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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는 사람은 천천히 걷는다.

동선(冬扇) 2009. 1. 31. 20:10

 

멀리 가는 사람은 천천히 걷는다


대나무 죽순은 땅 위로 몸을 내밀면
그날부터 최고 1미터씩 쑥쑥 자란다.
그러다가 한 달이나 한 달 반 정도면
어른 대나무 키가 된다.
죽순이 하루에 자라는 키는
소나무의 30년 키와 같다고 하는데,
소나무는 줄기 끝에만 생장점이 있는 반면
대나무는 마디마다 생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생장이 끝나면 더 굵어지지 않고 몸체만 더 단단하게 다진다.
그러나 이 같은 죽순의 힘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지상에 올라왔을 때는 이미 땅 속에서
오랫동안 준비 기간을 거친 뒤다.
땅 속에서 56년을 자란 뒤에야 순을 밀어 올리는 것이다.
이 땅속줄기가 굵을수록 순도 굵고 줄기도 튼튼하다.
또한 대나무의 땅속줄기는 여러 개의 마디를 갖고 있는데,
그 마디들의 눈 중에서 죽순으로 솟아오를 수 있는 것은
10개 중에 하나밖에 되지 않는다.
한자 사전을 찾아보면, 대 죽(竹)은 풀 초(草·艸)와 달리
잎보다 뿌리를 강조한 문자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대나무를 비목비초(非木非草)라 했다.
나무 목(木) 자가 뿌리와 가지를 형상화하고,
풀 초(草) 자가 줄기와 잎을 묘사한 것이라면,
대 죽(竹) 자는 줄기와 뿌리를 강조한 글자다.
그만큼 뿌리의 힘이 강하다는 얘기다.
대나무 숲이 조성된 곳에서는
산사태나 홍수가 드문 연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대나무라선지 꽃도 일생에 딱 한 번,
생의 마지막 순간에 피운다.
한 나무가 꽃을 피우면 옆 나무도 따라 피우고,
결국은 대숲 전체가 한꺼번에 개화한다.
그렇게 온몸으로 꽃을 피워낸 뒤에는 장렬하게 죽는다.

*       *       *

지금은 유명한 소설가가 된 이순원 작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군 백일장에 나갔다가
아무 상도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크게 낙담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운동장 가에 있는 나무 아래로 불러
"너희 집에도 꽃나무가 많지?"하고 물으셨다.
그는 당시 선생님이 들려준 말을 여태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일찍 꽃을 피우는 나무는 눈길을 끌지만,
일찍 피는 꽃들은 나중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네가 어른들 눈에 보기 좋게 일찍 피는 꽃이 아니라,
이 다음에 큰 열매를 맺기 위해
조금 천천히 피는 꽃이라고 생각해.
클수록 단단해지는 사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