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온하게 나이들 권리가 있다”
- 멋지게 나이들기 위한 삶의 기술, ‘마음의 평정’
과학기술의 발달로 ‘늙음’을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커지면서 ‘나이듦’은 고독, 불안, 우울, 빈곤 등과 같이 부정적이고 불쾌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젊음이 경쟁력인 시대, 은퇴 설계가 필수인 시대, 주름을 없애고 몸을 단련하며 노후 연금과 은퇴 후 취업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오늘도 늙음에 맞서 싸워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나이듦에 대한 초조함과 두려움의 반영이 아닐까. 나이듦은 이렇게 어떻게든 무찔러야 하는 정복의 대상일까.
‘영혼의 치유사’로 불리는 독일의 저명한 대중 철학자 빌헬름 슈미트는 나이듦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세태에 반기를 들며 삶과 나이듦의 의미를 새로운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 평정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의 노년과 60 문턱에서 자신의 노년을 준비하는 저자 스스로의 삶에 대한 성찰은 저자로 하여금 나이들어가는 삶에 있어 ‘마음의 평정’이란 가치에 주목하게 했다. 늙음을 부정하며, “사그라지는 인생에 대한 울분을 피어나는 생명에 분풀이하는 그런 분노의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멋지게 나이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이듦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나이든다는 것’은 각종 능력이 쇠하고 외형이 볼품없어지면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의 성장을 돕고 경험을 이어 전달하며 인생의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가면서 ‘늙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인간들을 욕망으로 선동하고 교란하며 삶을 소용돌이치게 하면서” 단순히 늙어가게 만든다. 때문에 삶이 각박해지고 서글퍼질수록 노년을 향해 가는 우리는 평정한 일상과 평정한 노년의 삶에 대해 동경하게 된다.
평정은 지금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더 풍성하게 해줄 정신적 원천이다. 특히 평정은 고대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불안해하지 않음) 이래 중요한 철학 개념 중 하나였다. 고대 철학의 실천적 성격을 이어받은 저자는 이 개념에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삶의 고통과 의미 상실을 치유하는 ‘삶의 기술’로서의 가치를 부여한다. 하지만 평정은 바란다고 저절로 생겨나는 것도, 나이가 든다고 자연히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평정은 온 생에 걸쳐 추구하고, 삶을 오롯이 마주하며 인식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가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과 철학의 대중화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저자의 삶에 대한 통찰과 어렵지 않고 담백하게 풀어낸 사색의 결과, 그리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에의 조언들은 불안과 좌절, 초조함으로 점철된 우리에게 유의미한 삶의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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