가장 유명한 저서 <월든>의 근간이기도 하단다. 이 책은 소로가 매사추세츠주 콩고드 숲속 호숫가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았던 2년 동안의 기록이란다.

월든 호숫가에 네 평 집을 지은 일은 소로가 숲속에서 한 다양한 노력 가운데 최초는 아니지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단다. <<월든>>의 첫 장 <경제>는 노동에 관한 소상하고 소란스러운 기록이란다. 소로는 도끼를 빌려다가 "목재를 마련하기 위해 아직 어린, 화살 같은 스토로브 잣나무를" 제었는가 하면 "통나무 겉 부분을 켜서 만든, 송진 범벅에 삐뚤빼뚤한 널조각으로" 집의 외벽을 덮었단다. "남향으로 앉은 언덕배기를 파서" 지하 저장실을 만들기도 했다. "호수에서 돌멩이를 주워 두 팔 가득 안고 언덕으로 올라가기도 했는데, 그 양이 수레 두 개를 채출 만큼이었다" 소로는 이 돌로 굴뚝의 기초를 쌓았단다. 심지어 문에 달 빗장쇠를 두드려 만드는 것도 도왔단다. 침대를 만들기 위해 중국식 침대 겸용 의자를 재활용하기도 했는데, 수십 년 된 등나무 뼈대에 다리를 못질했고 들것에 쓰던 막대기도 갖다 붙였단다. 소로는 집을 짓는 이 모든 과정을 즐겼단다. "나는 일을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을뿐더러 알차게 누렸다" 즐거운 일을 서둘러 할 필요는 없는 법이란다. 

월든의 집이 소로의 첫 건설 프로젝트는 아니었단다. 아버지 존을 도와 매입한 집을 새로운 터로 옮긴 적도 있단다. 평생 열심히 일한 소로의 아버지는 당시 식료품점 사업을 두 차례나 말아먹은 뒤였단다. 소로는 아버지와 함께 기초 공사를 해 텍사스가에 집을 짓고 "텍사스 하우스"라고 이름 붙였단다. 집을 지어 보고 초석을 놓아 본 철학자가 얼마나 있을까?

호숫가 집이 완성된 후 진정한 노동이 시작되었단다. 글을 쓰는 일이었단다. 소로가 밝혔듯이 그는 월든 호수에 일을 하러 간 것이었단다. 소로는 목숨이 달린 문제라는 듯 일했고 사실상 목숨이 달려 있었다고 주장한단다. 우리가 한 작가의 글을 그 사람의 코퍼스(육신을 의미하는 라틴어 코르푸스에서 왔다)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단다. 그 작가가 남겨 놓고 떠난 사상의 육신, 혹은 기념비이기 때문이란다. 소로의 친구이자 초월주의 학파의 동료였던 앨러리 채닝은 소로가 호숫가 집에서 놀라운 생산성을 발휘했다는 이유로 이 집을 "나무로 만든 잉크 받침대"라고 했단다. 여기서 머문 2년 하고도 두 달 하고도 이틀간 소로는 첫 저서 <<콩코드와 메리맥강에서의 일주일>>의 초고를 쓰고 또 수정했으며 117쪽 분량의 <<월든>> 초고를 썼단다. 이뿐 아니라 다양한 수필을 다양한 방식으로 집필했는데 그중에는 추후 <시민 불복종>으로 알려진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도 있었단다. 그나저나 첫 저서 <<콩코드와 메리맥강에서의 일주일>>은 판매량이 형편없었단다. 왜냐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따르면 소로가 이 책을 집필할 때 지나치게 애를 썼기 때문이란다. 실로 노동자 소로를 너무 그대로 본받지는 않는 편이 좋은데 소로는 여러모로 지나치게 애를 쓴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짧고도 부지런했던 소로의 삶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여러 교훈을 준단다.

 

소로는 미국 경제사의 중요한 전환기, 노동의 의미가 급진적으로 변화한 시기에 살았단다. 소로의 직계 가족은 부유하지 않았단다. 오히려 의심할 바 없이 가난할 때가 많았단다. 소로의 집안이 1820년대에 들어 경제적 안정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소로의 삼촌 찰리가 뉴햄프셔에서 흑연 광산을 발견한 덕분이었단다. 소로의 아버지와 삼촌은 연필 제작 사업을 시작했단다. 훗날 미국 문학의 선택받은 아들로 불리게 될 젊은이에게도 매우 적합한 직업이었단다.

소로의 어린 시절은 여느 노동자 집안 아이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난의 연속이었단다. 아홉 살 때에는 "소에서 떨어졌다". 소로가 실제로 소를 타고 있었는지 그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단다. 같은 나이에 심부름으로 바무를 베러 나갔다가 발가락 하나를 잃기도 했단다. 열두 살이 되었을 때에는 빗속에 임시 거처를 세울 수 있었단다. 열여섯이 된 소로는 처음으로 배를 만들어 로버라는 이름을 붙이고 콩코드강을 오르락내리락 휘젓고 나녔단다.

중요한 스승이자 동료였던 랠프 월도 에머슨을 위해 소로는 저장실 바닥에 마루를 깔기도 하고 울타리, 헛간, 옷장 선반, 배수구 등도 만들어 주었단다. 게다가 에머슨의 아이들과 조카들도 돌보았단다(뉴욕시에서 작가로 일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스태튼아일랜드에 잠시 머물 때였다). 에머슨이 강연을 하느라 유럽에 가 있는 동안 콩코드에서 에머슨의 아내 리디언과 함께 에머슨 집안의 아이들을 돌보던 소로에게, 에머슨의 어린 아들 에디는 아빠가 되어 달라고 청하기도 했단다. 에머슨에게 보내는 편지에 소로는 다소 경솔하게도 이렇게 적었단다. "에디가 아주 심각한 얼굴로 문더군요. '소로 아저씨, 우리 아빠가 되어 주실래요?'... 그러니 자리를 빼앗기기 싫다면 어서 돌아오셔야겠습니다."

소로가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란다. 하버드 재학 시절에도 오레스테스 브라운슨의 아이들을 돌본 적이 있었단다. 브라운슨은 설교자이자 작가, 노동 운동가로 은행과 부의 상속을 폐지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 사람이었단다. 

소로는 학교에서도 가르쳤단다. 그는 일찍부터 교단에 서는 진로를 택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로"를 정할 때처럼 꼭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져서 그랬을 것이란다. 소로는 형이자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존 주니어와 함께 콩코드 아카데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단다. 콩코드 아카데미는 소로가 피니어스 앨런의 지도 아래 형 존과 함께 다녔던 사립 학교였단다. 소로 형제의 다소 진보적인 교육 목표에 따라 학생들은 자연 속으 산책하거나 토론하거나 실용적인 기술을 배웠단다. 형제의 제자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 중에는 <<작은 아씨들>>의 저자 루이자 메이 올콧도 있단다. 하지만 소로 형제의 교직 생활은 길지 않았단다. 존의 건강이 악화되어 문을 연 지 겨우 4년 만에 두 사람은 콩코드 아카데미의 횃불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단다.

하지만 하나의 진로가 다른 진로로 이어지기도 한단다. 콩코드 아카데미를 운영한 덕에 소로는 운 좋게도 정기적인 소득을 가져다주는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바로 측량이었단다. 콩코드 초등학교에서 측량을 가르치긴 했지만 소로가 특량 기사로 일하게 된 계기는 여러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차적인 결과였단다. 소로 연구자 제프리 S. 크레이머는 이렇게 썼단다. "1840년 소로는 복합식 높이 측정 도구와 측량용 나침반을 구매했다. 형 존과 함게 운영하는 학교에서 측량의 기초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좀 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응용 분야를 보여 주고 싶었다. 덕분에 소로는 일생을 측량 기사로 일하며 돈을 벌 수 있었고 콩코드 지역에서 약 150건의 측량을 했다." 

소로는 측량 일로 만족하지 않고 부업도 했단다. 그에게는 발명가의 면모도 있었단다. 그는 기존의 유럽산 고급 연필에 쓰이는 흑연보다 더 고운 입자의 흑연을 분쇄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단다. 소로는 스스로 "손가락 개수만큼 재주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단다. 살면서 장작 패기, 목수일, 석공 일, 흑연 분쇄 등 안 해 본 일이 없지만 신기하게도 손가락 열개는 무사했단다. (물론 발가락의 경우는 달랐단다)

어쨌든 소로는 게으름쟁이는 아니었단다. 걸어 다닐 때도 일을 하라고 권유했단다. 반추라는 일 말이란다. 수필 <걷기>에서 소로는 "걸으면서 반추하는 유일한 짐승인 낙타처럼 걸어야 한다"고 썼단다. 그리고 스스로 낙타처럼 걷는 법을 실천했단다. 로버트 설리번의 글에 따르면 "소로는 매일 4시간에서 6시간씩 걸었고 매일 수천 단어가 넘는 글을 썼다. 밖에서는 연실로 수첩에 적고 나중에 일기장에 잉크로 옮겨 적으면서 살을 붙였다" 걷기를 반추와 엮은 것만이 아니란다. 소로는 모든 여가 시간을 적극적인 행동과 엮었단다. "여가가 좀 완전하고 온전한 행동을 할 기회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왜 미국 언론인 찰스 프레더릭 브릭스는 <<월든>>이 출간되었을 당시 월간지 <퍼트넘 매거진>에 서평을 쓰면서 소로를 디오게네스와 성 시메온에 견주었을까? 이 둘이야말로 실제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단다. 그러면서 디오게네스는 커다란 포도주 통에, 성 시메온은 열 길이 넘는 높은 기둥 위에 살았단다. (게다가 "집"을 직접 짓기는 커녕 "어쩌다 발견한 물건"을 집으로 삼았다) 글을 끄적이고 측량하고 집을 짓고 아이를 돌보고 식물 표본을 모았으며, 두엄을 퍼 나르는 일같이 하찮은 일을 비롯해 온갖 잡다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던 소로는, 그렇다면 왜 여유 만만한 시간 비우기의 대가, 뉴잉글랜드식 선불교의 지도자 취급을 당하게 된 걸까? 

소로가 노동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그가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란다. 소로는 고용자와 피고용자 모두에게 따져 물었단다. 근로 계약을 파우스트적 거래라고 칭했으며 사람들이 "착각 속에 일한다"고 주장했단다. 이런 식으로 소로는 철학을 실용적인 것으로, 심지어 시급한 것으로 만들었단다. 그는 사직의 기쁨과 위험, 근무일의 리듬, 노동이 필요없는 기술의 유토피아라는 종종 터무니 없는 약속, 그리고 불변의 철학적 질문, "내 월급은 얼마인가?" 등에 대해 차근차근 길잡이가 되어 알려 준단다.

한편 소로가 근면한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그를 경제학자로 보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러나 "도덕적. 정치적" 경제라는 좀 더 오래되고 전체론적인 의미에서 소로는 분명히 경제 사상가였단다. 소로의 귀중한 작품 <<월든>>의 첫 장 제목도 <경제>란다. 소로는 열심히 일한 만큼 일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도 했단다. 그는 소크라테스식 화법으로 일에 질문을 던졌단다. 우리는 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가? 거기서 무얼 얻고자 하는가? 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소로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1830년대에 미국 경제는 오늘날의 모습과 비슷해져 가고 있었단다. 사람 대신 기계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주식 투기가 벌어지고 온갖 상품이 넘쳐나는, 돈에 미친 괴물이었단다. 소로는 이런 변화를 경이와 공포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단다. 콩코드강 기슭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는 화물을 실은 바지선이 여기서 저기로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만 봐도 신이 났단다. 선장은 가끔 소로를 태워 주기도 했고 그런 날만큼은 어린 소로도 거상이 된 기분이었단다. 그러나 갈수록 소로는 현대 자본주의라는 세이렌의 노랫소리,  그 속에서 흥청망청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유혹에 두려움을 느꼈단다. 물론 현대 경제 체제 속의 노동은 결코 편안하지 않단다.(소로 역시 일을 회피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소로의 시대에도 우리 시대에도 노동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지나친 탐욕과 맹목적인 생산성 추구가 과도한 소외와 허무주의를 초래했다는 점이란다. 

이것이 과장이라고 느껴진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잔다. 출근길에 종종 일허러 가기 싫다는 기분이 들이 않는지? 급여로 받은 돈으로 차에 기름을 넣고 회사로 가면서 회사를 불태워 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잠기지는 않는지? 주당 70시간 일해도 밀린 신용 카드 대금의 이자밖에 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 아무리 열심히, 아무리 "영리하게" 일해도 언제나 주머니가 가볍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지? 이 정도면 이해가 될 것이란다. 소로는 <<월든>>의 도입부에서 "경제"의 원뜻을 되새기려는 시도를 통해 오늘날의 경제 모델을 집요하게 비판한단다. 

"경제"라는 말은 뿌리가 그리스어 오이코스에 있단다. 고대 그리스에서 오이코스는 서로 연결된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단다. 가족, 가족의 땅, 그리고 가족의 집이라는 뜻이란다. 의미상 서로 대체 가능한 이 세 가지는 고대 그리스의 가장 기본적인 정치  단위를 구성했단다. 특히 그리스의 세습 귀족 가문에게 가족과 혈통은 다른 어떤 소속 단위보다 중요했단다. 가족은 그 당시에도 이후에도 작은 국가로 여겨졌으며, 가족 내에는 질서와 모범이(뛰어난 도덕의식의 모범 혹은 도덕적 해이의 반면교사가) 존재했단다. 경제를 행하는 목적은 "집안 살림"이었단다. 그리스어를 공부했고, 말장난이나 어원에 관심이 많았으며, 글을 쓸 때 무척 꼼꼼했던 소로는 매우 의도적으로 <월든>>에서 가장 긴 장의 제목을 <경제>라고 붙인 것이란다. 그의 오이코스, 스파르타식의 엄격하고 간소한 작은 호숫가 집에 살고 그 집의 질서를 세우면서 소로는 다른 사람들 역시 집안의 질서를 세울 수 있게끔 돕고자 했단다. 한 번에 한 집씩, 한 번에 한 가족씩 도와 사회 전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단다. 이 건조한 첫 장의 제목은 말장난의 깊은 의도를 숨긴 채 이렇게 속삭인단다. "이 책은 호숫가에 있는 단순한 집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다지 단순하지 않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무질서한 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원래 경제란 은행 계좌와 주식 포트폴리오가 아닌 집을 가꾸고 관리하는 행위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란다. 가장 본질적이고 유익한 의미에서의 집, 즉 번영하는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 말이란다. 물론 여기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거란다. "내 은행 계좌도 내 집을 유지하고 나를 번영하게 해 주는데요." 하지만 이런 반박은 소소의 요점을 간과한 것이란다. 직업은 은행 계좌를 가득 채우고 주택 담보 대출을 상환해 주고 3개월마다 사흘간의 휴가를 보내 주겠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하게 만들 수도 있단다. 심지어 인생을 망쳐 놓을 수도 있단다. 그 인생은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좋은 집을 만드는 데 쓸 수도 있는 인생이란다.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고 비유적으로 받아 들여도 좋단다. 넓은 의미로 이해해도 좋고 좁은 의미로 이해해도 상관없단다. 어쨌든 사실이니까. 소로의 생각에 따르면 어떤 일은 "내 집처럼 편안한" 기분으로, 실제 그런 상태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단다. 이것이 소로가 목표로 하는 경제란다. 

 

19세기에 현대 자본주의나 현대 사회에서의 노동의 의미를 재고했던 사람은 소로 혼자가 아니었단다. 당대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는 소로가 저항하려 했던 바로 그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를 관심 주제로 삼았단다. 19세기 전반기 미국에서는 유토피아 사상가들이 무리 지어 나타났고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그 안에서 삶을 지탱하는 의미 있는 노동을 찾고자 했단다. 이런 동시대 사람들의 목적이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았던 소로의 목적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상당한 차이가 있단다. 소로의 지적 동료들, 특히 초월주의자들은 실험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시도했단다. 가령 조지 리플리의 브루크 농장, 에미머스 브론슨 올컷의 프루트랜즈가 있단다. 하지만 소로는 반대의 실험, 즉 홀로 사는 실험을 했단다. 학자 마이클 마이어는 이런 차이를 언급하면서 "소로가 월든 호수에서 2년간 은거한 것은 초월주의자들의 공동체적 노력에 답변이었다"고 말한단다. 

소로는 브루크 논장에 방문한 적도 있지만 함께 살지는 않기로 했단다. 리플리가 랠프 월도 에머슨을 브루크 농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쓴 편지에는 소로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생각이 담겨 있단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목표는 지적 노동과 육체노동이 현재보다 좀 더 자연스럽게 결합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 개인 안에서 사상가와 노동자가 최대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취향과 재능에 맞는 일을 하고 노력의 결실과 연결되도록 함으로써 가장 숭고한 정신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교육의 혜택과 노동의 이익을 모두에게 열어 주어 허드렛일의 필요성을 없애는 것입니다. 

 

왜 삶이라는 일을 이토록 다양하게 실험한 걸까? 분위기가 어땠기에 이처럼 많은 사상가들이 일과 삶의 본질을 재고하게 된 것일까? 공동체 차원에서든 개인의 차원에서든 왜 새로운 형태의 "집안 경제학"이 급증한 걸까? 당시 여러 미국 노동자들이 뿌리 없이 부유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 탓일 수도 있단다. 산업 혁명 도중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가족 소유 농장, 긴밀하게 짜여 있던 공동체가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제대로 자기를 챙기지 못하고 표류하는 상태가 되었단다. 

이런 실험이 진행된 좀 더 뚜렷한 이유가 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소로가 살밈으로서의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다면 당시 국가라는 오이코스가 둘로 갈라져 있었기 때문일 거란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분열된 집"에 대한 연설을 한 시점은 <<월든>>이 출간된 지 4년 후, 소로가 월든 호숫가 집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낸 지 11년이 지난 때로, 이 연설은 전후 시기 미국의 가장 근본적인 공포를 들여다보고 있단다. "'분열된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 정부가 절반은 노예, 절반은 자유인 상태로 영영 버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남부 연합이 해체되는 것을, 집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집이 분열되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집 전체가 이쪽이 되거나 전체가 저쪽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친구 에머슨과 달리 소로는 노예 폐지 운동이 유행하기도 전에 이미 노예 제도에 반대하고 있었단다. 남북 전쟁이라고 불리는전국적인 붕괴 상태가 있기 월씬 전부터 소로는 전쟁을 촉진한 미국 사회의 내재된 갈등을 드러내고 표적으로 삼았단다. 소로는 비도덕적이고 끝없는 물욕으로 인해 미국이 노예 경매대의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월든>>이 출간되기 4년 전, 1850년 제정된 탈주 노예법은 노예제가 폐지된 주에 살고 있는 탈주 노예의 경우라도 주인에게 반환되도록 요구했단다. 그 결과 노예제가 폐지된 주가 없어지다시피 했단다. 집 전체가 잔인한 속박의 집이 되었고 누구도 그 집을 편안하게 여기지 않았단다. 이 연방법에 따라 연방 정부인 워싱턴 DC는 전국적으로 노예 사냥을 벌여야 했단다. 

탈주 노예법이 시행되기 여러 해 전, 소로가 납세 거부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일화는 유명하단다. 소로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도덕성이 의심되는 국가에 세금 내기를 거부했는데 미국이 멕시코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정의롭지 못한 전쟁도 소로가 납세를 거부한 중요한 이유였단다. 이런 저항을 통해 서로는 당대의 경제를 지탱하던 막무가내식 팽창주의와 도덕적 태만에 문제를 제기했단다. 짧은 구금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로는 전무후무한 영향력을 발휘한 정치 논평 <시민 불복종>을 썼고 이 글은 레오 톨스토이,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등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단다.

간디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변형한 형태의 시민 불복종, 즉 사탸그라하를 이용해 인도라는 오이코스에 대한 영국의 착취를 종식하고자 했단다. 인도 경제를 되찾기 위한 간디의 방식도 소로의 방식처럼 개인의 노동의 의미를 되찾는 데 달려 있었단다. 인도 국기에 영원히 새겨진 돌아가는 바퀴의 형상은 노동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있단다. 나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만 개인의, 국가의, 우주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의미란다.

역사상 가장 놀라운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여겨지는 간디의 "소금 샤탸그라하" 혹은 "소금 행진"을 보잔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24일 동안 390킬로미터를 걸으며 단지 소금을 모아 판매하려고 시도했던 이 효과적이면서도 비폭력적인 행진이 이루어지는 동안 영국 관리들은 시민들을 괴롭히고 체포했단다. 소금 행진은 <<월든>>의 <경제>에 나오는 한 문장을 연상시킨단다. "마지막으로 소금 같은 경우,...바닷가에 갈 좋은 핑계로 삼을 수 있다" 간디는 이를 실행에 옮겼단다. 바닷가 마을인 단디의 해안에 있는 염전으로 걸어간 것이란다. 당시 연국 지배자들은 소금을 독점하고 소금에 무거운 세금을 매기고 있었단다. 인도의 방대한 해안선을 따라 쌓인 천연 소금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는데도 식민지 정부의 공급업자를 통해서 사지 않으면 범죄로 간주했단다. 간디는 염분이 가득한 바닷가 흙을 손에 가득 움쳐쥔 뒤 치켜올림으로 해서 세계 최강 제국의 법에 불복한 거란다. 무해해 보이는 한 줌 흙을 들고 간디는 이렇게 말했단다. "이것으로 나는 대영 제국의 기반을 흔들 것이다."

간디는 소로와 마찬가지로 노동의 차원에서 개인의 변화와 책임이 가진 힘을 이해하고 있었단다. 나라는 가장 기초적인 청치 단위에서의 변화와 책임 말이다. 간디는 이렇게 썼단다. "우리는 세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경향은 우리 몸의 세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세계의 다양한 경향 또한 바뀔 것이다...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기다릴 필요는 없다."

소로의 <경제>는 자기 자신을 정돈함으로써 미국이라는 집에, 가능하다면 세계라는 집에 변화를 가져오라고 우리에게 말한단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이것이 모든 정치 단위에서의 살림 경제에 해당하는 것이란다. "의식적인 삶을 살라"는 명령은 단지 개인을 위한 좌우명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지침으로서 우리가 날마다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지 깨어나 살펴보라는 의미이며 일단은 내 집을 돌아보아야 하지만 거기에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의미란다.

 

대표적인 소로 평전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쓴 로라 대소 월스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단다. "<경제>는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괴물처럼 거대한 사회적. 물질적 하부 구조를 지탱하며, 그로 인해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소로는 현대 사회의 위기를 강조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소로가 해결책의 단초를 제공햇다는 점이란다. 적어도 그는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단다. 그 해결책이란 개개인이 인류를 위해 협력하여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단다. 소로가 체질적으로 협력을 꺼린다고 생각했다면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란단다. 소로의 호숫가 집은 언제나 열려 있었단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기꺼이 알려 줄 것이며 대문에 절대로 '출입 금지'라고 적지 않을 것"이라고 소로는 썼단다. 로버트 설리번의 기록에 따르면 "<소로가 월든에서 보낸> 첫 해 8월 7일에 지역 신문 <콩코드 프리먼>은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여성의 연례 모임이열렸다고 전했단다. 서인도 제도의 노예 해방 기념일을 맞아 모임이 열린 장소는 월든 호수에 있는 소로의 집이었단다.

노동자이자 살림꾼으로서 소로는 삶을 향상하기 위해 협력과 친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단다. 우리는 타인이 칠요하고 타인에게 잘해야 한단다. "인간의 가장 뛰어난 본성은 열매에 달린 꽃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지켜 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도 타인도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든 경제학자들이 "부정적 외부 효과"라고 하는 것, 즉 제3자에게 가는 피해를 고렿해야 한단다. 하류의 연어 서식지로 산업 폐수가 흘러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잔다. 공장은 수많은 타인들에게 끼치는 끔찍한 피해에 대해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을 수도 있단다. 자신의 생을 더 깊이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핵심인 <시민 불복종>에서 소로는 이렇게 말한단다. "내가 남과 다른 일을 추구하거나 생각에 잠길 때에는 먼저 남의 어깨에 앉아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어깨를 타고 앉아 있다면 그 사람 또한 생각에 잠길 수 있도록 거기서 내려와야 한다"

소로는 하숙집을 운영했던 어머니 신시아에게 친절에 대해 배웠단다. 그리고 또 다른 여성 리디아 마리아 차일드에게 알뜰하게 살림하는 방법을 배웠단다. 차일드는 노예 폐지론자이자 여성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활동가였단다.

1829년 발간된 차일드의 소박한 살림 책 <<검소한 주부: 절약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책>>은 마치 생활을 향상시키고 "찰나를 향상"시키고자 했던 소로의 욕구를 예언하는 듯한 내용으로 시작한단다. "살림에서 진정한 절약은 모든 조각을 주워 담아 어떤 것도 낭비하지 않는 기술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조각은 물질뿐만 아니라 시간의 조각이기도 하다. 아무리 하찮더라도 쓰임새를 찾을 수 있다면 어떤 것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식구가 몇이든 모든 식구가 돈을 벌거나 절약하는데 힘써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인색하고 돈에 무심해 보이는 소로의 생각과 딴판인 것 처럼 보인단다. 하지만 무심해 "보이는" 것뿐이란다. 소로는 물건의 진정한 가치를 매기는 돈에는 관심이 많았단다. <경제>에는 식료품 가격이나 건설 비용 등의 숫자를 나열한 목록이 여럿 있단다. 이러한 계산서는 한편으로 당시 인기가 많았던 주택 도안 책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목적도 있단다. 바싹 마른 세부 항목 밑으로 수맥이 흐르고 있는 것이란다. 소로와 차일드의 메시지는 정확히 일치한단다. "낭비하지 않으면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소로에게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조언이란다. 내가 낭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모자라지 않는단다. 소로는 개인이나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그것을 마련하는 데 실은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단다. 

 

의미 있는 생활을 하려면 무엇보다 이런 생필품을 가졌을 때 "편안함"을 느껴야 한단다. <<검소한 주부>>에서 차일드는 주로 철학적인 내용을 담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단다.

 

우리는 모두 이웃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면서 우리가 다른 운을 타고났다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다. 하지만 세속적인 부를 누구나 가릴 수 있다. 거기에 따르는 엄청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습성과 성향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지혜로운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의 온갖 이점을 찾는 삶이지 우리에게 다른 조건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상상하는 삶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지혜로운 삶이지만 행동에 옮기기는 굉장히 힘들단다.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천천히, 목적의식을 가지고, 질서 있게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것이란다. 차일드는 "위대한 지성의 가장 뚜렷한 특징" 에 대해서 "중요하게 여기는 한 가지 목표를 선택해서 평생 그 목표를 추구하는 성질"이라고 말한단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도 비슷한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베스트셀러가 되었단다. 특정한 목료, 결과, 목적을 선택하고 실제로 커기에 신경을 쓰면 그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 그리고 일터에서 그것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단다. 우리 삼의 가장 시급하고 내밀한 속성에, 심지어 삼의 의미에 별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단다.

소로는 결코 단조롭게 보람 없는 노동을 치켜세운 적 없단다. 따분해 죽을 것 같은 일이나 잡무에 대해 선불교적인 태도를 유지하라고 말하지 않는단다. 소로는 집을 나만의 안식처로 만들어 줄 경제적 요소들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의식적으로 살기를 권한단다. 거대한 팬데믹은 집과 일터의 경계가 유연하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단다. "대사직 시대"라고 말하기도 하는 현 시기 많은 사람들이 회사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있단다. 원격 근무를 계속하거나 원격 근무를 선택할 수 없다면 그냥 퇴사한단다. 이제 정말로 의식적으로 살 작정이라는 듯 자기만의 호숫가 집에 말뚝을 막은 사람들도 많단다. 

자문해 보잔다. 나에게 절대적으로 귀중한 것, 즉 나에게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장 뛰어난 "비즈니스"의 기술을 무익한 비즈니스를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동네 이웃들이 가진 농장과 저택을 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그것을 소유한 대가기 무엇인지 알아보았는가? 소박한 난롯가에 친구들이 있고 지붕 아래 몸누일 곳이, 머리 위에 별들이 있다면 일과 살림의 가신들에게 작은 기도를 드리기를 바란단다.

그뿐 아니라, 읽어 보면 알겠지만, 소로는 모든 물음에 대해 답이 있는 척하지 않는단다. 모든 물음은커녕 대부분의 물음에 답이 없단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가능한 한 다채롭기를 바란다. 개개인이 아주 신중하게 자기만의 길을 찾아 따라가기를, 아버니나 어머니나 이웃들의 길을 따르지 않기를 바란다.

 

나만의 길은 내가 생각하는 성공으로 이어져야 한단다.  "사람들이 성공한 삶이라고 여기고 칭송하는 삶은 한 가지 방식뿐이란다. 우리는 왜 하나의 방식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나머지 방식은 희생시키려고 할까?" 소로는 우리의 동료는 될 수 있겠지만 결코 우리의 상사가 되려고 하지 않을 거란다. (독자들도 아마 소로를 상ㅅ사로 두고 싶지는 않을 것이란다. 현재의 상사를 대체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일터의 소로>>는 소로가 종종 택한 집필 방식에 따라 개인적인 일화와 사연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 나갈 거란다. 우리는 직장 동료, 이웃, 친구 등과 대화를 나누며ㅛ 일터의 지루한 일상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졌단다. 그들의 욕구, 통찰, 이야기는 이 책을, 소로와 이 시대 노동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사상을 형성했단다. 소로의 생과 사상이 오늘날의 직업 노동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주기 위해 우리 자신의 경험과 소로의 경험을 한데 엮어 만든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란다.

우리는 대개 생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야 하지만 그걸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단다. 우리는 다른 걸 원한단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단다. 소로는 당연히 엘리트주의자라는 비판을 받는단다. 그가 특정한 사회 경제적 계층의 일원으로 태어났고, 그럴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호숫가 집으로 달아나 철학을 했다는 것이란다. 이 책 역시 엘리트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을 거란다. 충분한 시간과 돈, 교육 수준이 있어야 이 책을 읽을 수 있단다. 소로를 흉내 내려면 어는 정도의 특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란다. 하지만 택을 구매하고 또 읽을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다양한 방식으로 재평가되고 재고되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단다. 바라 이 사실이 그들을, 여러분을, 일에 대한 소로의 사상으로 끌어 당긴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단다. 물론 이 책을 읽을 시간도 여유도 없는 노동자들도 있을 것이고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란다. 그런데 진정 유감스러운 사실이 있다면 오늘날의 노동 구조에서 노동자들은 이 책이 아니라 그 어떤 책이든 읽을 시간도 여유도 없다는 점이란다. 더 심한 것은 노동자들에게 그런 욕구조차 없다고 치부하는 노동 구조한다. 이런 구조가 바로 소로가 반복적으로 해체하려고 했던 구조란다. 어쩌면 헨리 데이브드 소로가 그토록 오래 전부터 시도했듯이, 살림의 경제를 위해 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어쩌면 우리 가운데 몇몇은 그 옛날의 숲속으로 들어가 일터의 소로를 지켜보기 위해 약간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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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우리는 때로 급여를 포기하고 일을 그만둔다. 그 대신 두 발과 편히 뻗을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도 하고 자존감을 되찾기도 한다.

 

18세기 말에 소로의 할아버지는 오늘날 콩코드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관광지를 지었단다. 오늘날 콜로니얼 인이라고 불리는 이 여관은 1716년에 처음 문을 연 조지 왕조 양식의 큰 건물이란다. 소소의 할아버지는 이 여관의 가장 동쪽 끝에 있는 부분을 지었단다. 극가 첫 주춧돌을 놓았던 여관 후면에는 현재 빌리지 포지 태번이라는 아담하고 어두컴컴한 선술집이 있단다. 줄여서 "포지(대장간)"라고도 한단다. 벽과 천장에는 풀무, 멍에, 그 밖에도 다양한 옛 농기구가 걸려 있는데 요즘 콩코드 사람들은 이런 기구를 사용하기는커녕 용도조차 알지 못할 거란다. 포지의 한가운데에는 참나무로 만든 긴 바가 있고 바 뒤에는 키 크고 깡마른 로렌스가 서 있단다. 

이 글의 대부분은 로렌스의 일터에서 썼단다. 어느 날 밤 로렌스가 이렇게 말했단다. 

"아주 괜찮은 직장이에요."

베드퍼드와 콩코드, 렉싱턴 등지에 사는 부유한 사업가나 첨단 기술기업의 영업직 사원들은 포지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가격이 과하게 책정된 음료를 시키지만 바텐더에게 팁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깜빡한단다. 가게의 책임자는 선심 쓰듯 로렌스에게 초과 근무를 주는가 하면 휴가는 깜빡하고 주지 않는단다. 로렌스는 아이가 둘이고 대가족과 함께 산단다. 그래서 초과 근무를 거절할 수 없다고 말한단다. 로렌스는 거의 항상 혼자 힘으로 포지를 지킨단다.

"괜찮은 직장이에요."

로렌스는 마치 자기 자신을 타이르듯 같은 말을 되풀이한단다. "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그만둘 거예요. 다른 꿈이 있거든요. 버몬트주에 땅을 사서 농장을 시작할 거예요. 채소도 팔고요. 그런데 정말 하고 싶은 건 프리스비 골프장을 여는 거예요."

로렌스는 오늘날 수많은 노동자처럼 퇴사를 꿈꾼단다. 영원한 퇴사를.

"어리헉은 일관성은 편협한 지성에 붙은 잡귀다." 전형적인 만능 재주꾼 소로는 에머슨의 말을 삶의 방식으로 삼았단다. 생계를 꾸리는 일은 단시 가고 싶은 직장을 선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단다. 오늘날 중요한 기술은 한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이직의 기술이란다. 다시 말해 때맞추어 퇴사하는 기술이란다. 소로는 이 방면의 선구자란다. 물론 사직을 좀 더 극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단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극심한 경쟁에서 빠지겠다는 투철한 의지일 수도 있고 일의 의미나 가치를 덜어뜨리는 노동 조건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단다. 소로는 이런 다양한 의미의 사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단다. 새로운 일을 시도할 자유로 생각하기도 했고 맘몬(부와 탐욕을 상징하는 기독교의 우상)을 숭배하지 않겠다는 각오, 혹은 도덕적으로 수상쩍은 직업에 대한 거부로 이해하기도 했단다. 

노동자 소로에 대한 책을 "퇴직자" 소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괴상하기는 하단다. 일을 그만두는 얘기부터 하는 게 이상하기는 해도 소로는 "모든 새로운 시작은 다른 시작의 끝에서 나온다"는 옛말을 믿었단다. 퇴사도 마찬가지란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근로자들이 바로 이 사실을 빠르게 깨달아 가고 있단다. 적어도 미국은 지금 사표를 내는 중이란다. 집단적으로 사직 의사를 통보하고 있으며 정식으로 작별 인사를 고하고 있단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 발행하는 <워킹 놀리지>에 실린 글에 따르면 "지금은 대사직의 시대이다. 그로자들은 자신에게 정말 뜻깊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갖게 되었고, 선택의 폭도 넓기 때문에 퇴직률이 급격히 치솟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원격 근무의 맛을 본 사람들은 전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단다. <아르스 테크니카>는 최근 이렇게 보도했단다. "미국 전역에서 애플,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기술 기업의 지도자들이 수천 명의 직원들과 섬세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들어 직원들은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사측의 요구가 허황되며 용납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확신을 굳힌 바 있다." 이 얘기가 혁명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그렇지 않단다. 소로에게도 분명히 익숙한 상황일 거란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최초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현저성의 유혹일 뿐이란다. 즉 현재 겪고 있는 특별한 경험만이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고 싶은 편향이란다. 하지만 사직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며 당연히 마지막도 아니란다.

 

1837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두 손을 들었단다. 그 옛날 소로의 운명은 엇갈렸단다. 소로가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1837년, 공황이 대규모 경제 불황을 촉발했단다. 대학를 갓 졸업하고 매사추세츠주 콩코드로 돌아 온 소로는 일자리가 씨가 마른 상황에서 직장을 구하려고 애를 썼고 곧 교사로 채용되었지만 그만두었는데 그 이유를 논해야 마땅하지만... 나중으로 미루잔다. 그만둔 뒤에도 소로는 여전히 교사로 일하기를 바라면서 다양한 잡일을 구하러 다녔단다. 하지만 결핵이 자꾸 도지는 바람에 방해를 받았단다.

1837년 11월에는 처음으로 글을 발표했단다. 88세에 사망한 콩코드 주민 애나 존스의 부고였단다. 1838년 3월이 되자 소로는 형이자 가장 절친한 친구 존 소로에게 길을 떠나자고 제안했단다.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같이 서부로 떠나서 함께 학교를 세우든지 각자 직장을 구하든지... 이곳 사람한테 돈을 좀 빌릴 수 있을 것 같아. 시도는 해 봐야 하지 않겠어?" 1838년 5월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단다. 5월 2일. 랠프 월도 에머슨으로부터 10달러를 빌리고 추천서를 받은 소로는 메인주로 취업을 하러 떠났단다. 형은 같이 가지 않았단다. 보름 후 소로는 고향으로 돌아왔단다. 취업에는 실패했단다.

메인주로 취업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소로는 통코드에 있는 본가에 사립 학교를 열었단다. 처음에는 전교생이 네 명이었자만 곧 여덟 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소로는 존에게도 교사가 되어 달라고 청했단다. 요즘으로 치면 소로의 학교는 "대안 학교"로 분류될 것이란다. 휴식 시간은 보통 10분이었지만 소로 형제는 학생들의 오전 휴식 시간으로 30분으로 정했단다. 직업 탐구를 위해 인쇄소 등으로 견학도 갔단다. 불행하게도 존의 결핵 때문에 1841년 형제는 학교를 닫아야 했단다. 1842년 1월 11일, 25세였던 소로는 형 존을 잃었단다. 존은 결핵 때문이 아니라 면도를 하다가 손에 아주 가벼운 상처를 입은 탓에 파상풍으로 죽었단다.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일지라도 인생은 이토록 위태로운 것이란다. 소로는 형을 잃은 상실감으로 남은 20년 평생 1월만 되먼 마음이 어두워지곤 했단다. 

1843년 5월, 소로는 작가의 꿈을 좇고자 뉴욕주 스태튼아일랜드로 거처를 옮겼단다. 소로는 프리랜서 작가로서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뉴욕살이의 꿈은 몸부림 끝에 결국 산산조각 났단다. 겨우 7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온 소로는 잠시 몸을 웅크리고 마음을 얼추 다잡이 보려고 했단다. 하지만 1844년 4월 친구 에드워드 셔먼 호어와 함께 실수로 산불을 냈고, 콩코드 숲을 36만 평 넘게 태워 먹었단다. <콩코드 프리먼>은 이렇게 보도했단다. "화재의 원인은 소나무 그루터기에 불을 붙인 두 지역 주민의 생각 없는 행동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바로 이 사건이 최후의 결정타에 불을 댕긴 듯하단다.

1845년 7월 4일, 스물여덟 번째 생일이 되기 며칠 전 소로는 다 포기하고 퇴직자의 삶을 살기로 했단다. 온 나라가 독립 기념일을 축하하고 있을 때 소로는 자신의 독립을 선언하고 콩코드에서 월든 호수까지 2마일을 걸어갔단다. 그리고 거기서 2년 2개월 하고도 이틀을 머문단다. <<월든>>을 미국 최초의 환경 운동 선언으로 해석하기 쉽고 그런 해석도 어는 정도 일리가 있지만,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소로의 시도는 당대의 문화를 규정하고 있던 자본주의적 극한 경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이기도 했음을 기억해야 한단다.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삶과 자기 인생을 진정으로 살아가는 삶 사이에는 차이가, 확실한 간극이 있단다. 이것이 <<월든>이 주는 불변의 메시지란다. 현대 삶의 정신없는 바쁨을 인생살이라는 본질적인 일과 혼동해서는 안 된단다. 인간의 삶이 귀중한 이유는 덧없고 찰라적이기 때문이란다. 사람은 파상풍으로, 혹은 결핵으로, 혹은 독감으로, 혹은 팬데믹으로 죽을 수 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끔찍하게 짧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좋단다. 소로는 자기 손으로 소박한 집을 지으며, 콩과 멜론을 키우며, 아이들을 데리고 콩코드 주변의 허클베리밭을 누비며 보내는 인생이 최고의 인생이라고 생각했단다. 위대한 퇴직자가 되려면 내 인생을 되찾아야 한단다. 무엇을 중시하고 어디서 의미를 찾을지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단다. 

 

일을 그만두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단다. 소로는 그 모든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단다. 가장 단순한 퇴직 사유는 그저 더 이상 버틸 수 없기 때문이란다. 주어진 일을 잘 못해서일 수도 있단다. 그다지 부끄럽게 여길만한 이유는 아니란다.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이니 말이다. 10대 시절 소로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되고자 했단다. 하지만 가망이 없었단다. 소로의 재능은 다른 데 있었단다. 아예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소로의 글은 시라는 형식과는 대체로 거리가 있었단다. 혹은 육체적으로 버티기 힘들 수도 있단다. 이런 경우에도 빨리 깨닫고 새로운 소명을 찾아보는 것이 좋단다. 새로운 소명이 회복을 위한 휴식기를 갖는 것일 수도 있단다. 소로의 경우 주기적으로 결핵이 재발했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어야 하곤 했단다. 건강 상태와 운명은 종종 사직을 꽤나 수월하게 만든단다. 그리고 대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단다. 이러한 퇴직 사유는 딱히 철학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요하단다. 어떨 수 없는 한계로 인해 특정한 일을 지속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는 사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란다.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퇴직 사유는 선택의 문제와 관련이 있단다. 소로의 글에서 수시로 되풀이되고 있는 물음을 살펴보잔다.

 

부지런한 게 다가 아닙니다. 개미도 부지런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까?

 

만약 오리가 잘못된 것을 "위해" 일하고 있다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란다. 그렇다면 그만둘 이유가 충분하단다. 그만두지 않는다면 소로가 <<월든>>에서 말했듯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진정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말 것이란다

소로는 소비를 기반으로 하여 잉여 경제의 대두를 목도했단다. 돈이 유례없이 중요해지는 과정을 목격했다는 뜻이기도 하단다. 소로는 돈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행위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단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자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평생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소로는 한 번도 여기에 동조하지 않았단다. 오히려 그런 일은 더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하고 버려야 한단다. 충만한 인생을 사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란다. 무의미한 일, 보수, 비도적적인 일 등에 대해서는 이 책의 후반부에서 이야기할 테니 먼저 "벌이가 좋은 일"을 그만두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보잔다. 

<<월든>>에 나타나는 소로의 경제에 대한 시각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시각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로버트 리처드슨이 수년 전 언급했듯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도 영향을 받았단다. 이 책을 읽고 소로는 "부의 진정한 기초는 금이나 은이 아니라 생산적인 노동이라는 근본적인 전제"를 깨달았단다. 근무 시간 동안 내가 실제로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잔다. 제품이나 아이디어인가? 설계도 혹은 성품이 원만한 학생인가? 혹은 아무것도 아닌가? 만약 답변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아예 답할 수 없다면 소로는 도망칠 때가 되었다고 말할 거란다.

스미스가 말했단다. "한 사람이 가난한지 부자인지를 판단하려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품, 편리, 오락거리를 얼마나 누릴 수 있는지 보면 된다." 소로의 생각은 달랐단다. 물론 한 사람의 부를 가늠하는 데 필수품은 중요하고 소로는 누구나 생필품을 스스로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오락거리로 여겨지는 것들은 노동자 소로에게 딱히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단다. 스미스와 달리 소로는 이렇게 썼단다. "한 사람의 부는 그가 없이 살 수 있는 것들의 수에 비례한다." 소로는 가난을 낭만화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와 돈에 대한 열망이 종종 매우 강력한 사슬, 황금 수갑이 되어 영혼을 빨아먹는 일에 우리를 묶어 둔다는 점을 말하고 있단다.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나의 이른바 가난을 자축한다.

 

소로는 인생의 황혼에 이렇게 썼단다. 이것은 금욕주의 성인이 자기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욕구가 가진 것을 넘어선 적이 없는 사람, 일생을 일그러뜨릴 수 있는 돈의 힘을 깨달은 사람의 매우 솔직한 반성이란다. 소로는 계속해서 이렇게 적었단다. "어제는 책상 속에서 있는 줄 몰랐던 30달러를 찾았는데 실망감에 가까운 기분이 들었다. 있는 줄도 몰랐지만 이제는 없어지면 섭섭할 터이기 때문이다."

돈을 가지면 지키고 축적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단다. 수입을 늘려 소비욕을 충족하려고 하다가 빚을 지게 되는 경우도 많단다. 로마인들은 이것을 가리켜 아이스 알리에눔, 즉 "남의 돈"에 내 인생을 맡기는 일이라고 했단다. 언제든 파산을 선언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놀랍게도 드물단다. 뼈를 깍는 노동으로 적자를 메우려는 경우가 훨씬 많단다. 이런 일은 확실히 흔하단다. 두 저자는 지금 어떤 특권층의 시각이 아니라 저자들이 직접 겪어 본 매운맛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쓰고 있단다. 저자 둘 다 애초에 받지 말아야 했던 대출금을 갚기 위해 정말 지긋지긋한 일자리에서 버텨 보았으며 둘 다 그 과정에서 스러지지 말게 해 달라고 빌었단다(죽도록 힘든 일을 하다 죽으면 얼마나 암울한가). 그들 둘 다 입에 풀칠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선뜻 하표를 내지 못한 경험뿐 아니라 익숙해져 버린 생활 수순을 유지하느라 사표를 내지 못한 적도 있단다.

조너선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주차장에 취직했단다. 아침 6시부터 주차장을 쓸었단다. 그다음에는 바쁜 직원들을 위해 대리 주차를 했단다. 단순한 "주차"가 아니었단다. 조너선의 고용주는 주차 공간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라고 했단다. 조너선은 위태로울 만큼 빽빽하게 차를 배치해야 했단다. 매일 아침 누군가의 BMW와 랜드로버, 캐디락 SUV를 직소 퍼즐처럼 끼워 맞추는 일의 압박감을 느껴야 했고 매일 저녁 직원들이 퇴근할 때에도 똑같이 끔찍한 발레 동작을, 이번에는 반대로, 해내야 했단다. 엄청나게 값비싼 조각들을 가지고 벌이는 악몽의 테트리스를 매일 반복했던 거란다.

흥미롭게도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위기의 순간이 우리를 규칙적인 근무 일정에서 종종 벗어나게 해 준단다. 더 중요하게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어 개인의 경제적 우선순위를 재설정하게 하며 일에 대하여 (그리고 그 일을 버려도 되는지에 대하여)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한단다. 소로가 월든 호수로 간 것은 부분적으로는 형이 소로의 품에서 죽었기 때문이란다. 사람은 언제든 예고 없이 끝을 맞을 수 있으니 기회가 있을 때 옳은 것들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최선이었단다. 

 

다시 현재로 빨리 감기를 해보잔다. 오늘날 우리의 경제 사회에서 "대사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자, 청소년 시절 세계적인 침체기를 겪었으며, 성인이 되어 전 지구적 팬데믹을 경험한 사람들이란다. 이들은 고생 끝에 가장 위대한 세대(1901~1924년에 태어난 미국인을 일컫는 말)가 대공황 당시 얻었던 교훈과 비슷한 교훈을 깨달았단다. 국가라는 배는 언제든 기울 수 있으니 최대한 자족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란다.

기후 변화라는 흔들리는 칼날 아래 자란 대사직 세대에쇼ㅓ 자족적인 삶이란 개인적, 지구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의미하기도 한단다. 그러기 위해 이 세대는 스스로 할 권리를 강조한단다. 빨래를 널어서 건조할 수 있는 "빨래 널 권리"가 그렇단다.(미국에는 집 밖에 빨래를 ㄴ너는 행위가 금지된 지역이 있단다) "수리할 권리"도 있단다. 고장난 아이폰 같은 기기를 새로 사기보다 개인이나 사설 업체가 수리할 수 있도록(문건을 고치고 짜깁기할 수 있도록) 법적인 제도를 마련하려는 노력이란다. 심지어 앞마당을 텃밭으로 만드는 것이 아직도 금지된 지역에서는 채소를 재배할 권리를 주장하기도 한단다. 200여 년 전, 소로는 이런 자족적인 생활에서 진정한 자유의 씨앗을 보았단다. 소로식 자족은 고립이 아니며 "거친 개인주의"도 아니란다. 좋은 삶을 최대한 영위하려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소박한 삶이란다. 오늘날 미국은 소로식 변화를 거치고 있는 셈이란다.

인터넷 인프라가 점점 더 좋아지고 사무의 자동화, 클라우드 저장 기능 등이 향상되면서 수많은 미국인은 이제 영구적으로 원격 근무가 가능해졌단다. 우리는 팬데믹 당시 집을 수리하고 정원을 가꾸며 자유의 맛을 보았단다.(많은 사람들이 지속 가능한 농업인 퍼머걸쳐를 처음 접했단다) 자가 격리로 인해 집이 우선순위에 놓이게 되었단다. 더 이상 사무용 건물이나 업무 지구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어진 사람들은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했단다. 그야말로 마음이 닿는 곳에 집을 두기 시작한 것이란다. 많은 경우 캠핑카나 개조한 승합차를 타고 집을 찾아다녔단다. 승합차에 살림을 차린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미국 내 여러 국립공원과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시내 중심가들을 누볐단다. 말하자면 "자영 농지 상주"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거란다. 우리는 또한 대규모로 원격 근무를 시도하고 있단다. 우리는 우리만의 호숫가 집을 선택했고 뚜렷한 의도를 갖고 살아가려고 하고 있단다. 적어도 그런 꿈을 꾸고 있단다.

비판의 목소리가 벌써 들려온단다. '대사직 세대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냥 게을러빠진 것뿐이지.' 그럴지도 모른단다. 소로가 평ㅅ생 앓던 병에 마침내 굴복했을 때 소로의 절친한 친구 랠프 월도 에머슨은 이렇게 회고했단다. "소로에게 어떤 야망도 없었다는 사실이 흠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야망이 없으니 전 미국을 호령하지 못하고 허클베리밭 잔치를 지휘하는 데 그쳤습니다." 사실은 그러할지 몰라도 다소 부당한 공격이라는 생각이 든단다. 알고 보면 소로 삼촌을 따라 허클베리밭을 누빈 아이들은 에머슨의 자녀들이었단다. 유명한 에머슨이 해외로 출장을 다니는 동안 소로는 에머슨의 자녀들과 열매를 따러 다니기로 선택했단다. 인생은 선택과 관점에 달려 있단다. 자칫하면 이른 근본적인 사실이 전통적인 직업관에 가려 보이지 않을 수 있단다.

대사직은 산업화 시대의 방식, 전통적인 소매점을 통한 유통 방식이나 공장식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란다. 기종의 방식이 깡그리 사라지려면 멀었지만 이미 기름을 뒤집어써 축축한 상태란다. 풀 내음 풍기는 과거의 소로가 디지털 시대에 우리를 맞이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쩌면 소로는 산업 시대가 동력을 잃기를 늘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단다. 우리는 사무용 건물이나 업무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퇴근하던 우리가 후방 거울을 통해 그 업무 지구가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는 모습을 목격했길 바란단다. 떠나는 차 안에서 내비게이션이 길을 안내하는 동안 마음속 아내 장치가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는가? "떠나신 후 뒤돌아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은 "당신의 월든 호수는 정확히 어디 있습니까?"

 

사직 시 주의 사항: 일을 그만두는 사람은 끈기가 없는 사람이니 못난 사람이니 냉소적인 사람이니 하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단다. 그중에서도 냉소적인 사람이라는 비난은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소로는 이것이 조롱이 아니라 명예로운 호칭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단다. 냉소주의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생의 여러 시점에서 소로는 미국 최초의, 가장 철저한 냉소주의자였단다. 오늘날의 냉소주의와 1840년대에 소로가 발전시킨 철학은 실로 한 가족이라고 할 만큼 유사하단다. 가령 소로는 뉴잉글랜드의 겉치레만 번지르르한 리버럴 엘리트주의와 친하지 않았단다. 하버드대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마지못해 다닌 것이지 이 연필 공장집 아들은 학계의 속물근성이 신경에 거슬렸단다. 소로는 아무리 좋은 대학이라도 대학은 "<학문의> 가지만 가르치지 뿌리는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고 일찍부터 판단했단다. 깊이 있는 교육, 잊지 못할 가르침을 받으면 의미 있는 노동을 할 준비가 된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직업 교육은 실용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하며 교실 밖 세상에서 가장 잘 이우러질 수 있다고 믿었단다. 이것만 봐도 소로가 당대의 노동력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고 다소 노골적인 의심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단다. 소로가 1845년 고향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2마일 떨어진 월든 호수로 달아났을 때, 어떻게 보면 소로는 바로 이런 종류의 배움을 상업과 농업의 세계, 현대 사회의 경제의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추구하고자 했을 거란다. 소로가 다른 일을 그만두고 숲으로 들어간 것은 메머슨의 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립을 못소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었단다. 소로의 스승이자 열네 살 위였던 에머슨 역시 하버드와 케임브리지의 지식인들이 형성한 고급문화, 그리고 여러 강력한 경제 요소들의 작용에 비판적이었단다. 그는 현대 사회의 조직과 제도에 편입하려면 아주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즉 자기 결정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소로가 사회로부터 사실상 격리되는 쪽을 택한 것은 "인생의 본질적 사실과 마주하고 의식적으로 살기" 위해서였으며, "삶이 주는 가르침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을지" 보기 위해서였단다. 사회적 관습과 전통적 정리하는 세력에 더렵혀지지 않은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자 2년간 단순한 삶을 살아 보는 실험이었단다. 

이런 시도는 냉소주의의 긴 전통과 맥락이 같단다. 하지만 그 역사를, 소로를 좀 더 들여다보면 현대 사회의 냉소주의자들이 하나의 학파이기도 한 광범위한 냉소주의, 그리고 소로가 그 전통 안에서 변주하고 있는 냉소주의를 단순화하거나 심하게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직해서 나쁠 것은 없단다. 오히려 정반대란다. 최초의 냉소주의자였던 고대 그리스의 시노페 출신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소로가 19세기에 되살리고자 했던 단순한 삶의 이상을 완벽하게 응축해서 보여 주었단다. 월든 호수에서 소로는 널판지로 만든 가론 3미터 세로 4.5미터짜리 집에 살았단다. 디오게네스는 한술 더 떠 옆으로 눕힌통 안에서 살며 누더기만 입었단다. 그는 또 다른 철학 사상을 주장했던 에피쿠로스학파와 대척점에 있었단다. 고대의 본래 사상과 달리 현대 사회에 들어와 왜곡된 에피구로스 사상은 삶의 의미를 문명의 풍요로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단다. 그러나 냉소주의자들은, 그리고 소로는 사회적 제약이 없는 삶, 더 중요하게는 물질적 부를 드러내는 온갖 겉치이 없는 삶은 어떤 삶인지 알고 싶어 했단다. 

오늘날 이른바 냉소주의자들은 대개 자립적인 자본주의자들이란다. 그들은 큰 정부와 기관에 의한 관리 감독에 대해 의심을 품는단다. 정부와 기관의 대리인들은 나에게 주어져야 마땅한 재물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디오게네스와 소로였다면 이런 생각을 극도로 혐오했을 것이며 우리 시대가 물질적 부와 광범위한 전 인류적 풍요를 혼동하는 지독한 착각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을 거란다.

전설에 따르면 디오게네스는 통에 앉아 지나가는 부유층 사람들을 향해 개처럼 짖었다고 한단다.("냉소주의자"의 어원은 그리서어 퀴니코스인데 "개와 같다"는 의미란다) 소로는 그보다는 조금 더 완곡한 방식으로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데, 아주 조금 완곡할 뿐이란다. 앞서 말했다시피 <경제>는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에 대한 열띤 비판이란다. "경제"라는 말은 원래 잉여 재산과 관련된 말이 아니었고 어디에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에 관한 말이었음을 소로는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단다. 경제는 집, 살 곳이라는 의미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단다. 

월든 호수에서 삶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던짐으로써 소로는 다시 배우고자 한단다. 나를 위한 집을 짓는 데 무엇이 필요할까? 돈으로 살 수 없으며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 즉 도덕, 아름다움, 평온 같은 것에 고마워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대부분 사치품과 이른바 삶의 편의는 없어도 될 뿐 아니라 인류의 향상을 적극적으로 방해한다"고 소로는 말했단다. 오늘날 "생개를 꾸리는" 일은 삶 자체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경우가 흔하단다. 몹시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히려 삶의 유예, 즉 미래에 실현될 부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과 관련이 있단다. 소로는 오이코스가 집이나 살 곳이라는 의미 외에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단다. 오이코스는 새장을 뜻하기도 하며 그런 의미로도 자주 쓰인단다.

문명의 가장자리로 도피한 것처럼 보이는 소로의 행동은 마치 현대 냉소주의자들의 분리주의적 사고방식을 예고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단다. 로버트 리처드슨이 30여 년 전 소로의 평전에서 언급했듯이 소로의 "모험은 결코 후퇴나 철수로 보아서는 안 된다. 소로 자신의 이것을 전진, 해방, 새로운 시작이라고 여겼다" 냉소주의는 사회적 병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우ㅠ지하고자 사회로부터 거리를 둔단다. 하지만 개개인에게 가장 유의미하고 보편적인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재평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하단다. 사직은 바로 이런 의미일 수 있고 이런 의미를 가져야 한단다. 모든 경우에 반드시.

 

현대 사회에서 나의 역할을 내려놓으면, 내 직장과 거의 동일하게 여겨졌던 나의 지위를 포기하면, 내가 실제로 어떤 것들을 되찾게 될지 생각해 보잔다. 지금과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이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면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앗을 때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이것은 디오게네스도 받은 질문으로 그의 답변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단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엑 누군가가 물었단다. "누구세요?" 보통 이 질문에 대해서는 출신 지역을 말하는 게 보편적이었단다. 누구냐는 질문에 우리가 특정한 직업이나 사무 공간을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체부입니다." "교수예요." "국세청에서 일합니다." 디오게네스는 당연한 답변을 하는 대신 혁신적인 대답을 내놓았단다. 특정한 폴리스, 즉 도시 국가 출신이 아니라 이 코스모스, 이 세계 사람이라고 대답했단다. 디오게네스는 최초의 코스모폴리탄이었던 거란다.

소로 역시 비슷했단다. 그는 인정할 수 없는 정책을 펼치는 국가에 참여할 수 없다고, 세금을 낼 수 없다고 주장했단다(당시 미국이 멕시코를 상대로 벌이던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통 안에,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 감옥에, 허허벌판에 있으면 내가 실존적으로 어떤 정치 단위나 노동 형태에 매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단다. 그때 상당히 고독한 기분이 들 수도 있지만 해방감, 궁극적으로는 뜻밖의 놀라운 일체감이 든단다. 내가 수시로 연기하던 역할을 내려놓으면 새롭고 더욱 폭넓은 관계를 맺을 자유뿐 아니라 어떤 관계도 맺지 않을 자유가 생긴단다. 사직에는 이런 장점도 있단다.

디오게네스는 자신이 전 우주의 시민이라고, 말 그대로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말했단다. 소로 역시 <<월든>>의 말미에 봄의 우주적 회생이 일깨워 주는 인간의 보편성을 칭송한단다. 이것은 사람들이 대체로 잊고 있는 냉소주의의 또 다른 면이란다. 모든 조직화된 것들에 대한 의심은 인간이 실로 깊고 넓게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단다. 인간이 직업 등의 기존 질서가 아니라 자연에 의해 서로 묶여 있음을 알게 된단다. 제도는 부패하고 부패시키지만 사회적 제약이 정말로 위험한 이유는 사람을 고립시키고 문화 집단과 사회 경제적 계층 사이에 가상의 경계를 굿기 때문이란다. 

냉소주의적 사직의 일면에는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이 있지만 다른 일면에는 희망이 있단다. 바로 내 지역에 대한 어떤 충성심에도 앞서는 공동체에 대한 희망이란다. 냉소주의가 우리가 전통적으로 속해 있는 종교, 경제, 정치 체제를 경시하기 때문이란다. 거기에서 해방된다면 우리는 평범한 고용 형태라는 스스로 만든 경계를 넘어 그 너머에 존재하는 유대를 실현할 수 있단다.

 

소로는 사직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순간이 있었단다. 앞서 간단히 말하고 넘어갔지만 제대로 살펴보아야 마땅할 것 같단다. 헨리와 느헤미야 볼 집사 간의 사건이란다. 이름도 어쩜 느헤미야, 구약의 불과 유황 속에서 빚어진 이름이란다. 콩코드이 청교도 주민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던 볼 집사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단다. 하버드에서 갓 졸업한 소로는 연봉 500달러를 받기로 하고 센터 스쿨이라는 학교의 교사로 취직했단다. 콩코드 내에서는 급여가 가장 높은 축에 속했단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소로는 나라의 도덕적 미래를 책임질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꿈이 있었단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소로는 교사로서 자신의 업무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란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겨우 2주가 막 지났을 때 볼 집사가 소로의 교실로 찾아왔단다. 볼 집사는 수업을 지켜볼수록 언짢은 기색이었단다. 아이들이 도통 선생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수업이 끝나고 불 집사는 소로에게 체벌을 하라고 지시했단다.

소로는 학생들을 때리지 않았단다. 볼 집사와 언쟁하기 전부터 이미 소로의 관대한 교육관은 콩코드 지역에 소문나 있었단다. 볼 집사의 명령은 시험이었단다. 소로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도적한 명령이라도 따를 사람인지 시험한 것이란다. 소로는 항의했고 볼 집사도 굽히지 않았단다. 그다음 소로가 한 일은 적으도 한 세기 동안 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단다. 소로는 무작위로 학생 몇 명을 불러냈단다. 두 명이었다는 기록도 있고 열두 명도 넘었다는 기록도 있단다. 그리고 학생들을 때렸단다. 다음날 소로는 학교에 출근해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고 선언했단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단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보란 듯이 아이들을 때린 행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무자비한 행동일까? 부끄러워해야 마땅할 행동일까? 아니면 저항의 의미로 보아야 할까? 확실하지 않지만 그 행동 자체는 부도덕한 일에 대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단다. 소로는 직업상의 여러 부도덕한 행위가 조직의 항명하복식 구조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했단다. 소로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란다. 체벌에 대한 책임은 솔로에게 있지 않았단다. 소로는 다만 제도적으로 가장 어린 구성원에게 불이익을 주는(즉 억압하는) 체제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함으로써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마구잡이이며 부당한지 보여 주었단다. 정의 사도는 여기 없었단다. 사실 소로에게도 책임이 있었고 자신도 그걸 알았단다. 소로에게 맞은 아이들도 잘 알고 있었단다. 하지만 소로는 여러 다른 부도덕한 노동자들과 다른 길을 택했단다. 사표를 던지고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단다. 사람들은 소로가 뛰어난 교사이자 노동자였다고 입을 모아 말한단다. 실제로 그랬단다. 무엇보다 그는 도덕적인 의미에서 훌륭했단다. 우리도 때로는 급여를 포기하고 일을 그만둔단다. 그 대신 두 발 편히 뻗을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도 하고 자존감을 되찾기도 한단다. 

느헤미야 볼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잔다. 최근 우리는 한 명문대 철학과의 명예 교수와 대화른 나누다가 왜 소로 같은 사람이 센터 스쿨 교사로 채용되자마자 그만두었는지 물었단다. 교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다. 그 한참 동안 우리는 체벌이 얼마나 부도덕한 행위인지 돼새기고 있었단다. 교수는 평생을 소로 연구에 바쳐 온 사람이었단다. 훌륭한 답변이 나올 게 분명했단다. 그는 숨을 쉬더니 이렇게 말했단다. "사람들은 취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직장에 가면 대개 상사가 있어요. 그런데 상사들은 대부분 개자식이에요. 늙어 빠진 느헤미야도 그런 상사였지요." 상사는 사표를 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되기도 한단다. 

 

첫 장을 쓰고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링크드인(취업과 이직을 위한 사회관계망)에서 우연히 글 하나를 보게 되었단다. 이 글이 좋은 끝맺이가 되어 줄 것 같단다. 글을 올린 사람은 전 구글 직원 다리안 라힘자테란다. 프로필 정보에 따르면 자리안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개 아빠"이며 취미는 목공이란다. 다리안의 글은 구글에 사표를 낸 소회를 담고 있단다. 우리는 다리안에게 연락해 글 전체를 인용해도 될지 물었고 다리안은 (우리 모두를 위해) 기꺼이 승락했단다. 

 

5년 이상 구글 인사팀에서 다양한 직무를 맡으며 일해 온 제가 떨리는 마음으로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래요. 없어요.

지난주 구굴을 떠났습니다. 번아웃이 지속된 18개월간 두 차례의 구조 조정이 있었고 저는 여러 다양한 직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고과 기준은 변화무쌍했고 관리자는 네 번 교체되었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도 다사다난했지요. 2022년에도 이걸 반복할 자신은 없었습니다. 다음 해에 무얼 하고 싶은지, 어떤 성과를 이루고 싶은지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없음.

사실은 다를지 몰라도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5년 동안 회사에서 비교적 괜찮은 성과를 내 왔지만 언젠가부터 힘에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도움을 요청했고 "왜 안 되는지" 고민했습니다. 동료, 상사, 리더, 코치, 상담사, 정신과 의사 등에 기댔습니다. 그 사람들은 기꺼이 귀 기울여 주었고 저를 지지해 주었지만 누구도 답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우울했고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습니다.

어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이 글을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한 해 정신 건강에 대해서 제가 깨달은 가장 커다란 사실 하나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지나고 보니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일찍 더 명확하게 알았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거는 것,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울한 상태에서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관리자나 인사팀, 혹은 CEO가 직접 저에게 해결책을 담은 메일을 보내 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직무가 주어지거나 발표가 나서 모든 것이 뒤바뀌면 제가 회사에서 다시 승승장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아침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와서 나를 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제 말을 들어세요. 그 누군가는 바로 나입니다. 혼자서 해낼 필요는 없어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세요. 누구든 가리지 말고 이야기하세요. 저한테 하세요. 들어 줄게요. 정말요. 개인 메시지로 보내세요. 하지만 그 일이 뭐가 됐든 그걸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되어야 합니다. 퇴사가 될 수도 있고 시간제 근무로 전환하는 게 될 수도 있고 다시 공부를 하는 게 될 수도 있어요. 관계를 끊는 일일 수도 있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 상담사를 만나는 일, 약을 먹는 일,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예요.

원래 이런 아야기를 여기 올리지 않으려고 했어요. 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그동안 의사 결정을 할 때 나와 내 일. 내 경력을 보는 타인의 시선을 늘 의식했어요. 이제는 그렇게 하자 않기로 했습니다. 영혼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행복과 건강도 중요하지만 누구보다 나 자신의 행복과 건강을 중시하기로 했어요. 내가 건강하고 행복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아무것도 없어요.

 

2

출근 도장 찍기

 

인간 대다수는 말없이 절박한 생을 이어 간다. 하지만 달리 방도 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근로자에게 선택권이 없다. 소로의 시대에는 그런 사람들을 노예라고 했다.

 

소로는 월든 호수에서의 하루 일과를 이렇게 기록했단다. "대체로 나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날빛은 마치 내가 해야 할 일을 비추려는 듯했지만 아침 해가 떴다 싶으면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딱히 이루어 놓은 일은 없었다.... 내 하루는 이교도 신의 자취가 남아 있는 어떤 요일도 아니었으며 시간 단위로 쪼개져 똑딱거리는 시계의 재촉을 받지도 않았다."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똑딱똑딱 시계 소리에 초조함을 느낀단다. 일어날 시간, 샤워할 시간, 출발할 시간, 출근 도장 찍을 시간(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야 한다). 일할 시간. 짦은 휴식 시간, 다시 일할 시간, 점심 시간, 똑딱똑딱. 이제 슬슬 지쳐 가니 일하는 시늉할 시간. 분 단위로 셈하는 시간. 똑딱똑딱. 시간은 돈이란다. 시간은 우리를 쫓고 있단다. 시간은 어른이 된 우리의 삶을 집어삼키는 악어란다. 

소로의 집필용 책상 앞판에 보면 수천 개의 자국이 있는데, 소로가 누구의 재촉도 받지 않고 연필을 깎은 흔적이란다. 이것이 소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출근 도장이었단다. 일을 시작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기록이란다. 소로가 작은 책상 앞에서 무얼 할지는 전적으로 소로에게 달려 있었지만 책상에 남은 흔적은 "준비, 출발"이라고 말하고 있었단다. 소로는 이렇게 출발했지만 결코 남은 시계에 맞추어 달리지 않았단다.

우리가 살 날은 정해져 있단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 분초도 그처럼 기게적으로 흘러가야 할까? 우리는 근무 시간에 포함되는 시간과 포함되지 않은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단다. 그 경계는 많은 경우 불확실하단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은 통근 시간이 근무 시간에 포함되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곤 한단다. 소로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살면서 "찰나를 향상"시켜야 할 의무가 있단다. 그렇다면 근무 일정을 짜 놓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다. 

하지만 소로늘 결코 "출근 도장"만은 찍지 않았단다. "출근 도장"을 찍는 일, 혹은 상사, 관리자,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일은 소로의 생의 대부분을 다스렸던 초월주의 이상을 직접적으로 거스르는 일이었단다. 인간 생의 시간을 대체 가능한 것, 고유하지 않는 것으로 끌어내리는 일이었으며 환불이 불가한 나의 시간을 푼돈과 맞바꾸는 일이었단다. 인간의 삶의 화폐 가치는 무엇인가? 산업 혁명 당시 공장의 시계는 바로 이것을 마지막 한 푼 단위까지 계산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결국 이것이 산업화의 문제였단다. 소로는 이렇게 일갈했단다. 

 

재촉당하지 않겠다는 결심만큼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없다.

 

"경제"라는 단어는 가장 인위적인 의미와 가장 자연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단다. 이 말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한편으로 집과(특히 집의 관리와) 관련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온갖 안락함을 의미한단다. 바로 이 긴장 덕분에 <<월든>>의 첫 장이 그토록 황당한 동시에 통렬한 것이란다. 경제는 동물적 존재에게(인간이든 아니든) 언제나 가장 의미심장한 문제였지만 지난 300연간,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번개처럼 짧은 이 시간 동안, 갈수록 인위적인 것이 되었고 일상생활의 자연적인 성쇠와 엇박자로 가게 되었단다. 소로가 이를 극복한 비결은 시간을 더 잘 보내는 것이었단다. 실제로 소로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단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디체로 건전한 경제생활은 매일 일출과 함께 사작해서 일물과 함께 끝났단다. 하지만 새벽에 시작해서 황논에 끝나는 농경의 일과는 소로가 어린 시절부터 없어지기 시작했단다. 근무 일정은 점점 태양의 길이와 관계가 없어졌으며 날이 어두워진 뒤에도 이어졌단다. 소로의 고향 콩코드 주변에 있던 제분소의 근무 시간은 밤의 어둠 속으로 이어졌으며 생산적인 노동이 이루어져야 할 때를 알리기 위해 몇 시간, 몇 분마다 종소리와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단다. 소로는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았단다. 그는 노동이 우리의 몸을 지탱하고 마음을 고양해야 하지 우리를 짓누르고 풀 죽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단다. 소로는 신체적 에너지의 상승과 하강에 민감한 자연주의자로서 하루를 구성하는 시간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단다. 밭일을 하는 때가 따로 있고 사색하고 글을 쓰는 때가 따로 있으며 음식을 하고 청소를 하는 시간, 준비 작업을 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 그리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따로 있다고 말이다. 이런 식의 일정은 생리학적 요구와 한결 밀접한 관계에 있지만 현대 사회의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의 강요는 이를 무참히 갈아뭉갰단다. 

소로가 월든 호수에서 보낸 시간을 꼼꼼히 적어 놓은 기록을 보면, 그가 날씨와 해의 길이, 자연 질서의 요구에 일과를 맞춤었음을 알 수 있단다. 일이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 조건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라는 사실, 우주의 로고스, 즉 우주의 질서와 발맞추려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란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또 다른 위대한 철학적 노동자인 스토아주의자들에 대한 소로의 해석으로서, 노동의 본질과 시간에 대한 소로의 진지한 명상에서 드러난단다. 소로처럼 스토아주의자들도 진정으로 선한 삶을 살고자 하면 자연적 필요의 리듬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통제를 벗어난 대산에 맞서 애쓰는 일, 가령 때때로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억지로 부인하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일이란다.

앞서 보았듯 소로는 산업 혁명의 태동과 성장을 목도했단다. 그러니 요즘 흔히 말하는 "시간은 돈"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최초의 미국인 중 하나였을 거란다. 그래서 그 반대, 즉 근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돈을 훔치는 행위와 다름없다는 생각도 이해했을 거란다. "시간 절도"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잔다. 근태 조작이라고도 하는 이 행위는 돈을 받고 일을 하기로 한 사람이 일을 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 돈을 "훔치는" 행위를 말한단다. 출퇴근 기록이나 근무 기록 등을 슬쩍 조작하는 행위는 범법 행위에 혹할 수 있지만 대개 고용 계약을 해지하는 선에서 마무리된단다. 심각한 조작은 다른 문제일 수도 있단다. 어떤 경우든 시간 절도라는 개념과 1분 1초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깐깐한 시간 관리자들은 심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한단다. 7분 동안 멍하니 있었다면 절도일까? 내가 혹시 근무 기록에 시간을 잘못 기입한 건 아닐까? 회사에서 법적 수사를 시작하면 어떡하지? 보안 카메라 영상을 돌려 보면 어떡하지? 내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이 분명히 잡혔을 텐데. 자연처럼 사측 또한 진공 상태를 기피하므로 근무 시간일 때는 알맞은 양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단다. 공상을 하려거든 밤에, 일이끝나고 해야 한단다.

소로는 하버드 시절 엄격한 일정에 따라 생활한 경험 때문에 그런 일과를 질색하게 되었단다. 조시아 퀸시 총장은 하버드대학을 철권으로 통치했고, "성과 등급제"를 도입하여 학생들의 암기 속도와 결부하고 했단다. 퀸시의 성과 등급제는 시계에 맞춰 돌아가는 삶의 또 다른 해악을 보여준단다. 바로 세세한 데까지 개입하여 관리하는 마이크로매니지먼트란다. 소로가 <시민 불복종>에 썼듯, "최소한으로 통치하는 체제가 최고의 통치 세계다". 우리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단다. 최소한으로 관리하는 관리자가 최고의 관리자란다. 퀸시는 마이크로매니지먼트의 제왕이었단다. 속도와 정확도가 퀸시 정권의 신조였단다. 하버드 학생들은 두 가 가지 가혹한 수치에 따라 등수가 매겨졌단다. 1등을 하는 학생, 그야말로 한발 빠른 학생에게는 금전적 보상이 주어졌단다. 3학년 때 소로는 집안의 경제적인 사정으로 학교를 한 한기 다닐 수 없었고 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되찾을 수 없었다. 소로의 석차는 회복이 불가능했단다. 일단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사라진 시간에 대한 보상은 없단다. 소로는 이러한 현대 사회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형 존과 학교를 열었을 때 학생들에게 특별히 긴 휴식 시간을 주었을 것이란다. 

하지만 거짓말ㅇ르 하지 않는 시계는 계속 돌아간단다. 우리를 쫓아온단다. 1843년 윌리엄 에머슨의 스태튼아일랜드 집에 아이들의 가정 교사로 온 소로는 비교적 엄격한 일정을 따랐단다. 6시 반 아침 식사, 9시에서 오후 2시까지 수업, 점심은 12시 정각부터 30분 동안, 소로은 이런 일정에 대해서 드러내 놓고 불평한 적은 없지만 근무 시간이 끝나고 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다시피 했단다. 이는 타인에 의해 그토록 세세히 관리되는 근무 시간에 대해 소로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 준단다. 현대 사회의 마이크로매니저먼트는 꼼꼼한 시간 관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정에 맞게 진행해야 하는 사소한 일들에 대한 불필요한 집착을 의미하기도 한단다. 우리에게 소리 없이 찾아오는 이런 깨달음을 소로는 다음과 같이 글로 표현했단다.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대해 어리석은 말을 하곤 한다. 사소한 일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을 때,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거나 배움을 얻었을지라도 변명을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해야 할 일이 바로 사소한 일이고 인생의 거의 전부를 그 일을 하느라 낭비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어리석어서 몰랐을 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대다수는 이를 알고 있으며 마이크로매니지먼트의 대상으로서 치러야 하는 대가를 인지하고 있단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뿐이란다. 하지만 단지 지상으로 향하는 문을 찾지 못할 경우일수도 있으니 희망을 갖잔다. 

우리의 직업 인생은 엄격하게 짜여 있단다. 예상 가능하며 대개 유연성이 없는 일정을 따라가는데 그 일정은 시간의 흐름과 천체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단다. 1년, 한 달, 한 주, 하루, 1시간, 1분을 가르는 선은 이미 그어져 있단다. 반면 우리의 몸은 태양과 지구, 달 간의 관계보다 훨씬 더 예측하기 어렵단다. 우리의 건강은 차기도 하고 기울기도 하지만  그 주기가 달처럼 정확하지는 않단다.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벌어지는 현상은 책력의 현상과는 별개의 것이다" 흔한 시간 관리 방식, 융통성 없는 노동 시간, 엄격한 근태 일지 등에 소로는 지속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단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주기별 연대표'(태양력, 율리우스력 등 시간 단위를 측정하는 다양한 역법에 따라 연대를 알려 주는 표) 따위를 게시하지만 우리 생의 한 해에 벌어지는 현상과 비교하면 그런 것들은 얼마나 하찮은가! 별자리보다는 봄에 싹이 죽어 있는 광경이 내게는 더 큰일이다"

소로는 어떤 외부적인 도구 없이도 시간과 계절적 시기를 알아낼 수 있는 능력으로 콩코드 내에서 명성이 자자했단다. 피어 있는 꽃을 보고, 햇빛이 바닥에 때리는 각도를 보고 대번에 알 수 있었단다. 자신이 어디에 있고 지금이 언제인지 그냥 알고 있었단다. 소로의 노동은 언제나 이 자연적인 일정에 맞추어져 있었단다. 그렇다고 해서 본능에 따라 언제나 같은 시간에 일을 시작했다거나 인위적으로 엄격하게 출근 도장을 찍었다는 뜻은 아니란다. 결코 그러지 않았단다. 오히려 고대 스토아주의자처럼 바른 일은 자연의 움직임과 조화로워야 한다고,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노동 조건이 어떻게 자연의 흐름과 어울리는지에 언제나 민감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소로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단다.

 

시간은 내가 낚시를 즐기는 냇물일 뿐이다. 냇물을 마시려고 입을 가져가면 모래  바닥이 눈에 들어오고 냇물이 얼마나 얕은지 보인다. 얕은 물결은 흘러가 버리지만 영원은 남는다. 나는 냇물 속 더 깊은 곳으로 입을 가져간다. 하늘에는 물고기가 헤엄치고 바닥에는 별들이 강돌처럼 박혀 있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눈 한가득 별을 담은 소로는 내 하루 일정표나 줌 스케즐이 얼마나 복잡한지 상상도 못 할 거란다. 하지만 우리는 확신한단다. 소로도 알고 있단다. 소로는 단지 우리가 한 걸음 물러서서 보길 원할 뿐이란다. 인생을 살아야 할 때, 일을 해야 할 때가 오면 우리는 그야말로 타진해 보아야 한단다. 지금이 노동을 하기 적합한 시간인가? 바로 이것이 "유연 근무"의 진정한 교훈이란다. 유연 근무는 노동자가 서로 다른 시각에, 생활의 압박이나 연감의 분출 정도에 따라, 혹은 일터로 나서야겠다는 단순한 기분과 의지에 따라 근무 일정을 시작할 수 있게 허락한단다. 

가령 오전 근무에 대한 소로의 입장을 보잔다. 때로는 오전 근무를 질색하기도 한단다. 

 

아침에 일이라니!... 이 세상에서 인간다운 인간의 아침 일이란 무엇이 되어야 좋을까? 내 책상 위에는 석회암 세 조각이 있는데 매일 먼지를 털어 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끔찍하게 여겨졌다. 내 마음속의 가구에는 아직 먼지가 쌓여 있는데, 그래서 역겨운 마음으로 석회암을 모조리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하지만 <<월든>>의 <콩밭>에서는 새벽빛을 받으며 하는 노동을 예찬한단다.

 

마멋이나 다람뒤가 한 마리도 채 길을 가로질르기 전에, 태양이 키 작은 도토리 나무 위로 솟아오르기 전에, 이슬이 마르기 전에 - 농부들은 다들 그러지 말하고 하지만 나는 이슬이 마르기 전에 모든 일을 마치라고 하고 싶다 - 나는 내 콩밭에 줄줄이 돋은 키 큰 잡초들을 눕히고 그 위로 흙을 덮는다. 아침 일찍부터 나는 맨발로 일했다. 형상을 빚는 미술가처럼 이슬에 젖어 부서지는 모래 속에서 장난을 쳤다.

 

아침에 일하는 것에 대한 일관성 없는 기록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도 일관성이 있단다. 우리의 몸과 의지는 변덕스러우므로 우리의 몸과 의지가 선호하는 일의 종류도 다양하다는 생각이란다. 어떤 날에는 아침에 일할 기분일 수 있고, 어떤 날은 아닐 수 있단다. 애초부터 몸이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도 있단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어떤 경제에서든 진정한 부는 건강이라는 사실이란다. 건강에는 유연성과 민감성이 필요하단다. 남은 의문은 이것이란다. 현대 고용 시장이 건강을 위해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가?   

 

다시 한 걸음 물러서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잔다. 앞서 보았던 "경제"와 마찬가지로 "생태"의 어원도 그리스 말 오이코스란다. 다시 설명하자면 이 말은 "집, 서식 환경, 거주 장소"라는 의미를 가진단다. 하지만 같은 뿌리에서 꽤나 다른 두 개의 줄기가 뻗어 나왔단다. 집도 하나 오이코스도 하나 지구도 하나지만 우리는 그 안의 질서와 관계, 형태를 "생태"라고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 틀을 변환하고 축소하여ㅛ "경제"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모든 것은 고사리, 공장, 이끼, 상품, 진흙, 금광, 달기, 창고, 냇물 등 지구상 온갖 존재가 뒤죽박죽인 혼돈에서 나왔단다. 이 집에서는 모든 것이 함게 진화한단다. 물리학자 조셉 포드는 진화가 "비드백이 적용된 혼돈"이라고 아주 간결하게 말했단다. 이 모든 유기적 관계가 우리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눈부신 복잡성으로 우리를 압도하기에, 우리는 행동하기 위해 현실을 단순화한단다. 하지만 자연을 단순화하는 것에는 대가가 따르고 그 대가는 한 세대 전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단다. 소로는 현대 생태학자가 최근에 와서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된 사실을 이미 잘 이해하고 있었단다. "우리는 집을 짓는 법을 배우지만 사람들은 제대로 된 집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굴에 만족하는 마멋만큼 자기 집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견딜 만한 행성이 없다면 집을 지은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 집이 지어진 행성을 당신이 견딜 수 없다면?"

우리는 유기체로서 어쨌거나 유기적 필요가 있단다. 우리는 당연히 잠을 자야 한단다. 시간을 보내는 가장 유익한 방법은 아니지만 필수적이란다. "크로노타입"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잠을 자고 잠에서 깨는 방식에 따른 분류란다. 어떤 사람들은 '종달새'인데 이른 아침과 이른 저녁에 가장 깨어 있고 활동적이라는 뜻이란다. "부엉이"들은 늦은 아침과 늦은 저녁에 정점을 찍는단다.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 에너지가 최대로 찍는 "칼새", 늦은 아침과 이른 저녁에 더 활발한 "딱따구리"도 있단다. 소로가 이를 알았다면 새의 이름이 붙은 데 만족스러워할 것이란다. 하지만 그보다 사람은 다 제각각이라는 통찰에 만족을 표할 거란다. 

우리가 가령, 이른 등교 시간이 청소년 두뇌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단다. 이른 등교는 성장하는 육체의 유기적 필요성에 부합하기보다 부모 대부분의 현실적 근무 시간에 부합한단다. 부모의 근무 시간도 일찍 시작하기 때문이란다. 아이들은 부모가 출근하기 전에 등교해야 하므로 일찍 일어나 움직여야 한단다. 서둘러야 한다! 아이의 두뇌 성질이 부엉이나 딱따구리 크로노타입에 더 맞을지라도 종달새의 생활 방식을 강요받는단다. 우리의 근무 일정이 일률적이기 때문에 다른 크로노타입은 은근히 손해를 입고 있는 거란다. 

하지만 과자 틀은 계속 같은 모양을 찍어 내고 시계는 우리를 지배한단다. 소로는 소필 <걷기>에서 이렇게 썼단다. "고백하건대 나는 내 이웃들의 도덕적 무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끈기가 놀랍다. 이웃들은 하루 종일 가게나 사무실에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을 거의 연이어 틀어박혀 있다. 무엇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이기에 오후 3시에도 새벽 3시인것처럼 가만히 한자리에 앉아 있는 걸까" 소로는 "하루 종일 집 안에 앉아 있으면 녹이 슨다"고 말한단다. 그래서 언제든 가능하면 일어나서 나가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몸이 투정한다고 했단다. 

 

일어나서 11시간 만이 오후 4시, 하루를 살리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 밤의 그림자가 이미 낮의 태양과 뒤섞이기 시작할 때 걸으러 나가면 마치 죄를 지은 것 같아 속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소로는 우리가 가진 에너지에도 조석이 있고 계절이 있다는 사실, 우리 내부의 시계가 매우 아주 어긋난다는 사실을 강조한단다. "나이가 들수록 가만히 앉아서 실내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늘어난다. 인생의 황혼이 다가올수록 저녁 활동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 일몰 직전이 되어서야 집에서 나와 반 시간 안에 산책을 마친다."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특히 부엉이들은, 늙기 전에도 저녁에 활발하단다. 하지만 어디 회사에서 그걸 알아주겠는가. 저녁형 인간이라는 점을 건강상의 이유로 인정해 주는 일터는 아직 많지 않단다. 

 

인간의 번영에 대한 소로의 생각, 가령 원하는 시간에 일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많은 경우 계급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소로 역시 이를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단다. 자기만의 "근무 기록지"를 쓸 수 있는 능력은 현대 문명의 어떤 이기를 포기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소로는 아주 적게 소유하고도 매우 부유하게 살 줄 아는 마음 부자였단다) 대체로 하버드를 졸업한 중산층이라는 확실한 신분 덕택이기도 했단다. 물론 소로의 집안은 가난을 겪기도 했짐나 한 번도 처절하게 가난했던 적은 없었단다. 그러니 "출근 도장"에 대한 소로으ㅟ 가르침에 우리는 약간 회의적일 수밖에 없단다. 삶의 대부분을 "출근 도장"을 찍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소로였기 때문이란다.

그런데도 소로는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일터에서 가장 과도하게 독촉을 당하고 사사건건 간섭을 당하고 의미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불편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단다. 과거에도 언제나 그래 왔단다. 그렇지만 결코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단다. 소로가 오늘날 살아 있었다면 삶의 본질적인 진실과 마주하려는 우리들의 움직임에 동참했을 거란다. 약75퍼센트는 오전 6시에서 10시 사이에 근무를 시작한단다. 그렇다면 다행이란다. 적당한 시각에 잠들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시지 않으며 아침을 든든히 먹는 사람들일 거란다. 반면 빈곤선 아래에 있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일반적이지 않은 시각에 일을 시작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단다. "훨씬 더"는 얼마나일까? 빈곤층은 오후 3시에서 7시 사이에 출근할 확률이 두 배나 된단다. 운 좋고 건강한 사람들이 두부와 아스파라거스로 몸에 좋은 저녁 식사를 준비할 무렵이란다. 미국에서는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계 시민들이 야간 근무를 하는 경우가 비정상적으로 많단다. 본성이 종달새든 부엉이든 딱다구리든 무엇이든 저녁 7시에서 자정 사이에 일터로 가야 하고 대개 둥이 틀 때까지 일한단다. 그렇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라는 말로 충분할까. 이런 사람들은 아이들을 돌보는 틈틈이 잠을 자고 남들이 일하고 있을 때 TV를 보며 알고 보면 아침 식사일 수 있는 저녁 식사는 그다지 든든하게 먹지 못한단다. 똑딱똑딱 시간은 간단다.

소로가 <<월든>>에 썼듯 "인간 대다수는 말없이 절박한 생을 이어 간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란다. 많은 근로자에게 선택권이 없단다. 소로의 시대에는 그런 사람들을 노예라고 했단다. 우리 시대의 경제에서도 빈곤층은 때로는 미묘하게, 때로는 미묘하지 않게 그들을 조종하는 줄에 묶여 있단다. 그들 중 다수는 최근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거나 미국 노예 제도라는 뿌리에서 나온 사람들이란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일터의 소로를 탐구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되는 "본질적인 진실"이란다. 소로는 과거에도 지금도 전복적이란다. 저자들은 사탕발림 없이 소로를 이야기 할 거란다. 소로는 우리 모두에게 억합적이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출근 도장"을 거부하라고 부추긴단다. 동시에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게 만드는 제도를 끌어내리라고 부추긴단다. 시간과의 경쟁은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인 탓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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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 노동

 

제대로 한다면 손으로 하는 일은 언제나 자연, 그리고 자기 자신과 맞닿으려는 시도이다. 자급, 자립, 자족의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이다.

 

"근데 엄마, 왜 일일이 손으로 하고 있어?"

바보 같은 질문이었단다. 하지만 엄마의 아들은 이따금 아주 바보 같을 때가 있었단다. 엄마는 교외의 소박한 주택 앞 길가에 무릅을 대고 앉아 일을 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단다. 

"원래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는 거다. 아들아."

엄마 손에는 주황색 손잡이가 달린 가위가 들려 있었단다. 종이를 자르는 가위였단다. 일이 절반쯤 끝난 시점이었고 다 끝내려면 여름 오후 반나절이 족히 걸렸단다. 그날 펜실베니아주  레딩의 온도는 섭씨 32도였단다. 엄마는 길 위로 뻗어 나간 잔디를 깎고 있었단다. 엄마의 대답은 뭐랄까 아주 옳은 대답이었단다. 가위로 잔디를 깎으려면 가위로 잔디를 깎는 방법밖에는 없었단다. 철학자들은 이를 당연히 항상 참인 명제, 항진명제라고 부른단다. 여기에 육체노동에 대한 중요한 진실이 있단다. 지름길이 없다는 사실이란다. 손으로 하는 일(영어에서 손 노동은 육체노동을 의미하는 말로 쓴단다)은 필연적으로 고유한 노동이며 피해 갈 방법은 없단다.

40세에 키가 150센티 조금 넘는 베키는 가을이 되면 매주 목요일에 작은 갈퀴를 들고 앞마당의 잔디를 정리했단다. 겨울에는 작은 삽을 들고 진입로의 눈을 치웠단다. 봄에는 티스푼 하나만 들고 정원의 잡초를 뽑았단다. 정원 일을 시작하고 몇 시간이 지나면 베키의 손은 정원의 흙과 구분이 되지 않았단다. 지나가는 사람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베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단다. 베키는 눈앞의 일, 아니 손 앞의 일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단다. 깊이 "빠져" 있었단다. 정원 일이 끝나면 베키는 손으로 식구들의 빨래를 했고 손으로 요리를 했으며 손으로 벽과 천장을 청소했단다. 손으로 세차를 하고 손을 창을 닦고 손으로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손으로(손과 무릎을 바닥에 붙이고) 부엌 바닥을 박박 닦았단다. 해마다. 세상에 수없는 베키들이 있을 테지만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단다.

베키는 한 번도 가정부를 고용하지 않고 몸소 아들들에게 모범을 보였으며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육체노동이라는 신성한 일을 무시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았단다. 하루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고 하는 아들이 티스푼으로 잡초를 뽑는 대신 흙 표면을 덮은 멀칭으로 잡초를 파묻으려고 했단다. 엄마는 즉시 아들의 잘못을 발견했단다.

"아들, 엄마 너한테 정말 실망했어."

아들이 자신에게 느낀 실망감은 더 컸단다. 그 후로 잡초를 그냥 파묻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단다. 

육체노동의 중요성에 대한 입장에서 봤을 때 베키와 소로는 말하자면 같은 재질이었단다. 물론 베키의 정원 노동은 때때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거의 강박적인 반복 동작에 가까웠지만 소로 역시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했단다. 제대로 한다면 손으로 하는 일은 언제나 자연, 그리고 자기 자신과 맞닾으려는 시도란다. 자급, 자립, 자족의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이란다. 

소로는 다양한 작업을 가져 보기도 했는데 이런 시도 역시 현대식 노동에 대한 소로의 비판적인 시각과 뿌리가 같단다. <<월든>>의 첫 줄에 보란듯이 숨겨져 있단다.

 

이 글은, 다는 아니지만 이 글의 대부분은 나 홀로 숲속에 살며 쓴 것이다. 나는 1마일을 가도 이웃집이 나오지 않는,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수 기슭에 내 손으로 집을 지어 살면서 내 손으로 하는 노동만으로 먹고살았다. 

 

소로가 월든에서 보낸 2년은 누구든 육체노동을 해야 자연의 질서 속에서 자가 자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단다. 이런 노동을 통해서만 진정한 자립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었단다. 물론 자립을 추구해야 한다는 에머슨의 요청은 일종의 영적 독립이었지만 영적 독립은 언제나 내 힘으로 살아가는 삶을 전제로 하고 있었단다. 내 힘으로 음식을 만들고, 먹고, 옷을 입고, 내가 먹을 것을 졍작하는 삶, 내 필요를 나 홀로 충족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게 사는 삶이 먼저였단다. 물론 소로의 자급자족에는 한계가 있었단다(소로는 월든에 사는 동안에도 종종 콩코드 집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빨래를 했단다). 소로 이 위선자 같으리라고. 그래도 소로는 노력은 했고 망치나 숟가락, 괭이나 바늘을 못 다루지는 않았단다.

베키는 아들이 철학자가 되었을 때 다소 어리둥절했단다. 아들이 소로를 닮은 철학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좀 더 이해가 됐을 거란다. 아들은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소로를 충분히 연구한 덕분에 정원 일과 몸을 움직이는 노동에 대한 엄마의 열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단다. 무엇보다 소로 덕분에 깨닫게 되었단다. 정원에서 손을 놀리며 일할 때 엄마가 단지 혼자맛을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는 단지 자신과 대화를 한 게 아니란다. 엄마는 정원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었단다. 

 

손을 놀리며 노동을 하며 아주 이상한 일,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단다. 물론 언제나 그렇다는 건 아니란다(그 예기는 좀 이따가 하겠단다). 하지만 기적에 가까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소로에게는 그 점이 중요했단다. 손은 우리를 세상과 연결해 주고 우리가 서로에게, 우리 너머에 있는 삶과 현실에 가닿을 수 있게 한단다. 우리는 대체로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단다. 다시 말해 전혀 눈치채지 못한단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하다고 소로는 말했단다.

손을 뻗어 무엇이든 만져 보잔다. 온기가 낯선 감촉, 유혹하는 친밀함을 느껴 보잔다. 내 손과 이질적인 것 사이의 연결을 느껴 보잔다. 이제 약간의 육체노동을 해 보잔다. 형편없이 못하는 노동이 아니라면 더 좋단다. 정원 일이나 설거지, 아이들 목욕, 망치질 등을 하면서 그 과정에 주의를 기울여 보잔다. 흙이 끝나고 내가 시작하는 지점이 느껴지는지? 물의 온도가 나를 변화시키는 게 느껴지는지? 못이 박히는 느낌이 와닿는지?

요즘 유행인 "마음 챙김"과 똑같지 않지만 크게 다르지도 않단다. 하지만 이런 식의 마음 챙김은 소소에게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단다. 손을 뻗어 노동을 하면 깨닫게 된단다. 우리가 자연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항상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자연의 생과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일부라는 사실을. 소로의 가장 깊은 욕망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세상의 야생성과 마주하는 것이었다면 손을 놀려 하는 노동은 아주 좋은 출발점이었단다. 잠재적으로 육체노동은 자아와 타자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간극을 지울 수 있단다. 

힌두교 경전, 특히 우파니샤드를 잘 알던 소로는 힌두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이치, 즉 "네가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어떻게 실재적으로 경험되는지에 관심이 있었딴다. 소로에게 이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월든 호숫가에서 바가바드 기타(우파니샤드, 베다와 더불어 힌두교 3대 경전 중 하나)를 읽으며 소로는 이렇게 썼단다. "만물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그 존재를 빚는 힘이다." 정말로 가자 가까이 있단다. 소로는 미국의 초월주의 학파와 유럽의 낭만주의 학파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세계에 깊이 참여해 자연 세계와 하나가 되면 그 세계가 지속적이고 골고루 퍼지는 그 힘을 드르내리라고 믿었단다. 하지만 초월주의자 친구들 대다수와 달리 소로는 자연 세계에의 참여가 육체노동을 통해 가장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단다.

<<월든>>에서 제일 날카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장의 제목은 <콩밭>이란다. 손을 놀리는 노동이 가진 형이상학적 잠재력에 대한 은근히 자유분방한 명상록의 제목 치고는 다소 따분하게 들린단다. 한숨을 쉬는 독자도 있을 거란다. "형이상학적 잠재력이라고? 정신 차리고 현실을 직시합시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우리가 하려는 게 바로 그것이란다. 소로는 육체 노동에 "빠지면" 우리가 현대식 생활을 하며 미처 보지 못했던 궁극의 현실, 즉 우리 모두가 우주를 책임지고 있는 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힘이 우리르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고 믿었단다. 너무 멀리 갔다는 생각이 든다면 걱정하지 말잔다. 손을 이용해 노동할 좀 더 실용적인 다른 이유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단 좀 더 들어보길 바란단다.

<콩밭>은 월든에서 먹거리를 직접 심어 키웠던 소로의 기록이란다. 소로가 여러 줄에 걸쳐 나란히 심은 콩을 한 줄로 세우면 7마일은 채월을 것이란다. 소로가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지만 요점은 그게 아니란다. 중요한 것은 소로가 이 임무에 접근했던 방식이란다. 

 

한편 콩은... 괭이질을 기다리며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처음 심은 콩은 나중 콩을 심을 때 이미 꽤 자라 있었다. 정말이지 마냥 미룰 수 없는 상태였다. 이 꾸준하고 보람된, 작은 헤라클레스적 과업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고대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헤라클레스은 아폴론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아주 힘들고 어려운 열두 가지 과업을 수행해야 했다). 처음에 원했던 양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나는 줄지어 선 내 콩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콩은 나를 땅과 연결해 주었고 그 결과 나느 안타이오스(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로 헤라클레스와 겨루었지만 패했다) 같은 힘을 얻었다. 그렇지만 콩을 키워야 하는 이유는 뭘까? 하늘만이 알 뿐이다. ... 나는 콩에 대해, 콩은 나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나는 콩을 아끼고 괭이질을 하고 아침에도 저녁에도 돌본다. 이것이 나의 하루 일이다. 콩잎은 예쁘고 넓적하다. 내 원군은 이 건조한 흙을 적시는 이슬과 빗방울이며 비록 대체로 메라르고 거칠지만, 흙 자체의 비옥함이다. 적군은 지렁이와 추위, 그리고 무엇보다 마멋이다. 놈들이 먹어 치운 콩이 300평은 된다.

 

콩알만큼 안다고 하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의미이지만, 소로는 결코 동의하지 않았을 거란다. 소로는 콩으로부터 매우 귀중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 부분은 좀 납득하기 힘들지만, 콩도 소로한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인간과 식물 간의 열린 교류는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하늘만이 알 뿐이다." 이것이 소로의 진심이란다. 콩과 자신과의 왕래, 상호 작용, 동일시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하늘만 알고 있었단다. 바로 그 신비로움이 소로를 매일 콩밭으로 나오게 했고, 밭을 찾는 모든 존재들로부터 (특히 마멋으로부터) 콩을 지켜 내게 했으며, 콩을 키우는 일을 통해 소로 자신을 땅과 연결되게 했단다. 여기 "네가 바로 그것"의 감각된 실재가 있었단다. 그 연결감, 힘, 자아가 있었단다.

우리의 일 또한 신성하다는 시각을 작고자 했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단다. 나의 거룩한 업무에 신성한 목적이 있다면 무엇일까? 일은 왜 신성할까? 소로는 나란히 심은 콩에 애착을 갖게 되었단다. 콩의 존재, 심지어 "작은 헤라클레스적 과업"을 방불케 하는 콩의 요구 사항조차 소로에게 힘을 주었고 그를 땅과 연결시켰단다. 여기서 "힘"은 완력이나 단순히 신체적 지구력을 의미하지 않는단다. 물론 콩밭을 가꾸다 보면 그런 이득도 생길 거란다. 하지만 소로가 말하는 "힘"은 영적인 기운이나 잠재적 능력을 말한단다. 즉 이상적인 삶을 실현할 능력이란다.

 

어떤 그림을 그리거나 상을 조각하는 등 특정한 물건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수단을 조각하고 그릴 수 있는 능력이 훨씬 더 눈부신 능력이다. 

 

최근에 아주 능력 있고 똑똑한 목수 재니스가 우리에게 한 말은 육체노동에 대한 소로의 시각이 고루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단다. "못이 단단히 박히거나 판재가 딱 맞으면 그냥 느낄 수 있어요. 정확히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미적이고 거의 종교적인 느낌이에요." 재니스는 순수 예술을 하는 목수가 아니란다. 무늬가 선명한 단풍나무로 앤 여왕 시대 양식의 탁자를 만들어 크리스티 경매장에 내놓는 그런 예술가는 아니라는 말이란다. 재니스는 대개 주택의 구조를 만들거나 바닥재를 교체하는 등의 일을 한단다. 소로였다면 전혀 상관없다고 지적했을 것이란다. 미국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가(메머슨과 소로를 매우 좋아했단다)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말했듯이 손을 놀려 하는 하찮은 일과 예술 사이에는 뚜럿한 경계가 없단다. 손으로 하는 일에도 우리 같은 존재를 세상 그리고 타인과 연결해 줄 수 있는 힘이 있단다. 베키는 정원에 있을 때 진정으로 정원에 있었단다. 그 풍경 속에 완전히 빠져 일체가 된 것이란다. 그리고 재니스도 못을 박을 때 다른 무엇인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단다. 무엇인가 묘하게 익숙한 느낌, 집으로 돌아오는 느낌 말이다.

 

이 모든 것이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려 믿을 수 없다면 역사적인 맥락을 좀 살펴보도록 하잔다. 밭일의 본질과 가치를 숙고한 사람은 소로가 처음이 아니란다. 소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로부터 단서를 얻었단다. 핵심은 베르길리우스란다. 소로에게 베르길리우스, 특히 그의 농경시 <<게오르기카>>가 중요했기 때문이란다. 소로는 <<게오르기카>>를 정말 좋아했단다. 로버트 리처드슨은 명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자연의 순례자>>에서 이렇게 말한단다. ""소로는 <<아이네이스>>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언제나 <<게오르니카>>를 더 좋아했단다. 소로에게는 그 작품이 곧 지구라는 거대한 시였단다.

베르길리우스의 <<게오르기카>>는 아주 아름다우면서도 새롭단다.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매우 오랫동안 고민해 왔단다. 인간은 왜 그토록 힘들게, 주로 밭에서 몸을 놀려 일할 운명을 타고난 걸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신정론"을 확립했단다. 신을 의미하는 테오스와 정의를 의미하는 디케로 이루어지 이 말은 신의 정의에 관한 이론이라는 뜻으로, 악이나 고난의 존재를 신적인 존재와 사랑이라는 선을 통해 설명하려고 한단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신정론은 우리를 사랑하는 신이 있는데도 인생이 (그리고 일이) 왜 이 모양 이 꼴이지 설명하려고 시도한단다. 베르길리우스는 <<게오르기카>>에서 신정론의 역사를 통틀어 매우 혁신적인 설명을 시도한단다. 일 자체, 특히 손으로 짓는 농사가 그 자체로 구원이라는 주장을 한 것이란다. 고전학자 일레인 팬텀의 글에 따르면 베르길리우스는 "흔히 신정론이라고 일컬이른 것, 즉 끝없고 고된 농사일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를 선보였다."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를 쓰기 전에 <<게오르니카>>를 썼고 <<목가집>>은 그 이후에 썼단다. 최초의 전원시인으로 여겨지는 시인 테오크리토스의 전원시가 <<목가집>>의 영감이 되었다. <<게오르기카>>를 쓸 때는 바로의 <<농경에 관하여>>, 루크레티우서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니칸드로스의 <<농경시>>,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나는 로마의 마을을 돌며 노동과 나날을 찬양하네")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베르길리우스는 가라지 않고 글을 읽었단다. 하지만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에 나오는 신정론이 베르길리우스의 신정론과 가장 밀접하고 그래서 우리가 얘기하는 소로의 노동에 관한 신정론과 관련이 있단다. 

노동은 힘들고 많은 경우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하단다. 헤시오도스는 이런 조건을 징벌로 받아들였고 창세기를 지은 사람들고 마찬가지였단다("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지만 베르길리우스는 헤시오도스의 징벌적 시각을 뒤집었단다. 고된 노동은 오히려 유피테르의 고마운 선물이라고 한 것이란다.

 

...아버지 자신도 농사가 쉽기를 바라지 않았으니

자신의 능력으로 들판을 흔들어 깨우고 인간들의 마음을 걱정으로 버린 것은

그이 세상이 나태함에 빠지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쉭쉭거리는 뱀에 치명적인 독을 넣고

늑대를 맹수로 만들며 심해가 파도 치게 만들고

잎사귀에서 꿀을 흔들어 떨구고 불을 꺼 없애고

사방에서 콸콸 흐르던 포도주 강을 막은 것도 유피테르.

그로 인해 인간이 머리를 써서 점점 여러 가지 능력을 단련하도록,

가령 쟁기질을 해서 밀 줄기를 얻을 수 있도록,

부싯돌에 묻힌 불꽃을 찾아 불을 댕길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강물은 속을 파낸 딱총나무로 만든 배를 알았고

뱃사람들은 별을 헤아리고 이름 붙였다.

...그러자 여러 기술이 여러 모습으로 생겨났다. 끝없는 일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 냈다. 고된 시절 일과 간절한 필요가.

 

피터 팰런은 마지막 행을 좀 다르게 번역했단다. "고된 노동이 승리했다. 고된 노동과 적박한 가난이." 베르길리우스의 주장에 따르면 유피테르가 우리를 결핍, 병충해, 독사로 시험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서 때를 엿보고 있는 것, "부싯돌에 묻힌 불꽃"을 실현하기 위함이란다. 살기 편한 황금기 혹은 에덴의 시대에 인간은 발절을 실현하지 못한단다. 에덴에 인간의 승리는 없단다. 신정론의 일반적인 분류 방식을 따르면 이것은 "영혼을 완성하는 신정"에 해당할 수 있단다. 영혼의 최정상은 고통을 통해서만 오를 수 있단다. 정의상 한가한 삶을 통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종류의 성과를 얻으려면 육체노동이라는 고난이 필요하단다. 

소로와 <<게오르기카>>를 가깝게 견주어 본 리터드슨은 이렇게 적었단다. "이 시는 인류의 끝없고 고된 노동과 땅을 경작하는 것에 대한 진심 어린 찬양이다. 베르길리우스는 노동과 노동이 가져다주는 보상과 만족감을 믿는 현실주의자다. 배르길리우스의 농부는 열심히 일하는 겸허한 농부이며 자립과 만족을 아는 사람이다." 이것이 베르길리우스의 정수이며 로마 문명은 이런 단순하고 당당한 삶의 위에 지어지고 강화되었단다. 리처드슨은 노동에 대한 소로의 시각이 청교도적 노동관보다는 이런 "베르길리우스적 노동관"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단다. 덧붙이자면 헤시오도스적 노동관과도 다르단다. 비판적이고 징벌적인 노동관이기 때문이란다. 

베르길리우스와 소로는 우리가 스스로 일한다면 우리를 실현하고 발견할 수 있으며, 나아가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단다. 새로운 능력, 새로운 감정, 새로운 감각, 새로운 민감성을 깨울 수 있다고 말이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우리 사회 또한 새로운 감각과 민감성을 얻게 된단다. 베르길리우스의 농부는 로마의 위대성을 축소해 놓은 모형이란다. 소로는 일을 통해 위대한 국가의 축소 모형이 되고자 했단다. 그리고 소로에게 위대한 국가는 다름 아닌 정의롭고 영웅적인 국가로서 이 국가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시민은 땅을 사랑하고 노동과 나날을 사랑하는 사람들, 흙 위에서 비로소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란다. 

 

그리스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한 수염 기른 남자가 풍선을 타고 올라가 땅을 내려다보며 아래에 있는 이웃들에게 철학적 조언을 퍼붓는단다. <구름>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풍선을 집으로 삼은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해 대는 모든 철학자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란다.

소로는 그 어느 19세기 사상가와 비교해도 그 풍선을 붙잡아 땅에 묶어 두려고 가장 많이 노력한 사람이란다. 소로는 철학자들이 지극히 실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실제적인 것이 자급자족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란다. "생명의 열을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난 방식으로 유지할 수 없다면 어찌 철학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여기서 소로가 말하는 "생명의 열"은 생生의 환유법적인 표현이란다. 소로는 다른 사람의 노동에 의지하지 않고 생을 유지할 수는 없는지 궁금해했단다. 타인을 착취하는 행위, 나의 생활 방식으로 인해 수많은 인간과 비인간이 불행한 노동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 사태가 소로의 관심사였단다. 소로는 우려한단다. "노동하는 사람은 날마다 진정한 도덕성에 대해 고민할 여우가 없다." 다른 사람의 어깨를 타고 안지 않기 위해 소로는 보편적 인간이라는 르네상스의 이상을 다시 살려 냈단다. 일종의 박식가이나 실용적인 박식가로서 도서관과 강의실, 의회뿐만 아니라 들에서도 밭에서도 숲에서도 제 집인 양 다니는 사람 말이다.

기억할 점은 소로가 타인의 행복을 돌보기 위해 자립을 중시했다는 점이란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서로에게 그다지 상냥하지 않다." 소로는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회에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일을 떠안았단다. 저자들은 소로의 수호신이 스위스 아미 나이프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하지만 소로에게 수호 정령이 있다면 낙타가 적합하단다. 냄비, 담요, 가방, 호리병 등 잡다한 물건들, 그야말로 온 살림살이를 혹이 난 등에 지고 돌아다니는 낙타 말이다. 소로는 되도록이면 살림살이를 스스로 들고 다닐 것, 되도록이면 타인에게 지우지 않을 것을 우리에게 부탁한단다.

소로는 미국 시민으로서 자신이 동산動産 노예 제도(사람을 재산으로 소유할 수 있게 만든 제도)와 계약 노예 제도에서 나오는 이익에 경제적으로 얽혀 잇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단다. 오레스테스 브라운슨의 노동 운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단다. 산업화의 폐해에도 민감했단다. "지금의 공장식 체계가 의류를 제조하고 최고의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인류에게 좋은 옷을 정직하게 입히는 게 아니라 기업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 이 체계의 주 목적이라는 점이 명백하다." 소로는 가장 알아보기 쉬운 당대 산업 발전의 상징이었던 철도를 통해 서로가 뒤얽혀 있는 미군의 경제를 암울한 빛깔로 그려 냈단다. 

 

우리가 기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가차가 우리를 탄다. 철로 밑에 깔린 침목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각각의 침목은 사람이다. 아일랜드 사람이고 뉴잉글랜드 사람이다. 그 사람들 위로 철로가 놓이고 모래가 깔리며 가차는 그 위를 부드럽게 달린다. 정말이지 든든한 침목이다. 그리고 몇 년마다 새로운 무리가 놓이고 깔린다. 누구에게는 기차를 타는 기쁨이 있지만 누구에게는 기차에 깔리는 불행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착취에 연류되어 있단다. 미국 노동부의 국제 노무 담당국이 2020년 세계 아동 노동과 강제 노동에 관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에 시달리는 아동 1억5200만 명 중에 7300만 명의 아이들이 "위험한 아동 노동에 동원되고" 있단다. 커피, 코코아, 사탕수수, 대두, 쌀 등은 아동 노동, 강제 노동과 떼어 놓을 수 없단다. 우리의 "생명의 열기"를 지피기 위한 음식은 여전히 그리고 자주 타인의 생명의 열기를 착취하는 데 의존하고 있는 거란다.

다른 이의 어깨 위에서 내려오려고 애쓸 때는 자기 자신에게도 상냥해야 한단다. 자기 자신이 지고 있는 짐도 최대한 가볍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단다. "전 재산을 담은 보따리를 마치 목덜미에 자라난 거대한 혹처럼 이고 비틀거리는 이민자를 보고 동정심이 일었다. 전 재산이 그뿐이어서가 아니라 그 많은 걸 지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만약 전 재산을 끌고 다녀야 한다면 나는 짐이 가볍도록 애쓸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보통 사람은 짐이 가벼워야 더 오래 들고 다닐 수 있단다. 일도 가벼워야 계속해서 내 노동만으로 가던 길을 갈 수 있단다. 남에게 맡기고 싶은 유혹, 타인의 생명의 열기를 이용하고 싶은 마음은 우리의 짐이 늘어날수록 커진단다. 물론 노동을 줄이려면 소비를 재평가해야 한단다. "차나 커피, 버터, 우유, 신선한 고기도 필요 없었기 때문에 그걸 얻기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됐다"고 소로는 적고 있단다.

하지만 거벼운 낙타로 살기도 쉽지 않단다. 생계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만약 식료품 가게에 가서 환히 빛나는 냉장 식품 코너를 게으른 발걸음으로 도는 대신 손으로 먹거리를 직접 키워야 한다면 그들 두 저자의 삶은 빠르게 기괴해질 거란다. 물론 추측일 뿐이기는 해도 합리적인 추측일 거란다.

소로는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삶이란 낙타를 닮은 삶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단다. 일단 땅에서 하는 노동은 우리의 시적 능력을 키운단다. "만약 사람들이 제 손으로 자기가 살 집을 짓는다면, 소박하고 정직하게 자신과 가족을 위한 식량을 키운다면 시적 능력이 보편화될지 누가 알겠는가? 새들은 하나같이 일하면서 노래하지 않는가?" 소로에게 이런 "시적 능력"은 곧 신적인 능력이란다.

노동에서 신성한 시와 기쁨을 찾을 수 있다는 소로의 말은 우스개가 아니란다. "무언가를 짓는 기쁨을 영영 목수에게 양보할 것인가?" 소로는 현대 사회의 공장식 제조업의 발전이 숙련된 육체노동을 대체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단다. 상품은 변함없이 만들어지지만 그걸 생산하는 경험은 사라진단다. 다행히, 소로의 우려와 달리, 육체노동은 앞으로도 한동안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을 거란다. 소로에게 가사일은 "즐거운 놀이였다." "하지만 손을 놀려 하는 노동은 아주 고된 지경에 이르러도 결코 가장 헛된 일은 아니다. 노동에는 일관적이고 사라지지 않는 미덕이 있다. 학자에게 노동은 훌륭한 결과를 가져다준다."

월든에서 소로가 행한 육체노동은 신을 닮은 삶, 훨씬 더 훌륭한 삶을 위해서였을지 몰라도 이런 경과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단다. "수백만 사람이 육체노동이 가능한 수준으로 깨어 있지만 100만 명 가운데 한 명만이 효과적인 지적 활동이 가능한 수준으로 깨어 있다. 그리고 시적인 삶, 신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 깨어 있는 사람은 1억 명 가운데 하나밖에 없다." 자족을 위해, 다시 말해 독립(모든 수준에서의 독립)을 위해 일하는 살마은 활기찬 힘, 깨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단다.

 

누구든 자기가 만든 장작더미에 일종의 애착을 가진다. 나는 창가에 장작을 쌓아 놓는 걸 좋아하는데 부스러기조차 만족스러운 노동을 떠올리게 하므로 많을수록 좋다. 나한테 아무도 쓰지 않는 도끼가 있었는데 겨울날이면 한번씩 이 도끼를 들고 집 앞 볕이 드는 곳에서 콩밭에서 나온 그루터기를 갖고 놀았다. 쟁기질을 할 때 소를 몰던 사람이 예견했듯 장작은 나를 두 번 따뜻하게 해 주었다. 장작을 팰 때 한 번, 그리고 태울 때 한 번, 그러니 이보다 더 많은 열기를 줄 수 있는 연료는 없었다.

 

"이보다 더 많은 열기를 줄 수 있는 연료는 없었다." 겨울날에도 살아있다는 감각을 이처럼 명료하게 느끼게 해 주는 "생명의 열기"의 원천은 우리의 노동뿐이란다. 신성한 노동은 너무나도 자주 모독을 당한단다. 소로는 특히 분업 때문에 그 신성이 더렵혀진다고 생각했단다(우리의 "분업의 원칙을 극단까지 맹목적으로 따라가지만 이 원칙은 신중한 고민 없이 따라서는 안 된다". 하찮은 톱니바퀴보다는 낙타가 낫다는 말이란다). 일이 신성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그 신성을 박탈당했기 때문일 수 있단다. 일이 즐겁지 않다면, 놀이 같지 않다면, 신성하지 않다면 신성이 더럽혀진 형태의 노동을 묵인하고 있다는 뜻이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다"고 우리는 호소한단다. 소로는 그런 숙명론에 대해 "인간은 흔히 필요라고 부리고 숙명처럼 보이는 것을 위해 일한다"고 말한단다. 그렇게 신성을 박탈당하면 "그 인간의 대부분은 곧 땅속에 갈려 들어가 비료가 된다".

저자 둘 다 아침에는 집안일을 한단다. 설거지를 하고 조리대를 닦고 차를 끓이고 아침 식사를 준비한단다. 먹은 것을 치우고 침대를 정리하고 필요하면 비질도 한단다. 그들 두 다 결혼을 했으므로 각자의 몫을 해야 한단다. 적어도 노력해야 한단다. 남자의 집안일은 지나치게 주목받기 때문에 그들은 주어진 몫보다 더 많이 한다고 느끼기도 한단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렇단다. 가사는 전통적, 역사적으로 여성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 같은 남자들은 때때로 이런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에 말없이 억울해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고 할아버지들이 가르치셨듯 "이치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동은 대체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란다. 깨끗한 식기와 막 비질을 마친 카페트 같은 것들은 우리엑 진정으로 필수적인 물건은 아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우리가 허락한다면 흥미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단다. 우리는 집안일을 마치 목욕 의식처럼 생각한단다. 말끔한 기분이 들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단다. 선불교에서는 소제掃除를 명상을 행할 기회로 여긴단다. 승려 마츠모토 쇼케이는 "절에 있는 승려들은 선 명상보다 소제를 하는 시간이 더 많다"고 했단다.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을 포함해 선불교식 소제는 소로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할 거란다. 이는 허드렛일과의 타협이 아니라 예술적 전유이자 승화란다. 따분하고 고된 일을 예술, 노래, 축제로 변모시켜 울 빨래가 됐든 걸레질이 됐든 그 행위가 재미있고 흥겨워진다면, 그리고 그 일이 시대에 뒤떨어진 이후에도 지속된다면 그 변모는 철저히 소로적이란다. 그 시간을, 날을, 삶 전체를 고양시킨단다. 물론 우리가 선불교에 통달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기분 좋을 때 시도는 한단다. 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것이란다.

 

이제 우리는 다소 곤란한 지점에 다다랐단다. 이 지점에서 일부 독자들은 신성한 육체노동에 대한 우리의 찬양에 제발 허풍 떨지 말라고 외칠지도 모른단다. 경우에 따라 육체노동이 특수한 상황이나 제도적인 문제로 인해 절대적으로 가혹하고 대체로 무의미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란다. 존의 할아버지 얼은 1950년대에 여성 스타킹을 염색하는 작은 차고 크기의 "공장"을 운영했단다. 얼은 날마다 화학 물질에 화상을 입었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술을 마셨으며 56세에 간경화로 사망했단다. 소로 시대의 주철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타 올랐으며 종종 육체 노동자들을 산 채로 태워 죽였단다.(우리는 이것을 "기계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많은 주철소 노동자들이 굉장히 격력하고 숙련된 방식으로 몸을 썼기 때문이란다) 요점은,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되지 않은 육체노동의 경우 초월적인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의미 있는 경험이라고 느끼기조차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이란다. 

그뿐 아니라 육체노동에는 또 다른 함정이 있는데 이 얘기를 하려면 존의 어머니 베키 얘기로 돌아가야 한단다. 베키는 육체노동이 몸을 축낸다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었지만 그저 무시해 버렸단다. 여름의 열기 아래에서 흙 속에 손을 파묻고 있다 보면 손에 습진이 생겼고 물집이 맨팔을 타고 올라가 두 볼에까지 돋아났단다. 베키는 계속 정원 일을 했단다. 수십 년 동안, 8월의 어느 무더웠던 하루, 64세였던 베키는 정원에서 5시간 동안 일을 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단다. 아침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정원으로 나가기 전에 커피 한 잔을 마셨을 뿐이었단다. 베키에게 정원 노동은 그만큼 몰입이 됐거나 그만큼 주의를 빼앗았거나 그만큼 의미 있었단다(정확히 어느 쪽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단다). 어쨌거나 베키는 집에 들어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고 흙과 교감한 뚜렷한 흔적을 물에 씼었단다. 샤워를 끝내고 나온 베키는 정신을 잃고 타일 바닥 위로 넘어져 머리를 무딪혔고 그 결과 턱뼈가 부러지고 망막이 박리되었으며 앞으로 여러 번 재발하게 될 뇌졸중을 처음으로 경험했단다. 이제 70대가 된 베키는 요양시설에 살고 있으며 보행기를 이용해 능숙하게 움직인단다. 아들은 면회를 갈 때마다 바보 같아 보이는 질문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단다.

"엄마, 왜 그렇게 손으로 다 하셨어요?"

하지만 묻지 않는단다. 대답은 이상하리만치 명확하기 때문이란다. 베키는 여전히 정원 일 하는 꿈만 꾼단다.

 

4

기술 발전과 일

 

노동자들은 기계 이외의 무언가가 될 시간이 없다. 더 높은 목표를 고려하고 그 목표를 향해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할 시간도 에너지도 힘도 남아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육체노동이 점차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기술은 머지않아 육체노동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며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한단다. 우리 후손들에게 육체노동은 취미 활동이 될 것이란다. 친구들과 아케아 가구를 조립하는 일처럼 필수적인 행위가 아니라 즐거운 놀이 말이다. 기계는 우리를 노동과 고통, 고난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란다. 솔직히 말해서 손으로 더루은 그릇을 씻거나 펌프로 물을 끌어 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굳이 불을 피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고통스러운 벽난로가 있다고 해도? 시신을 염하거나 하수구를 점검하고 싶어 하는 사람, 감자 껍질을 깎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이 모든 고역과 불편을 끝낼 방도가 있을 거란다. 노동에 관한 소로의 철학이 나온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약속이 있었단다.

 

"동료 시민 여러분! 10년 안에 낙원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낙원에서는 누구든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벌지 않아도 인간이 바라는 모든 것을 다 갖고도 남을 것입니다. 자연의 모습이 옽농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변모할 것이며 사람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호사를 부리며 지극히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아주 웅장한 궁전에 살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든 일하지 않고 지금까지 수천 년이 걸렸던 일들을 1년 만에 해낼 것입니다. 산을 평평하게 하고 계곡에 물을 채우고 호수를 만들고 호수와 늪에서 물을 빼고 온 사방의 땅을 아름다운 운하로 수놓을 것입니다. 수만 톤의 무거운 짐을 나을 수 있는 도로를 건설하고 1000여 마일을 24시간 안에 이동할 것입니다. 바다는 부유하는 섬으로 뒤덮일 것입니다. 완벽하게 안전하고 지극히 안락하고 호화로운 이 섬들은 막대한 힘과 속도를 가지고 원하는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며 거기에는 정원과 궁전, 수천 세대가 거주할 공간, 그리고 단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을 것입니다. 낙원에서 사람들은 지구의 내부도 탐험할 수 있을 것이며 남극과 북극으로 이동하는데 2주밖에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들어 보지도 못한 방법으로 세상에 대한 지식을 늘릴 수 있을 것이고 그 결과 지성도 발절할 것입니다. 끝없는 행복의 삶, 아직 알려지지 않은 즐거움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인류를 괴롭혔던 거의 모든 불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며 죽음은 어찌할 수 없겠지만 인간의 생의 길이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고 죽음은 마침내 덜 고통스러워질 것입니다. 이처럼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우월한, 새로운 세상을 즐기며 살 수 있으며 더 높은 존재의 단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정말 화려하기 그지없는 어불성설 아닌가? 10년 안에 마침내 낙원이 온다니. 이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토목 공학자이자 발명가이자 작가인 존 아돌푸스 에츨러의 눈부신 약속으로, 그가 그린 낙원은 1833년 겸손한 제목을 달고 책으로 출간되었단다. <<모든 인간이 노동 없이 자연과 기계의 힘에 의해 가닿을 수 있는 낙원에 대하여: 모든 지식인에게 고함 - 총 2부>> 기술 역사학자 데이비드 F. 노블의 말에 따르면 "에츨러의 에덴"은 사회주의, 미국 복음주의, 기술 관료주의에서 빌려온 관념이 뒤섞인 지구상의 낙원을 위한 설계도란다. 모든 걸 낙원화하기 위해 에츨러는 단지 약간의 유동성과 약간의 현금 주입이 필요했단다. 동정심에 지갑을 열어 줄 사람을 찾아 원대한 구상을 떠벌리는 사람은 많지만 이 방면에서 에츨러를 따라올 자는 단연코 없었단다.

이상향을 좇는 공상가, 모험가의 말로가 대개 그렇듯 에츨러의 이야기도 남아메리카의 열대 지방에서 끝을 맺었단다. 1840년대에 에츨러와 추종자들은 남쪽 열대 지방에 에츨러식 공동체를 세우고 1844년 출간된 <<모든 민족 모든 계급의 향상을 위한 열대 세계로의 이주>>를 토대로 삼았단다. 기계가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는 이상적인 세계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겸허한 제안서였단다. 그러나 에츨러의 구상은 처참하게 무너졌단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추종자 일부가 사망했고 나므지 추종자들은 달등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단다. 에츨러는 죽지 않고 낙원의 상실을 목격했으며 이게 우리가 아는 에츨러의 마지막이란다. 그 시점에서 에츨러는 역사에서 모습을 감춘단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에츨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연감을 주었단다. 아니, 반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거란다. 소로의 스승이자 친구 에머슨이 에츨러의 <<모둔 인간이 가닿을 수 있는 낙원에 대하여>>를 선물햇단다. 에머슨은 기계 작업의 증가가 육체노동을, 더 중요하게는 육체노동자를 쓸모업쇼게 만들까 봐 우려했단다. 소로는 에츨러의 논리에 조금도 설득당하지 않았단다. 기술을 만병통치약으로 보는 시각에 대한 소로의 가장 강력한 (그리고 유쾌한) 비판이 바로 <되찾은 낙원>이란다. 이 수필은 불쌍한 에츨러와 그가 그린 낙원에 대한 풍자란다(오늘날 같으면 에츨러의 책은 '10년 속성 워라밸 찾기' 같은 제목을 달고 나왔을지도 모른단다).

소로는 에츨러의 과장된 표현과 간절한 호소가 담긴 문체를 흉내 내서 이렇게 썼단다. "자연에 국복하지 맙시다. 구름을 단속하고 폭풍을 제지할 것입니다. 전염성이 있는 날숨은 병에 담아 가두고 땅을 파 지진을 캐낼 것입니다. 위험한 기체는 내보낼 것입니다. 화산은 속을 싹 도려내 버리고 독성을 뽑아내고 씨앗을 말려 버릴 것입니다. 물은 씻고 불은 데우고 얼음은 식힐 것이며 지구에는 지지대를 설치할 것입니다. 새에게는 비행을, 물고기에게는 헤엄을, 반추 동물에게는 되새김질을 가르칠 것입니다. 당장 이러한 것들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소로식 풍자의 극치란다.

에츨러의 이상향은 소로에게는 황당무계한 궤변일 뿐이었단다. 우리가 인류세에 살고 있을지 몰라도 이것은 자연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굴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더 중요하게는 자연이 인간의 편견에 따르는 것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고 소로는 되풀이해서 암시하고 있단다. 21세기에 인기를 얻은 인류세라는 말은 인간이 기술을 통해 근본적으로 세계를 바꾸기 시작한 시대를 칭한단다. 인류세에서 기계, 문화, 자연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단다. 소로는 에츨러의 오만 가득한 미래상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단다. 기계들의 시대가 온다는 에츨러의 약속은 좋게 봐도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단다. 하지만 기술과 사회가 그런 식으로 결합된 세상이 실현 가능하다고 한들 소로는 이렇게 물을 것이란다. 일일이 제대로 따져 본다면, 그런 세상은 인간에게 행복일까 불행일까?

 

기술로 실현하는 유토피아를 반대하고 노골적으로 비웃었던 소로는 대세에 역행하고 있었단다. 에츨러는 현대 기술을 이용해 신들의 불을 탐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단다. 고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에 대한 꿈은 수천 년간 인류를 고무하고 괴롭혔단다. 창세기에 따르면 "태초에" 우리는 완벽한 동산에 살았고 거기에는 알람 시계도 청구서도 마감일도 없었단다. 우리에게는 필요한 모든 게 있었단다. 우리는 물론 유일한 계약 조건을 어김으로써 이 안락한 복리 후생 정책을 망쳐버렸단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 벌은 고된 노동이었단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고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라.

 

때때로 노동은 정말로 신의 저주처럼 느껴진단다. 유서 깊은 노동 혐오를 이 기원 설화처럼 인상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는 또 없을 거란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나가 떨어지는 하늘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꿈꾸는 것은 놀랍지 않단다. "젖과 꿀"이 최소한의 육체노동을 의미한다면 말이다. 중세 신화에는 "노동"이나 "결핍"이 아무 의미를 갖지 않는 코케인이라는 땅이 나온단다. 코케인에서는 잠을 많이 잘수록 많이 벌 수 있단다. 일을 하면 체포된단다(누가 체포하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체포하는 사람도 일을 한 죄로 체포되어야 할 것이란다). 중세 네덜란드 문학 연구자인 헤르만 플레이는 윤리적으로나 영양학적으로나 문제가 많기는 해도 양 만큼은 넉넉한 코체인의 식단을 이렇게 묘사한단다. "구워진 돼지가...등에 칼이 꽂힌 채 돌아다니고(자르기 쉽도록) 지붕은 커스터드 파이, 울타리는 소시지이며 잘 익은 거위가 뒤뚱거리고 제비구이가 입안으로 날아 들어온다" 코케인은 중세 농민에게 천국이었단다. 된서리가 내려 농사를 망친 밀밭을 우울한 얼굴로 바로보던 중세의 소작농은 주저앉아 한숨을 쉬고는 코케인에 대한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를 달랬을지 모른단다. 

하지만 1830년대 산업 혁명의 대두는 중세 노동자들이 부르던 이러한 자기 기만적인 노래를 현실로 만들고 있었단다. 기술과 산업의 기계화는 머지않아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듯했단다. 하지만 로웰의 공장 단지에서 15마일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소로는 상황를 좀 달리, 아니 많이 다르게 보고 있었단다. 매사추세츠대학 코번 홀에는 대공항 시기에 (공장사업 진흥국에 고용된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가 있는데 이 벽화가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단다. 공장의 방빅 기계 앞에 앉은 여성의 모습을 부드러운 색조로 그렸는데(아마도 에츨러의 상상에 부합할 것 같은 모습이란다) 그 밑에는 이런 침울한 문구가 있단다. "매일 나는 방직기 앞에 서 있다. 북은 날개가 돋친듯 빠르게 오간다." 삽이나 갈퀴 같은 도구도 기술의 일종이란다. 도구를 어디에 스고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지는 나에게 달려 있단다. 그러나 산업 혁명의 태동과 함께 찾아온 대규모의 기계 노동은 이를 바꾸어 놓았단다. 기술은 이제 생산의 목적과 수단을 결정했고 자연이 모습과 힘을 제한했으며 소로가 가장 사랑했던 것, 즉 인간의 자유를 빼앗아 갔단다. 

이제 20세기로 빨리 감기를 해 보잔다. 기계 노동의 비인간성에 대한 소로의 경고에도 후대의 사람들은 코케인에 대한 설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계가 가져올 발전에 대한 노래에 현혹되었단다. <빅 록 캔디 마운틴>같은 노래들이 나왔고 이곳에는 "고깃국 호수와 위스키 오수가 있어 커다란 카누를 타고 노를 저어 다닐 수 있다". 그곳에 중노동은 없단다. "자루가 짧은 삽도 없고, 도끼도, 곡괭이, 톱도 없다." 그리고 이 노래가 제공하는 중요한 카타르시스로 말할 것 같으면 빅 록 캔디 마운틴은 "노동을 발명한 못된 놈을 목매단 곳"이란다. 대공황 시기나 황진 시기(1930년대에 극심한 노래 폭풍 때문에 미국 일부 지역이 큰 어려움을 겪었단다) 노동자들은 굶주리는 와중에도 중세의 농부들처럼 <빅 록 캔디 마운티>을 부르면서 다소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단다.

오늘날 코케인과 빅 록 캔디 마운틴은 인공 지능, 가상 현실, 양자 컴퓨터, 나노 기술, 바이오 기술을 비롯해 과학 노동이 가저져다준 열매가 약속하고 있는 전망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단다. 우리 시대의 제비구이는 드론이 배달할 것이며(입안으로 직행할지도 모른단다!) 우리의 커다란 카누는 지하에 있는 3D 프린터가 찍어낼 것이란다. 노동 없는 삶에 대한 우리의 꿈은 디지털이 되었단다. 우리는 로봇이 짐을 대신 지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동시에 두려워한단다. 바로 이 순간ㅌ에도 수백 구의 시신이 얼음 과자처럼 냉동 상태로 있단다. 의료 과학이 죽음을 정복하는 순간 부활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거란다.

기계로 이루는 기적에 대한 이 같은 집착은 매우 솔직하고 멀쩡한 바람에서 나온단다. 우리 모두는 잠에서 깨어 진정으로 자유로운 하루를 맞이하길 바란단다. 불가피한 노동을 그만두고 궁극적인 퇴직을 원한단다. 소로 역시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바로 그것을 원했단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코케인에서 맞이하는 둘째 날, 혹은 빅 록 캔디 마운틴에서 맞이하는 둘때 달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졌단다. 제비구이를 실컷 먹고 위스키 호수에서 커다란 카누를 저어 간 다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일단 위스키로 인한 숙취가 심하겠지만 그다음에 말이다.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무엇을 위한 휴가이고 은퇴인가? 낙원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길 바란단다. 친구인 해리슨 그레이 오티스 블레이크에게 보내는 편지에 소로가 이렇게 썼음을 상기하잔다. "부지런한 게 다가 아닙니다. 개미도 부지런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반대의 경우에는 해당된단다. "은퇴가 다가 아니다. 무엇을 향하여 은퇴하는가?"

소로는 러다이트 운동가는 아니었단다(러다이트 운동가들도 엄밀히 말하면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러다이트 운동가"가 아니었단다. 실제로는 기술 자체를 반대했다기보다는 더 나은 노동 여건을 위해 투쟁한 성실한 노동자들이었단다). 소로가 공장에서 불 폭탄을 터뜨렸다거나 기차를 탈선시켰다는 증거는 없단다. 하지만 철에 따라 아동하는 물고기인 미국 청어를 위해 빌레리카댐에 쇠지레를 갖다 대는 공상에 빠져 본 적은 있단다. <<콩코드와 멕리맥각에서의 일주일>>에서 소로는 이렇게 애통해한단다. "불쌍한 청어야! 누가 네 억울함을 알아줄까? 칼을 들지도 않았고 전기 충격도 가할 수 없는 청어닐 뿐인 너는 다만 순수함과 정당한 목적만으로 무장한 채 연약하고 말 없는 입을 내밀고 쉬이 떨어지는 비늘을 달고 앞으로만 가는구나. 적어도 나는 네 편이다. 빌레리카댐에 쇠지레를 갖다 대면 소용이 있을지 누가 알랴?"

소로는 기계가 주는 혜택을 잘 알고 있었단다. 연필통 흑연을 좀 더 고품질로 생산하기 위한 기계를 발명하기도 했단다. 기차도 탔단다. 보다 안정적인 자유를 향해 북쪽으로 향하는 탈주 노예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기 위해서였단다. 소로가 의심한 것은 기술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었단다. 무엇보다 소로 시대 노동자들의 삶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기적인 절차가 아닌 기계적인 절차에 부합하도록 강요당했단다. 기계 노동을 한다는 말은 기계와 닮은 삶을 산다는 의미였단다. 기계는 휴식도 여가도 필요 없고 일터 바깥의 삶도 없단다. 기계는 이상적인 노동자란다. 인간에 불과한 모든 노동자들은 기계의 완벽한 생산성에 미칠 수가 없단다. 기계를 이상화하면 대개 근로자의 인간성이 그 대가로 치른단다. 노동자들은 "기계 이외의 무언가가 될 시간이 없다"고 소로는 불만을 토로했단다. 더 높은 목표를 고려하고 그 목표를 향해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할 시간도 에너지도 힘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단다.

 

지난여름 산기슭에서 개 한 마리 보았다. 어느 농부의 가족이 먹을 버터를 만드는 개였다. 개는 수평 바퀴 위로 돌면서 우유를 젓고 있었다. 눈에는 염증이 있었고 기침도 심각한 데다 기운도 빠져 보였지만 농부 가족은 빵에 버터를 바를 수 있었으리라.

 

상상력의 소산이기를 바랄 뿐인 이 장치는 결국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수많은 신기술을 설명하는 비유란다. 그렇다. 우리는 어떤 힘도 들이지 않고 빵에 버터를 바를 수 있단다. 경축할 일이란다. 하지만 기계의 중심에는 고통 받는 개 한 마리가 있단다.

 

이제 현 상황으로 돌아오잔다.

소로와 에츨러의 시대 이후 기술은 급격히 발전했단다. 에츨러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도구가 이제는 우리의 바쁜 삶에 빠릴 수 없는 무미건조한 구성 요소일 뿐이란다. 이 모든 기술적 발전이 충분하다고 여겨지는지? 나와 내가 사람하는 사람들이 소로보다 더 낙원에 근접해 있다고 생각되는지?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을 거란다. 하지마 우리도 우리의 짐작이 틀렸기를 바란단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거란다. "좋아, 그렇다면 스마트폰도 기부하고 스마트TV도 환불하라는 말인가? 스마트 냉장고도 팔고? 별로 스마트하지 않은 행동 같은데." 구글에서 아마시 공동체의 생활 방식을 이미지 검색 중인 사람도 있을 거란다. "소로가 목 수염을 기른 걸 보아하니 약간아미시 같다"는 미심쩍은 생각에 이런저런 단서를 연결하고 있을지 모른단다. 그렇다면 아미시 공동체를 재평가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단다. 진심이란다. 소로와 같은 철학자들은 언제나 다시 생각해 보라고. 급진적인 시각을 가져보라고 우릴 부추겨 왔단다. "명백히 틀린" 혹은 "어느 모로 보나 지나치게 튀는" 사람들의 말을 관대한 마음으로 들어 보라고 말이다.

감리교, 인상파, 서프러제트 같은 명칭이 원래 그 무리를 비하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었듯이 "아미시"라는 꼬리표 또한 처음에는 멸칭이었다가 점점 중립적인, 대체로 중립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단다. 이 기독교 전통주의 공동체는 스스로 "소박한 사람들"이라고 칭하기도 한단다. 옷과 집, 노동을 단순하게 유지하는 데 몰두하는 공동체에 어울리는 이름이란다. 소로의 가르침, "간소하고 또 간소하게"를 이들처럼 오래 지속적이고 의식적으로 실천한 무리는 역사상 또 없을 거란다.

하지만 여느 무리와 다름없이 이 공동체에도 상당한 다양성이 있단다. 구체제 아미시, 비치 아미시, 신체제 아미시 등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 있다면 성서의 인도를 받은 원칙과 실천의 삶이며 모든 이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단다. 보다 높은 권위에 나를 맡김의 원칙은 삶의 발향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란다.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이 나를 다스릴 거란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것을 알라." 시편 46장 10절이란다. 이런 침묵과 고요, 신뢰는 평화주의, 겸손, 그리고 물론 노동에 대한 아미시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드러난단다. 노동은 가족 공동체에게 이로워야 한단다. 이것이 노동의 목적에 대한 아미시의 명확한 입장이며 기술에 대해서도 그들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단다. 

일부 아미시 공동체들은 전화를 허용하지만 절대로 집에 놓지는 않는단다. 비교적 편리한 공용 공간에 전화를 두는 경우는 드물지 않단다. 전화벨 소리가 평화로운 가정생활을 침범해서는 안 되며 대화는 언제나 얼굴을 맞대고 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단다. 저자들은 최근에 조시라는 철학자에게 이메일을 받았는데, 그가 쓴 추신은 얼굴과 목소리, 몸이 빠진 소통의 문제를 잘 포착하고 있었단다. "단어가 우리의 의도를 잘 전달하지 못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말투가 불손하거나 무례하거나 냉담하거나 무신경하게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렇다면 사과드립니다. 분석 철학 공부만 해서 이 방면으로 영 능력이 없습니다."

조시는 진정한 소통이란 극히 취약하며 기술적으로 진보한 "연결" 방식이 종종 우리를 현실로부터 표류하게 만들고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는 매우 소로적인 (그리고 아미시적인) 통찰을 어쩐지 깨닫고 있는 것 같단다. 기술은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해 준단다. 식료품점의 셀프 계산대를 떠올려 보잔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작은 초밥 그릇들이 놓인 회전 초밥집도 그렇단다. 웨이트를 상대해야 하는 사회적인 껄끄러움이 없단다. 형식적으로는 저녁 식사 자리에 모여 있지만 갖자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말없이 훑어보는 가족의 모습도 마찬가지란다. 바로 이것이 MIT 사회학자 셰리 터클이 저서 <<외로워지는 사람들>>에서 말하는 기술로 인한 단절이란다. 우리는 점점 함께 외로워지고 있단다. '나는 네가 필요 없어'는 '너는 내가 필요 없어'가 된단다. 아무도 누군가를 필요료 하지 않는단다. 

소로는 이미 한 세기 반 전에 이 문제를 고민했단다. "우리는 메인주에서 텍사스주까지 전신을 연결하려고 안달이지만 메인과 텍사스는 서로 긴히 전달해야 할 내용이 없을 수도 있다....주 목적은 빠른 소통이 아니라 분별 있는 소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초고속 통신의 의미 있는 교감인 경우는 드물단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타인과 기하급수적으로 더 연결되어 있지만 다른 의미에서 그것은 단지 공허한 연결로 이루어진 구름일 뿐일지 모른단다. 

이런 단절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저서 <<끊어진 연결>>에서 우울감을 본격적으로 파고든 요한 하리에 따르면 단절은 깊은 해를 입힌단다. "우리는 부품이 고장난 기계가 아니다.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통물이다. 우리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행복이 돈과 소비에서 온다는, 평생 귀가 아프게 들어 온 쓰레기 같은 가치관이 아니라 뜻깊은 가치관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뜻깊은 일이 필요하다. 자연 세계가 필요하다. 존중 받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미래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과의 연결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렇다면 아미시 공동체 사람들은 우리보다 행복할까? 사실 알 수 없단다. 하지만 소로는 <<월든>>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한단다. "우리의 신기술은 진지한 주제로부터 주의를 빼앗아 가는 근사한 장난감 같은 것이다. 발전 없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발전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주의를 빼앗긴 우리는 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어느 온라인 해설자는 한 인구 집단의 행복이나 지속적인 만족도를 판단하려는 시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단다. "이 분야에는 온갖 상충하는 데이터가 난무한다. 방법론도 자끄ㅜ 변하고 조사 연구는 재현이 불가한 경우도 허다하다." 한 집단의 삶의 만족도를 측정하는 것은 복잡한 사회학적 과제이며 사회 과학 분야에서 지금까지 나온 여러 연구 결과들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이른바 재현의 위기를 피해 갈 수 없단다. 아미시 사람들도 당연히 그들만으 문제가 있단다. 아주 심각한 문제들도 있단다. (가령 치료 시기를 놓친 충치 문제라든가 아미시 공동체가 운영하는 강아지 번식장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는 점이라든가) 하지만 아미시 공동체는 우리로 하여금 잠시 멈추어 서서 <<월든>>의 지혜를 다시금 평가해 볼 기회를 준단다. 

소로는 아미시 공동체의 간소한 생활 방식을 칭송했을 거란다. 소로는 평화주의자도 아니었고 기독교인도 아니었단다. 동물에게 잔인하게 굴지도 않았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갸야겠단다. 그래도 소르는 우리 현대 사회의 교류 방식(그리고 기계를 통해 고통과 폭력을 가하는 공장식 축산의 형태로 드러나는 우리의 만연한 잔인성)보다는 아미시 공동체의 방식이 더 낫다고 인정할 거란다. 소로는 아미시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거란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듯이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사람이니라." 

 

듣기 거북할지 몰라도 현대 사회에서 기계화된 작업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아주 심하게 병들어 있단다. 소로가 세상을 떠난 1862년 리처드 조건 개틀링은 개틀링 건을 발명했단다. 개틀링 건은 손으로 작동하는 기관총으로 안정성과 효율성의 문제, 장전, 연속 발사의 문제를 최초로 해결했단다. 개틀링은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남북 전쟁, 그리고 이후 이어진 모든 주요 무력 충돌에서 무수한 사상자를 발생ㅅ히키는 가공할 문제를 초래했단다. 소로는 반전 운동가는 아니었지만 군사 분야에서의 혁신, 진보된 살상 기술의 도입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을 거란다. <<월든>>에서 현대적 기술 혁신에 대해 "발전 없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발전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염려했을 때 소로는 다름 아닌 개틀링이 만들어 낸 상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란다. 

달리 말하자면 특정한 기술 발전은 특정한 노통 형태, 가령 병역을 더욱 수월하게 하고 그 기술의 놀라운 편리함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과연 올바른지 판단하는 어려운 과제를 회피할 수 있단다. 개틀링 건을 쓰기 시작한 병사들은 그것을 써도 되는지 물을 필요가 조금도 없었단다. 상대를 더 많이 죽이고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만이었단다. 더 이상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단다. 어떤 기술이 발명되어 판도라의 상자 밖으로 나오고 나면 합리적이고 윤리적이며 인도적인 제한을 두기는 극도로 어렵단다.

개틀링 건의 사례가 너무 고루하며 기계화된 노동의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고 보는 시선도 있을 거란다.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단다. 2019년 미국 국방부는 무인기와 관련 기술에 약 90억 달러(10조 원 이상)를 지출했단다. 그 돈이면 헌책방에서 <<월든>>을 40억 권은 족히 살 수 있단다. 물론 이런 무인기 다수에는 무기가 탑재되어 있지 않지만 이미 충분한 숫자의 무인기가 무장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소로였다면 기술 기반의 전쟁이 불러올 도덕적 해이에 대해 걱정했을 거란다. 도덕적으로 몹시 의심스러운 목절을 위한 매우 발전된 수단이기 때문이란다. 자율 주행 무인기, 아니 자율 주행 기술 전반에 대해서 소로는 무엇보다 도덕적 자율성의 결여를 문제 삼았을 거란다. 도덕적 자율성이라는 특별한 능력이 없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기계의 끔찍한 살상 능력은 한 가지 문제에 불과하단다. 또 다른 문제는 기술이 가져오는 좀 더 사소하고 일상적인 피로감이란다. 얼굴도 도덕 관념도 없는 기계는 끊이지 않는 자동 전화, 스팸 이메일, 알고리즘에 따라 보이는 맞춤 광고, 두뇌가 없는 "고객 센터" 챗봇, 자동 부과 수수료, 개인 정보 유출 등의 형태로 나타난단다. 온 사방에 있는 이런 기계를 다루는 능력은 대부분의 일터를 비롯해 일상의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이란다. 여기서 오는 펼리함과 불편함의 총합을 내 보잔다. 익일 배송은 플러스, 신분 동용은 마이너스, 친구나 가족과 소통할 수 있는 인스턴트 메신저는 플러스, 성범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어린이에게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비밀리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마이너스, 솔직히 따져본다면 자명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거란다. 총 합계가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게다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알 수 없단다. 옥스퍼드에서 기술 철학을 연구하는 닉 보스트롬은 심각한 질존적 위험이 우리의 앞길에 도사리고 있으며 특히 인공 지능이 위험하다고 경고한단다. 낙원은 악화일로를 걷는 경향이 있단다. 

물론 "기술"은 범주가 너무 넓어서 진지하게 찬성하거나 반대한다고 말하기 힘들단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술은 단지 도구일 뿐이란다. 상당한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이 도구를 사용하고 잇을 뿐이란다. 심지어 의도된 불확실성일 때도 있단다. 인생의 온갖 복잡한 기술적 문제들 앞에서 우리 대다수는 절망하여 두 손을 들고 미래에 대한 모든 책임을 포기했단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잊기 위한 방법으로 대자연 속으로 피난을 간단다. 모든 상황에 철저히 대비하고자 파스타 프리마베라를 동결 건조해서 쟁여 둔단다. 자포자기  상태의 마음은 이렇게 말한단다. "죽으면 죽는 거지 뭐." 하지만 소로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었단다. 

 

야생에는 세상의 구원이 있다.

 

소로는 세상에서 손을 떼는 대신 세상의 구원으로 눈을 돌렸단다. 에츨러의 장미빛 세상은 도가 지나쳤지만 적어도 그는 더 나은 세상을 목표로 했고, 희생을 감수했단다. 눈 위에 느러누워 죽기를 택하지 않았단다. 이제 우릴 구원할 방법은 묵인이 아닌, 우리가 도달하려는 목적에 대해 다시 새로운 책임감을 갖는 것이란다. 

소로는 최대의 편의와 쾌락의 추구를 목표로 삼았다는 사실이 에츨러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단다. 소로의 눈에 테크노 유토피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진부하고 단조로운 도취감이라는 "잘전 없는 목적"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였단다(타인의 우위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데서오는 도취감일 수도 있단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절정에 이른 데서 오는 감각이 아니란다. 소로는 기술적인 수단으로 도달하는 천국이 엄밀히 말해서 천국 같으리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단다. 우리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를 달성한다면 우리는 유토피아적인 삶을 살게 될 거란다. 하지만 이것은 별 의미 없는 인정이며 단어의 반복, 소리와 메아리의 반복일 뿐이란다. 소로는 "인간이 자연의 단순한 힘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면 그곳은 건전한 낙원이 될 것"임을 인정한ㄷ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구는 "제대로 관리"란다. 어떻게 자연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까?

스티븐 호킹이 과학 공식에 대해 물었던 질문을 우리는 유토피아를 위한 공식에 대해 물어야 한단다. "무엇이 공식에 불기운을 불어넣고 그 공식이 설명해 줄 우주를 빚어내는가?" 우리가 피스톤과 전구, 테슬라 코일, 태양광 패널, 드론, 전자레인지. 스마트폰을 배치하고 도 재배치할 때 거기에 선善을 불어넣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무엇이 이 모든 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가? 왜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소로는 모든 이상향에 대한 갈망에 불기운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사랑은 바람이고 밀물과 썰물이며 파도이고 햇볕이다. 그 힘은 계산이 불가능하다. 그 마력은 엄청나다. 결코 멈추지 ㅇ낳으며 절대로 쳐지지 않는다. 쉴 곳이 없어도 지구를 움직일 수 있다. 불이 없어도 온기를 줄 수 있으며 고기가 없어도 먹일 수 있다. 옷이 없어도 입힐 수 있고 지붕이 없어도 비바람을 막을 수 있다. 사랑 안에 낙원이 있?으면 사랑 밖의 낙원은 필요가 없다.

 

사랑이 있으면 낙원이 있단다. 사람이 없으면 낙원이 없단다. 사랑은 "모든 성공적인 사회저 기계의 동력이다". 사랑은 모든 유토피아의 전제 조건이란다. "천사가 가는 곳은 항상 낙원이지만 사탄이 가는 곳은 온통 불타는 흙과 재뿐이다" 이런 사랑 찬가가 에츨러의 기술 찬양만큼이나 터무니없게 들릴지 몰라도 우리의 한정되 에너지를 에츨러의 이상향 같은 데 빼앗기면 우리가 매일 함께 행하는 보다 혈실적인 일에 에너지를 슬 수 없다고 우려했던 소로의 생각만큼은 옳단다. 

물론 기술적으로 우리는 차츰차츰 위로 또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란다. 태양계 밖으로, 그 어떤 생물종도 가 본 적 없는 곳으로 용감하게 나아갈 수 있을 거란다. 하지만 우리의 노동을 가치 있게 만들고 오늘 우리의 삶을 눈부신 미래 세대를 위한 디딤돌 이사의 것으로 만들어 주는 마음의 노력을 잊으면 안 된단다. 지금 우리는 이 근본적인 노력을 소홀히 하고 있단다. "기계적인 힘이 아직 물리적인 세상의 힘을 충분히, 광범위하게 이용해 이상향을 만드는 데 쓰지 못하듯 사랑의 힘도 아직 빈약하고 인색하게 쓰일 뿐이다. 구빈원, 병원, 성서 공회 등의 기계가 특허를 얻었지만 아직 사랑의 무한한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으며 이따금 이런 조직 위로 불어 내려온다" 기계가 사랑에 근거한 도덕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 인공 지능이 진정한 도덕적 지혜와 풍부한 감정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내적인 진보, 좀 더 어려운 종류의 진보를 위한 행진을 계속해야 한단다.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달리 사랑은 이처럼 꽤나 실용적이란다. 소로는 우리가 사랑의 공방에서 너무 게으른 것은 아닌지 우려한단다. "우리는 사랑의 힘을 축척하여 앞날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행동할 준비를 하는 데는 더욱 소홀하다. 그렇다면 이 일에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는가?"

또 다른 미국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소로가 세상을 떠나고 반세기 이후 집필한 강연 원고 <실용주의와 상식>에서 우리의 기본적인 문제를 명시했단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고자 보다시피 악몽 같은 비유를 이용했단다. 좀 길지만 인용할 만하단다. 

 

갈릴레오는 우리에게 정확한 시계와 정확한 포격 기술을 주었다. 화학자들은 새로운 약품과 염료를 홍수처럼 쏟아 낸다. 암페어와 패러데이는 우리에게 뉴욕 지하철과 마르코니 무선 전신을 하사했다....과학적 사고가 우리의 손안에 새로이 쥐여 준 자연에 대한 실질적 통제력의 규모는 우리가 과거 상식에 기반해 발휘했던 옛 통제력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 증가 속도는 점점 더 빨라져 누구도 한계를 추적할 수 없다. 인간 존재가 자기 힘에 의해 짓밟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길 법도 하다. 인간이 지성으로 인해 점점 더 놀라운 기능을 수행하게 되고, 거의 신적인 창조력을 행사하게 되면 인간의 불변하는 생물적 본성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지 않을까 우려할 만하다. 인간은 마치 물을 틀어 놓고 잠글 줄은 모르는 욕소 속 아이처럼 풍요 속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크게 경종을 울릴 수는 없을 것이란다. 에덴, 코케인, 빅 록 캔디 마운틴과 같은 자유로운 놀이와 휴식에 대한 유치한 환상은 욕조가 너무 빨리 차면 우리와 함께 죽고 말 것이란다. 제임스의 비유가 시사하듯, 소로가 우리에게 요청하듯 우리는 (무엇보다 사랑에 관하여) 성숙해져야 하고 서둘러여 한단다. 

 

5

농담과 일

 

어두운 농담은 종종 좀 더 깊은 진심으로 가는 열쇠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나의 고통, 내 삶의 어둡고 불분명한 불협화음에 더 솔직하게 다가가게 해 준다.

 

이상적으로 근무일에는 중간중간 휴식 시간이 있어야 한단다. 너무 빨리 말라붙어 버리는 오아시스 같은 개인 시간 말이다. 기계와 일에 대한 장에서 의미 없는 노동에 대한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니 어무 갑작스러워서 여기서 잠깐 쉬고 가는 것도 괜찮겠단다. 막간을 이용히셔 일에 대한 소로의 좀 더 밝고 우스꽝스러운 생각들을 살펴보기로 하잔다.

일이 극히 고될 때, 어느 때보다 고생스럽고, 심한 소외감이 들고, 재촉이 빗발칠 때, 주변 사람들과 속직한 감정을 나누기 위해 우리는 암울한 농담이라고 주고받아야 한단다. 유독할 정도로 긍정적인 시각, 깐깐한 업무 태도, 그리고 근무 시간이라는 기이하고 힘겨운 제약에 얽매인 인간이라는 동물의 부자연스러운 처지 같은 것들을 타파하기 위해서 말이다. 소로는 실로 유머의 거장이었단다. 지병이었던 결핵과 마지막으로 싸우느라 죽음이 가까워 온 시점에 칼뱅교 교회를 다니던 루이자 고모가 소로에게 하나님과 화해했느냐고 물었단다. 소로는 "하나님과 싸운적 없다"며 싱거운 소리를 했단다. 

일터에 있으면 어떻게든 시간은 간단다. 그것 하나만은 확실하단다. 소로는 잠시라도 짬을 내서 그 모든 터무니없는 상황을 비웃음으로써 주어진 시간을 넉넉히 활요하곤 했단다. 시간이 우리를 죽이려 든다면 우리는 적어도 익살이나 부리며 시간을 죽일 수 있을 거란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란다. 그들 중 한 명은 몇 년 동안 소매점에서 일했는데 영원처럼 느껴진 고개 응대 업무 끝에,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독일 비관론자 아르투어 쇼페하우어의 명언을(사실은 쇼펜하우어의 말이 아니지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단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양쪽을 모두 피하라." 회사에서 던지는 우스갯소리 중에는 시시한 농담도 있고 어두운 농담도 있었지만 어쨌든 시간이 좀 더 빨리 가게 해 주었단다. "제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부르지 마세요." "여기서 일한 지 얼나나 되었나고요? 해고하겠다고 을러댈 때부터 일했으니까 이제..." 일이 끊임없이 몰려 들 때는 세련되지 못한 유머도 도움이 ㄷ횐단다. "사장님이 많 원 벌 때 나는 천 원을 벌지. 그래서 똥은 근무 시간에 싼다." 심지어 소로도 세련되지 못한 농담을 멀리하지 않았단다. 

소로는 장난꾸러기에 익살꾼, 말장난의 명수였단다. 마크 트웨인이 울고 갈 정도였지만 사하라 사막처럼 메마른 어조로 구사했기 때문에 가볍고 심지어 경박한 소로의 장난을 놓치는 사람이 많단다. 소로는 월드 호수의 퍽이었단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가져온 수식어를 쓰자면 퍽은 "영리하고 까불대는" 자연 속의 요정이란다. <<월든>>이 출간될 때 즈음 소로는 자신의 약점을 나열한 목록을 만들었는데 그 목록에 "언제나 솔직하지만은 않다" "말장난을 좋아하고 웃기려고 하며 성실하거나 강인하거나 관대하지 않을 때가 많다"고 적었단다. "웃기려고" 하는 소로의 모습은 <<월든>>의 첫 장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듯하단다. "붉은 허클베리와 모래 벚나무, 팽나무, 적송과 검정 물푸레나무, 백포도나무, 노랑제비꽃에 물을 주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건기에 시들었을 것이다." 소로는 콩코드의 숲에도 "물을 주었다". 모든 의미에서 희극적이란다.

소로는 웃을 줄 아는 진지함을 추구할 이유가 충분했단다. 이미 언급했지만 다시 한번 그 이유를 살펴보잔다. 어릴 때부터 한창때인 44세에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소로는 결핵을 앓았단다. 서른셋에 이미 치아가 없었단다. 그래서 19세기식 틀니를 맛보아야 했단다. 스물여섯에 소로는 실수로 산불을 내서 숲을 36만 평 넘게 태웠고 콩코드 사람들은 소로의 실수를 잊지 않았단다. 소로가 잊게 내버려주지도 않았단다. 스물넷에 소로의 형 존은 파상품으로 죽었단다. 1837년 스무살 소로는 하버드를 졸업했지만 "1837년 공황"도 같은 해에 찾아왔단다. 앞서 말한 이 불경기 때문에 대학을 갓 졸업한 소로가 얻을 수 있는 일자니는 적었고 조건도 별로였단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소로 인생의 저점을 되짚는 이유는 소로의 인생에 불행이 마치 양파처럼 겹을 이루고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란다. 눈물을 흘리며 한 겹을 벗기면 또 다른 한 겹이 나와 눈물샘을 자극한단다. 그러나 사람은 눈물 사이로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단다. 울다가 웃으면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보일 수 잇지만 때때로 나사를 죄다 빼고 안을 드러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란다. 일처에서라면 실컷 울거나 울다 웃지 않더라도 유머를 발휘할 수 있을 거란다. 유머를 통해 나사를 살짝 풀어서 우리 마음을 딱 필요한 만큼만 환기시킬 수 있단다. 농담은 예측 가능한 상황을 뒤흔들고 용인되지 않는 것을 용인하며 우리의 어둡고 괴로운 면면을 가볍게 다루면서 한바탕 신선한 무례를 범한단다.

같은 맥락에서 그들 친구 코너는 캘리포니아주 피놀레의 지역 방송국에서 일한 경험에 대해 들려주었단다. 미식축구 경기나 퍼레이드, 시 의회 회의 등 시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이었단다. 시 의회 히의 등 시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이었단다. 시 의회 회의가 가장 무미건조하고 따분했단다. "굉장히 오래 이어졌기 때문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코너는 기억한단다. "감독님이 일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 헤드셋을 통해 시 의원들에 대해 유치한 농담을 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 대신 절대로 웃어서는 안 됐죠. 정말 힘들었어요!" 코너는 이 놀이가 도덕적으로 미묘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단다. "못된 심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제대로 일하고 제대로 된 연상을 남는 데 도움이 됐어요. 우리가 졸거나 지루해지면 중요한 순간을 놓칠 수도 있고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발언을 검열해서 삭제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겠죠."

어두운 농담도 때로는 필요하단다. 물론 가장 신뢰하는 동료에게 속삭이며 농담을 건넬 때 우리는 직무상 품위 유지의 의무를 어겼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단다. 하지만 세상 모든 모순 가운데 어두운 농담은 가장 필수 불가결한 것일 수도 있단다. 우리의 불행한 행복이란다. 인간 생존의 역사 속에서 어두운 농담은 희망만큼이나 생존에 유익했을지 모른단다. 그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많은 인정과 칭찬을 받아 마땅하단다. 훌륭한 어두운 농담은 비상시에 요긴하단다. 비상 상황에서 특히 빛을 발하기 때문에 어두운 농담이라는 전통은 그 무엇보다 구성원이 많은 비밀 결사라고 할 수 있단다. 지금도 매 손간 은밀한 곳에서 수백만 겅의 입문 의식이 처러지고 있단다. 

처형을 앞둔 사람이나 굶주린 사람, 바다에 표류 중인 사람의 입에서 어두운 농담이 나오는 상상을 해 보잔다. 그런 상황에서는 희망이 부적절하고 심지어 잔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단다. 그러나 어두운 농담이 주는 "어두운" 고양감은 그렇지 않단다. 어두운 농담은 종종 좀 더 깊은 진심으로 가는 열쇠란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나의 고통, 내 삶의 어둡고 불분명한 불협화음에 더 솔직하게 다가가게 해 준단다. 똑딱거리며 우리 삶에 눈금을 긋고 있는 일터에 시계도 어쩌면 어두운 농담 같단다.

물론 어두운 농담을 할 때 지켜야 할 미묘한 윤리적인 선은 있단다. 하지만 어두운 농담을 악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장르 자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단다. 그래도 이 장르의 미래가 걱정되지는 않는단다. 어두운 농담은 비난받을수록 변모한단다. 어두운 농담에 주홍 글씨를 달면 더 어두워지고, 더 어두워질수록 풀어놓았을 때 더 큰 카타르시스를 준단다. 더 큰 카타르시스를 제공할수록 더 요긴해진단다. 송곳니를 닮은 글자 'k'가 들어 있는 "어두운 농담"이라는 말은 "애완용 코브라"와 같은 치명적 선善이란다. 인생에 대한 예방 접종으로서 인생이 분비하는 약간의 독액이라고 할 수 있겠단다. 

소로도 어두운 농담에 능했단다. 소로가 세상을 떠나고 3년 뒤 출간된 마지막 저서 <<케이프코드>>는 어둠으로 넘친단다. 이 책은 소로의 다른 저서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일기로 생을 시작했지만 이후 강연 원고로 만들어져 콩코드 라이시움(성이니에게 교육을 제공하자는 미국 라이시움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 라이시움이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자를 가르쳤던 곳인 리케리오에서 왔단다)에서 선보였단다. 소로의 케이프코드 강연 시리즈를 듣던 관객은 <<월든>>의 라이시움 강연 때와 마찬가지로 "눈물이 쑥 빠지게 웃었다"고 에머슨은 전했단다.

<난파>라는 상서로운 제목을 달고 있는 <<케이프코드>>의 첫 장에서 소로는 무뚝뚝하고 매우 어두운 도입부로 여행기의 분위기를 잡는단다. "우리는 1849년 10월 9일 화요일에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출발했다. 보스텅에 도착했을 때 전날 입항했어야 할 증기선 프로빈스타운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한 폭풍우 때문이었다. 거리에 뿌려진 전단에는 '죽음의 코하셋! 145명 사망'이라고 되어 있었다. 우리는 코하셋에 들르기로 했다."

코하셋에서 145명이 죽었다고? 거기로 가자. 소로의 섬뜩한 유머는 섬뜩한 오기심을 불러일으킨단다. 소로도 잘 알고 있단다. 소로의 여행기는 어느새 해안으로 밀려든, 해초에 엉키고 "모래로 가득 찬" 시신에 대한 기록으로 바뀐단다. 그야말로 처참한 광경이고 몹시 슬퍼할 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단다. 소로는 이 피해자들을 업신여기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찾으러 온 유족들을 비웃지 않는단다. 그러나 소로는 그들, 지켜보는 사람들, 이런 소식을 듣고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척 있지도 않은 슬픔을 꾸며 내는 사람들을 조롱한단다. 그 145명에 대한 그들의 "깊은 슬픔"은 1시간인 하루쯤 갈 뿐 그들은 어느새 산뜻한 마음으로 되돌아와 다음 비극을 맞이할 준비가 된단다. "진심 어린 애도"를 보내고는 흥겹게 가던 길을 가는 것이란다. 소로는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둘러싼 사회의 가식을 비웃게 만든단다. 오직 웃음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단다. 

<<케이프코드>>에서 소로는 어두운 유머를 이용해 미국 역사를, 신실한 청교도들이 "언덕 위에 도시"를 세우며 시작하는 미국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뿌리부터 해부한단다. 소로는 함께 여행 중이던 윌리엄 엘러리 채닝과 비바람이 치는 이스트햄 해안을 걸으며 "우산 속에서" 청교도들의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이스트햄은 케이프코드의 "팔뚝"에 해당한단다(소로는 케이프코드에 대하여 "매사추세츠주가 팔을 걷어붙인 모양"이며 구부린 팔은 항시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비바람과 권투를 하고 있다"고 썼단다) 두 친구는 이넉 프랫 목사의 1844년 저서 <<이스트햄, 웰플릿, 올리언스의 교회 및 시민 역사 총람>>을 읽었고 소로는 <<케이프코드>>에서 프랫의 책을 인용하면서 두 사람이 얻은 교훈을 이렇게 요약한단다.

 

플리머스에서 온 위원회가 인디언으로부터 이스트햄 지역을 사들일 때 "빌링스게이트는 누구 소유인지" 물었다고 한다. 빌링스케이트는 아미 사들인 지역의 북쪽으로 펼쳐진 케이프코드 전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자 "소유한 살마이 아무도 없다는 답이 왔다. 위원회는 '그렇다면 그 땅은 우리 것'이라고 말했고 인디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놀라운 주장이며 인정이다. 청교도들은 저들이 '아무도 없다'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이것은 아직 점령되지 않은, 혹은 아직 충분히 개발되지 않은 땅을 조용히 "요구한" 첫 사례였을지도 모른다. 후대에도 이런 방법을 썼고 여전히 광범위하게 쓰고 있다. '아무도 없다'는 양키(미국 북동부 주민) 이전 미국 전역의 유일한 소유권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사를 읽어 보면 청교도들이 빌링스케이트 땅을 차지하고 여러 해가 지났을 때 마침내 "자기를 앤서니 중위라고 밝힌 인디언이 나타났고" 빌링스케이트 땅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청교도들은 그에게 땅을 샀다. 앤서니 중위가 언젠가 백악관의 문을 두드릴지 누가 아는가? 어찌 됐든 무엇이든 부당하게 차지하면 언젠가 악마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소로는 미국의 기회주의, 비루한 땅따먹기와 황무지의 사유화를 조롱하고 미국이 수만은 민족과 영토를 굴복시킨 일도 조롱한단다. 그런 따먹기의 역사가 붕괴한다는 생각, 앤서니 중위가 백악관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가 미국이나는 대업을 풀린 실타래처럼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미국 역사의 심장을 쥐어뜬는 농담이란다. 하지만 라이시움에서 강연을 듣고 있던 관객은 "눈물이 쏙 빠지게 웃었다"는 점을 기억하잔다.

유머는 인식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단다. 유머가 없다면 그 고통은 고개를 돌리려는 본능을 자극할 수도 있고 더 심하게는 기저의 병이 아닌 고통스러운 증상만을 성마른 분노로 치료하게 만들 수도 있단다. 어두운 농담은 어두운 진실을 마주하게 한단다. <<캐이프코드>>의 마지막 두 줄은 우리가 치유되려면 비바람과 눈보라, 어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단다. "가을이나 겨울에 비바람이 불 때 <케이프코드에> 가야 한다. 등대나 어부의 오두막이야말로 진정한 호텔이다. 거기 선 사람은 미국 전체를 뒤로할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은 물론 지리를 고려한 말장난이란다. 보라, 소로는 자신의 가장 암울한 저서를 말장난으로, 결정적인 한 방으로 끝내고 있는 거란다. 

 

책에서든 일터에서든 삶에서든 굳이 웃기려 하지 않았어도 종국에는 웃길 수 있단다. <<월든>>의 마지막 단락은 이렇단다. "존과 조너선이 이 모든 걸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내일은 단지 시간이 흐른다고 밝아오지 않는다.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드는 빛은 그저 어둠일 뿐이다. 깨어 있을 때만 날이 밝는다. 밝아 올 날은 더 있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일 뿐이다." 이 종결부는 그 자체로는 우습지 않지만 그들 두 저자는 <<월든>>의 끝에 나오는 두 이름이 마친 그들 두 사람의 이름, 존(캐그) 그리고 조너선 (반 벨)이라는 사실이 재미있단다. 그게 너뮤ㅜ 좋아서 이 책의 앞머리에 인용하기까지 했단다. 안타깝지만 물론 소로는 여기서 그들 둘을 말하고 있지는 않단다. 존 불과 형 조너선을 말하고 있는데 이 두사람은 각각 영국과 미국을  의인화한 것이란다.(존 불은 가상의 인물이란다) 그럼에도 이 두 이름의 조합을 듣고 그들을 향한 충고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단다.

이어서 소로는 존과 조너선이 "이 모든 걸 깨닫지 못할 수 있다"고 부드럽게 말한단다. 그들도 진심으로 여기에 동의한단다. 그들은 그저 무수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두 남자일 뿐이란다. 대출에 마감에 정신적 스럼프에 일터에서 느끼는 불안감까지, 그들은 깨어 있을까? 대체로 그렇지 않단다. 그러나 소로의 저술에서 오는 산뜻한 자극은, 그 맛이 마크 트웨인, 앰브로즈 비어스, 커트 보니것 주니어에 비할 만하고, 그들을 매일 조금씩 더 일깨운단다. 소설가이자 평론가 제니 맥키너니가 커트 보니것 주니어에 대해서 한 말은 소로에게도 해당된단다. "그는 애정 있는 풍자가이자 방귀 방석을 가진 도덕주의자이다." 소로가 어둠이라면 또한 빛이기도 하단다. 

 

6

무의미한 일

 

모든 업무 요청에 바틀비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업무와 관련 없는 요청에도 바틀비는 말한다. "하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이번 장이 가장 쓰기 힘들었단다. 무의미한 노동에 대해 생각만 해도 "소리 없는 절망"의 순간이 떠올랐단다. 그렇지만 우리는 "소로라면 어떻게 할까?" 자문했고, 이런 기분을 우리만 느낀 게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고는 집필을 계속했단다. 1843년 겨울, 형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난 시점, 몸도 아프고 마음마저 차가워진 소로는 이렇게 고백했단다. "나는 지금 무엇일까? 아직 가지에 매달려 떨고 있는 시든 이파리처럼 시간과 영원 사이에 서 있는 병든 신경 한 줌이다." 1855년 6월 11일 일기에는 이렇게 썼단다. "넉 달에서 다섯 달 동안 병들어 무가치한 시간을 보냈더니 내 안에서 이떤 생명의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거의 반년간 "무가치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는 것이란다. 근무일은 왔다 또 지나가고 시간은 흘러간단다. 일과 시간이 뜻깊은 흔적을 남가지 않은 채 지나가게 내버려두기는 참으로 쉽단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노동자 소로, 우리가 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살펴보고 있는 소로 역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잠재적 무가치성을 걱정하며 종종 초조해했단다. 추측하건대 이런 초조함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소로의 동기가 된 것 같단다.

무의미한 노동을 이런 식의 틀에 가둘 경우 "제1세계만의" 문제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저자들도 인정한단다. 적어도 선진국 사람들의 경우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할 여지가 있단다.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없는 많은 노동자들이 억지로 무의미한 노동에 투입된단다. 그리고 이 장에서 다룰 가치가 있는 진정한 위기 사태는 바로 그런 노동이 벌어지는 상황일 거란다. 우리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최선을 다핧 거란다. 동시에 수많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 어디서 일하고 어디서 의미를 찾을 것인지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개인들을 괴롭히는 실존적 진공 상채에 대해서도 다루어 볼 거란다. 

소로는 의미 있는 일과 의미 없는 허드렛일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단다. 일은 확실한 목적이 있고 노동자에게 삶의 재미를 안긴단다. 반면 허드렛일은 재미도 없고, 목표가 보이지도 않으며 상상하기도 힘들단다. 무엇보다 먼저 짚어 둘 점은 강요된 업무, 절대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의 경우,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된 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무의미한 일이 될 위험이 아주 놉다는 거란다. 

바로 이런 이유만으로도 무의미한 노동을 사회 정의의 문제와 같이 고민해야 한단다. 설명하자면 이렇단다. 노예 제도에 반대했던 소로의 생각은 20세기 철학자 아이제이아 벌린이 "소극적 자유"라고 부른 것, 즉 직접적인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단다. 하지만 소로는 종종 노예 제도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비판을 제기하곤 했는데, 그 비판은 의미 있는 삶의 바탕이 되는 노동의 본질과 관련이 있었단다. 모든 미국인이 관심 분야를 찾고 의미 있는 목적을 설정해 행복을 위해 그것들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와 자유, 그리고 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도고 소로는 생각했단다. 이건 수고스러운 행복의 추구는 종종 "삶, 자유, 행복의 추구"(미국 독립 선언문에 나오는 문구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를 말한단다)의 서사 속에서 무시되고는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단다. 살짝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19세기 미국 노예 제도의 가장 핵심적인 악행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무의미한 노동을 과도하게 강요했다는 사실이 있단다. 노예들의 삶 자체가 무의미했다는 말이 아니란다. 그들이 노동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가 특별히 힘들었다는 말이란다. 일에서 의미르 찾으려는 우리 자신의 노력을 힘겨워하기 전에 바로 이 점을 명확하게 하고 넘어가고자 한단다.

 

무의미한 일이라는 개념을 다룰 때 마주치는 또 다른 어려움은 노동이 정치적, 사회적 힘에 좌우된다는 사실과 더불어 노동의 의미가 주관적이라는 불편한 진실로 인해 생긴단다.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이 독자들에게는 철저히 무의미할 수도 있단다(그들 둘 다 낡은 칫소로 욕조의 줄눈을 청소하는 일을 즐긴단다). "회의에 대한 회의"가 시간 낭비라는 데에 오늘날 미국 기업 구성원들은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보았을지 모르나 철학자라면 "회의에 대한 회의에 대한 회의"가 지극히 만족스럽게 여겨지는 대체 우주가 있을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단다. 

이 이론적인 가능성은 일단 보류해 두고 현실 세계로, 소로의 세계로 돌아와 보도록 하잔다. 소로가 자기 삶에서 의미 있다고 여긴 일을 세상은 관심과 경멸이 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단다. 소로의 이웃이었던 콩코드의 농부들은 소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도통 모를 때가 많았고 그 일을 왜 하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단다. 그래서 소로의 일을 무의미한 일로 여기곤 했단다. 한 콩코드 농부가 작가 메리 애덤스 프렌치에게 했던 말을 프렌치는 <<조각가의 아내의 추억>>이라는 저서에 담았단다.

 

강 건너에 있는 밭으로 나갔는데 거기 있는 자그마한 진흙탕 웅덩이 옆에 데-에이비즈 헨리가 서 있는 거예요. 뭐 별다른 걸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 있었어요. 웅덩이를 내려다보면서요. 점심 때 돌아왔더니 여전히 뒷짐을 지고 서서는 웅덩이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녁 먹고 또 돌아왔더니 아니 그 데-에이비드 헨리 양반이 하루 종일 꼼짝도 안 하고 서 있었던 것마냥 또 거기 서서 웅덩이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가던 길을 멈추어 그 사람을 보고 물었죠. "데-에이브드 헨리 선생, 뭐 하고 계시오?" 그랬는데도 그 양반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날 쳐다보지도 않아요. 그저 웅덩이만 내려다보고 있어요. 그러더니 하늘에 있는 별 구경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해요. "머레이 선생, 저는 황소개구리의 습성을 연구하는 중입니다!" 아니 그 덜된 양반이 그래, 온종일 거기 서서 황소개구리의 습성을, 아 글쎄, 연구하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엉뚱한 소로 선생이 아닐 수 없단다. 아두 덜된 양반임이 분명하단다. 소로는 그 시간에 부지런히 움직여 돈을 벌거나 울타리를 한두 개 고치거나 장작더미에 땔감을 한 가리는 더할 수 있었을 것이란다. 하지만 소로는 거기서 그냥 황소개구리의 습성을, 아 글쎄, 연구를 하고 앉아 있었단다. 비료를 상숑하지 않는 소로의 농법에 대서서도 비슷한 평가가 이어졌단다. 하지만 밭에 퇴비를 뿌리려면 불필요한 닌력을 고용해야 했단다. 월든이 얼어붙었을 때 아주 쓸모없는 구멍을 뚫은 일은 또 어떤가(소로는 이 덕택에 지역의 수중 지형도를 최초로 구축할 수 있었단다). 농부는 그 구멍도 그다지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란다. 하지만 의미가 있었단다. 그리고 참, 황소개구리 연구도 마찬가지였단다. 

초월주의 철학자들과 매일 교류한 프레더릭 구렐린 허비 윌리스는 한 콩코드 어린이의 삶을 놀라울 만큼 자세히 기록한 저서 <<올콧가 회고록>>에서 월든에 머물던 소로의 초상을 그린단다. 저자들은 그 모습이 소로의 "무의미한" 노동이가진 심오한 의미를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소로는 올콧 씨에게 월든 숲에 있는 야생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우리 식구들을 보여드릴게요." 소로는 재빨리 오두막 문밖으로 나와 독특한 저음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곧장 멀지 않은 구멍에서 마멋이 나와 소로에게 달려왔다. 높낮이를 바꾸면서, 그러나 여전히 기이한 저음으로 휘파람을 불자 이번에는 청설모 두 마리가 소리를 듣고 겁 없이 소로에게 다가왔다. 또 다른 음을 내자 까마귀 두 마리를 비롯한 새 몇 마리가 날아왔고, 까마귀 한 마리는 소로의 어깨에 앉았다. 까마귀가 소로의 얼굴에 아주 가깝게 앉아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깊은 인상이 남았다. 까마귀는 원래 사람을 아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소로는 주머니에서 먹이를 꺼내 동물들을 손으로 먹였고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 앞에서 부드럽게 그들을 쓰다듬었다. 그런 다음 다른 종류의 휘파람으로, 그러나 여전히 특이한 저음으로 짧게 소리를 내며 동물들을 해산시켰다. 작은 야생의 짐승들은 각각 그 특별한 신호를 듣고 즉시 돌아갔다.

 

황소개구리는 이때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2막에 등장했을 것이란다. 황소개구리, 마멋, 청설모, 까마귀를 비롯해 수백 종의 동물들의 습성을 연구한 결과 소로는 동화 속의 백설공주처럼 이런 환상적인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거란다. 올콧 집안의 아이들과 어린 프레더릭은 여기에 매혹되었단다. 콩코드 농부 머레이 선생에게 자연을 보는 소로의 시선은 무의미했을지 모른단다. 그러나 그 "무의미한 시선"을 올콧 집안 아이들의 "기쁨에 찬 시선"과 비교해 보잔다. 아이들이 주변을 에워싼 생태곌르 맑고 투며ㅛㅇ한 눈으로 바라보며 불현듯 활기를 띠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단다. 

저자 둘 다 북서부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이 지역 고유의 프로젝트를 위해 애쓰는 수많은 노동자들에 대해 알고 있단다. 그 프로젝트는 북동부나 심지어 서부의 도심에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다른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단다. 가령 조너선의 아내 주리엘은 포틀렌드 도심 코요테 프로젝트의 책임자란다. 주리엘은 오리건주 비버튼에 위치한 워터하우스 등산로를 홍보하는 행사인 선데이 트레일웨이스에서 프로젝트를 알리는 부스를 운영하면서 즐길거리, 놀거리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환경 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쳤단다.

좀 더 유명한 오리건주립대학교의 수석 정원사 부스 옆에 위치하고 있었던 주리엘의 부스는 코요테 프로젝트와 관련된 책, 관찰 지도, 소책자 등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단다. 좀 더 깊은 시골에서 온 것 같아 보이는 한 남자가 프로젝트에 대해서 물었고 주리엘은 설명했단다. "포틀랜드 도심 지역에서 코요테가 목격된 사례를 수집하고 지도에 입력합니다. 인간과 코요테 간의 상호 작용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죠." 남자는 정신 나간 사람을 보듯 주리엘을 쳐다보았단다. 누군가 코요테를 목격한 사례를 수집하는 것만으로 연구가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단다. "아마 그 남자가 사는 지역과 연관이 있을 거예요. 코요테가 수시로 나타난다고 했으니 좀 더 외곽 지역에 사는 것 같았어요. 농지와 인점한 지역일 테니 코요테를 볼 때마다 제보한다는 생각이 우습게 여겨졌겠죠. 워낙 자주 나타나서 특별할 일이 없으니까요." 의심 많은 농부 머레이 선생이 황소개구리를 연구하는 소로를 보듯 이 이름 모를 남자는 주리엘이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란다. "하루 종일 코요테의 습성을, 아 글쎄, 연구한다네!"

 

의미 있는 일의 기준은 주관적일 수 있지만 이른바 "용납할 수 없는 멍청함의 정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데 일종의 합의가 있다고 가정해 보잔다. 이 정도를 넘어서는 일은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해 보잔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인터넷에서 구직을 하다가 다음과 같은 구인 광고를 보았다고 상상해 보잔다. "오렌지 1만 개의 껍질에 난 구멍 일일이 세기." "알파벳 노래 10만 번 이어 부르기." "'스파게티'라는 단어를 3년 내내 반복해서 말하기('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 말씀처럼이 아니라 정말로 3년 내내 쉬지 않고 말하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은 LUI를 위반하는 일일 테고 우리는 무의미하다는 이유에서 이런 일을 거부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란다. 소로도 이를 눈치채고 있었고 그는 사회에서 보아 온 수많은 업무가 잠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단다.

<원칙 없는 삶>에서 소로는 말한단다. "우리 마을 외곽에 한 거칠고 우악스럽지만 돈벌이에는 능한 남자가 하나 사는데 이 남자는 언덕 아래 초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담장을 세우려고 한다." 돈벌이에 능한 이 남자는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소로는 이렇게 설명한단다. "남자가 말썽을 부리지 못하도록 높은 사람들이 그를 부추긴 것이다" 다시 말해 남자의 일은 그가 말썽을 부리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주어졌을 뿐 다른 쓸모는 없었단다. 담장을 세우려던 이 우악스러운 남자는 소로에게 도움을 청했단다. "그는 나에게 3주 동안 같이 땅을 파 달라고 했다." 소로는 주어진 선택지를 살펴보았단다. 

 

내가 그 일을 받으면 대다수 사람들은 나를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할 것이다. 좀 더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오지만 딱히 돈은 되지 않는 노동에 몰두한다면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생각할 것이란다. 그럼에도 나는 의미 없는 노동이라는 규제에 의한 단속이 필요 없는 사람이고 그의 일이 우리 정부가 외국 정부가 하는 많은 일과 마찬가지로 조금도 칭송받아 마땅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일이 그 남자나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재미있어 보이든 나는 나의 공부를 다른 학교에서 끝내는 쪽을 택하고자 한다. 

 

소로가 왜 이 일에 그토록 반감을 가졌는지 살펴보면 흥미롭단다. 첫째, 나중에 동료 직원에 대한 장에서 언급하겠지만, 세상에는 좋은 동료만 있는 게 아니란다. 이 우악스러운 남자는 좀 거슬리는 사람이었을 것 같단다. 두 번째 이유가 좀 더 결정적인데 소로는 담장을 세우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측량 기사로서 담장과 울타리를 측정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불만스러웠단다. 담장은 사람이 만들어 낸 장치로 토지 소유에 집착하는 사회가 강요한 것이란다. 담장을 지으라고? 고맙지만 싫다고 소로는 말했단다. 

 

나는 오늘날의 삶의 방식과 생계 유지의 방식이 싫다. 농사, 가게 운영, 전문직 등이 다 혐오스럽다. 단순하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흡족할 것이다. 사회가 나에게 강요하는 삶은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복잡하며 지지대가 빈약해서 마침내 무너질 것이 분명하므로 이런 삶은 분명히 어떤 사람에게도 영감을 불어넣지 못할 것이다. 

 

다소 지나친 주장이란다. 특정한 삶의 방식은 너무 참담해서 어떤 사람도 거기서 영감을 받지 못할 게 분명하다니. 소로는 선이 분명했단다. 소로가 의미 없는 노동을 정의한 방식은 많은 것을 시사한단다. 의미 없는 노동은 "인위적"이란다. 다시 말해 소로가 <<월든>>의 도입부에서 강조하는 필수적인 요소들, 즉 "생명의 열"을 좀처럼 제공하지 못한단다. 굉장히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대부분의 직업도 소로의 기준에서는 아주 무의미할 수 있단다. 비슷한 맥락에서, 불필요하게 복잡한 일도(스팽글로 뒤덮인 웃옷의 제작을 돕는 공장 주인의 일) 그 존재 가치를 의심해 볼 수 있단다.

소로가 요청받은 일은 그저 불필요한 일이었고 근대 이후로 그런 일은 점점 늘어났단다. 루이 14세의 궁정 규칙 21조(1681년 개정)을 보잔다. "폐하의 수라는 다음과 같이 들인다. 근위병 둘이 먼저 들어오고 이어서 문지기, 그런 뒤 집자가 의례봉을 들고 들어온다. 그 뒤로는 빵을 내오는 시종, 재무 담당관, 재무 담당관의 비서, 주방의 종자, 상차림 관리인이 순서대로 입장한다." "빵을 내오는 시종"이나 "상차림 관리인"이 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란다. 루이 14세의 빵에 버터를 바르는 위풍당당한 일이 좋아 보일 수도 있단다. 하지만 소로는 그런 욕구가 아마도 다소 그릇된 생각에 이끌린 결과이거나 가식과 사치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것이란다. 

다른 무엇보다도 소로는 "지지대가 빈약한" 일을 피했단다. 이런 일들은 금전적인 목적을 넘어서는 합당한 이유를 찾기 힘든 일들이란다. 의미 있는 노동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에게는 각자 너무 짧은 생이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생하는 의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단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를 아폴로기아라고 했단다. 소로는 철학자답게 어떤 일을 제대로 설명하자면 "지지대", 즉 뒷받침하는 근거이자 합리적 겅당화가 필요하다고 믿었단다. 급여만 맞다면 의미 없는 일을 하겠는가? 이마 그렇게 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렇게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수도 있단다.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아야 충분할까? 소로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생을 낭비할 가치는 없다고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단다. 

소로는 또한 한때 의미 있었던 일이 서서히 의미 없고 따문한 일, 진부하고 생각이 필요 없는 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단다. 실로 아무리 의미가 큰 일이라도, 가령 소로가 월든 호수에서 했던, 의식적으로 사는 실험도 케케묵은 일이 될 수 있단다. 숲에 지은 집을 떠나기고 결정한 소로는 자신의 결정을 이렇게 설명했단다. "내가 숲을 떠난 데는 숲으로 들어간 이유만큼이나 타당한 이유가 있다. 좀 더 많은 인생을 살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숲에서의 삶에 더 이상 시간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그리고 생각 없이 특정한 길을 택하고 그 길을 반복해서 오가는지 생각하면 놀랍다."

소로는 일터에서 타성에 젖는 기분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단다. 정신이 멍해지는 일들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은 아니란다. 삶 내부의 리듬, 특히 자기 자신의 리듬에 거의 초자역적으로 민감햇기 때문이란다. 적어도 일과 삶이 그 산뜻함과 의미를 잃어 가기 시작할 때만큼은 민감하게 포착했단다.

 

그렇다면 의미 없는 노동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소로의 도움을 빌려 앞서 설명하려고 시도했듯 퇴직을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란다. 소로가 살던 지역의 남녀들도 1850년대 초 대거 퇴직하기 시작했단다. 소로는 한때 논업이 번창했지만 어느 새 활기를 잃어 가는 동네에 대해 이렇게 적었단다.

 

농부의 아들 중에 농부가 되려는 사람은 없고 사과나무는 썩고 있으며 집보다 많은 것이 집이 사라지고 드러난 지하 창고이다. 철길은 이끼로 뒤덮여 있다. ...여기 서서 바라보고 있으면 이곳이 활발하고 진취적이기도 전 세계에 유명한, 젊고, 희망찬 미국이 맞나 싶다.

 

이직을 생각한 것은 소로ㅗ 온자가 아니었단다. 분하게도 소로눈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단다. 소로는 월든으로 향했지만 또래 대부분은 콩코드에서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일을 구만두고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가거나 모험을 하러 서부로 향했단다. 어쨌거나 일은 그만두었단다.

소로가 1852년 묘사한 황량한 풍경은 1853년에도 계속 이어졌고 막 서른셋이 된 또 다른 청년 허먼 멜빌은 유명한 단편 <<필경사 바틀비>>를 (익명으로) 출간한단다. 이 소설에서는 새 세대 노동자들의 기력 소진과 비관주의가 진하게 배어난단다. 이야기의주인공 바틀비는 월스트리트의 한 회사에서 일하는 말단 필경사란다. 바틀비는 성실하게 생산적인 직뭔이었는지만 어느 날 갑자기 포기해 버린단다. 모든 업무 요청에  바틀비는 이렇게 대답한단다. "하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업무와 관련 없는 요청에도 바틀비는 말한단다. "하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바틀비는 그저 무감각해진 모습으로 벽돌 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단다. 결국 바틀비는 삶에서 손을 떼 버린단다. 먹지 "않는 게 낫겠다"며 굶어 죽는 쪽을 택한단다. 이야기는 한숨과 푸념으로 끝난단다. "오, 바틀비! 오, 인간이여!"

의미 없는 노동 앞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아 다른 곳으로 도망칠 수도 있단다. 하지만 텅 빈 땅과 농장에 대한 소로의 침울하고 씁쓸한 서술을 읽다 보면 우리는 멈추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단다. 소로가, 오로지 소로만이 "보통 사람들"의 반복되는 고된 일상을 비판하던 때가 그리울 정도란다. 한때 자신이 비판했던 농부들이 농사를 그만두자 소로는 못마땅한 마음이 든단다. 이것은 소로의 글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정서란다. 소로는 앞장서 시류를 이끌다가 그 시류가 너무 무거워지면 그만두었단다. 1850년대는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직업적인 변화를 겪고 있던 시기였단다.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찾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 때로는 기존의 삶을 버려야 했단다. 

그러나 퇴직에 관한 우울한 사실은 얼마나 많은 직장을 관두든, 얼마나 많은 집을 팔든, 새로운 동료를 얼마나 많이 만나든 나는 언제나 나일 뿐이라는 사실이란다. 에머슨이 말했듯이 나의 "거인"은 내가 어딜 가나 나를 따라다니고 그 거인의 이름은 "나 자신"이란다. 이렇게 되면 직장을 관두고 다른 직장을 구하는 일, 내가 선택한 의미 없는 노동에 대해 너무 예민하게 구는 행위, 의미 엇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것이 인생의 의미를 완전히 오염시킬 것처럼 법석을 떠는 짓 등이 아주 복잡한 의미를 갖게 된단다. 소로가 아무리 심하게 야단을 치고 겉보기에는 자본주의나 금전적인 의미에서 "생계를 꾸리는" 일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듯해도 저자들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좀 더 냉정한 소로주의자들 역시 잘 해낼 수 있으며 <<월든>>이라는 횃불을 든 소로 앞에서 너무 부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오늘날 어른의 삶이 참을 수 없이 따분하다는 것을 저자들도 안단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정도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굳게 확신한단다. 소로도 몰랐단다. 자랑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보다 훨씬 더 지루하고 평범한 삶을 산단다. 그들은 결코 월든에 가 보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원든을 반견하지도 않을 거란다. 그리고 이 책을 읽더라도 바빠서 절반밖에 일지 못할 거란다. 지금 그런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한단다. 의미 없는 일을 하며 산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란다. 헨리 베이비드 소로조차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단다. 인생 전체가 의미 없어지는 것도 아니란다. 생의 몇몇 순간들이 그렇게 될 위험이 없지는 않지만, "근데 난 그렇게 하기 싫은데"라고 생각한다고 하느님 아버지 소로에게 무슨 죄를 짓는 것도 아니란다. 소로의 노동 철학에 어떤 "요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관해 적어도 자그마한 선택권은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란다.

인생의 상당한 부분이 주로 허드렛일로 이루어져 있단다. 장 보기, 공과금 내기, 육아 등 말하자면 끝도 없단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도망치는 것이 언제나 좋은 선택은 아니란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방법이 때로는 효과가 있단다. 저자들의 경험을 예로 들자면, 철학자의 삶은 가끔가다 굉장히 의미 없는 일로 여겨지곤 한단다. 온갖 난해한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종이 위에서 붙잡을 수 있단다. 그래서 책을 내도 읽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이란다. 강의도 하긴 하지만 강의 때문에 아무도 칡지 않을 매우 중요한 논문을 쓸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억울한 기분이 든단다. 그러다 프랑스인 알베르 카퀴가 <<시지프 신화>>에서 말했듯 "무대 배경"이 무너지고 그들에게는 놀라움과 당혹감이 어우러진 질문만이 남게 된단다. "왜?" 왜 이 고생을 하는가? 다 그만두고 텃밭이나 가꾸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단다.

그러다 그들은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가(윌리스의 아버지도 철학자였단다) 한 말을 접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단다. 살면서 어디서 의미를 찾고 무엇에 대해 생각할지에 대해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단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단다. 의미 없는 노동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그것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재구성할 기회란다. 철학자의 경우라면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은 접근이 불가능한 거창한 관념들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고대 철학자 포르퓌리오스가 아내 마르켈라에게 보낸 서신에 적은 의견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거란다. 아마 소로는 여기 부함하는 철학자란다. "인간의 고민을 덜어 줄 수 없는 철학자의 말은 허황된 말입니다. 몸의 병을 치료할 수 없는 의술이 아무런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듯 철학도 영혼의 고통을 없애 주지 못한다면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어디서든 밝은 면만 보는 아동 문학 속 주인공이 할 법한 잔소리가 아니라 비교적 초심자에 속하는 그들 두 사람의 제안일 뿐이란다. 그들 모두 의미 없는 일을 좀 더 의미가 깊은 무언가로 바꿀 수 있으며 오로지 그들 시각의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이란다. 그걸로 충분하단다. 보다시피 이렇게 철학을 그만두지 않아도 소원해진 무언가를 뜻깊은 무언가로 바꿀 수 있단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미약한 사례가 아닐까 싶지만(철학을 뜻깊은 무언가로 바라보기로 마음먹은 철학자의 사례라니) 누구나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예를 들어 두장을 뒷받침하고 싶었을 뿐이란다. 

그렇다면 이제 몸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보잔다. 3장 육체노동에서 만나 본 존의 어머니는 지금 요양원에 살고 계신단다. 이제 걷지 못한단다,. 소변도 가릴 수 없단다.(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밝힌단다) 매일 도움을 받아 화장실에 가는 일도 극도로 단조로운 동시에 창피한 일이란다. 이 단조롭고도 창피한 일을 한다고 상태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란다. 이것은 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루어지는 돌봄이란다. 이 일은 아무것도 고칠 수 없단다. 아무것도 회복시킬 수 없단다. 여기서는 승진도 아무 의미가 없단다. 상여금이 주는 짜릿함도 없고 수당도 없으며 은퇴식도 없단다. 그런 단순한 관점에서 이일은 의미가 없단다. 이런 종류의 돌봄 노동은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되는 일도 흔하단다. 분명히 해 두자면 존이 평소에도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아니란다. 하지만 존이 어며니를 맡는 살에는 그 일에 대해(원한다면) 살짝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단다. 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루어지는 돌봄 노동은 궁극적으로 가장 헛되기 때문에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헛된 일의 반대가 의미 있는 일은 아니란다. 헛된 일도 무엇보다 의미심장할 수 있단다. "사랑의 아픔은 더한 사람으로 치유할 수밖에 없다"고 소로는 말했단다. 사랑과 돌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을 찾아 헤매는 일은 헛수고란다. 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사람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보다 의식적인 삶은 없단다. 생의 절정에 다다른, 한때 교사였던 베키는 그 창피한 순간을 인생의 불가피한 일들에 관한 마지막 강의로 바꾸어 성인이 된 아들에게 가르침을 준단다. 

 

7

불성실과 부도덕

 

불성실은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자유 의지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실존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우리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인 것이 자유라면 "불성실"은 나의 본질 자체에 대한 최악의 거짓말이다.

 

"선생님은 제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윤리학을 오래 가르치다 보면 언젠가는 학생이 아침 9시에 연구실 문을 두드리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이 질문을 하는 날이 올 것이란다. 선생의 의무는 문을 열어 주고 학생을 위로하는 것일 거란다. 대답은 정해져 있단다. "아마 그렇지 않을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어떤 특정한 윤리적 지침을 따른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착각 속에 살고 있단다. 우리가 경험해 봐서 잘 안단다. 소로 역시 잘 알고 있었단다. 소로의 삶에도 우리처럼 도덕적인 모순과 실수가 있었단다. 그와중애서도 소로는 일종의 도덕적 규율에 맞추어 일했고, 그 규율은 삶이라는 일의 어떤 발판이 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이었단다. 일터에서 우리를 인도해 줄 소로식 계육을 반든다면 소로는 아마 반대했겠지만 이제 와서 우리를 말릴 수는 없단다. 

 

"신실하게" 일하라.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

의도적으로 해을 입히지 말라.

의도적으로 훔치거나 파손하지 말라.일터에서 허세를 부리지 말라.

 

간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간단한 일들이 때로는 가장 불가능한 법이란다. 간단한 일은 간과하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란다. 일단 "신실하게" 일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잔다. 소로는 원래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단다. 교회에 다니지 않았고 안식일에 쉬지 않고 일을 했단다. 그래서 "신실하게"  일하는 것은 말하자면 신앙심이 깊은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단다. "신실하다"는 말은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가 말한 "불성실"의대척점에 있는 거란다. 요점만 말해서 불성실은 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자유 의지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란다. 실존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우리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인 것이 자유라면 "불성실"은 나의 본질 자체에 대한 최악의 거짓말이란다. 장 폴 샤르트르가 이 표현을 만들어 내기 한 세기 전 소로는 이미 "불성실", 즉 우리가 살고 일하는 방식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거의 무의식적인 경향을 지적했단다. "일하러 가야 한다"는 말은 불성실하단다. "해야 하기" 때문에 상사의 명령을 생각 없이 따른다면 불성실하단다. 오로지 어떤 상황이 가진 관성 때문에, 혹은 집안 때문에 특정한 분야에서 일하거나 일자리를 얻거나 한다면 불성실하단다. 소로가 살던 콩코드 주위에는 가족이 운영하는 거대한 농장이 흔했단다. 많은 경우 다음 세대가 농장을 물려받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농부들은 불성실의 씨앗을 품게 되었단다. 

 

농장과 집, 헛간, 가축, 농기를 물려받는 불운을 겪는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많다. 이것들을 받기는 쉬워도 없애기는 힘들다. 너른 초지에 태어나 늑대의 젓을 먹고 자랐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제 힘으로 일구어야 하는 밭을 좀 더 맑은 눈으로 볼 수 있었을 테니까. 누가 그들을 흙의 노예로 만들었는가? 사람이 밭 한 뙈기만 먹으도 사는데 왜 7만 평이나 먹어야 하는가? 왜 태어나자마자 무덤을 파기 시작해야 하는가?

 

이 젊은 농부들은 태어날 때부터 농사를 짓게 되어 있었단다. 그들의 관점에서 세상은 위험을 감수하고 보상을 추구하며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이 아니었단다. 청소년이 된 순간부터 그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일궜던 흙에 속박되었단다. 하지만 소로는, 그리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은 실존주의자들은 이 농부들이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고 주장한단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덤으로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소로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그 사이의 시간을 자유롭게 살아야 한단다. 이것이 에머슨식의 자립과 별다를 게 엇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지 않단다. 아주 같지는 않단다. 놀랍게도 소소의 주장은 도덕적 주체가 되기 위한 노력, 그렇게 될 의무와 관련이 있단다. 1848년에 소로는 H.G.O. 블레이크에게 이렇게 썼단다. "사람이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삶은 진실할 수도 있고 거짓될 수도 있습니다. 삶은 치욕이 될수도 영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선한 사람은 자신을 세우고 악한 사람은 자기를 파괴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당당해야 합니다."선한 일을 하든 악한 일을 하든 자신의 일을 책임질 수 있는 도덕적 용기가 있어야 한단다. "당당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면 그 일은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나는 나의 일이 자랑스럽다" 그 부산물은 책임이란다. 그래서 "신실한" 노동은 도덕적인 노동의 근본이 된단다. 도덕적 책임을 단지 지시를 따르거나 의무를 다하는 행동과 혼동하기 쉬운데 책임은 사실 이런 행동에 우선한단다. 그것은 내가 특정한 길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란다. 소로는 월터 롤리 경에 대한 수필에서 이렇게 말했단다. "사람을 평가할 때는 단지 겉으로 드러난 행실이나 입 밖으로 꺼내는 생각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모든 상황에서 자유로운 품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게 느껴지는지 보아야 한다."최근에 우리는 한 부동산 거물(그러니까 억만장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사람은 적어도 직업적으로는 선택권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단다. "다른 일을 한다고 했다면 아버니가 절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 70대 억만장자의 말이었단다. 살면서 "유리한 거래"도 했고 "불리한 거래"도 했지만 문제는 그 모든 거래에 대해 어떤 책임 의식도 느끼지 않은 사실이라고 남자는 덧붙였단다(소로 역시 이를 문제 삼았을 것이란다). 남자는 자신의 인생의 각본을 스스로 쓰지 않은 것이란다. 이는 무의미하기도 하지만 잠재적으로는 비도덕적일 수 있단다. 왜냐고? 우리가 그 거물에게 그렇다면 그 모든 거래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이렇게 말했단다."잘 모르겠어요. 회사겠죠. 우리 집안일까요? 잘 몰라요."개인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대기업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우리의 요점을 이해하기가 더 쉬울 거란다. 이런 기업에는 대체로 영업 담당자들이 많은데 그들은 남이 써 준 영업 각본, 본인은 동의하지 않는 절차, 얼굴도 모르는 상사를 일개미처럼 따라야 한단다. 한 대규모 유통회사에서 영업 일을 하는 패티는 이렇게 고백했단다. "저는 회사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는지 전혀 몰라요. 일단 저는 아니예요." 이 기묘한 실존적 상황은 현대식 노동 소외의 핵심에 있기도 하지만 가장 심각한 종류의 도덕적 문제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단다. 시스템과 제도, 기업이 책임을 지지 않고도 돌아갈 수 있는 상황 말이다. 게다가 이러한 소외로 인해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 나아가 개인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까지 망각하게 된단다.

 

불성실하게 일하는 태도는 좋지 않단다. 초월주의자들에게 이것은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아의 본질을 거스르는 죄악이었고, 도덕적 책임을 방기하는 태도였단다. 그러나 그보다 심한 일, 훨씬 더 심한 일을 할 수도 있단다. 소로는 타인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희생하는 종류의 노동, 예속 상태를 지속시키는 감독관과 관리자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불리는 노동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단다. 1840년대에 이런 "관리자"들은 노예주였단다. 소로는 이렇게 썼단다. "미국에는 400만 노예가 사슬에 매여 있다. 미국은 이런 상태를 지속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매사추세츠주는 노예의 탈주를 막기 위해 남부 연합과 공모한 감독관이다"  소로는 살면서 돈을 받지 않고 여거 가지 일을 했지만 그 가운데 좀 더 위험한 축에0 속하는 일이라면 지하철도(도예들의 탈주를 돕기 위한 비민 조직망)에 가담한 것이란다.

월든의 오두막이 탈주 노예)들이 잠시 머무르는 장소이기도 했다는 전설이 있단다. 듣기 좋은 얘기지만 사실이 아니란다. 진실은 좀 덜 낭만적이고 훨씬 더 영웅적이란다. 소로는 주기적으로 탈주 노예들을 데리고 국경을 향해 북쪽으로 달리는 기차를 탔단다. 자금을 대고 의복을 제공하고 머물 곳(여동생의 집)도 제공했단다. 그리고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보내 주었단다. 소로가 이런 "범죄자"들을 자유의 품으로 데려다주었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단다. 하지만 <<월든>>에는 "그중에 진짜 탈주 노예가 있었는데 내가 북극성을 향해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상기하는 부분이 있단다. 소로가 대가를 받지 ㅇ않고 한 일에는 타인의 독립을 확보해 주는 일이 많았단다. 이 일에는 끝이 없었단다. 적어도 소로의 생애 중에는 끝나지 않았단다. "자유를 찾아 피난 온 사람들이 이룬 국가에서 인구 6할이 노예라면, 한 나라가 외국 군대에 의해 정의롭지 못하게 침략을 당하고 정복되었다면 정직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혁명을 하기에 너무 이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럴 의무가 더 시급한 이유는 우리 나라가 침략을 당한 나라가 아니라 바로 그 침략군이기 때문이다."

노예 제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링컨이 해방 선언에 서명을 하면서 종식되었단다. 하지만 소로는 다른 형태의 강제 노동이 현대 사회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다. 실제로 월든 호숫가에서도 강요된 노동의 징후를 찾을 수 있었단다.

 

그는 월든 호수 북쪽을호 펼쳐진 약 1200평 정도의 부지에 살았단다. 작원 정원이 있었고 땅을 일구며 살았으며 19세기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주변에 아직 남아 있던 능금나무에서 멸매를 따 먹기도 했단다. 그가 월든 호수 근처에 살았던 이유는 거기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의 이름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아니었단다.

브리스터 프리먼은 흑인이었고 월든 숲의 원주민 가운데 하나였단다. 프리먼은 독립 전쟁에서 싸웠고 이후 "성을 바꿈으로써 독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독립적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확립하기 위해 월든 호수 북쪽에 있는 언덕에 땅 1200평, '브리스터스 힐'을 샀다." 오늘날 월든은 주립 공원이자 국가 공인 사적지로 등록되어 있으며 방문객은 주차할 자리만 찾을 수 있다면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단다. 소로도 그랬단다. 하지만 소로의 이웃들 중에는 그럴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았단다. 소로는 우리가 그런 남녀를 기억해 주기르 바랄 것이란다. 역사에 남지 못했고 국가에게 착취당했으며 세상 한구석 작은 낙원에 가두어진 사람들 말이다. 월든은 정말 안식처 같은 곳이었지만 소로의 여러 이웃들에게 일터의 자유는 매우 제한적이었단다. 역사가 엘리스 르미어에 따르면 그들의 세상, "블랙 월든"은 그다지 고요하지 못한 절망이 자리한 곳이었단다.

주류 역사를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월든 호수에 살았던 사람은 소로가 유일하고 월든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청정한 지역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단다. 그렇지 않았단다. 월든은 문명ㅇ화된 기성 사회의 경계를 넘어서면 바로 닿을 수 있었단다. 착취당하는 노동자, 현대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란다. 소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기꺼이 그들 사이에 살았단다. 그들은 보스턴의 여러 부유한 교외 도시 내부로 접근할 수 없었단다. 우리는 소로의 자연 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그가 자발적으로 보여 준 검약의 미덕과 연결시키곤ㄴ 하는 데 사실 이것은 사회의 주변부에서 근근이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단다. 그렇다고 소로가 성인이라는 말은 아니란다. 하지만 소로가 숲으로 들어갔다는 사실과 그가 억압의 조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단다. 

그렇다면 소로의 이웃은 정확히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들은 미국 내 인종과 노동의 험난한 역사를 몸으로 보여 주는 사람들이었단다. 브리스터 프리먼의 누이 질파 화이트 역시 해방 노예였단다. 독립 전쟁이 끝난 후 화이트가 살았던 곳은 이후 소로가 일구었던 그 유명한 콩밭 주변이었단다. 소로가 랠프 월도 에머슨으 "자립"을 실천하기 위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서는 매우 힘겹고도 흔치 않은 경험을 하고자 2년 동안 애썼던 그 콩밭 말이다. 질파 화이트는 그어떤 법석도 피우지 않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상태에서 이를 해냈단다. 천츨 짜고 빗자루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단다. 1813년에는 방화범들 때문에 집이 불탔단다. 화이트는 빠져나왔지만 개와 고양이, 닭들이 죽었단다. 화이트는 다시 집을 지었단다. 화이트의 삶은, 그리고 화이트와 비슷한 다른 여성들의 삶은 자연 속 삶에 관한 온갖 낭만적인 이상과는 딴판이었단다.

나아가 월든 숲에는 피부가 창백하고 머리칼이 붉은, 그러나 백인 취급은 받지 못하던 주민들이 있었단다. 아일랜드 사람들이었단다. 19세기 초반 미국으로 건너온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대체로 사회 주변부 민민가로 몰려났단다. 소로는 월든 근처 철도 건설 현장에 살며 일하러 온 여러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길고 뜻깊은 관계를 유지했단다. 휴 코일이라는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는 구정이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소로는 이 사람에게 브리스터스 힐 근처에 맑은 샘물이 흐르는 곳을 알려 주겠다고 말했단다. 하지만 늙고 병든 코일은 그 짦은 거리조차 이동할 수 없었단다. 그는 수많은 아일랜드 노동 빈곤층이 그랬듯 비참한 가난을 술로 달래다 죽음을 맞이했단다. 

현대 사회의 풍요와 타락의 이면에는 늘 이런 사람들이 있단다. 부도덕한 노동을 지속하게 하는 시스템의 부수적인 피해자들이란다. 우리도 알고 있단다. 씁쓸한 애기지만 이런 책을 읽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코일이나 화이트, 프리먼 같은 사람이 아니란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들이 겪었던 고초에 우리도 책임이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을 가져야 한단다. 

소로는 자신이 온갖 이점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단다. 그리고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단다. 다시 말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매일 고된 노동을 하면서 자유를 상실하지만 그 노동이 지탱하고 있는 월씬 더 적은 숫자의 소유주와 관리자들은 타인을 고용해 자신의 일을 맡김으로써 자유를 확보한단다. 이런 사실은 처음에도 인지하기 힘들지만 시간이 흐르면 더 어려워진단다. 사회 정의는 무엇보다 바로 이런 그시안을 없애는 데, 눈앞에 뻔히 드러나 있지만 보이지 않는 타인의 고통을 제대로 알아보는 데 있단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대해 소로는 부분적으로 부유함, 즉 재물 때문이라고 말한단다. 비유나 관념적인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재물이란다. 쇼핑을 하거나 집안일을 돌보거나 서둘러 파티장으로 향하는 등 언제나 나의 멋진 자유를 행사하다 보면 타인의 내적 삶을 이해하기 힘들단다. 소로가 말하는 "의식적인 삶"은 이런 쳇바퀴 경쟁 같은 삶에 주의를 빼앗기기를 거부하고 소비와 취득이라는, 겉으로는 매우 시급해 보이는 문제가 돌봄과 사색이라는 진정으로 뜻깊은 문제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는 삶이란다. 소로는 우리에게 "새 것을 사느라 너무 애쓰지 말라"고 가르친단다. "옷은 팔아 치우고 생각은 간직하라"고도 한단다. 우리의 주의를 빼앗는 현대 사회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끝없이 전시된 물건과 물건이 주의를 뺏앗는 보통의 사교적인 삶으로부터 해방되면 집중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단다. 세속적 물질에 생각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어떤 생각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돌보며 살지 않는다면 무엇을 돌보고 누구를 돌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이웃이 자유 비슷한 무언가를 찾으려고 아둥바둥 살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지는 않을까?

 

정치적 자유주의의 중요한 원칙 중에는 "위해 원칙"이라는 것이 있단다. 간단히 말하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내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원칙이란다. 우리는 주먹을 휘두를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는 상대의 코끝 앞에서 끝난다는 말이란다.. 앞서 논의한 노예 제도와 노동 착취는 이 원칙에 노골적으로 위배된단다. 소로는 노동에 대해 자주, 깊이 사유하면서 병사, 백정, 사냥꾼, 도둑 등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단다. 멕시코와 미국 간의 전쟁이 한창이고 남북 전쟁으 불길한 기운이 돌기 시작할 당시 남자들 중에는 이런 역할을 동시에 여러 개 맡아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단다. 

멕시코와 미국 간의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말하기 어렵단다. 전쟁이 잔인하고 정의롭지 못할수록 전사자의 수를 세기는 어렵단다. 아마 2만 명도 넘을텐데 대부분 전염병 때문에 죽었단다. 멕시코와 미국 간의 전쟁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는 훨씬 쉽단다. 바로 제국주의적 야망이란다. 미국은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텍사스를 인정하고 서쪽으로 확장하기를 원했단다. 미군 3만 5000명, 그리고 각 주의 자원군 7만 3000명만 있으면 충분했단다. 그만큼이면 충분했단다. 약 10만 명의 노동자들이 고생하고 죽이고 약탈했단다. 소로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른 무엇보다 소로를 거슬리게 한 것은 당대의 가장 자극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고용 계획이었던 이 전쟁에 대한 일반 시민의 무신경한 태도였단다. 나아가 이웃들이 제국주의라는 "일"에 철저히 가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단다. 미국 시민들이 힘들게 번 달러로 이 전쟁에 돈을 대고 있었지만 그들은 대체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단다. 정말이지 다소 어처구니없고 역겨운 일이란다. 노동자들은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는 대가로 급여를 받았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비도덕적인 일을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별 상관 않는 무지한 시민들이었단다. 소로는 참지 않았고 세금 납부를 거부하고 하룻밤을 감옥에서 보냈단다. 소로는 <시민 불복종>의 뿌리에는 부도덕한 노동이 있었던 것이란다.

이 글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솔직한 이야기부터 하잔다. 오늘날 미국 군대의 1년 예산은 7770억 달러란다. 그 돈의 일부는 약 3조 달러 가량인 미국의 연간 세수입에서 온단다. 국방 예산을 세수입의 약 4분의 1이라고 보수적으로 잡아 보잔다. 이 비용을 (아주 놓은) 안보 비용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20세기에 미국이 벌인 전쟁 중에 목적과 결과가 의심스러웠던 전쟁이 얼마나 많았는지 고려하면 소로의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단다. 정부의 용인 아래 이루어지는 타인에 대한 살상과 위협은 현대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매우 큰 수익을 가져다준단다. 도덕적 판단을 내리려는 게 아니라 비도덕적인 노동에 대한 소로의 비판이 오늘날에도 매우 명확한 울림을 갖는다는 점에 대한 지적이란다. 사실을 직시하기만 하면 뻔히 보이는 문제란다. 

소로의 <시민 불복종>은 비도덕적인 노동을 부추기는 국가에 일조하지 않겠다는 강한 거부였단다. 국가 자체가 약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국가는 개인을 고용해 비도덕적인 일을 시켰고 널리 위해르 가했으며 그것은 악한 행위였단다. 국가는 개인을 불의의 도구로 만들었단다. 이 행위가 종국에는 노동의 본질과 이에 대한 소로의 생각과 관련이 있단다. 어떤 종류의 일을 하든 상관없이 오로지 급여만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다음 장에서 다를 예정이지만 미리 살짝 공개하자면 좋지는 않단다. 타인의 고통이나 죽음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속이 뒤틀리고 도덕적으로 구역질이 나야 마땅하단다.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면 적어도 소로의 관점에서 '나는 실패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남은 페이지를 넘거야 할 것이란다.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소로의 불복종은 적어도 다른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추상적인 존재를 향하고 있단다. "내 생각은 국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 위해 무심결에 음모를 짜고 있다"

소로가 국가의 지원을 받는 직업 군인과 도둑 중에 어느쪽을 더 혐오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단다. 막상막하일 거란다. 자연적인 질서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소로는 벌목꾼, 토지 소유주, 광부, 공장주 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을 훼손하고 세상으로부터 매우 결정적인 무언가를 빼앗아 가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매사추세츠주에서 땅을 일구던 농부들에 대해서 소로는 이렇게 쓰기도 했단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인해, 그리고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재산으로 보거나 재산을 취득하기 위한 주된 수단으로 보는 비굴한 태도로 인해 자연은 훼손되고 목축업도 우리와 함께 타락하며 농부는 가장 비천한 삶을 산다. 그는 자연을 알지만 강도로서 안다" 하지만 이는 너무 추상적인 생각이어서 납득하기가 쉽지 않단다. 나무를 대변하는 탁터 수스의 로렉스가(닥터 수수는 유명한 미국 동화 작가이고 로렉스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나무 요정이란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말이 될지 몰라도 어른들은 자연을 훼손하는 일을 거의 당연하게 여긴단다(물론 소로는 편의를 위한 윤리적 타협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단다). 그러나 인간 이외의 생명이 강도직이나 폭력에 비할 만한 행위에 의해 불필요하게 이 세상에서 지워지고 있다는 뼈아픈 사실이 소로를 괴롭혔단다. 그들 두 저자에게도, 어쩌면 독자들에게도 괴로운 사실이란다. 

오지에서 훈계나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소로늘 사실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단다. 일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때로는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만 결코 불필요하게 고통스러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단다. 나이가 들어 메인주로 여행을 간 소로는 이렇게 썼단다. "가죽이 필요해서도 아니고 단지 죽이기 위해, 특별한 수고를 할 필요도 없으며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채 하는 무스 사냥은 한밤중 숲 주변의 초원에 나가 이웃집 말을 쏘아 죽이는 행위는 얼마나 다른가"

현대 사회의 노동은 대부분 무스 사냥 같단다. 

 

"실적 죽이네."

보스턴 교외 어느 전시장 뒤쪽에 있는 한 하무실의 닫힌 문 너머로 나온 말이란다. 재러드는 중고차를 판단다. 부도덕한 중고차 업자에 대한 편견이 뚜렷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단다. 재러드만의 비법은 월 납입금을 낼 수 없는 구매자들에게 차를 하는 것이란다. 재러드는 주로 피부색을 보고 표적을 선정한단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구매자는 차를 갓길에 세워 두고 재러드에게 연락해 다시 끌고 가 달라고 한단다. 그러면 재러드는 차에 다시 광을 내고 또 다른 고객에게 파는 데 그 사람 역시 납입금을 내지 못할 확률이 높단다. 재러드는 스스로 죽이는 실적을 내고 있다고 말한단다. 

저자들의 친구 클랜시는 불교 신자이며 기업 윤리를 가르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단다(클랜시는 기만과 거짓의 철학에 관해서는 세계적 대가이기도 하단다). 젊은 시절 클랜시는 텍사스주의 한 보석상에서 일했는데 기업 윤리학 관점에서 절대로 닮지 말아야 할 직업인의 본보기였단다. 클랜시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보석을 팔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들이 아주 좋은 가격에 물건을 사고 있다고 행각하게 만들면서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란다. 시계와 다이아몬드를 파는 사람들 중에도 분명 정직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클랜시 같은 직원도 있단다. 클랜시는 세척해 주겠다며 롤렉스를 받아서는 그럴싸해 보이는 가짜와 바꿔치기했고 다이아몬드 보증서를 위조해 가격을 올려 받았단다. 수리를 위해 받는 보석을 "분실"하기도 했단다. 장사는 죽여주게 잘됐단다.

2008년 세계 경제를 들었다 놓은, 악명 높은 동시에 너무나 흔한 사이기도 있단다. 증권업자들은 독성 유가 증권으로 월스트리트를 기름칠했단다. 특히 회수가 어려운 주택 대출 상품을 잘 포장하고 AAA 등급을 달아 팔았단다. 영화 <빅쇼트>에 나오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어느 인물의 말을 빌리자면 이 자산의 가치는 "개똥"만도 못했단다. 나아가 개똥 같은 숫자가 벽을 도배하고 있는 것을 본 월스트리트는 이 증권의 하락에 돈을 걸었단다(공매도, 즉 "쇼트"를 했단다). 그러자 마법처럼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전 재산을 잃었고 생계를 잃었고 집을 빼앗겼지만 "거기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은 상당한 커매션을 벌었단다. 죽이는 거래를 했단다. 

이런 일은 가장 오래된 일은 아닐지 몰라도 아주 옛날부터 존재했을 것이란다. 소로도 이런 일에 대해 알고 있었고 혐오했단다. 1850년 콩코드에 날아든 소식에 따르면 뉴욕주 해얀에 있는 파이어아일랜드에서 배가 난파했단다. 소로와 에머슨의 친구였던 마거릿 풀러가 배에 타고 있었는데, 해안에 도달하고자 끔찍하게 오래 애썼으나 사망했단다. 에머슨은 건강이 좋지 않아 갈 수 없었지만 젊은 소로에게 부탁해 해안에서 풀러의 유해를 수습해 달라고 했단다. 이것은 작가이자 사상가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고 소로는 즉시 남쪽으로 향했단다. 그런데 그곳에는 난파선으로 한밑천 잡으려는 남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단다. "젊은 남자들이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유품으로 모자를 장식하고 도미노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젊은이들은 사체를 뜯어 먹는 새들처럼 난파선을 약탈하는 자들로 마치 신나게 쇼핑이라도 하는 양 죽은 자들의 물건을 그러모았단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만 사체를 뜯어먹은 것은 아니란다. 

 

이웃하는 육지에 사는 거의 모든 가정에서 커다란 굴잡이 배를 가지고 있었고 배가 난파할 때 마침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난파 현장으로 향했다. 일부 여성과 아이들은 식량까지 준비해서 갔다. 목적은 약탈이었다. 그들도 이 사실을 부정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제대로 된 해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해적이라고 부를 가치도 없다. 해적의 기백도 없는 하찮은 도둑, 좀도둑이었다. 철저하게 수사한다면 점잖아 보이는 여러 시민들도 처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부도덕한 노동자가 있느냐고? 오로지 "얼마나 많은가" 물어야 한단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노동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을 아직까지 잃고 있다면 아마도 현대 경제 사회 속 최악의 "죽이는 사람"에 속하지는 않을 거란다. 아마 대부분이 주체적인 선책을 하는 특수한 집단에 속할 거란다.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단다. 

하지만 소로는 우리에게 자기 만족을 피화라고 말할 거란다. 우리가 소비하는 방식이 "죽이는" 기업들, 혹은 불운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기업들의 배를 불리고 있지는 않은지 늘 검토해야 할 거란다. 현대 사회의 소비자는 다 공범이지만 그래도 저항할 수 있단다. 재활용이 기후 변화와 대량 멸종의 불가피성에 저항하듯 말이다. 우리는 적어도 온몸으로 시도는 해 보아야 한단다.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노동"보다 더 나쁜, 사소한 굴욕과 불의에도 깨어 있어야 한단다. 

현대 노동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닐지 몰라도 짚고 가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단다. 소로는 우리에게 신실하게 일하고 자신의 일과 반복되는 업무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하는 동시에 얼터에서 허세를 부리지 말하고, 거싯된 모습을 꾸미지 말라고 한단다. 소로는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온갖 겉치레를 경멸했단다. 소로가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자칭 권위자와 지도자들을 보았다면 완전히 실성했을 것이며 도덕적인 이유에서 이이를 제기했을 것이란다. 허세를 부릴 때 우리가 쓰는 가면은 소로가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본 진정한 소통과 화합을 방해한단다. 그런데 특정한 직군에서는 허세를 부리기가 쉽단다. 사실 허세가 거의 필수적인 일도 있단다. 

버몬트주의 스토오라는 마을 외곽에는 매우 새련된 필기체 글씨로 "고급 와인 매장 겸 고급 베이커리"라고 자처하는 가게가 있단다. 안으로 들어가서 동양풍의 먕탄자를 따라가면 40달러가 넘는 로제 와인이 나무랄 데 없이 정연하게 늘러선 냉장고가 있단다. 그 옆에는 러시아에서 온 캐비아병과 핀란드산 생선 캔이 전시되어 있단다. 진열대 뒤쪽으로 카운터가 있고 그 드ㅟ에는 1만 3000달러짜리 에스프레소 기계가 있단다. 수요일 아침에 일글리시 머핀을 먹으려고 버몬트주 스토우에 있는 이 가게에 간다면 아주 후줄근해 보이는 300달러 상당의 플란넬 셔츠를 입은 남자가 맞이할 거란다. 소매는 말아 올려 팔을 뒤엎은 아주 멋진 문신을 드러냈단다. 콧수염에은 왁스를 잘 발랐고 검은 비니 모자 밑으로 흘러내린 빨간 머리는 완벽한 언더컷 스타일로 다듬어져 있단다. 얼굴에는 조종사 스타일을 금테 안경을 쓰고 있단다.

"머핀이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있을 수가 없지요. '크러핀'은 있어요. 크루아상을 머핀 틀에 넣고 구운 거죠. 그런데 화요일에만 나옵니다. 수요일에 나오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크러핀은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에요."

마지막 한마디가 길게 늘어지는 게 마치 한심한 우리 평생 결코, 절대로 크러핀을 먹을 자격은 없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단다. 

"화요일에는 9시 5분에 크러핀이 나와요. 10분이면 다 나가요. 딱 10분이에요."

결코 머핀 따위는 먹을 생각조차 안 하는 천상의 존재들이 다 먹어 치우나 보단다. 그렇다면 커피 한잔이라도?

"커피는 없어요. 코르타도는 있어요. 맛을 보장하는 한 가지 사이즈로만 드려요."

남자는 골무만 한 작은 보온 용기를 꺼내 보인단다.

소로는 정직하고 단순하며 숨김 없고 품위 있는 삶과 일을 추구했단다. 소로는 스토우에 있는 커러핀과 코르타도를 파는 콧대 높은 가게를 조롱할 것이란다. 이런 사치스러운 선택이 거짓된 유행, 궁극적으로는 거짓된 삶을 통한 우월감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임을 직시할 것이란다. 그리고 그 거짓된, 불성실한 삶은 "죽이는" 결과물을 가져다두는 맷돌에 기름칠을 하고 계속 돌아가게 만든다고 말할 것이란다. 

 

월터 하딩은 [<<월든>>을 바라보는 다섯 가지 방법]에 이렇게 썼단다. "20세기 들어 소로의 사상에 대한 관점이 본격적으로 높아진 시긱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였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이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상황의 압박 때문에 마지못해 단순한 삶을 살아가야 했다. 선택권이 없었다. 하지만 소로는 이런 삶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만든 드문 작가였다. 30년대 당시 친구가 내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는 상황에서 읽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작가는 소로밖에 없어.'"

소로는 경제라는 방앗간이 갈고 빻은 뒤 내뱉은 사람들을 거두어 준단다. 침체가 길어져 고난이 되어도 견딜 수 있게, 심지어 약간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단다. 그들을 모욕하지 망ㅎ는단다. 착취합지도 않는단다. 비도덕적인 노동과 반대되는 도덕적인 노동과 도덕적인 노력의 본본기가 필요하다면 소로는 괜찮은 모범이 되어 준단다. 소로는 최선을 다하려고 했단다.

아일랜드의 케리 카운티에서 이민 온 마이클 플레너리의 살켸를 보잔다. 플래너리는 사랑하는 아내 앤과 자녀들을 남겨 두고 미국에 일을 구라허 왔단다. 돈이 충분히 모이면 식구들을 좀 더 밝은 그곳 땅으로 데려오는 게 목표였단다. 플레너리는 소로의 친구였단다. 앞서 말했듯 당시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민족적, 문화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져 다양한 수중에서 경멸의 시선을 받고 있었단다. 1853년 9월 플래너리는 콩코드의 연례 "미들섹스 카운티 가축 전시회"에 참여했단다. 구체적으로 이 축제에서 열리는 농업 기술 경연 대회에 참여한 것인데 가래질, 즉 삽질 부문이었단다. 플래너리는 열두 명과 경쟁해서 2등을 했고 상금 4달를 받았단다. 

당시 플래너리의 고용이었던 에이비얼 H. 휠러는 생각이 달랐단다. 휠러는 무턱대고 플래너리의 4달러를 가져갔단다. 자신이 고용한 플래너리의 상금이 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란다. 일을 시키려고 플래너리를 고용했고 4달러는 플래너리의 노동의 결실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상금은 휠러에게 돌아갔단다. 

소로가 나서기 전까지는.

소로는 이 잔인한 행위에 대해 듣고 서명지를 돌렸단다. 말 그대로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기부를 약속하고 서명을 하는 중이었단다. 서명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단다.

 

아래 서명자는 하기 금액의 기부를 서약한다. 총액 4달러는 마이클 플래너의 가래질 보상금으로서..., 고용주 에이비엘H.휠러가 가져간 금액과도 같다.

 

안타깝게도 콩코드 주민들의 인심은 소로를 실망시켰단다. 주민 대부분은 아무것도 기부하지 않았고 기부를 서약한 사람의 경우에도 금액이 아주 적었단다. 소로는 이 일에 대해 일기장에 솔직하게 털어놓았단다. 

 

오늘, 식구들을 이 나라로 데려오려는 가난한 아일랜드 남자를 위해 돈을 꾸는 경험을 했다. 이웃들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서명지를 돌려 보면 된다. 아, 정말이지 이런 사람들과 이웃하고 산다는 일에 대해 여러 슬픈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이기적이고 비겁한 핑계를 댄다....이럴 때 은행장이 아니라, 가진게 많지 않고 평소 무시를 당하는 이른바 정신 나간 여성을 찾아가게 된다는 사실은 얼마나 얄궂은 현실인가!

 

우리는 도덕적인 판단의 순간이 오기 전에는 자신이나 이웃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소로에게 도덕적인 아름다움은 주로 꼭대기가 아닌, 그러니까 "은행장"이 아닌 "가진 게 많지 않고 평소 무시당하는 이른바 정신 나간 여성"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 그런 사람은 너그로운 마음을 온갖 아름다운 형태로 보여 주며 선한 일을 한단다. 그런 사람들이 받는 보수는, 부족할지언정 전보다 좀 더 나아진 세상이란다. 

 

8

월급의 기회비용

 

내가 버는 돈은 내 자유에 대한 보상이자, 내 자존감에 대한 보상이며, 밤에 편히 잘 수 없는 데 대한 보상이다. 우리는 돈을 환산할 수 있는 매시간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

 

"그냥 입에 담지 마." 

생각하고 집착하고 걱정하되, 세어 보고 쌓아 놓고 탐하고 투자하되 입에 담지는 마란다.

"돈."

입에 담았단다. 어쩔 텐가.

최근 골드만삭스 투자 은행의 한 직원이, 돈에 대해 별 걱정 안 해도 되지만 그럼에도 걱정을 멈출 수 없는 사람이 우리에게 솔직한 질문을 던졌단다. "언제부터 돈이 그렇게 비밀스러워지고 금기시되었죠? 섹스나 죽음보다 더해요."

당시 저자들은 그저 웃었을 뿐이지만 사실 답이 있단다. 산업 혁명 초기, 소로가 태어났을 때 즈음 돈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사의 문제였단다. 기계화된 생산과 분업은 노동자의 인생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고 그 계산은 주로 달러와 센트로 이루어졌단다. 이 업무는 얼마짜리인가? 이 업무를 하는데 얼마나 걸렸는가? 이 동의 시장 가치는 무엇인가? 이 제품이 생계 유지에 기여하는 정도는 얼마인가? 1830년대 어느 시점부터 미국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잉여 자금이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로 나뉘었단다. 돈 문제, 돈에 대한 얘기를 창피하게 여기는 우리들의 습관은 우리가 돈과 때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불편한 진실과 모순된단다. 

우리는 얼마나 버는지 입 밖에 내지 않고 자세한 재정 사항은 쉬쉬한단다. 추정 자산이나 스톡옵션에 대해서도 입을 다문단다. 그 결과 압력이 높아진단다. 결코 입에 담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압력을 높이기 마련이란다. 그러다 미처 예상하지 못할 때 터져 나온단다. 금기를 어기는 한마디가 터지면 돈에 대한 얘기는 물밀듯 흘러나온단다.

"연봉 4만 6000달러."

"최저 시금."

"겨우 팁으로 살아요."

"자산만 그 정도."

"석 달만 더 버티면 스톡옵션을 받을 수 있어요."

우리는 돈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단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단다. 일에 대해 우리 머릿속을 맨돌고 있는 생각들은 대체로 보수에 관한 것으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야 마땅하단다. 그러려면 보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단다. 

소로의 절친한 동료 랠프 월도 에머슨은 우주가 "보상"을 바탕으로 돌아간다고주장했단다. 모든 행위에 동등한 반작용이 있는, 가는 게 있으며 오는 게 있는 우주에거 모든 결정에는 그에 대응하는 결과가 있고 모든 행운에는 대가가 다른다고 생각했단다. 노동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나 생산하는 제품에도 부수적인 대가가 따르거나 따라야 한단다. 그런데 소로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들이 많으며 그런 일은 해도 보수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했단다. 소로에게 주된 직업이 있다면 작가였단다. 작가가 받는 보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처참하단다. 작가는 또 아무도 원치 않는 물건을 팔러 다녀야 한단다. 책을 출간해 이익을 얻는 대신 소로는 팔리지 않은 재고에 대한 비용을 정기적으로 치러야 했단다. 랠프 월도 에머슨이 "아주 특별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칭찬했던 <<콩코드와 매리맥강에서의 일주일>>은 망했고 소로는 친구에게 "지난 76일 동안 매일 하루에 1달러밖에 벌지 못했다"고 한탄했단다. 

 

소로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선택해야 했단다. 돈을 더 벌어서 점점 더 커지는 욕구와 필요를 채울 수도 있었고 수중의 돈에 욕구와 필요를 맞출 수도 있었단다. 소로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후자를 택했단다. 많은 젊은 노동자들도 비슷한 선택을 한단다. 이 책의 저자인 두 사람은 젊은 시절 바나나와 피넛 버터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기꺼이 임대 아파트에 살았단다. 둘 다 비슷하게 낡아 빠진 중고차를 몰았단다(사는 곳은 수천 마일 떨어져 있었지만). 그리고 한교 역시 되는 대로, 학비가 들지 않거나 가장 저렴한 학교에 다녔단다. 낭만화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가난에는 쓸모가 있단다. 무엇이 삶에 실제로 필수적인지, 무엇이 없어도 살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준단다. 그래서 실제로 필요한 돈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 있었으며 그 액수는 의외로 적단다. 소로의 <<월든>>은 발 이 사실을 입증한단다. 

 

우리에게 크로이소스 왕의 재물이 있더라도 우리의 목표는 여전히 동일하며 수단도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종종 되새긴다. 뿐만 아니라 가난 때문에 범위가 제한된다고 해도, 가령 책이나 신문을 살 수 없다고 해도,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경험의 범위 안에 갇히는 것이다. 그 안에서는 가장 많은 당과 가장 많은 녹말을 제공하는 재료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삶은 골수에 가장 가까운, 가장 달콤한 삶이다. 하찮은 일에 삶을 낭비할 우려가 없다. 높은 수준에서 고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낮은 데서 잃을 게 없다. 불필요한 부로는 불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을 뿐이다.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을 사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소로가 처참한 상황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려는 듯 들리기도 하지만 요점은 그게 아니란다. 요즘의 글의 마지막에 있단다. 과잉은 우리를 과잉으로 이끌고 그것은 거의 항상 불건전하단다. 욕구는 급여와 함께 증가한단다. 이를 "라이프스타일 크리프(생활 수준이 꾸준히 상승하는 현상)라고 하기도 한단다. 특정한 생활 수준에, 좀 더 "사치스러운 삶"에 적응해가는 것이란다. 하지만 금전적 운이 진정한 행복과 일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단다. 과도한 부가 우리를, 소로가 말하는 "영혼의 필요"로부터 능히 멀어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영혼에 필요한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월든>>에서 소로는 명확히 말한단다. 쉴 곳, 옷, 음식, 그리고 사랑 등 "온기"를 가져오는 것들이란다. "내가 삶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때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 중에 처음부터, 혹은 오랫동안 사용해 오면서 아주 중요해진 것들을 뜻한다. 미개해서든 가난해서든 사상 때문이든 이런 필수적인 요소 없이 살아 보려고 한 사람은 매우 적거나 없을 정도이다."

이런 말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상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도 인정한단다. 마치 단식하는 스님으 말 같기도 하고 공기와 햇살만으로도 살 수 있닥호 믿는 사람의 주장 같기도 하단다. 우리가 선교라도 하려고 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단다. "사랑만 있으면 됩니다! 돈으로는 사랑을 살 수 없없니다!" 소로는 돈의 가치에 대해서는 이상주의자였지만 아주 까다로운 실용주의자이기도 했단다. 소로는 구매 능력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단다(아니, 전혀 관심이 없었단다). 오히려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아주 정확히 계산해 보는 데 관심이 있었단다. <<월든>>의 많은 부분이 마치 애버니저 스크루지의 꼼꼼한 가계부처럼 읽힌단다. 하지만 스크루지와 달리 소로의 지출 목록은 삶의 잉여품이 아닌 필수품이 무엇인지 보여 준단다. 소로가 월든에서 노동과 보수, 그리고 생의 유지 사이에서 어떻게 섬세한 균형을 잡았는지 스스로 남긴 기록을 다소 길게 인용해 본단다.

 

나는 측량과 목공 일을 하고 마을에서 각종 날품을 팔아 1334달러를 벌었다. 손에 꼽기도 힘든 온갖 기술에 능한 덕분이었다. 나는 월든에서 2년 넘게 살았지만 8개월간, 즉 7월 4일부터 이듬해 3월 1일까지 내가 먹은 식료품은 다음과 같다. 내가 키운 감자와 약간의 풋옥수소, 콩, 그리고 계산할 당시 남은 분량은 제외했다.

 

쌀..................$1.73½

당밀..............$1.73(가장 저렴한 형태의 당)

호밀가루.......$1.04¾

옥수수가루....$0.99¾(호밀보다 쌈)

돼지고기.......$0.22

 

아래는 실패한 실험:

밀가루..........$0.88(옥수수가루보다 비싸고 번거로움)

설탕.............$0.80

비계.............$0.65

사과.............$0.25

건사과.........$0.22

고구마.........$0.10

호박1개.......$0.06

수박1개.......$0.02

소금............$0.03

 

다 합하면 식료로 총 8.74달러가 들었다. 내가 이렇게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나의 죄를 전시하는 이유는 독자들 대부분도 나처럼 유죄이며 그들의 식비를 책에 나열해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맞단다. 다소 따분하단다. 시인 소로 역시 틀림없이 그걸 의도했을 것이란다. 그러나 소로가 월든 호수의 생활비를 세세하게 공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단다. 최소한의 필수품을 사는 데 별로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기를 바란 것이란다. 나아가 필수품을 산 뒤에도 돈이 남았다는 사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저런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 그리고 자립을 위한 소득과 지출의 밀물과 썰물을 신중하게 관리하고 거기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 한 것이란다.

저자 둘 다 어머니가 급여와 지출을 세세히 적은 가계부를 썼단다. 어머니는 매주 가계부를 확인하면서 식구들에게 부족한 게 없도록 신경 쓴 것은 물론, 성서에 가까웠던 그 가게부들은(하나라도 없어지는 날은 하늘이 무너지는 날이었단다) 각각의 가족이 삶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했으며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는지, 가족이 어떻게 자립할 수 있었는지 보여 주는, 끝없이 확장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단다. 소로 역시 완벽한 자립을 이루지는 못했단다. 우리도 다 마찬가지란다. 하지만 소로가 월든에서 남긴 기록은 진심 어린 시도를 보여 준단다. 소로가 월든에서 보낸 2년 2개월 이틀은 긴 시간이었단다. 소로는 그저 장난삼아 "의식적으로 살기"의 가장자리에 머문 것이 아니란다. 소로는 현대 소비 중심주의가 가져온 "소리 없는 절망"과 사우려면 돈, 그리고 "영혼의 필수품"에 대해 특정한 지향을 가져야 한다고 믿게 되었단다. 

이 모든 것은 부와 명성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아메리칸드림과 가락이 맞지 않는단다. 소로는 그런 꿈이 악몽이기 쉽다고 말한단다. 소로는 "삶을 누릴 기회는 그 '수단'의 증가에 비례해서 감소한다"고 말했단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갈수록 많은 학생들이 뜻깊은 일을 찾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단다(신이 있다면 감사할 일이란다). 저자들은 바로 그 학생들을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단다. 하지만 굉장히 솔직한 어떤 학생들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어서 낸터킷(매사추세츠주의 여름 휴양지)의 대저택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한단다. 저자들은 사실 바로 그런 학생들을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단다. 대박을 노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소로가 보내는 메시지가 있단다. "대부분의 사치품과 생활의 편이라고 하는 것들은 없어도 될 뿐 아니라 인류의 향상을 적극적으로 방해한다." 분명히 말하자면  그들은 현대 사회의 소로가 아니란다. 그들도 종종 인생의 자치를 추구하곤 한단다. 그게 옳은 행동이라는 것도 아니란다. 옳지 않단다. 소로의 도움을 받으면 그게 얼마나 심각한 잘못인지 깨달을 수 있단다. 

 

현대 사회는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혼동한단다. 바로 이런 심각한 혼란을 해결하고자 하는 바람이 소로의 철학의 중심에 있단다. 소로는 이 두 가지를 결코 혼동하지 않는 여러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끌리곤 했단다. 한 캐나다 나무꾼과 대화를 나누며 소로는 그에게 "공장 없이도 살 수 있는지" 물었단다. 남자는 "집에서 지어 입는 평범한 회색 외투로 충분하다"고 대답했단다. 소로는 "차와 커피 없이도 살 수 있냐고" 물었단다. 남자는 다시 그럴 수 있다고 했단다. "물에 솔송나무 잎을 우려먹는데 날이 따뜻할 때는 물보다 낫다고나무꾼은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냐고 물었을 때 남자는 돈으ㅟ 장점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그것은 화폐 제도의 기원에 대한 지극히 철학적인 설명, 그리고 페쿠니아의 어원과도 어느 정도 일치했다. 황소를 한 마리 가진 사람이 가게에서 바늘과 실을 사고 싶다면 매번 그 금액이 필요할 때마다 황소의 일부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은 아주 불편한 일이며 금세 불가능해진다고 남자는 말했다" <<월든>>에서 소로는 독자들에게 "간소하고 또 간소하게" 살라고 명한단다. 나무꾼은 이미 이런 시각으로 돈과 삼의 재화를 관리학소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그가 돈의 실제적 가치를 분명히 설명했다는 점은 놀랍단다.돈은 물건을 최대한 많이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쉽게 나눌 수 없는 삶의 필수품을 대체하기 위해 생겼단다. 소로의 설명을 빌려 와 보잔다. 돈을 뜻하는 라틴어 페쿠니아는 소(페쿠)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단다. 고대 세계에서 가축은 곧 부였단다. 하지만 시장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살 때 실이나 바늘을 위해 소 한 마리의 일부를 담보로 잡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단다. 그래서 소의 일부를 상징하는 돈이 발명되었단다. 돈은 삶에 필수적인 것들로부터 나왔고 단지 그것을 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단다. 그뿐이었다고 소로는 말한단다. 현대 사회는 페쿠니아의 관념을 논리적으로 끝까지 밀어붙여 산산조각으로 만든단다. 소의 일부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온 것이란다. 그렇다면 세상은 철저한 상품화의 단계에 이른 것일지 모른단다. 내 시간과 몸, 내 정신 건강까지 죄다 상품화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란다. 그렇다면 얼마를 부를 것인가?소로는 이 추한 질문이 우리 세기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이미 그 실루엣을 보았단다. 실제로 숲속 작은 오두막에 적합한 땅을 구하면서 그 질문과 똑바로 마주했단다. 월든은 사실 소로가 처음 선택한 집터는 아니었단다. 처음에는 "플린트 연못"을 선택했단다. 하지만 이 연못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플린트라는 농부의 소유였다는 점이란다. 돈으로 숲, 해안, 물, 하늘을(뉴잉글랜드의 이런 연못에는 물속에 하늘이 들어 있단다)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소로는 진저리를 치며 경ㅁ려이 가득한 말을 남겼단다. "플린트 연못이라니! 정말 보잘것없는 명칭이다. 이 지저분하고 멍청한 농부의 농장이 하늘 연못에 접하고 있다고 해서, 그자가 연못의 가장자리를 가차 없이 갈아엎었다고 해서 제 이름을 붙일 권리가 주어지는가?" 아름 다운 장소를 너무 사랑해서 자기 이름을 붙일 수는 있어도 제멋대로 주장한 소유권을 이유 삼아 천연의 절경에 출입을 제한하는 행위는 또 다른 문제였단다. 이 "플린트"는 대체 누구였을까? 소로는 곧바로 농부에 대한 서술을 이어 간단다. "지독한 구두쇠일 것이다. 표면에 제 뻔뻔한 얼굴이 비치는 1달러나 빛나는 1센트를 더 좋아하고 연못에 내려앉은 들오리마저 침입지로 생각하는 놈이다. 하르피이아처럼 움켜잡는 오랜 버릇 탓에 손가락이 구부러지고 손톱은 새의 발톱처럼 단단할 것이다. 그러니 이 연못은 내게는 이름 없는 연못이다." 플린트는 돈을 버느라 너무 바빠서 자기가 사들인 연못에 가 볼 기회도 거의 없었던 모양이란다. 소로의 말에 따르면 플린트는 연못을 보지도 않았고 거기서 몸을 씻지도 않았으며 지키지도 않았고 사랑하지도 않았고 "연못을 만든 신계 감사하지도 않았다". 플린트는 그 신성한 장소를 단지 "화폐 가치"로만 생각했고 그 가치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생각하지 않았단다. 실상 연못 바닥의 진흙을 팔 수 있었다면, 물을 뺐을 사람이란다. 소로는 "그자의 노동, 모든 것에 값이 매겨져 있는 그자의 농장에 어떤 경의도 보낼 수 없다"고 꾸짖었단다. 바로 이것이 현금화와 상품화의 가장 허무주의적인 모습이란다. 사실 일에는 "보상"이 없단다. 어떤 일도 대체 가능하지 않단다. 소르는 예언에 가까운 글을 통해 "돈이 된다면 풍경이라도, 하느님이라도 장에 내다 팔" 끔찍한 사람을 그녀 낸단다. "그자는 실상 제가 숭배하는 돈이라는 신을 얻고자 장에 가는 자이며 이자의 농장에 공짜로 자라는 것은 없다. 밭에는 어떤 작물도, 초지에는 어떤 꽃도, 나무에는 어떤 열매도 없고 오직 화폐뿐이다. 결실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지 않고 그 결실이 화폐로 바꾸기 전에는 덜 익은 열매로 치는 자이다"월든에서 이런 사고방식을 탈피하고자 했던 소로의 시도는 불완전한 성공에 그쳤단다. 호수의 "얼음권"이 프레더릭 튜더에게 팔렸고(뉴잉글랜드에 악덕 자본가가 있다면 바로 이 튜더라는 자였단다) 튜더는 아일랜드인 100명을 고용해서 겨우내 매일 1000톤의 얼음을 채취했단다. 소로는 존경과 연민이 담긴 시선으로 노동자들의 보았지만 튜더에게는 경멸의 눈빛을 보냈단다. 50만 달러 재산에 50만을 더 걸치겠다고 호수가 입은 유일한 외투를 빼앗았다고 했단다. 소로의 일생 동안 플린트와 튜더 같은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경제를 비롯해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주된 사고방식으로 신속하게 자리 잡았단다. 

 

에머슨이 말한 "보상"의 개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소로가 노동의 실제 대가가 거기서 나오는 금전적 혜택 간의 타협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단다. 일터에서 보수는 단지 돈을 받는 문제, 돈을 좀 더 받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단다. 내가 버는 급여의 대가로 내가 무엇을 포기하는지 계산해 보아야 한단다. 내가 버는 돈은 내 시간에 대한 보상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심오하단다. 흔히 그 돈은 내 자유에 대한 보상이자, 내 자존삼에 대한 보상이며, 밤에 편히 잘 수 없는 데 대한 보상이란다. 다소 과하다고 느껴진다면 소로는 아마 과한 게 맞다고 말할 거란다. 소로의 시대에 콩코드 주변에 있는 농장들은 규모가 매우 컸단다. 아직도 콩코드 외곽에 남아 있는 짐들은 훨씬 더 크단다(캐그가 사는 집도 그런 집이란다). 그런 집에 사는 데는 실존적 대가가 따른단다. 소로는 부유하고 돈을 잘 벌지만 항상 가난하다고 느끼는 슬픈 역설에 대해 일기에 썼단다. 심지어 그 가난하다는 기분은 물질적 욕구가 영영 충족되지 않는다는 불교적 의미에서의 가난도 아니란다.

소로는 큰 농장을 갖고 싶어 한 적이 없단다. 그런 농장을 유지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 시간과 노력을 삶의 기쁨을 느끼는 데 쓰는 게 낫다고 소로는 생각했단다. 수필 <원칙 없는 삶>에서(제목이 <직업 없는 삶)이라도 적절했을 것 같단다) 소로는 이렇게 썼단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어떤 예외도 없이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그게 무슨 일이든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받는 급여 이외에 더 가져가는 게 없다면 기만을 당하는 것이다.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소로가 "내리막길"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에 주먹하잔다. 이것은 강등이나 해고를 말하는 게 아니란다. 최악의 의미에서의 내리막길, 내가 나답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란다. 우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매시간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단다. 소로는 대부분의 일이 어떻게 내리막길로 이어지는지 찬찬히 설명한단다. "작가나 강사로 돈을 벌고자 하면 인기가 있어야 한단다. 그 내리막길은 수직으로 떨어진단다. 공동체가 가장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일은 그 일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가장 불쾌환 일이다. 인간 이하의 것이 되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