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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10.11.09, 롯데 광복점 영풍문고) - 조정래 => P.O.N.

동선(冬扇) 2010. 11. 9. 19:58

 

 

 

 

야만의 얼굴을 한 천민자본주의,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그리는 작가, 조정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또 한걸음을 내딛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등 우리 근현대사를 대하소설에 담아내며 한국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 조정래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전작에서 한국의 근현대사, 분단과 이념의 문제, 비전향 장기수와 역사 밖으로 밀려났던 포로들의 인권 문제를 다뤘다면 이 작품에서는 처음으로 현대로 넘어와 성장의 빛과 그늘, 자본과 분배의 문제를 현란한 필치로 파헤쳤다. 그는 야만의 얼굴을 한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을 작품 속에 담아내어 현대 자본주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업계 2위인 일광그룹 소속 강기준 실행총무가 비자금 문제로 실형을 살고 나온 그룹 총수로부터, 라이벌인 일류 태봉그룹처럼 ‘회장 직속 정보 조직체’를 꾸리라는 특급 지령을 받는다. 이에 자신의 대학 선배이자 태봉그룹의 1급 첩보원인 박재우를 스카우트하게 된다. 박재우는 곧바로 그룹 내 사장급에 해당하는 기획총장에 임명되고, 정·재·관계와 언론계를 장악하며 재산 상속과 그룹 승계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업무를 전담하는 친위부대, 즉 〈문화개척센터〉의 판을 짜는 전방위적 로비 작업에 들어간다. 검사와 국정원 국장, 정부 서기관과 7급 세무공무원, 언론사 사주까지 떡 주무르듯 펼쳐지는 '무한 감동 로비' 이야기는 그리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이 땅, 한국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작가는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문학 작품은 모국어의 자식이며,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 시대, 그 사회의 모순과 비극을 써야 할 책임이 있다고. 그는 한국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돈에 환장하는 인간들의 작태'를 그린 작품을 써 내려간 것이다.  
 
그 사회의 모습은 사회구성원들의 자화상과도 같은 것이다. 그 모습이 추하든 아름답든 그건 피할 수 없는 자화상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냉정하게 우리의 자화상을 보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학이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Jo, Jung Rae,趙廷來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광주 서중학교를 거쳐 서울 보성고등학교 당시, 농촌 사회활동에 뜻이 있어 이과반에 적을 두고 있던 조정래는 3학년에 이르러 국문과로 진학 목표를 세우고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한다. 이 무렵 같은 과 동기인 김초혜를 만난다.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중편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인간 연습』, 『사람의 탈』,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등을 출간하였으며,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옥문학상, 동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동리문학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

『조정래 문학전집』의 1권 「대장경」에서부터 부패한 권력에 대한 비판, 민중에 대한 신뢰, 예술적 완성을 향한 집념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직접 체험을 소설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자신의 소설 원칙을 철회하는 것과 아울러 갑오농민전쟁과 3.1운동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중 항쟁의 역사를 대하소설로 풀어낼 계획을 세우고 「태백산맥」집필 준비에 들어간다.

고초 끝에 1만 6천 5백장 분량으로 6년간 연재된 태백산맥은 좌익운동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파헤치며 우리 민족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을 비판적 시각으로 다뤄 젊은 세대의 공감과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태백산맥은 완간 되자마자 문학담당기자와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1980년대 최고의 작품’, ‘1980년대 최대의 문제작’으로 꼽힌다.

태백산맥을 마치고 다시 1년쯤의 취재와 자료 정리기간을 거쳐 1990년 12월 아리랑 집필에 착수하고 1995년 7월에 2만장 분량의 원고를 탈고한다. 아리랑은 일제의 식민지배체제에서 왜곡된 민족의식을 바로 세우려는 작가의 집념이 서려 있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사 3부작의 말미를 장식하는 대하소설 「한강」을 마치고 ‘20년 글감옥’ 에서 출옥했다. 한강은 현대한국사회의 풍경화를 그려나간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은 전 32권 5만3천여장의 원고지에 높이가 5m50㎝에 이르며 그간 조정래의 책은 1000만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그의 대하소설『태백산맥』은 원고지 1만 6천 5백장의 방대한 분량 속에서 60명이 넘는 주인공들이 등장해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남기는 80년대 분단문학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이다. 그 동안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일방적으로 왜곡되어왔던 해방직후의 역사적 진실을 현미경 들이대듯 파헤치고 있으면서도 작품 전체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아리랑』은 식민지시대를 깊은 역사 인식으로 탐구한 대하소설로 김제 출신의 인물들이 군산, 하와이, 동경, 만주, 블라디보스톡 등지로 옮겨서 40여 년의 세월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제시대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일제의 폭압에 맞선 우리 민족의 저항과 투쟁과 승리의 역사를 부각 시키고 있어 민족적 긍지와 자긍심, 자존심을 회복케 하는 역작이다.

『한강』은 1959년 이후의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철저한 고증과 조사를 바탕으로, 한없이 세밀한 현미경의 시선과 한 번에 굽어보는 망원경의 시선이 교차하는 조정래 문학의 완결판이다. 4.19, 5.16, 10월 유신과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격동의 세월을 10권의 책으로 묶었다. 저술에 들어가면 어느 작가보다도 근면하고 규칙적으로 원고지를 채워나간다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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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은 독자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싶었다<br> 끔찍하고 절망스러워 썼다 지운 내용 많다"



소설가 조정래.



작가는 서문에서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고 토로했다. 나는 독자 입장에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모욕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자발적 복종'이라는 끝맺음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느껴졌다. 조정래 선생은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베스트셀러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 허수아비춤 > (문학의문학)은 쉽게 읽히지만 잔상이 오래 남는 책이다.

< 허수아비춤 > 은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 인터넷서점 인터파크에 두 달 동안 연재됐다. '자발적 컴맹'인 탓에 글은 여느 때처럼 원고지에 꾹꾹 눌러썼다. 그 원고를 출판사에서 입력해 인터넷에 올렸다. 애초 완성된 원고를 넘겼으니 글쓰기 방식이 달라진 게 아니라 독자들과 만나는 방식이 다양화된 셈이다. 누리꾼들의 댓글도 프린트된 것으로 봤다. 원고지로 글을 넘기고, 인터넷에 연재되고, 댓글은 프린트해서 보는, 그래도 작가와 독자의 소통에는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흥미로운 방식이다.

머리로 구상하고, 발로 취재하고, 몸으로 쓰는 '조정래식 글쓰기'

< 태백산맥 > 1만6500매, < 아리랑 > 2만매, < 한강 > 1만5000매, 지금까지 쓴 작품은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약 8만매. 자신을 글감옥에 가두고 매일 원고지에 또박또박 써내려가는 인고의 글쓰기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달라진 건 < 태백산맥 > 때는 하루 평균 30매 정도였는데, < 허수아비춤 > 은 25매로 약간 줄었다는 것. 그래도 애초 15매 정도로 계획했던 것에 비하면 체력 안배가 잘된 셈이다. 머리로 구상하고, 발로 취재하고, 몸으로 쓰는 '조정래식 글쓰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 허수아비춤 > 에는 대기업 재벌들의 반사회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기업 오너와 가신그룹의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 과정은 내부 증언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작가는 취재 과정에서 대기업 임원들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40년 동안 계속 듣고, 머릿속에 축적했던 내용들"에다 '시민단체 취재'를 더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허깨비의 모습을 그린 단편 < 허깨비춤 > 을 1976년에 발표했으니 비뚤어진 경제 구조에 대한 고민의 뿌리가 깊다.

< 허수아비춤 > 맨 뒷장 판권을 보면 '조정래'라는 붉은 인주의 도장이 찍힌 인지가 붙어 있다. '작가와의 협의에 따라 인지를 생략합니다'라는 문장조차 생략되고 있는 지금, 천연기념물 같은 '고집'이다. "이거 진품이야"라는 완성도를 도장의 신뢰감으로 연결한 게 그가 아직까지도 책에 인지를 붙이는 이유다. 심지어 이번에는 원고지 한 장 한 장마다 검수하듯 직인을 찍었다. "글쓰기의 고통을 끝내고 완결했다"고 스스로 확인해주는 도장이었던 셈이다. 결벽증에 가까운 자기 완결성은 항상 그를 '글감옥'에 가둔다. 그는 언제나 탈옥을 꿈꾸지 않고, 만기출소 하는 '모범수'다. 조만간 그는 스스로 또 감옥 생활을 자처할 것이고, 밖에 있는 독자들은 그의 만기출소를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조정래 선생 인터뷰는 지난 5일 오후 예술의 전당 맞은편 2층의 한 찻집에서 이뤄졌다.


- < 허수아비춤 > 이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 2위를 다투고 있는데도, 언론의 관심은 적은 것 같습니다.

"지난달 6일 언론을 불러 얘기를 나눴는데, 세 신문이 오지 않았어요. (그 신문들은) 한 줄도 안 썼어요. < 중앙일보 > 와 < 문화일보 > . 둘 다 큰 기업에서 하는 신문이잖아요. 그리고 < 동아일보 > . < 조선일보 > 는 조그맣게 썼는데, < 동아일보 > 는 왜 안 썼는지 아세요? < 동아일보 > (고 김병관 전 회장의) 아들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예요. 그게 우리나라 언론의 현실입니다. 자기들의 이익에 따라 기본 정보도 안 줘버리는 것이 한국 언론의 실태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잖아요. 기분 나쁘고 역겹더라도 기본적으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리는 게 언론의 역할인데 그걸 안 해버려요. 이게 언론의 원시성이고 횡포고, 반(反)사회적인 행위죠."

- 책 서문을 통해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고 했고, "이런 소설을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을 소망하면서 이번 소설을 썼다"고 하셨는데.

"모든 국민에게 행복 추구권이 있듯이, 모든 기업에게는 법이 이윤 추구를 보장하고 있어요. 그 범위 안에서 기업이 잘 육성되도록 국가가 제도를 만들어 주면서 세금을 매기는 겁니다. (기업이) 정당하게 투명 경영을 하면 돼요. 그런데 우리는 그게 안된 채로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 왔다는 거죠. 그러면서 비자금, 탈세, 불법 상속 등 상습적으로 경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거죠. 이건 지옥이에요. 이런 것이 없는 사회가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회인데…. 선진국 작가들에게는 전혀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없는 게 우리 작가들에게는 소재가 되고 있고, 수많은 독자들이 거기에 엄청난 호응을 하는…. 그러니 작가가 우울할 수밖에 없죠."

- 1976년 한국문학에서 < 허깨비춤 > 이라는 단편소설을 내셨는데요. 작품 소개를 보니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허깨비의 모습을 그렸다고 돼 있습니다. < 허깨비춤 > 은 개인의 문제, < 허수아비춤 > 은 구조의 문제를 다뤘지만, 문제의식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잘 봤습니다. 경제 문제는 사회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1970년대 초·중반에 정부가 국민을 향해서 '지금은 축적의 시기지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고 말했어요. 국민은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는 말을 지난 40년 동안 들으며 기다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정권이 그렇게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권도 '지금은 분배의 시기'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대기업들은 계속 경제 범죄를 저질러오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절망을 준 거예요.

< 허깨비춤 > 은 한 직장에 있는 월급쟁이들의 이야기고, 이것이 점점 커져서 전 사회적인 문제가 된 것이 < 허수아비춤 > 이죠. 그래서 < 허수아비춤 > 은 작가의 눈으로 40년간의 경제 역사를 보면서 찾아낸 결론이에요. < 한강 > 은 우리 경제 발전사의 총체적인 고찰 속에서 그 주인은 누구냐 하는 것을 찾아내려고 한 노력이잖아요. 셰익스피어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잖아요. 1980년대에 정치 민주화를 이룩했으니까 이제 경제 민주화로 가야만 우리가 소망하는 선진국으로 갈 수 있지 계속 이 상태로 방치되면 안됩니다. (그냥 놔둔다면) 소설의 결말처럼 또 다른 데 가서 같은 짓을 하게 되는 것이죠."

"대기업 임원들은 절대 그런 이야기를 안 하지요"

- '자발적 복종!'이라는 소설 맨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참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모욕 당하고 조롱 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모욕감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안 되겠다, 나도 사람으로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좌표를 찾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그 부분을 읽고 경제학자들도 놀랐다고 했어요. 자기들도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다면서."

- 소설을 읽어보면 대기업 재벌의 상층부가 자세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대기업 고위층 임원을 취재하지 않고서는 쓰기 어려워 보이는데, 취재 과정에서 대기업 임원들을 만났습니까.

"아니요. 안 만나봤어요. 대기업 임원들은 절대 그런 이야기를 안 하지요. 조정래는 < 태백산맥 > 을 쓰고 사회적으로 말썽을 일으킨 작가이기 때문에 (그들이) 취재에 절대 응하지 않아요. 자기들이 하는 얘기를 소설에 다 써버릴 것 같으니까."

- 그렇다면 어떤 취재 과정을 거쳐서 대기업 재벌 상층부의 구체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신 건가요.

"그건 내가 40년 동안 계속 듣고, 머릿속에 축적했던 것이 모인 겁니다. 시민단체쪽 김상조 교수 같은 분을 만나 취재했지만, 김용철 변호사는 안 만났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면 이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이 노출되고 방해를 받으니까요. 그리고 내 머릿속에 있는 게 너무 많았어요. 취사 선택 과정에서 취재한 내용의 2/3 정도는 폐기해요. 취재한 내용 가운데 골라서 상징하고 비약을 하는 거죠.

어떤 누리꾼은 이런 지적을 했어요. (대기업 상층부의 횡포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가난하게 사는지도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게 상투적인 거예요. 우리 국민의 80%에 달하는 소시민들은 가난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가난한 삶에 대해 굳이 안 써도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압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 한 병에 1500만원짜리 포도주를 마십니다. 보통 한 병에 7잔이라고 본다면 한 잔에 200만원짜리를 마시는 겁니다. '88만원 세대'라고 난리가 나고 있는데 얼마나 끔찍해요. ( < 허수아비춤 > 에) 그 내용을 썼다가 지웠어요. 너무 절망스러워서 못 견디겠어서.

그런 게 취사 선택을 하는 거죠. (소설 속에 거론된) 3000만원짜리 핸드백,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지 그런 것까지 보여주면 너무 삭막해진다고 생각했어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회사에서 쫓아내는 걸로 했다가 너무 삭막해서 부서 이동하는 걸로 바꿨어요. 거대한 재벌들이 비정규직으로 바꾸는 이유가 뭔가요? 소설에 설명은 없지만 유심히 읽어보면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서 정규직을 몰아내고 비정규직을 만드는 거예요. 월급이 1/3로 줄어드니까."

"취재한대로 쓴다면 아마 3권은 썼어야 됐겠지요"

- 대기업 재벌의 행태를 취재하면서 '이게 정말 사실이야'라고 놀란 적은 없나요.

"그런 적은 없어요. 이미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취재한대로 쓴다면 아마 3권은 썼어야 됐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건 문학이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될 테니까. < 허수아비춤 > 의 뜻은 두 가지입니다. 재벌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방치한 우리가 모두 허수아비춤을 춘 것이구요. 그런 재벌을 에워싸고 작태를 부리는 자들과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 간의 야합, 그런 행태를 허수아비춤으로 만들어버리지 않고서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뜻이에요."

- 여러 인터뷰에서 "특정 기업을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책을 읽어본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삼성을 연상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건 상관없어요. 삼성이 제일 큰 기업이고 사회적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집중적인 시선을 받는 것이죠. 한화나 현대도 마찬가지일 거고, 태광은 재계 서열 40위권밖에 안 되는데 비자금 규모가 1조원대라는 언론 보도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나머지는 다 똑같다는 얘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10여 년 전에는 재벌도 아닌 한 신문사 사람이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상상도 못할 금액으로 노름을 하다가 적발됐는데 다 덮었잖아요. (소설 속에 나오는) 스톡옵션을 받는 대기업 임원이 홍콩에 가서 3000만원짜리 카지노 하는 거를 보고 독자들이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그건 보통으로 일어나는 일이에요. 아니 10억, 20억씩 받았는데 3000만원이 돈이라고 생각하겠어요? (우리하고는) 감각이 틀려요. 독거 노인들은 20만원으로 한 달을 사는데, 그 짓을 하고 있어요."

- 불법으로 조성된 천문학적인 비자금은, 정의로운 사회라면 국민들에게 분배되어야 할 돈 아닙니까.

"바로 그겁니다. 내가 대기업을 욕하려고 이 책을 쓴 게 아니에요. 사회가 제대로 가게 하자는 것이고, 기업이 제대로 기업 활동을 하게 하기 위해섭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내가 그들을 망치게 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탐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좋은 충고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겁니다. 오늘의 기업으로 성장한 데에는 기업의 공이 1/3이에요. 그리고 거기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의 피땀이 1/3이에요. 그리고 물건을 사서 키워준 사람들의 공이 1/3입니다. 투명하게 경영하고 세금을 올바르게 제대로 내면 국가가 그걸 잘 관리해서 복지국가로 가야 해요. 그러면 이런 식의 작태가 벌어지지 않아요.

이 소설을 잘 탐독하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방법까지 알 수 있어요. 빌 게이츠며 워런 버핏까지 동원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했어요. 국민에게 당신이 얼마나 바보짓을 했는지, 얼마나 속아왔는지…. 나는 이런 소설을 쓴 게 처음이에요. 소설은 그냥 보여주면 되는 것인데.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소설의 원론인데, 그걸 파괴하면서까지 방법을 제시했어요. 시민단체에 모이라고. 국가권력을 믿을 수 없으니까. 야합하고 있으니까. 국민을 배신하고 있으니까."

- < 태백산맥 > 을 역사소설의 울타리 안에만 넣어둘 수 없듯이, < 허수아비춤 > 도 경제소설이라는 틀로만 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소설을 소재 중심으로 역사소설, 경제소설로 나누는 것은 잘못입니다. 비(非)인간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돌리고자 노력하는 것이 소설이에요. 소설이 단순히 재미있는 얘기, 연애 얘기라고 하는 것은 소설을 모독하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책 서문 뒷부분에 톨스토이, 타고르, 노신 등 세계적으로 중요한 작가들의 문학·작가론을 붙인 것도 이런 정신 아래서 내가 이런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한 거예요."

- 소설 속에서 빌 게이츠를 예로 들었는데, 그건 착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가 그런 분위기와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 아닌가요.

"당연하죠. 사회가 그런 구조를 만든 거예요. 자본주의는 복지제도가 없는 구조입니다. 경쟁을 통해서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보장해주면서 끝없이 생산해나가는 제도예요. 그런데 사회주의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나갑니다. 자본주의가 그런 사회주의와 싸워서 이겨야 하잖아요. 그래서 (자본주의도) 복지제도를 만들어내고 누진세를 만들어서 많이 번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라고 하고, 그걸 못사는 사람들에게 배풀었어요.

사회주의는 몰락했고 자본주의는 살아남았습니다. 사회주의가 개인의 욕구를 철저히 통제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개성이 다르고 능력이 다른데 정부가 직업까지 다 정해버렸어요. 말이 안 되는 거죠. 사회주의의 가장 큰 업적은 스스로 몰락하면서 자본주의를 강화시켜준 것입니다. 내가 예전에 망해버린 러시아를 다녀와서 내린 결론이 그겁니다."

- 선생님께서 < 황홀한 글감옥 > (시사인북)에 쓰신 걸 보니까, < 태백산맥 > 의 하대치와 외서댁, < 아리랑 > 의 공허와 필녀, < 한강 > 의 유일표와 강숙자를 마음에 드는 주인공으로 꼽았습니다. < 허수아비춤 > 에서 마음에 드는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허민 교수와 전인욱 변호사, 두 사람이지 뭐. 그런 지식인·지성인이 비인간적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이 사회가 제대로 되겠죠."

"시장권력이 정치권력보다 힘이 세다고 말하는 건 자가당착입니다"

- 참여정부 때 나왔던 말 가운데 화제가 됐던 게 '이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겁니다. 시장권력이 정치권력을 능가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요. 옛날에도 그랬지만,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어느 국가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두 가지가 있어요. 정치권력은 국민이 준 권한을 대리로 행사하는 거예요. 그것을 제대로 지킨다면 절대로 돈에 회유당할 이유가 없어요. 선거 때에는 한 놈도 빼놓지 않고 국민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소리쳐요. 그런데 딱 돌아서면 인간의 탐욕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경제권력과 야합해서 이익을 취하려고 해요. 거기서부터 틀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시장권력이 더 큰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정치인들이 (시장권력이 더 힘이 세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자가당착입니다. 기본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래요.

입법기관도, 사법기관도, 행정기관도 시장을 철저히 관리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놨어요. 그대로만 하면 경제권력이 꼼짝을 못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뒤로 불법 후원금 받고, 법조계도 뒷돈을 받으니까 스폰서 검사들이 나오는 거죠. 국세청이나 금융감독원도 다 매수당해버리니까 (시장권력이 더 세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시민단체들이 끝없이 고발하고, 고발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내가 시민단체 얘기를 하니까 '너무 미약한 것 아니냐'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다 바보들이에요. 지금까지 폭로된 재벌 비리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해낸 일이에요. 그들이 하지 않으면, 삼성이고 현대고 터지지 않아요. 지금까지 터진 것도 빙산의 일각이죠.

국민들이 참 바보이거나 착해서 투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선진국에서는 한 사람이 시민단체 5곳, 10곳을 지원하기도 해요. 많은 돈이 아니에요. 한 단체에 1000원씩 주면 만원이면 열 단체를 지원할 수 있어요. 만원씩 내면 10만원이면 됩니다. 골프 치는 사람들도 많은데, (필드에) 한 번 나가는데만 20만원 정도 들어요. 한 달에 네 번 나가면 80만원이에요. 골프를 한 번만 안 치고 시민단체 20곳에 만원씩 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산에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화분에 심은 화초예요. 화초는 사나흘만 관리하지 않으면 금세 말라 죽어버려요. 민주주의는 그런 화초예요. 끝없이 관리를 해야 하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는 시민단체가 그렇게 많은 겁니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인구가 비슷한데, 시민단체가 5만개나 있어요. 우리도 그렇게 안 하면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어요. 어떤 거대한 기업도 소비자가 불매운동을 해버리면 꼼짝 못해요. 그건 자본주의 사회의 공통점이에요."

- < 한강 > 다음에 이 작품을 써야겠다고 구상했다는데 늦어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문제를 지금 시점에 얘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신 건가요.

"그건 아니고. < 한강 > 이후에 두 개의 장편소설을 썼잖아요. 사회주의 몰락을 다룬 < 인간 연습 > (2006)과 약소국이 강대국들에게 어떻게 유린당하는지를 다룬 < 사람의 탈 > (2007, 이후 < 오 하느님 > 으로 제목이 바뀌었다)을 쓰느라고 < 허수아비춤 > 을 지금 쓰게 된 것뿐입니다. 작가는 쓰고 싶은 소재를 수십 개씩 머릿속에 갖고 있잖아요. 당시 사회주의 몰락을 사회학자들도 제대로 얘기하지 못했어요. 그걸 반드시 정리하고 싶어서 < 인간 연습 > 을 썼어요. 또한 강대국의 횡포는 끝없이 이어져요. 그래서 노르망디 얘기를 끌어내서 쓴 게 < 오 하느님 > 이었어요."

- 태광의 1조원대 비자금 문제 등 최근 터진 대기업 비리는 일반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마치 소설이 현실같고, 현실이 소설같은 느낌이 듭니다.

"인간의 총체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소설입니다. 이 책이 나올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태광 비자금 문제가 터지고, 한화 문제가 터졌어요. 독자들이 (소설과 현실을) 연결시켜서 이해할 수 있도록. 어떻게 보면 시의적절하기도 하고, 소설이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조건이 마련된 셈이죠."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계속 가슴에 품어야 돼요"

- < 허수아비춤 > 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소설은 진작 젊은 작가들에게서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작가의 인식과 의식이 그 작품을 지배하고 생산하게 되는 것이에요. 괴테가 그런 말을 했지요. '작가는 여든에도 소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젊은이들이 이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고 사적인 문제나 내부적인 문제, 가족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그게 자기 문학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문제에 접근할 수 없죠.

내가 < 태백산맥 > 을 쓸 때 나와 동년배 작가가 내게 이런 말을 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재밌게 잘 쓰냐'고. 나는 소설 연재량이 남들 두 배였거든요. 그러면서 '하긴 전라도에서는 빨치산 투쟁이 치열했지만 우리 충청도에서는 없었어'라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비웃었어요. 그 사람과 나는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 아리랑 > 을 썼고, 그 사람은 못 썼어요. 그도 나도 똑같이 경제발전 시대에 서울에서 살았지만, 나는 < 한강 > 을 썼고, 그는 못 썼어요. 그런 거예요."

- 선생님께선 알렉스 헤일리의 < 뿌리 > 를 읽고나니 가슴 속에 분노와 증오라는 두 개의 기둥이 솟았다고 했습니다. < 허수아비춤 > 에도 '지식인으로서 현실의 부당함과 역사의 처절함에 대해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가슴에 품고 있지 않다면 그건 지식인일 수 없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는 마치 동그란 네모 같은 느낌입니다. '이성'과 '분노', '논리'와 '증오'는 결합시키기 무척 어려운 일인데요.

"그게 지식인의 의무입니다. 항상 정의를 앞세워 놓고 이성적으로 분노하고 논리적으로 증오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게 없으면 올바른 길을 갈 수 없어요. 야합하고 타협하게 됩니다. 특히 작가는 시대의 산소예요. 산소 역할을 하려면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계속 가슴에 품어야 돼요."

- 지난달 말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문용식 나우콤 대표 간에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이마트 피자 등을 둘러싸고 벌어진 트위터 논쟁이 화제가 됐습니다. 논쟁 중에 정 부회장이 "아무리 왼쪽에 서 계셔도 분노는 좀 줄이도록 하세요. 사회가 멍듭니다"라고 말하자, 문 대표가 "사회가 멍드는 건 소시민의 분노 때문이 아니라, 재벌 대기업을 비롯한 기득권층의 탐욕과 부패 때문입니다"라고 맞받았습니다. 이 논쟁을 들어보셨나요.

"(인터넷을 하지 않아서) < 한겨레 > '직설'에 실린 걸 보고 알았어요. 나는 그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돈을 벌어도 대기업답게 벌어라. 치졸하게 벌지 마라.' 이마트나 홈플러스가 왜 그렇게 돈을 벌어야 하죠? 그렇게 돈을 벌어서 뭐하려고요? 돈을 벌어도 IT나 대기업에 어울리는 분야에서 좀 크게 벌라는 거예요. 구멍가게라는 건 물건이 비쌀 수는 있지만 서로 나눠 먹는 구조에요. 그렇게 서로 나눠 갖는 것인데…. 그걸 한 군데에 집중시켜서 10원, 20원 싸게 해서 수십만 명의 생계를 박탈해버리는 것이, 그런 몰염치가 자본주의 논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도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지, 큰돈을 갖고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구멍가게를 박살내면서 사는 건 아니라구요. 그래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건데 그들은 왜 지탄을 받는지 몰라요. 돈만 벌어보겠다는 건데, 많이 벌어보라고 그러세요. 그래서는 행복할 수 없으니까. 축복받는 부자가 있을 수 있어요. 워런 버핏이나 빌게이츠처럼.

나는 이번에 이번 소설을 내면서 모든 기업인들이 나를 미워할 거라고 증오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소설에 '나는 세금 내란대로 내면 사업 못합니다'라는 말을 써버렸으니까. 그 말은 모든 기업인들이 '나는 탈세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잖아요. 기업인들은 남다르게 상황 판단이 빠르고 추진력이 있습니다. 이성도 갖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탐욕이 그 이성을 덮고 있다는 거지요. 내 소설을 제대로 읽고난 뒤 탐욕을 걷어내고 이성을 회복해서 올바른 기업인의 길을 걷길 희망합니다."



- < 태백산맥 > < 아리랑 > < 한강 > 등 대하소설을 쓸 때도 취재 노트는 많지만 구성 노트는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잘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그 방대한 인물과 스토리를 머릿속에 두고 소설을 썼다는 것이.

"그걸 체험을 안 해서 그러는데…. 컴퓨터가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우리 뇌를 이길 수 없다고 하잖아요. 우리 뇌는 집중을 하면 상상할 수 없는 복합 효과가 일어납니다. 소설 쓰는 사람들의 두뇌 구조는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겠어요. 거기다가 집중을 하니까, 구성 노트가 없어도 가능합니다. 세세한 장면까지, 벤허보다 긴 영화가 한순간에 쫙 펼쳐지는 느낌이 와요. 어떤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면 자료를 읽으면서 벌써 머릿속에 구조가 그려져요. 그리고 현지에 찾아가면 그곳 지형지물을 보면서 저곳에다는 무슨 사건을 어떻게 엮어야겠구나 하는 게 떠올라요.

문학하는 평론가가 나와 함께 연해주로 취재를 갔어요. 그 사람은 돌아와서 별로 얻은 게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나에 관한) 글을 썼어요. 별로 자세히 본 것 같지도 않던데 하나의 역을 놓고 그 많은 사건을 엮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나는 같이 가면서 계속 머릿속에 (그런 장면들이) 떠오른 거예요. 서울 거리를 보면서도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서울 거리라는 거리를 만들었을까를 생각하고. 그건 말로 잘 설명이 안 돼요. 직접 해봐야 돼요.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머릿속에 치밀한 구성이 이뤄집니다. 물론 작가들도 사람마다 달라요. 도스토옙스키가 러시아 왕정 반대 운동을 하다가 잡혔잖아요. 사형대 위에 섰는데 마지막 할 말을 하라고 했어요. 시간은 5분이에요. 그 5분 동안 (머릿속에서) 평생이 지나간다고 했잖아요. 그게 소설가예요. 감성지수(EQ)가 강한 사람들이죠."

"작가의 눈에 보이는 사실이 정치인 눈에 안 보인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 다음 작품은 중국을 무대로 하는 소설을 구상한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중국·미국 젊은 기업가들의 이야기를 초현대판으로 쓸 예정이라고.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이번 소설에도 중국 얘기가 간혹 나오잖아요. 중국은 이미 세계의 공장이에요. 후진타오가 오바마를 누르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떠올랐잖아요. 우리나라도 일본과 미국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수출을 중국에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인구 4000만에서 5000만으로 오면서, 1970년대를 끝내면서 3D 기피 현상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300만명의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그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중국은 그게 아닙니다. 전체 인구의 85% 가량이 농민이었는데, 그 가운데 노동자로 옮겨온 게 2억 정도밖에 안 돼요. 1억은 일자리를 못 구해서 떠돌아다니는 부랑 인구예요. 3억~4억 정도를 노동자로 바꿀 수 있는 여력이 있어요. 우리보다 3D 기피 현상이 40년 늦게 오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이 사람들은 핵폭탄을 만들고 우주선을 날렸어요. 그 진폭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IT와 최첨단 산업, 가내수공업과 보세를 다 해먹을 수 있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2030년즘 돼야 중국이 (영향력 1위로) 부상할 것이라고 했는데, 벌서 돼버렸잖아요. 앞으로 보세요. 미국이 지금처럼 달러를 뿌리는 건 멸망하는 길이에요. 저 돈을 누가 다 흡수합니까? 중국이 흡수하고 있어요. 지금 중국이 미국보다 달러를 더 많이 갖고 있잖아요."

- 중국을 과소 평가하고, 미국을 과대 평가하는 현 정부의 외교 정책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 아닌가요.

"최근 시진핑(중국 국가부주석)이 6·25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실상 한국은 필요 없다는 입장을 취했잖아요. 굉장히 무서운 얘기예요. 후진타오(중국 국가주석)가 김정일이 중국에 갔을 때 건강이 나쁘다고 해서 장춘까지 와줬잖아요. 이거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에요. 중국은 지금 세계의 공장임과 동시에 세계의 시장이에요. 후진타오가 프랑스에 갔을 때 사르코지(프랑스 대통령)가 공항까지 나왔어요. 왜 그랬겠어요? 소련 비행기를 싹 없애버리고 프랑스 비행기 100대를 산다는데 그런 고객이 어딨겠어요. 그래서 내가 중국을 무대로 소설을 쓰려고 하는 겁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 대륙에 맹장처럼 붙어 있잖아요. 5000년 동안 중국과 애증 관계에 있어요. 우리나라 명사의 85%가 중국말이에요. 형용사와 부사 빼놓고는. 5000년 동안 문화 교류하면서 그렇게 된 거죠. 그런 점에서 우리가 중국을 이용하기에 더 유리한 측면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들 있어요. 작가의 눈에 보이는 사실이 정치인의 눈에는 안 보인다는 게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