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 - 흑룡폭포 전망대 - 작은폭포 - 층층폭포 - 고사리분교터 - 재약산 - 사자평,산들늪 - 층층폭포 - 작은폭포- 흑룡폭포 전망대 - 표충사
(산행 시간: 8시간)
07:20 집에서 출발
여름보다는 확실히 늦은 시간 출발이다.
늦은 출발이지만 계절적으로는 그래도 일찍 나서는 듯도 하다.
아침을 된장찌게에 밥을 조금 말아 먹고, 점심은 내려와서 먹을 생각으로 간식만 조금 챙겼다.
이번 산행지를 놓고, 주암마을에서 출발해 심종태바위, 재약산, 천황산, 샘물상회를 거쳐 주암마을로 하산하는 코스와
표충사에서 흑룡폭포전망대, 층층폭포, 재약산, 천왕산, 진불암갈림길, 다시 표충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가지고 망설였다.
그러다 그래도 접근하는 거리가 조금 멀어 가보기가 더 힘들고, 또 덜 가본 코스인 두 번째 코스를 택했다.
이 산행코스는 높이 30m가 넘는 흑룡폭포와 층층폭포를 품은 옥류동천(玉流洞天) 계곡을 따라 재약산(수미봉, 1108m)에 오른 뒤
천황산(사자봉, 1189m) 사이의 천황재를 거쳐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총거리는 약 11.4㎞, 5시간가량 걸린단다.
08:10 밀양댐
네비 아가씨가 양산에서 에덴벨리리조트가 있는 급한 산길로 방향으로 잡아 밀양댐을 거쳐간다.
예전에 영남알프스둘레길을 할 때 눈에 익은 길이다.
08:30 표충사주차장
그래도 아침 이른 시간이라 주차장에 차들이 두 서너대 밖에 없다.
아직 가을이 닿지 않은 모양이다. 가을이 완연할 때면 난리도 아닐텐데.
08:40 표충사
표충사 경내도 마찬가지다.
대웅전 법당에 간절한 바램을 담은 여인네 몇 분의 기도모습이 애처롭다.
표충사(表忠寺)는 밀양읍에서 동쪽 방향으로 28km 떨어진 재약산 기슭에 자리 잡은 사찰이며, 사명대사의 호국성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란다. 표충사는 654년에 원효대사가 나라의 번영과 삼국통일을 기원하고자 명산을 찾아다니던 중, 천황산 산정에 올라 남쪽계곡
대나무 숲에서 오색구름이 일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터를 잡아 절을 세우고 사찰의 이름을 죽림사(竹林寺)라고 했단다.
829년(신라 흥덕왕 4) 인도의 고승 황면선사(黃面禪師)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 이곳에 머물 때 당시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악성 피부병에 걸려 전국에서 명산과 명의를 찾던 중 이곳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단다.
이에 흥덕왕이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크게 부흥시켰으며, 왕자가 마셨던 약수를 영험한 우물 약수라는 뜻의 ‘영정약수’라 했고,
이때부터 절 이름을 ‘재약산 영정사(靈井寺)’라 고쳐 부르고 크게 부흥시켰단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사찰이 불에 타 소실된 것을 1600년에 혜징화상이 중건했으며, 1679년에 실화로 화재가 발생하여 다시 소실되자,
1680년에 대규모로 가람을 중건했단다. 1839년(헌종 5)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국난 극복에 앞장선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를 모신 표충사당(지금의 대법사 자리인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영축산 백하암에 있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절의
이름을 ‘표충사’로 개명했단다.
09:23 이정표(층층폭포 4.4)
09:49 흑룡폭포 전망대
이번 코스에 크고 작은 폭포를 세 곳을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마주하는 폭포가 이 장엄한 흑룡폭포다.
이 흑룡폭포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물론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좋겠지만, 이 코스에서는 더 이상 접근할 수는 없다.
공식적인 흑룡폭포전망대가 있지만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을 보려면 전망대가 아니 곳으로 가야하는데,
아래로 수십미터의 절벽과 위로로 높은 절벽 사이를 가야한다. 즉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냥 산행지의 산행코스로 가는 이들은 이곳을 모를 수 있다.
이곳에서 더 아랫쪽으로 내려가 계곡으로 향하는 길도 있긴 하지만 너무 위험하고 거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다.
또 지금은 그동안 내린 비로 계곡물이 불어 있어 아마도 그곳으로 가니는 힘들 듯하다. 간신히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나왔다.
10:07 흑룡폭포 전망대
공식적인 폭포전망대다. 멀리 바라보이는 폭포의 모습이 흑룡이라기 보다는 초저녁이나 새벽에 백룡이 승천하는 모습이다.
백룡이든 흑룡이든 승천하는 모습이 장엄하기는 마찬가지일 듯하다.
10:33 작은폭포, 출렁다리
비박을 하고자 하는 남녀 두 사람이 이곳에서 쉬고 있었다.
나이도 그리 젊지도 않은 사람인데,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던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만냥 행복한 모습과 행동이다.
폭포의 기운을 받으려는 모양이다.
11:00 층층폭포, 출렁다리
여기서도 비박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두 사람과 나는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산을 올랐다. 그 사람들의 배낭에 비해 반도 안되는 무게를 진 내가 그들과 그랬다니
나이 탓인가, 체력 탓인가.
11:25 능선
11:32 임도, 작전도로
11:48 등산안내도
11:53 이정표(고사리분교 0.12, 재약산 1.33)
11:56 고사리분교터(사자평분교터)
사자평 고사리분교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키운 학교였단다.
알프스 소녀 중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따라 사자평에 들어간 백** 양은 MIT 공대 졸업생이 되어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단다.
그 알프스 소녀는 “나를 키운 곳은 사자평이었다”고 추억을 이야기 했단다.
정식 명칭이 ‘밀양 산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였던 고사리분교는 재약산 수미봉 아래의 고사리 재배촌(해발 812m)에 자리 잡고 있어
애칭 고사리분교로 더 잘 알려져 있단다. 사자평마을은 오래전부터 도자기를 굽던 도예공들의 후세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터인데,
한국전쟁 이후에는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80호까지 늘어나 났고, 아이들이 늘어나자 1966년 4월 29일 분교를 개교했단다.
초창기에는 화전민이 쓰던 빈 흙집을 그대로 이용하다가 개교 2년 만인 1968년에 주민 50여명과 선생님에 의해 1천 평의 학교 부지가 조성되었고,
1970년 현대식 교실과 화장실을 신축했다.
사자평은 마을과 마을이 십리 간에 뚝뚝 떨어져 있어 등교하는 아이들은 하늘억새길을 걸어 다녔단다.
산업화의 물결과 교통의 불편으로 주민들이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결국 30년째인 1996년 3월 1일
사자평분교는 총 3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는 막을 내렸고, 1999년 교실은 철거되었단다.
13:21 재약산(1108)
드디어 재약산 정상에 도착했다.
어느 산이든 마찬가지로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다.
산행을 시작하고 4시간이 넘은 시간이다. 이렇게 많이 걸린 것은 산행길에서 만난 멋진 폭포 등을 구경 하느라,
또 고사리분교터에서 그때 사자평을 뛰어 놀던 학생들의 모습을 그리느라 지체한 것은 있지만,
고사리분교를 지나 임도에서 재약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수백 계단도 단단히 한 몫했을 것이다.
재약산과 천황산의 개명 여부를 두고 두 산을 공유한 울주군과 밀양시가 논란을 벌이고 있단다.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연내 결론이 날 전망인데, 울산시는 지난 8월 지명위원회를 열어 현재 지명을
유지하자는 울주군의 안을 수용했단다.
울산시 지명위는 "천황산 지명을 밀양시가 주장하는 일제 잔재물로 치부하기에는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조선조 영조36년(1760)에
제작된 여지도에 천왕산이란 이름이 분명히 기록돼 있다"고 밝혔고, 이어 1897년 대한제국이 시작되면서 연호를 광무, 왕을 황제로 호칭
하면서 천왕산을 천황산이라 고쳐 불렀다고 주장했단다.
반면 밀양시는 일제강점기 전에 불린 고유지명인 재악산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재악산은 설악산 등 국내 오악의 정기를 실은 산이라는 의미로, 대동여지도와 동람도 등 고지도는 물론 각종 문헌자료와 유물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란다.
울산시는 재약산과 천황산을 하나의 산군으로 묶어 재악산으로 부르되, 재약산 제1봉은 수미봉, 천황산 제1봉은 사자봉으로 각각 명명해
달라는 내용의 지명 변경안을 경남도 지명위 의결을 거쳐 국가지명위에 제출한 상태란다.
그건 그렇고, 재약산에서 황당한 일이 있었다.
정상을 10여미터를 앞두고 바위를 오르는데, 왼쪽 다리에 경련(일명 쥐)이 잠시 있었다.
금새 괜찮아 정상에 올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 틈에 끼어 사진 한 장 찍고는 내려와 바위에 앉으려는 순간
왼쪽 다리에 심한 경련과 함께 엄청난 통증이 왔다.
주무르기를 10여분을 하고 다시 움직이려 했지만 몇 발자국을 가지 않아 주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또 경련과 통증이 밀려온 것이다
수 십년 산행을 하는 동안 남들이 그런 경우는 봤지만 내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잠시 119와 헬기호출도 생각했을 정도다.
벌써 몇 년째 넣어 두고 있던 아스피린이 생각나 그것 한 알을 먹고 주무러기를 반복, 몇 십분을 쉬고나니 괜찮아졌다.
더 이상 산을 오르기는 힘들 듯해 코스를 변경, 올라온 코스로 하산을 시작했다.
또 덱계단이다.
천천히 내려오면서 세어보니 1,285계단 정도 되었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1,200개는 넘는 계단이 분명하다.
14:37 이정표(고사리분교 0.12, 재약산 1.33)
14:50 사자평, 산들늪(억새군락지)
점심도 먹지 못했다. 아니 점심을 아예 가져 가지 않았다.
먹은 것도 부실했고, 물로 아껴 먹어야만 했다.
앞에 다리 경련도 있었고, 배도 고프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사자평과 억새군락지는 돌아봐야지
고사리분교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사자평과 그에 이어진 억새군락지를 전망대에서 바라보았다. 억새가 장관이다.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다행이 다리는 문제를 더 이상 일으키지 않았다.
15:10 이정표(재약산 1.85, 표충사 3.35)
15:13 층층폭포, 출렁다리
15:29 작은폭포, 출렁다리
층층폭포를 지나 작은폭포로 내려오는 동안에도 간간히 올라 오는 사람들과 마주쳤는데,
어디까지 몰라가는 지는 모르지만, 지금 올라가서 언제 하산을 할 것인가. 날이 어두워질텐데..
16:30 표충사
표충사 일주문 앞에 외국 젊은이들의 한 무리가 보였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 여행하는 것도 이른 모습일테지. 우리에게는 별것도 아닌 것들이 다 신기한 모양이다.
마냥 행복한 모습이다.
깊이 합장을 했다.
오늘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해 준 것에 대한 깊은 감사다.
16:40 표충사주차장
주차한 차들이 아침보다는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차여유공간이 많다.
이런 날이 불과 며칠 상간일 거다. 아마 다음주? 아니 그 다음주에는 전쟁터를 방불하지 않을까!
부산으로 오는 길에 청국장 한 그릇을 먹었는데, 6,000원이다. 도시와 비슷한 가격이다.
아침을 6시 반쯤 먹었으니, 열시간 후의 식사다.
아마 집에 도착했을 때가 19시 정도는 되었을테다.
조금 일찍 하산을 할 수 있었더라면 예전에 걸었던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 인상적인 곳을 들리려 했는데...
(흑룡폭포)
(작은 폭포)
(층층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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