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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24.07.03) - 조르조 파리시 - 기록중

동선(冬扇) 2024. 7. 3. 15:56

책소개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생생하게 들려 주는
복잡계 물리학과 과학의 의미!
-김범준(성균관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언제나 더 많은 질문, 더 많은 도전을 찾아 헤매었던
한 물리학자의 명석한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


인류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 왔던 생각이 하나 있다. 이 세상을 이루는 참된 이치인 진리(眞理)가 우주와 대자연의 질서 속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작위와 무질서를 특징으로 하는 복잡계(complex system)이며, 진리도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평생의 연구를 통해 밝혀 온 사람이 있다.

바로 “원자에서 행성까지 물리계의 무질서와 변동 간 상호 작용, 무질서한 물질과 무작위 과정에 대한 기여와 공로”로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조르조 파리시(Giorgio Parisi) 이탈리아 사피엔차 대학교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지구 기후의 물리학적 모형 연구를 통해 복잡계에 기여한 마나베 슈쿠로(?鍋淑?), 클라우스 하셀만(Klaus Hasselmann)과 공동 수상했다.)

복잡계는 무질서한 상호 작용을 통해 많은 수의 행위자(agent)가 연결된 계를 말한다. 이때 행위자는 원자에서부터 일종의 합금인 스핀 유리(spin glasss), 신경 세포, 유전자, 단백질, 사람이나 동물까지 실로 다양하다. 상대성 이론으로 뉴턴이 해결 못 한 우주의 시공간에 담긴 비밀을 풀고, 양자 역학으로 상상도 못 했던 불확실성의 세계도 정복한 물리학자들의 쾌진격도 1960년대 이후 과학계 곳곳에서 분출하는 복잡계라는 난제에 가로막혀 멈추고 말았다.

원래 입자 물리학자였던 조르조 파리시는 자신이 원래 풀고 있던 이론 물리학적 문제를 풀기 위해 복잡계를 다룬 통계 물리학적 방법론을 들여다보다가, 1980년경 스핀 유리처럼 무질서하고 복잡한 물질들의 상전이 같은 기묘한 거동을 다루는 복제 기법(replica method) 같은 방법론을 발견하고 개발함으로써 통계 물리학뿐만 아니라 수학, 생물학, 신경 과학 및 기계 학습과 같은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완전히 무작위적인 갖가지 재료와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길을 열었다.

이번에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된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 한 복잡계 물리학자의 이야기(In Un Volo Di Storni: Le Meraviglie Dei Sistemi Complessi Copertina Flessibile)』는 이탈리아인 역사상 스무 번째 노벨상 수상자이자 이탈리아 물리학자로는 여섯 번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조르조 파리시의 첫 번째 대중 과학서이자 그의 첫 한국어판 단행본이기도 하다. 동시에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와 관련된 책 가운데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책이기도 하다.

파리시의 처음이자 최신의 에세이인 이 책은 그가 1966년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에 입학 후 68 혁명의 한복판에서 맛보았던 격변의 기억, 수수께끼 같은 상전이 현상에 쏟았던 관심, 스핀 유리를 분석하는 복제 기법 아이디어를 탄생시켰던 과정에 대한 고찰, 25세의 나이에 노벨상을 코앞에서 놓쳤던 경험, 그렇지만 결국 노벨상 수상자로 우뚝 서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담은 8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이탈리아 외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루마니아 등지에서 번역 출간되어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는 이 책은, 과학을 실험실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로 가져오는 흥분 넘치는 발견의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저 : 조르조 파리시
1970년에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Sapienza Universita di Roma)를 졸업하고 1971년부터 1981년까지 프라스카티 국립 연구소(Laboratori Nazionali di Frascati)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81년부터 1992년까지 로마 토르 베르가타 대학교(Universita degli Studi di Roma Tor Vergata)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고, 이후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양자 이론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88년부터 린체이 아카데미, 1992년부터 미국 국립 과학원, 1993년부터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2013년부터 미국 철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입자 물리학, 통계 역학, 유체 역학, 복잡계, 최적화 이론과 같은 물리학 분야뿐만 아니라 신경망, 면역 체계, 빙하 및 동물 집단(찌르레기)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볼츠만 메달, 막스 플랑크 메달, 노니노 상, 울프 상을 수상했으며, 2021년에는 “원자에서 행성 규모에 이르는 물리계의 무질서와 변동 사이의 상호 작용을 발견한 공로”로 이탈리아 물리학자로는 여섯 번째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역 : 김현주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태리어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페루지아 국립대학과 피렌체 국립대학 언어 과정을 마쳤다. EBS의 교육방송 일요시네마 및 세계 명화를 번역하고 있으며,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 『모든 순간의 물리학: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물리학의 대답』, 『프라다 이야기』,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 『식물을 미치도록 사랑한 남자들』, 『내가 사랑한 엄마』, 『내가 사랑한 책』, 『내가 사랑한 고양이』, 『패션소녀 릴리의 모험. 5: 비단옷과 사라진 왕자』, 『코스믹코믹 : 빅뱅을 발견한 사람들』,『숫자가 우수수수 : 수학이 좋아지는 숫자 이야기』,『암탉이 응애응애 : 인간과 진화 그리고 유전과학 이야기』, 『별들이 반짝반짝 : 별과 행성으로 배우는 우주과학 이야기』, 『화산이 부글부글 : 화산과 지진으로 배우는 지구과학 이야기』, 『줄리엣의 웨딩드레스』, 『티모와 함께하는 지구온난화 여행』, 『여자라면 심플하게 : 집 정리 사람 정리 마음 정리』, 『여자 그림으로 읽기』, 『Gustav Klimt (구스타프 클림트)』, 『Vincent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 『기술의 영혼』, 『세상의 중심, 16살 인생에게 : 어느 노과학자가 청소년에게 띄우는 편지』, 『진짜과학 VS 가짜과학』, 『갈릴레오 망원경으로 우주의 문을 열다』, 『다윈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아인슈타인, 호기심은 나의 힘』, 『연금술사 니나1권 (상)(하)』, 『교육, 행복을 만드는 마법의 도구』, 『학교 울렁증』, 『SOS 지구 어린이 환경 교과서』, 『우리 엄마』, 『마법의 풀을 찾아라! : 우리는 환경 탐험대』, 『잠파 선생님의 유쾌한 동물병원』 외 다수가 있다.

                                                                                                                                                                                        yes24

 

 

1장 

 

찌르레기의 비행

상호 작용은, 심리, 사회, 경제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중요한 문제란다. 특히 우리는 새 떼의 구성원들이 서로 어떻게 의사 소통하고, 어떻게 움직여 일관된 패턴을 만들고, 어떻게 하나의 집단이면서도 다중적인 특성을 가진 실체를 이루는지에 중점을 둘 것이란다. 

 

새 때나 물고기 떼, 혹은 포유류 무리와 같은 동물의 집단 행동을 관찰하는 일은 매력적이란다. 

해 질 녘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면 수천 개의 검은 점이 춤을 추며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장관을 볼 수 있단다. 마치 지취자가 내리는 지시를 모든 연주자가 한 몸처럼 따르는 오케스트라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단다. 그 점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장애물을 피하려 잠시 서로 간격을 두었다가 다시 뭉치면서 공간 배치를 계속해서 재구성한단다. 예상치 못한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는 공연을 보고 있도라면 시간이 한없이 지나가 버리기 일쑤란다. 때로는 이 순수한 아름다움 앞에서 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이 고개를 들어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단다. 저들 중 누군가가 오케스타라 지휘자 같은 역할을 맏는 것일까? 저런 집단 행동이 어떻게 저절로 조직되는 것일까? 어떻게 모든 무리에서 순식간에 정보가 전달되는 것일까? 어떻게 대형이 저렿게 빨리 바뀔 수 있는 것일까? 새들의 속도와 가속도는 어떻게 할당될까? 어떻게 서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다 같이 회전하는 것일까? 각 지르레기들 사이의 간단한 상호 작용 규칙만 가지고 지금 로마의 하늘에서 보는 것 같은 복잡다단한 집단적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호기심이 생기고 궁금증이 떠오르면 답을 찾기 시작한단다. 예전에는 책을 뒤졌고, 요즘은 인터넷에 검색하는 식이란다. 운이 좋으면 답을 찾겠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답을 못찾아낼지도 모른단다. 그래도 정말 궁금하면 이제는 그 답을 찾을 사람이 우리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거란다. 지금껏 아무도 답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주지는 않는단다. 결국 이전에는 아무도 하지 않은 과업을 상상하거나 해결하려 직접 뛰어드는 것이 우리 일이 될 거란다. 그렇다고 열쇠 없이 잠긴 문을 여느라 평생을 보낼 수는 없단다. 문제를 풀기 전에 먼저 우리를 끝까지 도달하게 해 줄 역량과 기술, 도구가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단다. 성공을 보장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걱정일랑 장애물 너머로 던져 버려야만 한단다. 하지만 그 장애물이 너무 높아서 좌절스럽다면, 차라리 문제를 놓아 주는 편이 낫단다. 

영상은 3차원으로 제작되어야 했단다. 그것 자체도 기술적 측면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었고, 그다음에는 3차원 위치도 재구성해야 했단다. 극장용 3차원 영상이라면 그 작업은 간단하게 끝났을 거란다. 카메라 1대로 촬영된 것을 두 눈으로 봐도, 수백만 년 동안의 진화로 선택된 우리 뇌는 보이는 물체들의 공간 속 위치를 알아내 3차원 시각에 도달할 수 있느니까. 그들은 컴퓨터 알고리듬을 이용해 그와 비슷한 작업을 해야 했는데, 그것이 그들의 두 번째 도전 과정이었단다. 그들은 통계 분석부터 확률, 정교한 수학적 알고리듬의 레프토리를 전체적으로 심화해 나갔단다. 수개월 동안 성공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고, 때로는 너무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별수 없이 뒤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했단다. 다행히 고된 작업 후에 필요한 수학적 도구를 개발해 난제들을 하나씩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찾아냈고, 고화질의 사진을 처음 얻은 지 1년여 만에[ 3차원으로 제구성된 최초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단다.

 

 

 

복잡한 집단 행동

유럽찌르레기의 비행은 그를 비롯해 수많은 현대 물리학자들이 수행하는 연구와 관련이 있으며, 그런 이유로 그에게 특히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단다. 다수의 행위자가 상호 작용하는 계(system)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그들의 연구인데, 물리학에서는 때에 따라 그 행위자들이 전자(electron)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원자(atom)나 스핀(spin)이나 분자(molecule0가 될 수도 있단다. 이들이 행동 규칙은 아주 단순하지만, 무리가 모두 모이면 훨씬 더 복잡한 집단 행동을 보인단다. 통계 물리학 분야에서는 19세기부터 이런 문제의 답을 찾기 시작했단다. 액체가 특정 온도에서 끓거나 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특정 물질(예를 들면 금속)은 전류가 흐르거나 열을 전달하는 도체이고, 또 다른 물체는 부도체인가? 잡이 오래전에 밝혀진 문제들도 있지만, 여전히 연구 중인 문제들도 많단다. 

이 모든 문리학 문제를 통해 그들는 행위자 사이에 나타나는 단순한 상호 작용에서 집단적 거동이라고 할 만한 계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정량적인 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단다. 그들의 도전 과제는 통계 역학의 적용 다능성을 무생물에서 찌르레기 같은 동물로 확대해 기술해 내는 것이란다. 그 결과는 동물 행동학과 진화 생물학에서 흥미로운 성과를 거두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경제 및 사회 현상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까지 높여 주었단다. 이 경우에도 서로 영향을 끼치는 다수의 개별 행위자인 개인이 존재하며, 개인의 행위와 집단이 행동 간에 존재하는 관계를 알아야 한단다. 

미국의 유명한 물리학자이자 1977년 노벨상 수상자인 필립 워런 앤더슨은 1972년 이 아이디어어와 관해 <많아지면 달라진다>라는 제목으로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단다. 어떤 계의 구성 요소 수가 증가하면 양적인 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을 물리학적으로 정의하는 도발적 내용의 논문이었단다. 이 문제는 현대 물리학이 마주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였고, 그 핵심 개념은 미시적 규칙과 거시적 행동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었단다. 

 

찌르레기의 날개

무엇인가를 설명하려면 먼저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한단다. 앞서 이야기한 찌르레기의 사례에는 중요한 정보가 빠져 있는데, 그것은 공간 속에서 찌르레기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란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단다. 사실 사용 가능한 찌르레기 영상과 사진은 상당히 많았지만, 모두 특정 시점에서만 촬영해 3차원 정보가 결여되어 있었단다. 마치 동굴 벽에 비친 사물의 2차원 그림자만 보고 3차원적인 성질은 파악하지 못하는 플라톤의 동굴 우화 속 죄수가 된 기분이었단다. 

사실 이러한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갖제 된 또 다른 이유였단다. 찌르레기의 움직임 연구는 실험 설계, 데이터 수집 및 분석, 시뮬레이션을 위한 컴퓨터 모델링 개발, 결론에 더ㅗ달하기 위한 실험 결과 해석 등이 모두 포함된 그 자체로 완전한 프로젝트였단다. 

오래전부터 그가 연구해 온 분야였던 통계 물리학이 찌르레기들의 비행 궤적을 3차원으로 재구성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를 정말로 매료시킨 부분은 실험의 설계와 구현에 가담하는 것이었단다. 이론 무리학자들은 보통 실험실과 거리가 멀고 추상적 개념으로 연구한단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많은 변수를 통제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카메라 렌즈의 초점 거리나 해상도부터 카메라 설치 위치, 데이터 저장 용량, 분석 기법 같은 게 변수였단다. 세부 사항 하나하나가 실험의 성패를 결정했기 때문에 '책상'에서 추론만 했다가는 '현장'에서 마주치게 되는 문제가 얼마나 많을지 그야말로 짐작도 할 수 없었단다. 실험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나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단다. 

찌르레기들은 상당히 흥미로운 동물이란다.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계절에 북유럽에 몇 개월 살다가 겨울은 북아프리카에서 보냈단다. 이제 지구 온난화로 겨울철 기온이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규모가 커지고 가정용 난방이나 자동차 같은 열원이 많아진 탓에 도시들도 전보다 훨씬 따뜻해지자 찌르레기들은 지중해를 건너는 대신 예전보다 겨울이 온화해진 로마를 포함해 이탈리아의 여러 해안 도시에서 겨울을 나는 경우가 많아졌단다. 

찌르레기들은 겨울을 날 장소에 11월 초에 도착한단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초에 떠난단다. 이러한 이주 시기는 아주 정확하게 지켜지는데, 이주 시기에 영향을 주는 사안은 기온보다는 하루 중 햇빛이 비치는 일조 시간과 같은 천문학적 요소일 가능성이 크단다. 이들은 로마에서는 바람을 막아 주는 상록수에서 밤을 보내고, 먹이를 구하기 힘든 도심에서는 100마리 정도씩 소규모로 무리 지어 순환 도로 밖의 시골 마을로 요기를 하러 간단다. 찌르레기는 무리 생활에 익숙한 사회성 동물이란다. 들판에 자리를 잡으면 무리의 절반은 편안하게 식사하고, 나머지 반은 어디어 나타날지 모를 포식자를 살피며 주위를 둘러본단다. 다음 들판에 도착하면 역할이 바뀐단다. 저녁에는 따뜻한 도시로 돌아와 엄청난 군집을 형성해 도심 하늘을 돌가가 나무 위에 안착한단다. 그렇다고 해도 찌르레기는 여전히 겨울 추위에 약한 동물이란다. 얼음장 같은 강한 북풍이 부는 밤이 지나면 은신처가 되기에는 부족했던 나무 밑에 뻣뻣하게 굳은 채 죽어 있는 찌르레기들을 쉽게 볼 수 있단다. 

따라서 찌르레기에게는 올바른 잠자리 선택이 생사를 좌우하는 문제가 된단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저녁 시간의 공중 군무는 밤을 보낼 적당한 잠자리가 잇다는 그들만의 신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단다. 찌르레기들의 춤은 거대한 신호기를 흔드는 것처럼 현란하기 그지없는데, 맑은 겨울날 황혼 무렵 10여 킬로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찌르레기들의 춤이 변해 가는 모습을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란다.(저자는 찌르레기 무리의 모양 변화를 'evolution'으로 표현했단다. 그런데 'evolution'은 우리말로 생물학에서는 '진화'로, 물리학에서는 '시간에 따른 변화'로 주로 번역한단다. 두 우리말 용어는 뉘앙스가 미묘하게 다르단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맥락에 따라 다르게 옮겼단다) 처음에 찌르레기들은 지평선 바로 위 아직 하얀 띠가 펼쳐져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거의 아메바처럼 이동하는 회색 점으로 보인단다. 시골 쪽에 처음 도착한 작은 무리는 날이 어두워지면 점점 더 열광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단다. 뒤이어 후발대가 천천히 도착하고 마지막에는 수천 마리가 무리를 형성한단다. 해가 지고 30분쯤 후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갑자기 잠라리로 정해진 나무를 향해 날아가고 싱크홀에 빠진 것처럼 거의 빨려 들어가다시피 사라진단다. 

간혹 찌르레기들 근처에 매가 나타나 저녁 거리를 찾기도 한단다. 눈치 채지 못하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찌르레기만 집중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매는 일부러 보려고 하지 않는 한 잘 보이지 않는단다. 매는 날개를 펼친 길이가 1미터나 되고 시속 2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날 수 있는 맹금류이지만 찌르레기가 쉬운 먹잇감은 아니란다. 실제로 비행 중 찌르레기와 충돌하면 약한 날개가 부르지면서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단다. 그래서 매는 감히 찌르레기 무리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장자리에서 가끔 낙오되는 개체를 노린단다. 찌르레기들은 매가 공격해 오면 서로 가까이 붙어 대열을 좁히고, 치명적인 발톱에 걸리지 않도록 빠르게 방향 전환을 한단다. 찌르레기 무리 형태의 화려한 변화 중 일부는 먹이를 잡기 전에 많은 기습을 해야 하는 매의 반복되는 공격을 피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고, 찌르레기의 여러 행동이 이런 무시무시한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단다. 

 

실험

연구 프로젝트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잔다. 첫 번째 난관은 찌르레기 무리와 그 형태의 3차원 이미지를 구하고, 여러 장의 사진을 연속으로 조합해 3차원 입체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었단다. 3차원으로 보는 일은 두 눈만 있으면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 이론적으로 이 문제는 쉽고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았단다. 우리 두 눈처럼 서로 다른 두 시점에서 무언가를 동시에 보면 아무리 가까이 있다고 해도 뇌는 물체의 거리를 '계산'해서 3차원 이미지를 구성한단다. 반면에 한쪽 눈으로만 보면 이미지의 깊이 개념이 상실되는데, 한쪽 눈을 가라고 한 손으로 앞에 있는 물체를 잡으려 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단다. 손이 물체가 실제로 위치한 곳보다 더 멀리서, 혹은 더 가까이서 잡으려 한단다. 마찬가지로 한쪽 눈을 가린 상태로 테니스나 탁구를 하면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란다. 그런데 뇌의 이 시각 정보 처리 체계는 오른쪽 카메라가 포착한 새와 왼쪽 카메라가 포착한 새를 우리가 동일하다고 식별할 수 있을 때만 제대로 작동한단다. 한 사진에 새개 수천 마리 있으면 이 작업은 악몽이 될 수 있단다. 

우리 능력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일이었단다. 과학 문헌으로 확인한 연구 중에는 최대 20다리 정도의 동물이 담긴 사진에서 동물들이 일일이 수동으로 식별해 3차원으로 재구성한 작업이었단다. 우리는 각각 수천 마리의 새가 찍혀 있는 수천 장의 사진을 가지고 3아원 이미지를 재구성하려 했단다. 이 정도면 확실히 사람 손으로 불가능했단다. 컴퓨터가 식별하도록 해야 했단다.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어중간한 방식으로 그저 문제에 부딪히기만 한다면 재앙을 피알 길이 없단다. 그들은 그, 그의 스승님인 니콜라 카비보, 그리고 그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안드레아 카반냐와 지레네 자르디나로 구성된 물리학자 팀뿐만 아니라 조류학작 팀도 끌어들여 연구단을 만들었단다. 2004년에는 이제는 고인이 된 경제학자 마르첼롷 데 체코, 몇몇 유럽 연구진과 함께 유럽 연합(EU)에 자금 지원 신청서를 제출했단다. 이 신청이 승인돼 연구를 시작하고 학부생과 박사 과정 학생까지 고용하며 장비도 구입할 수 있었단다. 

그들은 마시모 궁전 지붕 위에 카메라를 설치했단다. 로마 국립 박물관이 자리 잡은 아름다운 이 건물은 로마의 테르미니 역 광장을 마주보고 있단다. 그 무렵(처음 자료가 수집된 시기는 20054년 12월부터 2006년 2월까지였단다) 찌르레기가 많이 모이는 잠자리 장소 중 하나였다는 점이 그곳을 선택한 이유였단다. 당시 일반 비디오카메라는 해상도가 너무 낮아, 그들은 비디오카메라는 아니지만 화질이 높은 전문가용 카메라를 사용했단다. 카메라 2대를 25미터 간격으로 설치함으로써 그들은 수백 미터 떨어져 있는 찌르레기 2마리의 상대 위치를 약 10센티미터 정도의 공간 정밀도로 정의할 수 있었단다. 그 정도라면 서로 1미터 거리를 두고 비행하는 찌르레기를 구분하기에 충분했단다. 그들은 두 카메라와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세 번째 카메라를 추가해, 두 찌르레기가 두 메인 카메라 중 하나에서만 잡힐 때 보조하는 역할을 맡도록 했단다. 이 세 번째 카메라는 재구성에 난관이 생길 때마다 큰 도움이 되었단다. 

카메라 3대가 종시에 1밀리초의 정밀도로 초당 5회 사진 촬영을 했단다.(이 정도의 정미도로 조작하려면 간단한 전자 장치를 실치해야 했단다) 실제로는 각 지점에 카메라를 두 대씩 설치해 놓고 번갈아 가며 촬영했기 때문에 사실창 1초에 10장씩 촬영한 셈이었단다. 결국 그를 시스템은 1초에 25~30장을 촬영하는 일반 비디오카메라보다 크게 부족한 부분이 없었단다.사진 카메라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짧은 동영상을 얻을 수 있었단다. 

카메라 배치, 초점 조정과 보정, 메가바이트급 대용량 정보의 신속한 저장 같은 모든 기술적 문제는 생략하도록 하겠단다. 결국 그들은 해냈고, 여기에는 그가 기꺼이 연구 운영의 책임을 맡겼던 아드레아 카반냐의 집요함도 한몫했단다. 할 일이 쌓여 있어 산만하기도 했던 그와 달리 그는 매우 뛰어난 운영자였단다. 

 

비행 연구

지르레기의 행동에 관한 연구는 분명 생물학자의 영역이지만, 개체의 3차원 움직임에 정량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물리학자들만 할 수있는 분석을 필요로 한단다. 공간과 시간 속에서 표본의 궤적을 재구성하기 위해 수백 장의 사진에서 수천 마리의 새를 동시에 분석하는 것은 물리학자들이 전형적인 작업이란다. 이러한 분석에 적합한 기술은 우리가 통계 물리학 문제를 풀거나 대량의 실험 자료를 분석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과 공통점이 많단다. 

거의 2년간 작업을 끝내고 나자 그들은 세계에서 유일한, 찌르레기 무리의 3차원 이미지를 보유한 단체가 되었단다. 그 이미지들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웠단다. 지상에서 맨눈으로 찌르레기 무리를 바라보았을 때 가장 인상적인 특징 중 하나는 무리의 형태가 매우 빨리 변화한다는 사실이란다. 그것은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설명하기가 어렵단다. 한 무리의 새 떼가 하늘에서 갑자가 아주 작아졌다가, 잠시 후에는 넓게 펼쳐지고, 다시 움직이다가 거의 보이지 않게 되더니, 반대로 점점 더 진해지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인단다. 동시에 그들의 형태와 밀도는 엄청난 변화를 겪는단다. 

컴퓨터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재현하는 수많은 시뮤레이션은 기본적으로 구 모양의 무리부터 시작한단다. 그러나 첫 3차원 이미지를 보면 무리의 형태는 원반과 비슷하단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형태가 빠르게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원반 형태의 물체는 보는 방향에 따라, 즉 위나 아래에서 보면 매우 크고 둥글지만 측면에서 보면 아주 얇아 보일 수 있단다. 형태와 밀도의 급격하고 빠른 변화는 우리와 마주한 무리가 방향 전환하며 일으키는 3차원 효과로 나타난단다.(이것은 실험 전에 니콜라 카비보가 먼저 설명했지만, 문헌 자료가 없어 그의 직관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었단다)

그들을 놀라게 했던 것은 새 떼 가장자리의 밀도가 중심부보다 거의 30퍼센트 이상 높다는 사실이었단다. 찌르레기는 무리 가장자리에 가까워질수록 서로 더 가까이 붙어 있었단다. 승객이 가득한 버스에서 방금 탄 사람들과 내리려는 사람들, 그리고 버스를 계속 타고 가야 하는 사람들까지 문 쪽에 몰려 있는 상황과 비슷하단다. 입자처럼 무리의 새들도 서로를 끌어당긴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중심부이 밀도가 더 높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낮아져야 한단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단다. 그리고 무리의 가장자리 중에는 매우 뾰족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 새 한 마리만 무리에서 멀어져 고립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단다. 이러한 습성은 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생물학적 기작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단다. 고립된 새는 매에게 쉬운 먹이지만, 가장자리에 더 많은 새가 서로 가까이 있을수록 사냥당할 가능성이 작아진단다. 그래서 가장자리에 있는 새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서로 가까이 붙어있는 경향을 보이나 중심부의 새들은 굳이 간격을 좁힐 필요가 없단다. 가장자리에 있는 동료들이 제공하는 보호를 이미 받는 상태이기 때문이란다. 

그들은 첫 이미지들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각각의 새가 옆에 있는 동료보다 앞이나 뒤에 있는 동료와 최대한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있음도 알아냈단다. 이것은 고속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조금 비슷하단다. 옆 자동차와 2미터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은 완전히 정상이지만, 앞서가는 차와는 거리를 단 2미터만 두는 일은 절대 권장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단다. 

게다가 앞 새와 간격을 두고 옆 새와는 가까이 있는 경향은 평균 간격 약 80센티미터의 아주 조밀한 무리에서든, 평균 간격 약 2미터의 훨씬 더 듬성듬성한 무리에서든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단다. 이러한 현상은 새들 간의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단다. 이것은 비행기들이 다른 비행기의 난류를 피하기 위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처럼 역학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타당하단다. 그렇지 않으면 이 효과는 새들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훨씬 더 작게[ 나타날 거란다. 이것은 새들이 서로의 방향을 잡아 주어 자기들끼리 충돌하지 않고 궤적을 유지하기 위한 방식 때문이란다. 

 

새로운 발견

위치를 선정할 때 찌르레기들이 보이는 이러한 성질 덕분에 우리는 정말로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도달하게 되었단다. 바로 찌르레기 간의 상호 작용이 그들 사이 간격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새들 사이의 연결성에 좌우된다는 사실이었단다. 망약 우리가 친구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다가 우회전한다면, 속도를 맞추기 위해 우리 관심은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1~2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는 친구)에게 집중되고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거의 신경 쓰지 않을 거란다. 결국 나중에 생각해 보면 이는 매우 당연했단다. 물리학과 수학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처음으로 이해하려고 의심과 노력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그 결과가 의외로 단순하고 자명함을 발견하는 경우가 흔하단다. 문제와 답의 균형이 놀라울 정도로 맞지 않는 것이란다. 시詩에서도 그렇지만,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완성된 결과물에는 창작 과정에서의 노고와 의혹, 망설임을 흔적도 남지 않는단다.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두 물체 간의 중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럐한다는 법칙)이 나온 후로, 우리는 거리의 영향을 받는 상호 작용에 익숙해졌단다. 실험에서 나온 자료를 눈앞에 들이밀기라도 하지 않는 한, 물리학자들이란 상호 작용의 세기를 정의할 때 거리가 끼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기 힘든 족속들이란다.

그들의 경우는 어땠을까? 그들은 새들이 옆에 있는 동료보다 앞에 있는 동료와 더 '넓은 안전 거리'를 준수하는 경향에 대한 이전의 관찰 내용을 처음으로 정량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단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비등방성(非等方性: 물체의 물리적 성질이 공간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값을 보일 때 그 규모)이라고 명명한 양을 정의할 수 있었단다. 예를 들어 특정 무리를 찍은 일련의 사진에서 가까이 있는 두 새의 비등방성을 측정하면 높은 수치가 나왔지만, 멀리 있는 새들은 서로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이것은 옆 간격이나 앞뒤 간격이나 차이가 없다고 보는 편이 논리적이었단다. 

심각한 문제는 다른 연속 사진에서 측정된, 동일 간격에 있는 새들 간의 비등방성을 비교하면서 나타났는데, 여기서는 예상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단다. 때로는 2미터 거리에 있는 새의 비등방성이 매우 큰 반면에, 다른 무리에서는 같은 2미터 거리의 비등방성이 완전히 무시될 수 있을 정도로 작아 자료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단다. 결국 우리는 가장 가까이 있는 새들 간의 간격은 무리에 따라 매우 다를 수 있으므로, 서로 다른 무리에서 동일 간격에 있는 두 새의 행동을 비교하는 일이 효과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단다. 

결국 그들은 관점을 바꿨단다. 일단 각각의 새를 대상으로 첫 번째 이웃, 즉 가장 가까운 동료와 두 번때, 세 번째 이웃을 정의했단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새들 사이에서 비등방성이 가장 높고, 두 번째 이웃과는 그보다 낮으며, 일곱 번째 이웃에 이르자 비등방성이 실질적으로 0이 되는 현상을 발견했단다. 언뜻 보기에는 비등방성이 거리에 따라 감소한다고 나온 이전 분석의 정보와 별 차이 없을 것이란다. 그러나 무리들을 대조하자 상황이 바뀌었단다. 한 무리에서 가장 가까운 짝의 평균 간격이 다른 무리의 그것보다 2배 더 넒어도, 두 무리의 가장 가까운 짝의 비등방성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단다. 이 상황에서는 특별히 지식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단다. 관찰 자료를 바탕으로 하면 새들 간의 상호 작용은 두 새 간의 절대적인 간격이 아닌, 상대적인 거리 비율에 의존한다는 가설을 세울 수밖에 없었단다. 

여기까지가 2008년에 나온 그들 연구의 첫 결과였단다. 이후로 많은 일이 일어났단다. 연구단의 구성원이 바뀌었고, 그는 스핀 유리(구리나 은 같은 비자성 물질에 망간, 크롬, 유로품 같은 자성 불순물이 혼합된 저밀도 무작위 자석) 연구에 온종일 매달리기 시작했단다. 새로운 자금 지원도 받아 전보다 훨씬 정교한 장비들을, 예를 들어 이 무렵 출시된 400만 화서ㅗ에 초당 160프레임까지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구비했단다. 

엄청난 연구가 이루어졌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알고리듬이 도입되었단다. 지금은 무리가 회전할 때 각각의 새가 회전을 시작하는 순간을 수백분의 1초의 정확도로 정의할 수 있단다. 거의 항상 한쪽의 소규뫃 무리가 회전을 시작하면 아주 짧은 시간(소규모 무리의 경우 수십분의 1초, 대규모 무리는 거의 1초) 내에 모든 새가 그 뒤를 따르는데, 오랫동안의 자료 분석과 세심한 연구 끝에 무리가 회전 중일 때를 포함해 새 무리의 움직임을 정량적으로 매우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새들으누 아주 간단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옆에 있는 동료의 위치에 맞춰 이동한단다. 회전에 관한 정보는 이 새에서 저 새에게 빠른 속도로, 마치 순식간에 퍼지는 입소문처럼 전달된단다. 

그들 연구는 지금까지 동물의 무리나 떼, 군중 연구에 사용되는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단다. 이전에는 상호 작용이 거리에 의존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단다. 그러난 그들 연구 이후로 상호 작용은 언제나 이웃한 존재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했단다. 아마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수천 마리 새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동시에 그 자료에서 동물의 형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리라.

그들이 이러한 결괄르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아주 많은 수로 이루어진 동물 무리의 형태를 통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정량적인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무질서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계 물리학에서 탄생하고 개발된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생물학적 탐구 기준을 확립했단다. 자신들의 분야를 침범하는 일을 모든 생물학자가 반긴 것은 아니었단다. 누군가는 그들 연구 결과에 지대한 관심을 모였지만, 또 몇몇은 그들 연구가 생물학적으로는 너무 빈약하고 수학적으로는 너무 풍부하다고 보았단다. 여러 학술지 출판사에서 그들 연구의 게재를 거부했는데 아마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을 거란다. 그들의 첫 발표가 대성공을 거둔 후 현재는 거의 2,000개의 과학 출판물에서 언급되고 있고, 수많은 사람이 뒤를 이어 연구하고 있단다.

생물학은 현재 대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단다. 데이터의 양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정량적 법법의 사용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요소가 되었단다. 이러한 방법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사용될 수 있으며, 어떤 내용인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방법이 이용된단다. 특히 동물 행동학에서 동물의 형태를 연구할 때 수확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으면 부정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쉽단다. 실제로 동물 행동학자들은 어떤 형태의 원인을 찾을 때 정량적 방식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여러 설명 중 하나일 뿐 동물 행동 연구의 핵심을 건들지는 못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단다.

그러나 수많은 과학 분야의 기본 정신이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했단다. 이러한 변화는 어떤 방법론이 과학적이고 중요하며, 어떤 방법론이 실제 질문에 답할 수 없으므로 거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에서 발생한단다. 관련해서 양자 역학의 창시자 막스 플랑크의 냉소적인 발언을 곱씹어 볼 만하단다. 그는 "과학에서 새로운 진실은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계몽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들이 죽고 새로운 개념에 친숙해지는 신세대가 형성되면서 승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단다. 저자는 플랑크보다는 낙관적이란다. 선의가 있고 인내심만 있다면 공통된 결론에 도달하거나, 적어도 일치하지 않는 지점을 밝힐 수는 있다고 생각한단다. 

 

2장

 

50여 년 전 로마의 물리학

그가 받은 인상은 (아무 이유 없이) 물리학이 수확보다 어려우므로, 물리학을 하면 스스로 더 많은 질문을 더 많은 도전을 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일은 과학에서도 무척 중요하단다. 그래서 그는 그의 대학 초년생 시절과 그 시기의 물리학이 어땠^는지 화상해 보려 한단다.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므로 입자 물리학에 관심을 두었던 이론 물리학자로서의 기억만 이야기할 생각이란다. 

그는 1966년 11월에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에 입학했단다. 당시애ㅔ는 1, 2학년 학생은 물리학 연구소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었단다. 그들은 일반 물리학이나 물리학 실험 수업을 듣기는 했지만, 정문으로 학생들이 떼지어 드나드는 모습이 품위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항상 둣문을 사용해야 했단다. 물리학의 산증인자 엄청난 기억력으로 사람이든 사건이든 모조릴 기억하는 아고스티노라는 이름의 수위가 철통같이 지키고 있기도 했단다. 아고스티노는 1, 2학년 학생들에게 무슨 볼일로 왔는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길을 막았단다. 실제로 많은 학생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할일 없다는 이유로 뒷문을 가리키는 그에게 쫓겨났단다. 1학년 수업에 등록한 학생만 400명 정도였고, 마이크도 없던 탓에 교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학생들이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단다. 기본 교양으로 중요하기도 했고 수업도 매우 길었던 일반 문리학은 여러 해 동안 에도아르도 아말디 교수와 조르조 살비니 교수가 맡았는데, 그가 보기에 아주 신사였던 아말디 교수와 비교해 살비니 교수는 흥행사 기질이 다분했단다. 한 번은 그가 회전 으ㅟ자를 가지고 와서 그 위에 앉아 두 발을 들어 올리고 양손에 무거눈 철제 아령을 든 채 빙빙 돌면서, 팔을 오므리면 더 빨리 회전하고 벌리면 느려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단다. 발레 무용수라면 익숙할 현상이란다. 한쪽 발로 서서 빠르게 회전하는 피루엣을 하려면 처음에는 양팔을 벌리고 시작해 회전하는 중에는 몸쪽으로 모아야 하니까. 그날 살비니 교수의 수업은 몸소 보여 준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각운동랴어 보존 법칙 공식으로 마무리되었단다.

그들이 정문으로 들어갈 때는 주로 피시케타(물리실험) 강의실에 갈 때였는데, 이런 이름이 붙은 까닭은 피시코나란 이름의 일반 물리학 실험실과 구분하기 위해서였단다. 실험은 미로 같은 지하실에서 이루어졌고, 실험실마다 각각 다른 실험(대기압 측정하기, 마찰이 거의 없는 경사면에서 물체 떨어뜨리기, 혹은 얼음을 녹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 측정하기 등등)을 했단다. 그들은 30명씩 조를 짜서 수업을 받았고, 실험실마다 10개씩 있는 테이블에 3명이 배정되어 한 학년이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았단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연배 높은 학생을 만나기는 어려웠고, 같은 학년이 아닌 사람과는 접촉 자체가 없었단다. 

 

1968년

1968년에는 모든 것이 바뀌었단다. 학교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의 정치 판도도 바뀌었단다. 뒤이어 사회 전체의 정치적 급진화가 일상까지 영향을 끼쳤단다. 그처럼 자유당이나 기독교 민주당에 표를 던진, 기본적으로 온건 우파였던 사람들은 사회적 갈등 상황에 놓이자 마르크스주의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단다. 1968년의 역사와 그 인과에 대해서는 이미 못물 넘치듯 많은 자료가 나왔으니 여기서까지 쓸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단다. 다만 그는 1968년이 물리학 연구소에 끼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자 한단다. 그의 경우 모든 것이 그 거대한 물리학 강의실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을 때 시작되었단다. (당시 좌석은 300석이었는데, 참가자 수는 그 2배였단다) 그 집회는 오후 내내 진행되었고 저녁 9시에 점거 농성 여부에 대한 투표가 끝이 났단다. 농성은 과반수로 통과되었단다. (그기 보기에 2 대 1이었던 것 같단다) 결국 학생들은 농성을 선택했단다. 물리학 연구소에서 진행된 집회였으니 그들은 물론 농성을 반대한 사람들도 '반대' 의견을 낸 것 자체가 어쨌든 투표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함께 책임을 져야 했단다. 

국가 자원 봉사단 단장이었던 줄리오 카라돈나가 이탈리아 국기를 휘감은 길고 단단한 몽둥이를 든 네오파시스트대원들을 이끌고 학교애 침입했을 때,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던 조르조 카레리 총장은 물리학부 건물 2층에 있던 도서관에 예상치 못한 화재가 일어날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단다. 당시 문과 대에서 습격자들에게 던질 용도로 소화기를 다 가져갔기 때문이었단다. 카레리 총장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구소 입구에서 보초를 서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피치 못할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되도록 1층에서 벌어지게 하세요"라는 말을 전했단다. 

점거 기간이 지나고 학년 차가 있는 학생들은 물론 학생과 조교, 젊은 교수 간의 장벽도 모두 무너졌단다. 그래서 교수 중 로마의 음악 클럽 폴크스튜디오에서 프랑스 샹소니에(소극장에서 직접 쓴 가사로 샹송을 부르는 가수)로 공연을 하는 파올로 카미즈 같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단다. 이런 공연은 요즘 유튜브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단다. 

도서 열람실은 두 곳이 있었단다. 한 곳은 10년간 수집된 학술지로 가득 찬 벽에 둘러싸여, 경건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단다. 다른 한 곳은 오후 늦게까지 웃고 떠들며 브리지(4인용 카드게임)까지 할 수 있어 자유롭ㄱ호, 훨씬 더 소란스러웠단다. 연구소는 지금보다 훨씬 붐볐단다. 저녁 9시 이후에도 후문이 열리면 다른 시간대에 수업을 들으러 올 수 없는 직장인 학생들이 들어왔단다. 

.그가 보기에 당시의 물리학부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젊었단다. 그도 50년 이상 어리던 시절이니 당연히 훨씬 젊었고, 요즘 만나는 사람들보다 훨썬 더 젊은 사람들과 만났단다. 객관적으로 봐도 당시 물리학 연구소의 연령대는 훨씬 젊었단다. 이탈리아 물리학의 선봉장인 에도아르도 아말디 교수는 '할압저지'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당시 나이는 60세였단다. 아마디 교수 밑으로 조르조 살비니와 마르첼로 콘베르시, 마르첼로 치니가 정교수직을 맡고 있었고, 모두 50세 미만으로 요즘보다 확실히 젊었단다.

니콜라 카비보는 1966년 사피엔차에 왔단다. 31세의 나이에 전임교수가 된 것은 일명 '카비보 각'을 바탕으로 한 약한 상호 작용 이론으로 얻은 영광 덕분이었고, 그 발견은 노벨상을 받는 것도 가능할 정도의 업적이었단다. 1968년 33세의 나이로 그는 전 이탈리아 이론 물리학계의 핵심 인물이 되었는데, 그는 동년배 중 프란체스코 칼로제로는 평화적인 세계 정세와 양립할 수 있는 과학의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 탄생한 비정부 조직인 퍼그워시 회의의 사무 총장으로 1955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단다. 

이론 물리학과 조교들도 다부분 아주 젊어서 많아야 30세 정도였단다. 물론 1969년에 69세 생일을 앞두고 안타깝게 사망한 엔리코 페르시코와 같이 연로한 이도 있기는 했단다. 그러나 지금과는 아주 다르게 당시 수업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45세 정도의 교수들이 맡고 있어서 그는 연장자들과 얽힐 일은 별로 없었단다. 

학생들이 어리다는 점을 제외하고 인상적인 점을 꼽자면 역사적 사건을 들 수 있단다. 1950년대에 그들이 생각하는 보통의 대학으로 변모하고 있던 이탈리아 대학교가 폭풍의 중심지가 되었던 거란다. 특히 물리학이 가장 성장세를 보였고, CERN(유럽 원자핵 연구 협의회)의 초대 사무총장이었던 아말디 교수 덕분에 상당한 자금 지원도 받았단다. (그가 1952년부터 2년 동안 사무총장을 맡은 그 기관은 1954년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로 이어지나, 약자는 CERN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단다) 연구 활동이 완전히 국제화되었고, 이탈리아에서의 명성이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단다. 다른 연구소나 학과를 오랫동안 장악했던 위계 질서가 물리학 앞에서 힘을 잃었고, 남보다 뛰어난 과학자들이 빠르게 학계 권력의 정상으로 올라갔단다. (그도 32세에 종신 교수직을 둘러싼 경쟁에서 승리했단다) 정규직도 졸업 후 몇 년 안에 얻을 수 있었단다. 그가 1970년 22세의 나이로 프라스카티 국립 연구소에서 근무하기 사작했을 때, 친구였던 아우렐리오 그릴로와 세르조 페라라는 25세에 이미 정규직이었단다. 요즘 그 나이면 잘해 봤자 박사 학위 과정을 절반 정도 밟은 상태일 거란다. 

 

과학 커뮤니케이션

오늘날의 우리는 인터넷으로 문자 메시지를 교환하거나 무료로 전화 통화할 수 있는 편리함에 너무 익숙해져서 당시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상상도 하기 어렵단다. 

예전에는 국제 전화 요금이 엄청났단다.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전화하는데 분당 1,200리라였는데, 그가 연구원으로 입사 해 받은 첫 월급이 12만 5000리라였단다. 그러니카 1시간 30분 정도 통화하면 한 달 월급이 다 날아가는 셈이었단다. 팩스는 존재도 하지 않았고, 대신 물리학부에는 굉장히 무겁고 불편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전신 타자기(사실상 전신 단말기)가 있었단다. 

전화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용되었단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1974년 11월 프시 중간자의 발견 때문에 생긴 일이었단다. 프시 중간자는 맵시 쿼크 2개로 구성되는데, 이 발견은 '11월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입자 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단다. 이 입자는 미국의 서로 다른 두 연구소에서 거의 동시에 발견되었는데, 이 소식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졌고 프라스카티 연구소는 자신들도 이 입자를 관측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단다. 곧바로 진행중이던 실험의 매개 변수가 수정되었고, 단 일주일 만에 이곳에서도 물리학자 모두의 환희 속에서 프시 중간자가 발견되었단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결과였단다. 미국 실험에서 나온 정보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들 다음으로 얻은 결과였고, 이탈리아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었단다. 중요한 것은 논문으로 작성해 저명한 물리학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서 미국 쪽 논문이 실릴 호에 함께 게재되는 것이었단다. 마감을 코앞에 두고 있어 낭비할 시간이 없었단다. 발견 직후 주말에 급하게 논문이 작성되었고, 조금 더 시간을 벌기 위해 전화롤 내용이 전달되는 아주 이례적인 절차를 거쳤단다. 그래프가 있는 그림도 육성으로 점의 좌표를 지시해 전달되었고, 누군가는 대서양 반대편에서 그림을 다시 그려야 했단다. 저자의 이름도 전화로 스펠링을 불러 주었는데, 우스꽝스러운 결과가 나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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