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行)/ㄹ,ㅁ,ㅂ

2018.05.22. (마이산)

동선(冬扇) 2018. 5. 22. 20:59


마이산남부주차장 - 금당사 - 탑사 - 은수사 - 천왕문(섬진강발원지) - 감시초소 - 암마이봉갈림길 - 감시초소 - 은수사 - 탑사

(산행시간 : 2시간 40분)



03:30 집에서 출발

         오늘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다.

         어머니가 절에 다니실 때만해도 어머님을 모시고 가족과 함께 천성산속에 있는 작은 암자인 노전암을 찾곤 했었다.

         그 암자에는 여타 절이나 암자와는 달리 사월 초파일 날, 더덕구이를 비롯한 한식집 같은 음식을 정성스레 내 놓곤 했는데,

         그 공양을 먹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했던 기억이 선하다.

         하지만 지금은 100세를 넘기신 어머님께서는 최근에 고향집에서 가까운 양로원에 계신다.

         이렇듯 세월은 가는가 보다.


         오늘은 벼루고 벼루어 왔던 작은 암자를 가보려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이곳 부산과는 무척이나 먼 곳이고, 또 여려 여건상 쉽지는 않을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일찍 나선 것인데, 산에 갈 때면 가끔 이렇게 이른 새벽에 나서기도 한다.


                                            (해남 달마산 도솔암)

        

         

         해남 달마산에 있는 도솔암이다.

         이 암자를 알게 된 것은 신문기자 출신인 어느 작가(조현)가 쓴 책(하늘이 감춘 땅)을 언제가 읽었을 때(2016.05)이다.

         이 책에는 여러 암자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위와 비슷한 사진들을 싣고 있었는데, 도솔암의 모습이 너무나 와 닿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책을 읽었던 당시에 적었던 내용을 소개 한다면


         달마산 도솔암 
         한반도 땅끝에 달마산이 있단다. 전남 해남에 있는 이 산을 보면 사람들이 이토록 빼어 난 산에 대해 이름조차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에 놀라고,

         금강산보다 화려한 산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 놀란단다. 석가모니가 편 불법의 28대 계승자인 달마 대사는 중국으로 건너가 선의 씨앗을 심어

         선종의 초조가 되었단다. 그러나 달마는 모함을 받아 다섯번이나 독약을 받았는데, 여섯 번째는 스스로 독약을 받아 마시고 숨을 거든 뒤,

         웅이산에 매장됐단다. 그를 장사지낸 뒤 3년째 되던 해에 달마가 짚신 한 짝을 지팡이에 꿰어 어깨에 메고 인도로 돌아가기 위해 파미르 공원을 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위나라의 왕이 달마의 무덤을 파보게 하였는데, 무덤 안에는 짚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는 것이 달마의 전설이란다. 

         그러나 땅끝의 이야기는 다르단다.

         달마가 중국에서 인도로 가지않고 해남으로 왔다는 것인데, 이 이야기를 뒷받침해주는 역사의 기록 한토막이 있단다. 그것은 고려 때 무외 스님이 쓴

         글인데, 지원 신사년일 1281년 겨울에 남송의 큰 배가 표류해 달마산 동쪽에 정박 했을 때, 달마산을 보고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라며 그림을 그려

         갔단다. 예전부터 땅끝 해남엔 중국 배들이 종종 표류해 왔는데, 산둥반도에서 배를 띄운 채 노를 젖지 않으면 해남에 이른다고 한단다.

         달마산의 도솔봉을 가는 길의 기암괴석과 남해바다의 경치는 형용하기 힘든 절경이고, 산 아래는 초승달 같은 만사이로 보름 달 같은 바다들이 잠겨

         있단다. 


         하지만, 달마산 도솔암은 가지 못헸다.

         너무 멀기도 하고, 당일치기로 가보기 아까운 곳이라 다음에 시간을 더 내는 것이 좋을 듯 해서다.

         그래서 차의 방향을 진안 마이산 탑사로 돌렸다.


06:58 도로에서 잠시 멈춤

         이때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는데, 먼 발치에 마이산의 웅장한 모습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래서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기 셧터를 눌렀다. 참으로 멋진 모습이다.


07:05 도로에서 잠시 멈춤


         마이산


         진안고원에 있는 2개의 암봉. 산의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부른단다.

         동봉을 수마이봉(667m), 서봉을 암마이봉(673m)이라고도 한단다. 기반암은 수성암이며, 산 전체가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졌으나 정상에는 식물이

         자라고 있단다. 마이산 일대와 은수사·금당사 등의 사찰을 중심으로 1979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주변에 운일암, 반일암 계곡, 풍혈, 냉천,

         덕유산국립공원 등의 명소가 있단다.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고도 했으며, 조선시대부터는 산의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별칭이 많단다. 봄에는 안개 속의 두 봉우리가 쌍돛배를 닮아서 돛대봉, 여름에는 숲 속에서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 덮인 들판 가운데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07:18 마이산도립공원 남부주차장

07:25 금당사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마이산에 있는 절에 있는 절로서,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란다.

         마이산 남부 주차장에서 탑사 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위치하고,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단다.

         하나는 650년(의자왕 10)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온 보덕(普德)의 11제자 중 한 사람인 무상(無上)이 그의 제자인 금취(金趣)와 함께 세웠다고 하는데,

         당시 위치는 지금보다 약 1.5㎞ 떨어진 곳이었단다. 그래서 예전 자리를 고금당(古金塘), 혹은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으므로 혈암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로 불렀다고 한단다.  다른 하나의 창건설은 814년(헌덕왕 6) 중국승 혜감(慧鑑)이 창건하였다고 하단다. 한때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고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쳤는데, 한때 고려의 고승 혜근(惠勤)도 이곳에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단다.


07:38 탑사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마이산의 남쪽 사면에 탑사가 있는데, 마이산의 남부주차장에서 약 1.9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마이산 탑사는 이갑용

         처사가 쌓은 80여 개의 돌탑으로 유명하단다. 돌탑들의 형태는 일자형과 원뿔형이 대부분이고 크기는 다양한데, 대웅전 뒤의 천지탑 한 쌍이 가장 크고,

         그 크기는 어른 키의 약3배 정도 높이란다. 어떻게 이런 높은 탑을 쌓아 올렸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

         고 있단다. 이 돌탑들은 1800년대 후반 이갑용 처사가 혼자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갑용 처사는 낮에 돌을 모으고 밤에 탑을 쌓았다고 한단다.

         이 탑들은 이제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아무리 거센 강풍이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뿐이란다..

         마이산 천지탑
         주탑인 천지탑은 부부탑으로 2기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3.5m이고 남.북으로 축조되어 있다.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세워져 있고 팔진법의 배열에 의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며, 당초에는 120기 정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80여기가 남아있단다.

         맨 앞 양쪽에 있는 탑을 일광탑.월광탑이라 하며 마이산 탑군은 태풍에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탑들을 보면 양쪽으로

         약간 기울게 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조탑자가 바람의 방향 등을 고려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인단다.


08:20 은수사

         은수사는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사지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이라 했단다.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라는 분에 의해 증창되었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단다.

         은수사란 이름은 한글학회의 <지명총람>에 의하면,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것이라 한단다. 은수사는 본시

         불당 겸 요사채로 쓰인 건물과 그 위 산신도각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근래 극락전, 태극전, 대웅전과 요사채를 건립하였단다.
         이 은수사에는 국내 최대크기였던 법고(1982년 제작)가 소장되어 있고, 조선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 삼신할머니상이 상원사지에서 출토

         되었단다.


         또한 은수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이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마이산 줄사철군락이고 (천연기념물 380호), 또 하나는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란다.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춘향이 집을 찾아가 첫날밤을 치르기 전,월매가 내온 주안상에 여러 과일이 올라와 있는데, 이 중 ‘청슬이’

         ‘청술레’라고 한 과일이 바로 청실배(靑實梨)라 한단다. 돌배나무들 중에서 특히 맛좋은 열매가 달린 나무가 청실배나무인데, 개량배에 밀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단다.

         청실배나무는 이성계가 배를 먹고 뱉은 씨앗이 자라서 되었다는 전설이 있고, 청실배나무 아래 약수터에는 정화수를 떠놓은 스탠그릇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이곳에 정화수를 떠놓으면 겨울에는 정화수의 물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얼어붙는 역(逆)고드름이 어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단다.

         이는 마이산 계곡이 협곡이라 바람이 솟구치면서 일어나는 마이산의 진풍경이기도 하단다.


08:40 섬진강발원지(천왕문)

08:50 감시초소

09:10 암마이봉 상하행 갈림길

09:20 감시초소

09:41 은수사

09:52 탑사


10:10 탑사 출발

10:50 용담호 전망대(망향대)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月溪里)의 금강 상류에 있는 다목적댐이 건설됨으로써 생긴 인공 호수이다. 
         용담댐은 진안군의 1읍 5개 면을 수몰시켜 만들어진 거대한 담수호로 이 댐은 유역변경식의 댐으로 금강 상류의 물을 하루 135만 톤씩 도수터널을

         통하여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만경강 상류에 공급함으로써 전라북도 전주권의 생활용수 해결을 목적으로 건설되었단다. 이 댐이 건설됨으로써 담수가

         시작 되면서 용담호는 진안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가 되었단다. 특히, 용담호가 관광지로 사랑받는 명소가 된 것은 교량으로 댐 일주도로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란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호안에 별다른 시설물들이 없어 오히려 자연스러운 풍경을 보이고 있단다. 
        용담호반 여러 곳에 망향의 동산이 세워져 있는데, 수몰된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수자원공사가 조성한 것으로 조망이 좋은 둔덕 위에

        꾸며져 있고, 망향의 동산 중에도 용담대교 북단의 용담 망향의 동산이 가장 조망이 좋단다.


11:40 전주 호남각

         전주하면 비빔밥이던가? 해서 나도 전주전통 비빕밥 한 그릇을 먹었다.

13:20 전주 남문시장

13:30 전동성당

         오래되고 유서가 깊은 사찰, 암자가 있듯, 성당 또한 그런 곳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인데, 전주에 있는 전동성당은 천주교 최초 순교자의 恨이 맺힌 사형터

         였단다. 전주 전동성당은 사적 제288호로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터에 세워졌는데,  이 건물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전라북도 전주시 전동

         풍남문(豊南門) 밖에 지어진 성당이란다.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히 순교지의 하나가 됐단다. 정조 15년(1791)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

         과 권상연(야고보), 순조 원년(1801)에 호남 첫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단다.

         신유박해(1801년) 때는 이곳에서 유항검(柳恒儉)과 유관검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등이 교수형을 당했단다. 이들의 순교의 뜻을

         기리고자 1891년(고종 28)에 프랑스 보두네(Baudenet)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성당 건립에 착수해 1914년에 완공했단다. 이 성당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으며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에게 설계를 맡겨 23년 만에 완공한 것이란다.

         전동성당은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단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인데, 처음 이 성당은 천주교 순교지인 풍남문 밖에 세웠으나 후에 현재의 자리에 확장해 지은 것이항다.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장방형의 평면에 외부는 벽돌로 쌓았으며 중앙과 좌우에 비잔틴 양식의 종탑이 있단다. 내부 천장은 아치형이며 양옆의 통로 위 천장은

         십자 형태로 교차된 아치형이고, 성당건축에 사용된 일부 벽돌은 당시 일본 통감부가 전주읍성을 헐면서 나온 흙을 벽돌로 구웠으며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에서 나온 돌로 성당의 주춧돌을 삼았다고 한단다.


         전주대건신협

         전동성당 바로 옆에 전주대건신협이 있었는데, 그 건물의 규모가 어마어마 했다.

         최근 전주대건신협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전통도 화려하다. 50주년 기념식날 대건장학생 30명에게 2천850만원의 장학금 

         전달식과 함께 2030년 자산 1조원 달성을 위한 원년의 해 선포식 및 축하공연도 진행됐단다.  전주대건신협은 ‘일인은 만인을 위하고 만인은 일인을 

         위한다’라는 신협의 모토로, 신협의 3대 운동인 잘살기 위한 경제운동, 밝은 사회 구현을 위한 교육운동, 더불어 사는 윤리운동 실천을 위해 무료

         독서실, 노인회관, 나눔의 집(무료급식속)등을 운영하고 지역주민 삶의 질 향상에 앞장서고 있단다.


15:00 전주에서 출발

18:10 집도착

         비록 이번에는 해남 달마산 도솔봉은 가지 못했지만, 조만간 주말을 이용해 꼭 한 번 가 볼 생각이다.

         왕복 6시간 넘게 운전을 하는 피곤한 하루였지만, 석가탄신일을 맞아 세 개의 사찰도 들렀고, 또 유서깊은 전동성당을 방문하는 등,

         보람된 하루였다.







(마이산 남부 주차장)


(금동사)



(탑사)



























































(은수사)







(청실배나무)




























(용담호)




(전주 남무시장 내)



(전주대건신협)



(전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