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산악부 출신 김동규씨가 30년 동안 근무했던 국민은행을 퇴직하고 2011년 9월부터 11월까지 60일 간 네팔
안나푸르나 라운드, 랑탕·
고사인쿤드·헬람부,
에베레스트를 다녀왔다. 필자는 퇴직 러시를 맞아 상실감이 큰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홀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감행했다고 한다. 김씨가 다녀온 트레킹은 3월호 안나푸르나 라운드, 4월호 랑탕, 5월호 에베레스트 등 3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우리에게 잘 알려진 히말라야. 그 중에서도 안나푸르나, 랑탕, 에베레스트. 그렇다. 여러 군데 트레킹 코스 중 위 세 군데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숙박지가 완벽하고 트레일이 잘 정비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다른 곳에 비하여 경비가 적게 든다는 점이다. 허가비가 저렴하고 포터나 가이드의 고용도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
|
|
틸리초 레이크 가는 길. 초대형 산사태로 길이 험하다.
|
산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에 가보고 싶어 한다.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지만 시간은 많다면 세 군데를 한꺼번에 다 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약간 무리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경제적이다.
가이드와 포터 없이 나 홀로 감행
필자는 9월 11일부터 11월 11일까지 두 달간 안나푸르나 라운드(19일), 랑탕·고사인쿤드·헬람부(13일), 에베레스트(16일)를 다녀와 히말라야에 대한 갈증을 한꺼번에 해소하였다. 어차피 두 달간 같이 갈 친구도 없었다. 또 여행의 목적이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다 가보자'였기 때문에 동행자를 찾지도 않았다. 동행자가 있으면 여행의 목적은 동행자를 배려해야 하는 것이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이드와 포터 없이 간 것은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외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포터 없이 스스로 배낭을 메기 위해서는 짐이 가벼워야 한다. 안나푸르나와 랑탕 지역은 로지마다 이불이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아주 춥지 않은 겨울만 피한다면 가벼운 내피용 침낭이면 충분하다. 에베레스트 지역은 무거운 침낭이 필수적이지만 불필요한 짐을 줄이면 가능하다. 여행 경비는 400만 원 정도. 항공료 100만 원, 여행 경비가 3000달러. 안나푸르나와 랑탕 지역은 하루 35달러 이내, 에베레스트 지역은 하루 50달러 정도면 된다. 포터를 고용하지 않아 100만 원 가까이 절약되었다.
안나푸르나는 베이스캠프(ABC)를 다녀오는 생츄어리(Sanctuary) 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 비교적 쉬우면서 짧은 기간에 가능하고 무엇보다 경관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은 최소 16일이 소요된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에 비하여 휴가가 많은 서양인이 주를 이룬다.
|
|
|
야크카르카를 지나서 토롱라 가는 길. 앞에 보이는 로지는 레타르.
|
안나푸르나 라운드를 첫 트레킹 지역으로 잡은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우기가 일찍 끝난다는 점이다. 히말라야의 우기는 일반적으로 6월부터 9월까지다. 그러나 안나푸르나 라운드 지역은 강수량이 적고 9월 초만 지나면 우기가 끝난다.
안나푸르나 라운드는 하나의 드라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하루하루의 모습이 다르다. 내일은 어떻게 날 놀라게 하나? 다음에 나타날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언제나 기대하게 만든다.
|
|
|
느가디 마을의 어린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
|
|
|
마낭의 모습. 왼쪽 부타키친 식당에서 창밖으로 강가푸르나를 조망할 수 있다.
|
잔잔하게 시작한다. 트레킹 초입의 옹기종기 느가디 마을은 파란 양탄자 위의 놀이용 블록처럼 연약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우기는 들판과 산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킨다. 마르샹디강 계곡에 묘기하듯 중턱에 걸터앉아 있는 자가트를 지나고, 느릿한 강물의 흐름과 전혀 구분이 안 되는 탈을 지난다. 어퍼피샹의 메밀밭은 그 색깔이 '소금을 뿌린 듯한' 것이 아니라 '
플라밍고의 군무'이다. 핑크빛 메밀밭은 달빛 아래가 아닌 하얀 구름 밑에서 달콤하고 황홀한 신방을 만들어낸다.
갸루에서 나왈 가는 길 경관 일품
점차 고도를 높여가며 마낭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토롱라(5416m)가 버티고 있어서 점차 걱정도 커진다. 특히 포터가 없는 트레커의 경우는 걱정은 배가 된다. 1년에 두 명씩 재물을 요구하는 토롱라. 그러나 토롱라를 넘기 전날 토롱하이캠프(4860m) 다이닝룸의 분위기는 비장함보다는 담담함이다. 2주일 가까운 사이에 너무나 많은 자유와 행복이 있었다. 누가 재물이 된들 기꺼이 맞아들일 것이다.
토롱라 너머는 거칠고 황량한 모습으로 돌변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표현일 뿐 그래서 너무 아름답다. 묵티나트, 종, 카그베니, 자르코트, 킹가르는 사막 속의 오아시스다. 어린왕자의 표현을 빌릴 수밖에 없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사막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에요."
|
|
|
카그베니와 좀솜 사이에서 만난 칼리간다키강. 드러난 강바닥으로 짐 실은 말들이 지나간다.
|
사막을 횡단하여 카그베니에 이른다. 카페 애플비스(Applebee's)에 앉아 칼리간다키강 너머로 저 멀리 어퍼무스탕을 바라본다. 당장 달려가고 싶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여정이 좀솜으로 가는 강에서 이는 먼지처럼 아스라하다. 타토파니 온천물에 목욕을 한다. 밀린 빨래를 해서 다울라기리 호텔 넓은 정원에 널어놓는다. 바나나 나뭇잎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나른한 햇빛에 슬며시 잠에 빠진다. 그 사이 한 차례 스콜이 지나간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지역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것도 풍요의 여신이 지켜주는 마을이다. 그래서 사람들도 넉넉하다. 랑탕이나 에베레스트 지역을 가보면 그 이유를 안다. 그래서 안나푸르나 라운드는 과정을 즐기는 여정이다. 시간을 넉넉히 가져야 한다. 당초의 계획은 계획일 뿐 고집할 필요가 없다.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거기서 머무르자. 필자의 경우 그렇게 해서 머문 나왈이 가장 추억으로 남는다. 거기서 마을 축제에 초대 받았다. 아름다운 여인과 춤도 추었다.
몇 가지 조언을 한다. 피상에서는 어퍼피상으로 오를 것. 갸루에서 나왈에 이르는 길에서의 경관이 일품이다. 나왈에서 하루 머물며 바르도체 곰파에 가 볼 것. 나왈은 라운드 지역 중 가장 풍요로운 곳이다. 아이스 레이크와 틸리초 레이크를 오를 것. 아이스 레이크는 트레일의 중간 결산 지점이다.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갈 길이 다 보인다. 틸리초 레이크에서는 살아 있는 빙하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묵티나트에서 종이라는 마을을 꼭 찾아가자.
글 사진 김동규 경희대 산악부OB / webmaster@outdoo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