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당신이 누구든 무엇을 믿든, 오늘 밤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출간 즉시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석권! 전자책과 오디오북 판매량도 1위 기록! 초판 200만 부 발매! 12개국 동시 출간, 영국에서 첫 주에만 10만 부 이상 판매! 『다빈치 코드』 작가 댄 브라운의 신과 과학 그리고 미래에 대한 대담한 질문 댄 브라운, 그가 돌아왔다. 그는 ‘핫’하고 ‘날선’ 쟁점을 ‘지적’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지적 스릴러의 대가다. ‘소설계의 빅뱅’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그의 전작들은 지금까지 56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2억 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댄 브라운은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오르는 한편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7년 세계 최고 소득 작가’ 순위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제목과 표지에서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 소설은 예상대로 출간 즉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2017년 10월 초 12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호주,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터키)에서 동시 출간된 즉시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에서 당당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전자책과 오디오북 판매도 1위에 올라 댄 브라운의 식지 않는 명성을 과시했다. 『다빈치 코드』를 비롯한 그의 전작들이 그러하듯 『오리진』 역시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진실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 물음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이미 온 인류가 품어온 가장 오래된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제, 책장을 펼쳐 그 질문의 답을 추적해 보라! 당신이 누구든 무엇을 믿든, 오늘 밤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
한때는 평범한 교사였던 댄 브라운은 『다 빈치 코드』로 일거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실제와 허구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소설의 상상력이 얼마나 방대할 수 있으며,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주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1998년에 『디지털 포트리스 Digital Fortress』를 출간하고 『디셉션 포인트 Deception Point』, 『천사와 악마 Angels&Demons』를 내기까지 그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에 불과했다.
양친이 교사였으며, 부모님이 교사로 있는 뉴잉글랜드의 사립학교에서 성장하였다. 어릴적 꿈은 싱어송라이터로, 세 장의음반을 내고 90년대 초반 홍콩, 한국 등지를 돌며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꿈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소설가를 꿈꾸었다고 한다.
2003년 3월 『다 빈치 코드』가 출간되고 전 세계적으로 8,100만 부가 판매되면서, 그와 그가 창조해 낸 랭던, 그리고 이전작인 '천사와 악마'까지 재조명을 받게 된다. 『다 빈치 코드』는 고대 역사와 비밀단체, 암호 등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와 충분한 연구와 자료조사를 토대로 한 탄탄한 구성력을 갖췄다. 독자 스스로 질문과 대답을 되풀이하며 숨겨진 비밀에 보다 깊숙이 다가가게 하는 흥미로운 내용전개와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최고의 화제작이다.
『다 빈치 코드』가 과거 역사에 기반한 소설이라면, 『천사와 악마』는 현재 진행중인 첨단과학과 종교의 충돌을 그리며 인간 존재에 대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반물질 등의 물리학 지식, 바티칸ㆍ베르니니의 건축예술, 가톨릭의 역사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치밀하게 짜여진 추리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현대과학과 종교의 논쟁을 다룬 『천사와 악마』는, 짐작과는 달리 종교와 과학 둘 중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이냐를 논하는 소설이 결코 아니다. 또한 과학과 종교를 극한으로 대립시켜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독자를 몰아붙이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지금까지 선善이라고(또는 악惡이라고) 판단해온 수많은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또 다른 대표작 『디셉션 포인트』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욕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워싱턴 정계에서 세기의 정치 음모가 벌어진다. 지적 스릴러라는 장르에 걸맞게, 이번 소설도 천체물리학과 해양생물학 그리고 각종 최첨단 과학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테크놀로지가 실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는 NASA의 과학 기기와 델타포스 요원들의 무기들은 소설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그의 작품들은 풍부한 인문적, 과학적 사실을 상상력으로 짜맞춘 음모론적 구조를 갖는다. 그는 음모론자라기보다 회의론자에 가깝지만 권력 이면에 숨겨진 것들에 관심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그의 작품들은 쉽게 읽히지만 '비밀결사단체를 중심으로 한 선악의 대결'이란 도식적 구조에 머물러 왔다는 지적도 받는데, 그는 사실상 세상 대부분의 이야기가 선악의 대결구조라며 괴물이나 신화적 상징에 가까운 악인을 설정해 현대적 의미의 신화를 창조해 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생생함과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로 책장을 펼치는 순간 책 속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뛰어나다. 그의 글은 흥미와 더불어 미술품, 기호학 등 그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교양에 대한 풍부한 정보들을 함께 담고 있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다빈치 코드』가 8,100만부, 『천사와 악마』가 4,500만부 이상 판매되었고, 두 작품 모두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올랐고, 세계 언론은 그를 '소설계의 빅뱅'으로 부르고 있다.
소수의 독자들에게 읽히는 문학성 높은 책보다는 더 많은 독자들이 접할 수 있는 현대적인 글을 쓰려고 하죠. 반전을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독자가 원하는 단서를 주되,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으로 끌어가는 게 키포인트예요.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출판사 편집장을 지냈고, 캐나다 UFV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영어 번역 함부로 하지 마라』,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로스트 심벌』, 『다빈치 코드』, 『2012: 영혼의 전쟁)』, 『해골탐정 1·2』, 『대런 섄』, 『잉크스펠』, 『프레스티지』, 『관을 떨어뜨리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체 게바라, 한 혁명가의 초상』, 『솔라리스』 ,『인페르노』『천국의 도둑』『믿음의 도둑』『ZOM-B』『속죄 나무1, 2』,『언더 더 스킨』,『재빛 음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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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 수도원
로마인에게 몬스세라투스('톱니 모양의 산'), 카탈루냐인에게 몬트사그라트('신성한 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고 독특한 외형,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산타마리아데몬세라트수도원, 오래된 성모자(聖母子) 목조상(像)으로 유명하단다. 특히 이 목조상은 누가가 조각하여 사도 베드로가 스페인으로 가져온 것으로 전해지며, 무어인이 지배할 당시 동굴 속에 감춰져 있었단다.
880년에 우연히 발견된 이래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고 있는데, 그들은 많은 기적이 성모 마리아의 중재 덕분이라고 믿고 있단다. 붉은색을 띤 사암과 역암(礫岩) 산봉우리들이 침식작용 때문에 들쭉날쭉하고 거친 모습으로 거대한 산기슭 위에 솟아 있단다. 깊이 패인 협곡들 가운데 가장 넓은 말로 계곡의 가장자리 지점(고도 730m)에 수도원이 있단다. 유적들은 선사시대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보여준단다.
산타마리아의 기독교 은둔자들이 몬세라트에 거주하고 있을 당시인 888년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리폴 수도원이 이들에 대한 관할권을 부여받았단다.
11세기에서 15세기초까지 번창하던 정규 수도분원은 1410년 대수도원으로 독립하여 지금까지 그 지위를 이어오고 있단다. 현재의 바실리카 수도원은 각각 1560년과 1755년에 세운 것으로 반도전쟁 동안인 1812년 프랑스군에게 파괴당한 후 대대적으로 복구되었단다.
(자료 1 - 마망)
(자료 2)
(자료 3 - 구겜하임 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스페인어: Museo Guggenheim Bilbao)은 스페인 바스크 지방 빌바오에 있는 근현대 미술관이란다. 미국의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이 설립한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의 하나이다. 1997년 10월 18일 개관하였단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특유의 디자인으로 매우 유명한데 이는 철강업의 쇠퇴로 침체되었던 빌바오의 경제를 되살리기 까지 이르렀단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디자인은 대형 현대 미술관의 디자인 분야 중 가장 실험적인 도전이였으며 이는 매우 성공적이여서 새로운 미술관 건축양식의 표본으로 자리잡았단다. 벽의 외관은 티타늄으로 되어있으며 밤에 보는 모습이 더 아름답단다. 특히 불규칙한 볼륨이 관람객을 매혹시킨단다. 티타늄은 60톤 가량이 사용되었으며 판의 각 두께는 0.3mm이란다. 이렇게 얇은 두께는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이는 광원의 반사를 다채롭게 하여 매일마다 새로운 구겐하임 미술관을 볼 수 있단다.
세비야대성당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당(르네상스 양식),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네오르네상스 양식)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란다.
고딕 양식 성당 중에서는 세비야 대성당이 가장 크단다. 1401년 성당 참사회의 “그 어떤 다른 성당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크게 지어 이 성당이 마무리되면 성당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해야 한다.”라는 결정으로 무조건 톨레도 대성당보다 크게 지어야 한다며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짓기 시작해 105년 후인 1506년에 완공된 세비야 관광의 핵심이란다. 대성당 종탑인 히랄다 탑은 오렌지 정원과 함께 유일하게 남은 12세기에 지어진 이슬람 사원의 한 부분이란다. 17~18세기에 들어와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추가되면서 여러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기도 하단다.
(자료 5)
(자료 6)
(자료 7 - 허공으로의 도약)
(자료 8)
(자료 9 - 시간의 문제)
(자료 10 - 알무데나 성모대성당)
산타 마리아 라 레알 데 라 알무데나 대성당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마드리드 대교구 대성당이란다. 1561년 스페인의 수도가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이전되었을 때, 스페인 교회의 중심지는 여전히 톨레도에 머물러 있었단다. 따라서 가톨릭 국가의 새 수도인 마드리드에는 모든 성당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대성당이 없었단다. 대성당은 1085년 알폰소 6세가 마드리드를 점령했을 때 파괴되었던 중세 시대 이슬람교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단다.
대성당의 건설 책임자인 쿠바스의 후작 프란시스코 데 쿠바스는 네오고딕 양식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였는데, 스페인 시민 전쟁이 발발하면서 대성당의 건축은 전면 중단되었으며, 1950년 새로 건설의 책임자를 맡게 된 페르난도 추에카 고이티아는 쿠바스 후작의 계획과 설계도면을 바로크 양식으로 전면 변경하였는데, 대성당이 지어질 장소 맞은편에 있는 마드리드 왕궁과 잘 조화를 이루게 하기 위함이었단다.
대성당은 1993년에 완공된 후, 스페인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축성되었고, 2004년 5월, 스페인의 제1왕위 계승자인 아스투리아스 공 펠리페와 레티시아 오르티스의 혼배미사가 이곳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단다. 대성당 내부는 독특한 현대식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부속 경당과 조각상들은 네오고딕 양식에서부터 팝아트 데코 양식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다양한 양식으로 꾸며져 있고,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의 지하실에는 16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알무데나의 성모상이 모셔져 있단다.
(자료 11 - 정면충돌)
(자료 12 - 미로)
(자료 13 -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자료 14 - 마드리드 왕궁)
원래 9세기에 세워진 무슬림의 요새가 있던 자리로, 무슬림이 물러난 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요새를 궁전으로 사용했으나 1734년 크리스마스 밤에 대형 화재로 소실되었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 출신으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태어나고 자란 펠리페 5세가 이 자리에 베르사유 궁전과 비슷한 왕궁을 건립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탈리아 건축가였던 필리포 유바라(Filippo Juvara)가 설계를 끝내고 착공 전 사망하자 그의 제자였던 사게티가 승계 받아 사바티니, 로드리게스와 함께 1764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공하였다.
스페인 왕의 공식 거처이지만 현재는 공식 행사에만 사용되고 실제 거주하지는 않는다. 사방 150m의 왕궁 안에는 2,800개의 방이 있는데 그중 50개의 방만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특히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거울의 방을 모방해서 만든 ‘옥좌의 방’, 건축가 유바라가 설계한 로코코 양식의 걸작으로 정교함과 화려함이 더해져 호화스러움의 극치를 보여 주는 ‘가스파리니 방’, 벽 전체가 황금 비단으로 꾸며져 있는 ‘황금의 방’, 145명이 한꺼번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대형 식탁이 자리한 ‘연회장’에서 스페인의 화려했던 궁중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왕궁 안의 아르메리아 광장에 있는 약물 박물관도 왕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코스이다.
(자료 15)
(자료 16)
(자료 17 - 루이스 부르주아의 밀실)
(자료 20 - 성이슈트반 대성당)
(자료 21 - 이사벨라 여왕)
(자료 22 - 자퀸토의 스페인이 지킨 종교)
(자료 23 - 피카소의 게르니카)
(자료 24 - 테슬라 모델X P90D)
(자료 25 -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함께 가우디의 최대 걸작으로 손꼽히는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 도시를 모델로 하여 바르셀로나의 부유층을 위한 전원 주택 단지를 만들고자 계획했던 곳이란다. 1900년부터 약 14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60채 이상 분양되어야 했지만 공사가 진행되던 중 구엘이 사망하면서, 3채만 분양되고 미완성 단지로 남게 되었단다. 공원 입구에는 관리실과 경비들의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2채의 집이 있는데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단다. 그 앞으로는 알록달록한 타일 조각으로 옷을 입은 도마뱀 분수와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 삼은 시장이 있단다. 시장의 지붕 위에는 구엘 공원의 꽃이라 불리는 타일 벤치가 있는데, 마치 누워 있는 용이나 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고 있고,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의 모습은 해 질 녘에 더 빛을 발한단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미를 추구하는 가우디의 철학은 이 공원에도 적용되었으며, 이러한 특징은 길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단다. 자연 그대로를 설계에 담기 위해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지 않고 구불구불하게 길을 만들었으며, 마차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신기하게 이어져 있단다. 구엘 공원 안에는 가우디가 아버지와 함께 20년간 살았던 집이 있는데, 현재 이곳은 가우디 박물관이 되어 가우디가 생전 사용했던 유품들과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가구들을 전시하고 있단다.
(자료 26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큰 감명을 받고 돌아온 바르셀로나의 한 출판업자가 바르셀로나만의 대성당을 짓자는 운동을 벌여 시민 모금이 시작되었단다. 1882년 가우디의 스승이었던 비야르(F. de P. Villar)가 좋은 뜻에 동참하여 무보수로 성당 건설을 시작했지만 무조건 싸게 지으려고만 하는 교구에 질려 1년 만에 포기하고 자신의 제자였던 가우디를 후임자로 추천하였단다.
가우디가 공사를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는데, 그는 비야르가 설계한 초기의 디자인을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면서 그때부터 죽는 날까지 43년간 이 공사에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쳤단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직접 인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설계도를 그려 나갔고, 마지막 10년 동안은 아예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겨 인부들과 함께 숙식하면서까지 성당 건축에 몰입했단다. 그러나 1926년 불의의 사고로 그는 결국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자신이 지은 이 성당의 지하 납골묘에 안장되었단다. 원래 이 납골묘에는 성인이나 왕족의 유해만 안치될 수 있는데, 로마 교황청에서 그의 신앙심과 업적을 높이 사서 허가해 준 것이다. 그의 사후, 스페인 내전 과정에서 설계 도면이 불에 타 사라져 공사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의 정신을 계승한 후배 건축가들의 기술적 연구를 바탕으로 성당의 건축은 계속되었단다. 오로지 기부금과 입장료 수입만으로 공사 비용을 충당하고 있어 착공된 지 130년이 넘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언제 완공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단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총 3개의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가 있는데, 각각 ‘예수 탄생’, ‘예수 수난’, ‘예수 영광’을 주제로 설계되었고, 이 중 ‘예수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생전에 직접 완성시킨 것이란다. ‘예수 수난’ 파사드는 1976년에 완공되었고, 마지막 남은 ‘예수 영광’ 파사드는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상태란다. 3개의 파사드 위에는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이 세워지고, 중앙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탑이 세워질 계획인데, 현재까지는 8개의 종탑만 완공되었단다.
내부는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것처럼 나무와 꽃들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기존의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아름답게 빛난단다. 내부가 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미사를 여는 데는 지장이 없는 수준이 되어 가고 있단다. 종탑은 걸어서 오르거나 유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수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 풍경도 인상적이란다.
(27 - 카사밀라)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팬이었던 페드로 밀라 이캄프스가 카사 바트요를 보고 의뢰한 연립 주택으로, ‘카사 밀라(밀라의 집)’라는 이름보다 ‘라 페드 레라(채석장)’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단다. 거대한 돌덩이처럼 생긴 건물의 외관에서 가우디가 추구하는 곡선과 자연에 가까운 디자인이 한눈에 느껴진단다. 바다의 물결을 연상하게 하는 곡선의 외관과 미역 줄기를 닮은 철제 발코니는 주변 건축물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르셀로나 시민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도 했지만, 현재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되었단다. 옥상은 투구를 쓰고 있는 로마 병사와 타일로 만든 십자가 등 독특한 디자인의 굴뚝이 인상적이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의 풍경도 특별함이 느껴진다. 아래층에는 가우디의 작품들과 가우디에 관한 영상들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관이 있으며, 그 아래층에는 당시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어 매우 흥미롭단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된 건축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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