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行)/길따라 물따라

2019.05.05. (범어사, 홍룡사, 내원사, 통도사)

동선(冬扇) 2019. 5. 5. 20:51


(범어사 -  대성암 - 홍룡사 - 홍룡폭포 - 내원사 - 통도사 - 서운암)



07:40 집에서 출발

         어제는 짝지가 노는 날이라 점심도 먹을겸 나들이를 나갔었다.

         나들이라 해봐야 기장 쪽으로 가서 '아구찜'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근처 해안가를 좀 걷다가 아웃렛 매장을 간게 전부다.

         오늘은 짝지가 출근을 하는 날이고 또 마침 다음 주가 '부처님 오신 날'이라 인근에 있는 절을 산책겸 해서 나갔다.

         카메라 두 대, 카메라 가방, 노트북, 책 한 권...

         산책하다 지치면 찻집에 앉아 책도 보고, 노트북 자료도 좀 볼 생각이다.


08:00 범어사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 금정산 산마루에는 금빛을 띤 우물이 항상 가득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그 속에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금샘'이라고 하였단다.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고기와 황금우물 그리고 산 이름을 따서 금정산 범어사라고 절 이름을 지었단다.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때(678년),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 중 하나로 창건하였단다.
         화엄경의 이상향인 맑고 청정하며 서로 돕고 이해하고 행복이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지상에 실현하고자 설립된 사찰로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로 불리운다.

         범어사는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길러내고 선승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오랜 전통과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으로 의상대사를 비롯하여 원효대사 ·

         표훈대덕 · 낭백선사 · 명학스님과 그 대에 경허선사 · 용성선사 · 성월선사 · 만해 한용운선사 · 동산선사 등 고승들이 수행 정진하여 명실상부한

         한국의 명찰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지닌단다.

         1950년대 동산스님이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후 한국근대불교를 이끌었으며,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사스님들의 뜻을 받들어 수행공간을

         지속적으로 확충하였고, 사부대중의 수행정진과 화합을 바탕으로 2012년 11월 총림으로 지정되었단다. 지유대종사를 초대방장으로 모시고 부산과

         영남 지역은 물론, 우리나라 불교의 중심 ‘선찰대본산 금정총림’으로 자리매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08:30 대성암

         범어사에 들린 김에 범어사와 바로 붙어 있는 대성사에 잠깐 들렀는데,

         그곳 입구에서 하얀 꽃을 보았다.  

        

        


         지식검색에서 물어 봤더니 '겹매발톱 꽃'이란다.

         매발톱 꽃의 꽃말은 꽃이 보라색 버림받은 애인, 흰색 꽃은 우둔, 적색 꽃은 염려라고 하는데,  꽃말이 좀 우습다.


09:18 홍룡사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중국의 승려 1,000명에게 천성산에서 『화엄경』을 설법할 때 창건한 사찰이란다.

         승려들이 절 옆에 있는 폭포를 맞으면서 몸을 씻고 원효의 설법을 듣던 목욕터였다고 하며, 창건 당시에는 낙수사(落水寺)라 하였다고 전하는데,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터만 남아 있다가 1910년대에 통도사의 승려 법화(法華)가 중창하였고, 1970년대 말에 부임한

         주지 우광(愚光)이 꾸준히 중건 및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폭포 옆에는 옥당(玉堂)이 있고, 폭포는 높이 14m인 제1폭과 10m인 제2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옛날 하늘의 사자인 천룡이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한단다.



09:32 홍룡폭포

10:15 내원사 주차장

10:22 내원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의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란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673년(문무왕 13) 원효가 당나라 태화사에 모인 1,000명의 대중이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미리 알고 '효척판구중'이라고 쓴

         판자를 날려 보내자 이를 보고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법당에서 뛰어나옴으로써 산사태를 피했다고 한단다.

         그뒤 1,000명의 중국 승려가 신라로 와서 원효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들이 머물 곳을 찾던 중 현재의 내원사 산신각 자리에 이르러 산신이 사라지자

         이곳에 대둔사를 창건하고 상·중·하내원암과 89개의 암자를 세웠다고 한단다.

         그뒤 1646년에는 의천이, 1845년에는 용운이, 1876년에는 해령이 중수했으며 1898년 유성이 수선사를 창설하고 절 이름을 내원사로 고친 뒤

         선찰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단다.

         6·25전쟁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55년부터 주지 수옥이 13동의 건물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현존 당우로는 선나원·심우당·불유각 등이 있단다.

         전국의 대표적인 비구니 수도선원 가운데 하나란다.


         내 고향이 이곳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소풍만 가면 내원사 쪽으로 왔었다. 언제부터인가는 모르지만 일주문 앞에서 '문화재구역입장료'를 받는데,

         1인당 2,000원, 주차료가 2,000원 이란다. 주민등록상 이지역 사람이면 무료인데, 난 무료가 되지 않았다.


10:48 찻집(내원사 인근)

         잠시 더위도 피할 겸해서 찻집을 찾았다.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주인이 정성을 드린 듯한 찻집이다.

         핸드드립 '에디오피아'와 빵 '머핀' 한 개를 시켰다. 가격(11,000원)도 도심에 못지 않다.

         한 1시간 정도 책을 보다 통도사로 향했다.


12:05 통도사

         통도사 창건의 기본정신은 부처님 사리(舍利)를 봉안한 금강계단(金剛戒壇)에 있단다.

         이 계단은 통도사의 정신적인 근거가 되기도 하며 창사후 가장 중요한 기록을 마련하고 있단다.

         그래서 통도사 역사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자료들은 어느 것이나 통도사의 변화에 대해 기술하기보다는 바로 금강계단의 변천과 그역사를 강조하기

         때문에 통도사 창건은 금강계단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다고 해야 한단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선덕왕때인 정관(貞觀) 12년 계묘년(癸卯 643)에 자장율사스님께서 당에서 모시고 온 부처님의 두골(佛頭骨),

         부처님의 치아(佛齒)등 사리(佛舍利) 100립과 부처님이 입으시던 비라금점가사(緋羅金點袈裟) 한 벌이 있었는데 그 사리를 3분하여

         일부분은 황룡사탑(皇龍寺塔)에 두고 일부분은 태화사탑(太和寺塔)에, 일부분은 가사(袈裟)와 함께 통도사 계단에 두었으며”라고 하였단다.

         계단은 2층으로 상층(上層) 가운데에 범종 모양을 하고 있는 석개(石蓋)를 안치하였단다.

         이 내용은 곧 통도사의 불사리 금강계단과 함께 부처님의 친착가사(親着袈裟) 봉안 사실을 전해주는 중요한 기록이단다.

         본래 금강계단이 축조되기 이전 통도사는 큰 못이었는데, 창건주 자장스님께서는 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통도사를 창건하셨단다.

         사찰에서 스님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스님에게 항복한 독룡은 모두 아홉 마리였는데, 그 가운데서 다섯 마리 오룡동(五龍洞)으로,       

         세 마리는 삼동곡(三洞谷)으로 갔으나 오직 한 마리의 눈먼 용만은 굳이 그곳에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하였으므로 스님은 그 용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머물도록 했다고 한단다. 그곳이 지금의 구룡지인데 불과 네댓 평의 넓이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단다.


13:20 점심 공양

         점심시간이다.

         그렇다고 다시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고 온다는 게 번거롭기도 하여,

         절을 찾는 신도들에게 공양을 하고 있어, 나도 줄을 섰다. 이렇게 통도사에도, 또 통도사 관내 암자에도 수 없이 왔지만,

         공양을 받기는 처음인지라, 조금 쑥스럽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기에 나도 섰던 거다.

         줄을 서고 한 3~40분 기다려 공양을 할 수 있었는데, 냉면 그릇같은 곳에 흰쌀밥, 미역나물, 상추걷절이, 김치, 순두부를 담아 와 먹었는데,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맛있게 먹었다.


13:30 서운암

         서운암하면 된장과 금낭화가 먼저 생각난다.

         수백 개의 장독과 봄이면 금낭화를 비롯한 많은 야생화들이 있다. 또 이곳에서 매년 봄이면 야생화 축제도 한다.

         양산의 영축산(靈鷲山) 자락에 있는 서운암(瑞雲庵)은 고려 후기인 1326년(충목왕 2) 충현(冲絢) 대사가 창건하였단다.

         이후 별다른 기록은 없고 1859년(철종 10)에 남봉(南逢) 화상이 중창하였다고 하는데, 통도사의 19 암자 중 하나로 법당과 요사를 갖추고 있단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지만, 주변이 야생화군락지로 유명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15:00 찻집(통도사 인근)

         이곳에서도 한 1시간 쯤 책을 보다 집으로 왔다. 어쩌면 집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것보다 오히려 머리에 더 잘들어오는 듯도 하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이 찻집에서 책을 많이 보는 것인가?

         골치 아픈 책이고, 온통 다가오는 미래가 불안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난 그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으련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17:30 집 도착 



(이하 범어사)













(이하 대성암)





(겹매발톱꽃)



(이하 홍룡사)

















(이하 내원사)










(차 한 잔)






(이하 통도사)
































(이하 서운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