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行)/ㅅ,ㅇ,ㅈ

2016.11.05 (재약산 : 가족이랑)

동선(冬扇) 2016. 11. 5. 23:10

 

표충사주차장 - 흑룡폭포 전망대 - 층층폭포 - 데크계단 - 고사리분교터 - 재약산(1108) - 천황재 - 내원암 - 표충사 - 표충사주차장

(산행시간 : 5시간 30분)

 

 

 

07:30 집에서 출발

         일주일전부터 아내가 이번주 산에 가려면 밀양쪽으로 가란다.

         처가 쪽에 볼일이 있단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9/24일 시도했다 불의의 사건 발생으로 다 하지 못한 재약산 코스를 아내와 함께 가기로 했다.

 

         지난 9/24일 예기치 못한 일이 있었다.

         층층폭포를 지나 결코 상상하지도 못한 1,200이상의 계단을 올라 재약산 정상을 밟은 후,

         하산을 시작했을 때, 평소 아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다리경련이 있어 혼이 났던 것이다.

                 

08:17 밀양댐

         안개가 가득한 댐의 모습이 멋졌다.

         이 시간보다 좀 더 일찍이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08:40 표충사주차장

         예상한 것 보다 복잡하지 않은 모습이다. 나에게는 그리 이른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는데, 이른 시간인 모양이다

         지금 주차하고 있는 차들의 대부분은 등산하는 사람들의 차들일테다.

 

09:35 흑룡폭포전망대

         이 코스는 크고 작은 폭포가 세 개 있는데, 첫 번째 마주하는 폭포가 흑룡폭포다.

         이 흑룡폭포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물론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좋겠지만, 이 코스에서는 더 이상 접근할 수는 없다.

       

         공식적인 흑룡폭포전망대가 이곳보다 몇 분 더 올라가면 있지만 폭포를 보는 각도가 다르다.

         아래로 수십미터의 절벽과 위로로 높은 절벽 사이를 가야 접할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또 아래 쪽으로 내려가 좀 더 흑룡폭포를 볼 수 있지만, 너무 위험하고 거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다.         

09:43 흑룡폭포전망대

10:11 무명폭포

10:32 층층폭포

10:44 임도

11:02 고사리분교터

         정확한 명칭은 상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다.

         이 사자평 고사리분교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키운 학교였단다.

         목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따라 사자평에 들어간 백** 양은 MIT 공대 졸업생이 되어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단다.

         그 알프스 소녀는 “나를 키운 곳은 사자평이었다”고 추억을 이야기 했단다.

         고사리분교는 재약산 수미봉 아래의 고사리 재배촌(해발 812m)에 자리 잡고 있는데, 

         사자평마을은 오래전부터 도자기를 굽던 도예공들의 후세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터였단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80호까지 늘어나 났고, 아이들이 늘어나자 1966년 4월 29일 분교를 개교했는데,

         초창기에는 화전민이 쓰던 빈 흙집을 그대로 이용하다가 개교 2년 만인 1968년에 1천 평의 학교 부지가 조성되었단다.

 

         사자평은 마을과 마을이 십리 간에 뚝뚝 떨어져 있어 등교하는 아이들은 하늘억새길을 걸어 다녔는데,

         산업화의 물결과 교통의 불편으로 주민들이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결국 30년째인 1996년 3월 1일 사자평분교는 총 3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는 막을 내렸고, 1999년 교실은 철거되었단다. 

 

11:22 계단 시작점

          지겨운 계단의 시작이다.

          일전에 갔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다시 내려오면서 헤아려봤더니 대충 1,200개 이상은 되었다.

          아마도 이 계단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12:06 계단 끝지점

         계단을 오르는 시간만도 40분 이상이 걸렸다.

         물론 중간에 좀 쉬어 간식도 먹긴 했지만 말이다. 아마 여름이라면 오르지 못할 계단일지도 모른다.

         그늘도 없는 땡볕 아래서는 말이다.

 

12:14 재약산(1108)

         정상에도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재약산과 천황산의 개명 여부를 두고 두 산을 공유한 울주군과 밀양시가 논란을 벌이고 있단다.

         울산시는 지난 8월 현재 지명을 유지하자는 울주군의 안을 수용했는데, 울산시 지명위는 "천황산 지명을 밀양시가 주장하는 일제 잔재물로

         치부하기에는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조선조 영조36년(1760)에 제작된 여지도에 천왕산이란 이름이 분명히 기록돼 있다"고 밝혔단다.

         이어 1897년 대한제국이 시작되면서 연호를 광무, 왕을 황제로 호칭하면서 천왕산을 천황산이라 고쳐 불렀다고 주장했단다.

         반면 밀양시는 일제강점기 전에 불린 고유지명인 재악산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재악산은 설악산 등 국내 오악의 정기를 실은 산이라는 의미로, 대동여지도와 동람도 등 고지도는 물론 각종 문헌자료와 유물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란다.

         시는 재약산과 천황산을 하나의 산군으로 묶어 재악산으로 부르되, 재약산 제1봉은 수미봉, 천황산 제1봉은 사자봉으로 각각 명명해

         달라는 내용의 지명 변경안을 경남도 지명위 의결을 거쳐 국가지명위에 제출한 상태란다. 

12:56 천왕재

         천왕재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시간을 보니 오후 1시쯤이다.

         우리 하산해서 점심을 먹기로 해 간식 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적게 가져왔나 보다.

 

13:26 계단

13:58 내원암

14:09 표충사

         표충사(表忠寺)는 밀양읍에서 동쪽 방향으로 28km 떨어진 재약산 기슭에 자리 잡은 사찰이며, 사명대사의 호국성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란다.
         표충사는 654년에 원효대사가 나라의 번영과 삼국통일을 기원하고자 명산을 찾아다니던 중, 천황산 산정에 올라 남쪽계곡 대나무 숲에서 오색구름이

         일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터를 잡아 절을 세우고 사찰의 이름을 죽림사(竹林寺)라고 했단다.

         829년(신라 흥덕왕 4) 인도의 고승 황면선사(黃面禪師)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 이곳에 머물 때 당시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악성 피부병에

         걸려 전국에서 명산과 명의를 찾던 중 이곳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단다.

         이에 흥덕왕이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크게 부흥시켰으며, 왕자가 마셨던 약수를 영험한 우물 약수라는 뜻의 ‘영정약수’라 했고,

         이때부터 절 이름을 ‘재약산 영정사(靈井寺)’라 고쳐 부르고 크게 부흥시켰단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사찰이 불에 타 소실된 것을 1600년에 혜징화상이 중건했으며, 1679년에 실화로 화재가 발생하여 다시 소실되자,

        1680년에 대규모로 가람을 중건했단다. 1839년(헌종 5)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국난 극복에 앞장선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를 모신

        표충사당(지금의 대법사 자리인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영축산 백하암에 있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절의 이름을 ‘표충사’로 개명했단다.

 

14:16 표충사주차장

         천황재에서의 하산길도 경사가 급한 길이었다.

         이 코스로 내려오기는 처음인 듯 하다.

         표충사 거의 다와서 내원암 대웅전 앞에서 합장을 했고, 또 표충사에 들러 나오면서 몇번의 합장을 했다.

         무사함에 대한 감사다.

 

         표충사주차장을 떠나 밀양시내를 들어오면서 손두부(8,000원)와 산채비빔밥(8,000원)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또 감따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동서집에 들러 한 시간쯤 단감을 땄고, 또 몇분의 동서와 다섯 분의 처형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고

         내가 한 일에 비해 넘치는 감을 얻어 집으로 왔다. 내일은 또 초등학교 동기 몇명과 산행겸 동기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