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질 높이려면 주차장·도로 늘리지 마라
인터뷰 -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인터뷰
지속 가능한 도시 위해 자동차 유입 줄이고
낙후지역 공간 재활용 공공교통 연결 쉽게
인간도 건물도 어울려야 서울 경쟁력 생겨
"사람들이 잘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로저스와의 인터뷰는 지난 9월24일 오전 런던 서남부의 템스강변에 있는 그의 회사 '로저스 스터크 하버+파트너스'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일부 내용은 10월29일 로저스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추가 인터뷰했다.) 이날도 그는 평소처럼 약 10분 거리의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출근했다.
-지난 2000년 이후 켄 리빙스턴 전 런던시장의 자문역이 돼 주요 도시 재생 계획·사업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 당신이 책 < 도시 르네상스 > (원제 < 작은 행성을 위한 도시 > )에서 제안한 혼잡통행료, 공공교통 개선, 보행자 다리 등이 실행됐는데.
"토니 블레어 정부 시절에 많은 제안을 했다. 아마 75% 정도는 이뤄진 것 같다. 도시 재생의 몇 가지 원칙을 소개하고 싶다. 첫째, 콤팩트 시티(압축 도시)로서 도시 안의 토지를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둘째, 일과 여가 공간이 공존해야 한다. 셋째, 빈곤층과 부유층이 공존해야 한다. 넷째, 공공교통으로 잘 연결하고, 독일처럼 자전거의 사용을 늘려야 한다. 다섯째, 좋은 디자인이 필요하다. 여섯째로 환경 친화적이어야 한다. 일곱째, 시민 참여로 좋은 리더십을 가진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거버넌스로서 도시를 바꿔야 한다."
-밀레니엄 브리지와 테이트 모던 갤러리로 대표되는 런던의 밀레니엄 사업은 도시 재생 차원에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성공적인 점은 템스강 남쪽 개발이다. 20년 전에는 아무도 그곳에 가려 하지 않았으나, 1990년대 이후 주거와 상업시설, 음식점 등이 들어서면서 나아졌다. 테이트 모던이나 밀레니엄 돔은 강을 따라서 핵심 지역을 개발했고, 보행로를 만들어 시민들이 쉽게 갈 수 있도록 했다. 파리의 센 강변은 걷기 좋은데, 과거의 템스 강변은 그렇지 않았다. 밀레니엄 사업은 시민들의 강변 접근을 개선했다."
-영국 런던은 도시재생과 건축 등 분야에서 세계를 이끄는 도시다. 런던의 장점은 무엇인가?
"현재 런던이 도시 재생에서 세계를 이끄는 최고의 도시는 아니다. 오히려 바르셀로나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콜롬비아의 보고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등 좋은 도시들이 각자 방식대로 움직이고, 발전하고, 새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민, 전문가들이 함께 제안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런던의 경우도, 나 혼자 제안한 것이 아니라 모두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 것이다."
-도시 재생 사업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잘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이 좋은 공간에 사는 사람이 높은 삶의 질을 갖게 된다.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우리가 도시를 만들고, 그 도시가 다시 우리의 삶을 만드는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서울을 방문했는데, 서울의 도시 재생에 대해 조언한다면?
"서울에도 강이 있는데, 강은 환경, 문화, 디자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서울에서 청계천의 재생 사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강은 공원처럼 좋은 공기를 주고, 도시의 온도를 낮춘다. 강은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곳이어서 어느 도시에서나 잘 활용될 수 있다.
또 하나는 도시의 팽창을 막는 것이다. 그린벨트에 손대기 전에 도시 안의 옛 공장이나 건물 터, 낙후된 곳 등 잘 사용되지 않는 지역을 찾아야 한다. 먼저 이런 공간을 찾아서 계획을 세우고 개발하고 교통을 잘 연결해야 한다."
-한국의 도시 재생 과정에서 건물이나 도로 등 기존 도시 구조를 없애고, 고층의 사무용 건물이나 고층 주택을 짓는 것이 유행이다. 이런 방식은 도시의 역사, 공동체성, 경관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이를 개선할 방안은 없을까?
"내가 태어난 이탈리아 피렌체는 고전주의 건축이 중세 건축의 배경에 맞서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인 바탕에 새 시대의 건축을 넣는 것이다. 도시 건축의 조화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영국의 조지안 테라스 스타일의 집처럼 건물들이 서로 비슷할 때의 조화다. 또 하나는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처럼 다양한 시대의 건물이 있고 이들이 서로 보완할 때의 조화다. 이 두 가지 모두 건물들은 그들의 규모와 비율, 소재, 색깔 등에서 잘 어울릴 수 있다."
-자동차는 현대의 도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지만, 더 좋은 도시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많다.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해 자동차를 어떻게 해야 하나?
"도시가 팽창하다 보면 이동 거리가 길어지고 교통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러면 환경적으로 지속할 수가 없다. 런던의 경우, 혼잡통행료를 도입해 자동차가 시내에 진입하기 어려워졌다. 현재는 교통수단의 95%가 공공교통과 걷기로 바뀌었다. 또 런던은 지난 수십년 동안 도심에 주차장을 만들지 않았는데, 주차장이 없으면 차들이 도심으로 들어올 수 없다. 하나 더 이야기하면 도로를 더 만들지 말아야 한다. 도로를 만들면 차는 당연히 많아진다."
-자전거로 출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것은 도시에 대한 생각과 관련 있는가?
"도시라는 곳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즐기는 곳이다. 나는 도시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이런 철학에 공감하는 우리 회사의 파트너들도 되도록 자전거나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로저스는 인터뷰 내내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가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사람 좋은 얼굴로 대답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 사무실 밖으로 나갔던 그는 잠시 뒤 지도를 들고 와서 '산업 유휴지'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드물게 인간적이고 겸손한 거장이었다.
런던/글 김규원 김기태 기자 che@hani.co.kr ,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로저스는 누구인가
파리 퐁피두센터 설계 세계 도시정책 길잡이
영국의 리처드 로저스(75)는 1971~77년 이탈리아의 렌초 피아노와 함께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설계해 완성하면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됐다. 퐁피두 센터는 각종 배관 설비와 에스컬레이터를 모두 건물 밖으로 빼고 내부를 단순한 3차원 공간으로 비움으로써 건물의 활용도를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건축 수법은 1986년 런던에 지어진 로이즈 보험사 건물에서도 잘 나타났다. 로이즈 건물과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스위스 재보험 건물(일명 거킨·2004년 완공)은 런던 도심의 현대성을 상징하는 건물들이다. 그는 1991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98년에는 종신 귀족이 됐다.
로저스는 97년 지속 가능한 도시의 모습을 제시한 책 < 작은 행성을 위한 도시 > (한국어 번역서명 < 도시 르네상스 > )를 저술했고, 이듬해 영국 정부 위원회인 '도시 태스크포스' 의장이 돼 < 도시 르네상스를 향해 > < 강력한 도시 르네상스를 향해 > 등 도시 재생 보고서를 제출했다. 콤팩트 시티로 요약되는 그의 아이디어는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도시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로저스가 대표로 있는 건축회사 '로저스 스터크 하버+파트너스'는 현재 서울 여의도의 옛 통일 주차장 자리에 4동의 건물로 지어지는 '파크원'(사진)의 설계를 맡고 있다. 4동의 건물은 72층과 54층 사무용 건물과 쇼핑몰, 호텔로 이뤄지며, 대지는 4만6465㎡, 연면적은 60만㎡에 이르러 건설비만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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