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에 꽃이 피면
1974년 초여름 경의 일이다.
부산 범어사에는 푸른 대나무 밭이 울창했다. 당시 청련암이라는 암자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좌 한 분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큰일났습니다. 대나무 밭에 꽃이 피었습니다!"
과연 가보니 그 넓은 대밭에 하얀 대꽃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백년에 한번 핀다는 대꽃이 피어오르자 대숲은 하얀 눈이 내린 것 같았다.
신비스런 광경에 흠뻑 빠져 있을 때 뒤에서 한 스님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대꽃이 피면 대숲이 모두 말라 죽는다는데 무슨 변괴가 있을는지."
이 드넓은 대숲이 모두 멸종된다니. 눈꽃처럼 날리는 대꽃을 바라보며 '설마' 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후 범어사 대숲은 모두 고사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그 해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조총련계 문세광의 총격을 맞고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중국과 일본은 일찌기 대꽃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특히 대나무 숲에 꽃이 피는 바람에 그 일대 팬다가 멸종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중국은 언제 어떻게 대나무에 꽃이 피는지 깊은 연구를 했지만 아직도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대나무가 꽃을 피우는 이유가 자신의 기운을 모두 밖으로 뿜어낸 뒤 죽기 위한 준비라는 얘기가 있다. 즉 죽림이 분포한 지역에 지기(地氣)가 약해져 생존이 힘들어지면 대나무는 비축했던 기운을 방출하고 스스로 고사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사실 대꽃의 개화시기는 20년부터 100년까지 그 차이가 너무 커 대나무 자체에 수명이 있다기보다는 환경의 영향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그날 하얀 꽃이 핀 죽림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자연의 신비를 정확히 해석할 수는 없지만 그때 대나무가 발산하는 엄청난 기운에 스스로 놀란 기억이 난다.
사람은 언젠가 전 생애에 응축했던 기운을 모두 방출하는 때가 온다. 그날을 위해 한 시도 대충대충 살아서는 안된다. 자신의 운과 기가 쇄진하기 시작하면 대나무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이 생애 마지막 순간에 피어오를 꽃 한 송이를 항상 가슴 속에 간직하길 바란다. 부디 하얀 눈꽃처럼 청명하여 보는 이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는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차길진 후암미래연구소장.
한국불교신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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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의 한 섬마을에 '100년만에 꽃을 피운다' 는 맹종죽 수백그루가 일제히 꽃을 피웠다.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곡촌마을 야산에 꽃을 피운 대나무들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으로 바람에 꽃가루를 날리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지난 4월 죽순을 캐고 난 이후부터 대나무의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 주민 박남규씨(63)는 "대나무가 꽃을 피운 광경은 처음본다" 며 "색깔이 변해 죽어가는 줄로만 알았다" 고 말했다.
↑ 남해안의 작은 섬 거제시 칠천도 곡촌마을에 핀 진귀한 대나무 꽃이 화제다.
거제 하청면은 90년대까지 전국 맹종죽 생산의 80%를 차지했던 지역이다. 한때 300㏊가 넘었던 재배면적은 지금 130여㏊로 줄어들었다.
대나무가 꽃을 피우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주말이면 관광버스와 승용차를 타고 온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대나무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감상하고 있다.
'대나무는 60년 또는 100년만에 꽃을 피운다'는 설은 있지만 수백그루가 한꺼번에 세 곳에서 집단적으로 꽃을 피운 사례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솜대·왕대·조릿대 등에서 꽃을 피운 경우와 달리 맹종죽이 꽃을 피운 사례는 보고된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나무가 꽃을 피우는 이유로 기후 이상설, 태양흑점설, 영양부족설 등이 있지만 설에 불과하다.
현지조사에 나섰던 거제시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대나무가 꽃을 피운 이유를 단정하기 어렵지만 특정 효소나 양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 말했다. 꽃을 피운 대나무는 3년 정도 지나면 검은 열매(씨앗)를 맺은 후 죽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나무 꽃은 뿌리번식을 포기하고 종자번식을 택한 대나무의 마지막 생존방식인 셈이다.
일부에서는 대나무 꽃이 '흉조' 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대나무가 꽃을 피운 일이 번식을 위한 대나무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마을의 풍요를 가져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대나무가 꽃을 피우자 마을에 관광객이 오고 방송과 신문에 소개되는 것 만으로도 '길조'가 아니냐" 고 말했다.
거제시는 하청면 일대에 내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맹종죽 숲을 이용한 관광테마 공원 조성, 체험 프로그램 개발, 대나무 숯을 이용한 건축 마감재 생산시설 구축, 맹종죽을 이용한 가공품 개발 연구·용역, 맹종죽 공예품 개발 및 생산시설 구축에 역점을 두고 3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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