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行)/기 타

2019.05.12. (봉화마을. 정토사) - 부처님 오신 날

동선(冬扇) 2019. 5. 12. 16:38


봉화마을 - 묘역 - 마애불 - 정토원 - 사자바위, 봉수대 - 정토원 - 마애불 - 생태공원 - 사저

(소요시간 : 4시간)



06:00 일찍 집을 나섰다.

         하지만 해는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다.

         5월도 중순에 접어 들었다.

         이 5월이면 기념해야 할 날들도 많고, 챙겨야 할 날도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오신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또 5.18민주화운동기념일, 이에 더하는 나에게는, 아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안타까운 한 날이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이다.

         따스한 햇살이 곱던 어느 해 5월의 한 날...난 그날 울산의 어느 공원에서 장미를 보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었지.

         그 뒤, 그 해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5월이 오면 한 번쯤은 찾아야 하는 마음에 숙제가 되었다.

     

06:45 봉화마을 도착

         이렇게 일찍 오는 사람도 있을까?

         카메라를 들고 혼자 온 듯한 젋은 여성과 부부인듯 한 두 사람이 보인다.

         대통령의 생가 앞에 '작약'꽃이 만발하다.


07:50 마애불

         봉화산 청소년 수련장 부근의 암벽에 새겨진 고려시대의 마애불로 높이 240㎝, 무릎 폭 170㎝.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란다.

         불상은 거구의 좌상으로 발견 당시부터 바위 틈에 끼어 옆으로 누운 모양이었다고 하는데, 어떤 연유로 하여 쓰러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단다.

         불신의 전체 형태는 돋을새김하였으나 내부의 옷주름은 선각(線刻 : 선으로 새김)으로 나타내었고, 소발(素髮 : 민머리)의 머리에

         둥근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표현되었단다.

         얼굴 윤곽은 둥근 편인데 안면이 마모되어 세부 표현을 자세히 알아볼 수는 없으나, 백호공이 희미하게 남아 있고 눈은 옆으로 길게 새겼으며

         입은 매우 작은 편이며,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늘어져 있단다. 오른손은 가슴 부근까지 들어 올려 시무외인(施無畏印)의 손 모습을,  왼손은 무릎 위에

         세운 여원인(與願印)의 손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자세는 통일신라시대 시무외·여원인 불좌상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 보인단다.

         또한 어깨가 넓고 당당하며 무릎 폭도 넓고 높이도 매우 높아 안정된 자세에 신체 비례도 비교적 조화로운 점 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작품으로 보이지만, 가슴에는 이미 양감이 줄어들었고 신체 표현이 대체로 평판적이며 단순하게 형식화된 옷주름 선과 옆으로 긴 눈에 작은 입 등의

         이목구비 표현 등에서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까지 내려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추정된단다.


07:55 정토원

         천 년 가야의 전설을 간직한 김해 봉화산에 위치해 있는 정토원은 1920년 한림면에 거주한 지방 유지 이진일의 발의에 의하여 지암사란 이름으로

         세워져 지역 유일의 신앙 도량으로 자리하였단다. 노무현 대통령의 49재를 지내기도 했으며 2009년에는 고인을 기리는 100재가 거행되기도 했단다. 

         봉화산 정토원 마당의 중앙에는 100년 된 배롱나무가 있는데, 배롱나무는 꽃이 한번에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날에 걸쳐 피고 지는 덕에 마치

         오랫동안 꽃이 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백일홍나무라고도 부른단다.


         이 배롱나무에는 한 가지 슬픈 전설이 전해진단다.

         옛날, 목이 세 개 달린 이무기가 있었는데 이 이무기는 매년 어느 어촌 마을에 나타나 처녀 한 명을 제물로 받아 갔단다.

         그런데 어느 한 장사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그 해에 제물로 선정된 처녀 대신 그녀의 옷을 입고 제단에 앉아 있다가 이무기가 나타나자

         이무기의 목 두 개를 베었단다.

         그 처녀는 기뻐하며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죽을 때까지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하였고, 그러자 그 장사는 " 아직은 이르오, 이무기의

         목이 하나 남아 있으니, 그 목 마저 벨 것이요, 만약 내가 성공하면 힌 깃발을 달 것이고,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달 것이니 그리 아시오" 하였단다.

         처녀는 백일기도를 들이며 그 장사의 성공을 빌었는데, 하지만 백 일 후 처녀는 멀리서 오는 배에 붉은 깃발이 달린 것을 보고 실망하여 그 자리에서

         그만 자결을 하고 말았단다. 그 장사가 이무기가 죽을 때 뿜은 붉은 피가 흰색 깃발에 묻은 것을 모르고 깃발을 올렸던 것이란다.

         그 후 처녀의 무덤에서는 붉은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백일간 기도를 드린 정성의 꽃, 바로 백일홍이 되었다고 한단다.


08:08 사자바위, 봉수대

08:20 봉화마을


10:00

    ~

10:40 사저 관람

         일명 '아방궁'이라는 곳을 관람했다.

         노대통령이 서거한 후 거의 매년 산책겸, 나들이겸, 등산겸 해서 찾곤 했지만, 사저 방문은 처음이다.

         과연 아방궁일까? 말도 안되는 소리다.

         최근 언론을 또다시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전 정권의 모차관이 관련된 비리.성접대 사건의 당사자인 모건설회사 사장의 별장"에 비하면

         그 규모면에서는 아주 초라할 정도로 보였다.

         경호원들이 거주하고 생활하는 경호동을 제외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지인들이나, 시외로 차를 타고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전원주택만 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일부 몰지각하고, 몰염치한 정치인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그것을 '아방궁'이라 말했다.

         지들이 '아방궁'이나 보기나 했나? 근데 난 오늘 그들이 말하는 아방궁을 둘러보았다. 참 아이러니하다.

        

        아방궁(阿房宫)

          진시황제가 세운 궁전으로 진시황제의 사후에도 공사가 계속되었지만, 진이 멸망한 탓에 미완성으로 끝났단다. 

          <사기>에 의거하면, 궁전 건축물 규모는 동서로 5백보(3000척), 남북으로 50장(500척)으로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동서로 600m~800m, 남북으로 113m~150m에 이른다.

          그 궁전 위에는 10,000명이 앉을 수 있으며, 그 건축에 동원된 인력 수는 70여 만에 달했단다. 더욱더 여러 궁을 만들어 관중에 300개,

          관외에 400여 개, 함양 부근 100리 내에 세운 궁전은 270여 개에 이르렀단다. 

  

11:30 집 도착

         5월이면 마음이 바빠진다.

         앞에서 말했듯이 많은 날들이 있고, 또 이런 날들도 있기 때문이고, 또 장미를 비롯한 꽃들이 만발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공기의 질만 좋다면 매일 산과 들을 걷어도 좋을 날들이다.

         오늘 5월의 숙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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