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좋은 그림은 예술품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과 시대를 말해주는 역사와 문화의 표지가 된다. 이 간단한 진실이 왜 우리 그림과는 연결되지 못했을까? 저자 오주석씨의 말을 빌면 우리 옛그림 안에는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인 까닭이 들어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우리그림 하나 대기가 힘들다.
저자는 이 사실이 못내 아쉬워 전국을 돌며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강연을 해왔고, 마침내 이 강연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강연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린 문장 덕분에 쉽고 재미있게 읽혀, 누구라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이 우선 반갑다. 슬라이드를 틀듯이 적재적소에 실려 있는 그림 덕분에 페이지를 넘겨가며 그림을 찾아 설명과 일일이 대조하는 수고도 덜었다.
책을 펼치면 우선 저자가 생각하는 옛그림 감상의 두 원칙이 나온다.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낄 것." 거창하고 엄숙한 이야기일까 긴장했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 그림을 볼 때는 세로쓰기를 사용했던 옛사람의 눈에 맞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그림을 보라는 것. 서양화를 감상할 때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움직이면 그림의 중심 구도와 X자꼴로 부딪혀 버린다. 몇폭 병풍이라면 이야기를 마지막부터 거슬러 읽어 나가는 셈이 된다.
두번째 장에서는 옛 그림에 담긴 우주관과 인생관을 살펴본다. 탑의 층수, 사대문의 이름을 음양오행으로 설명하고, 이를 핸드폰 자판의 천지인 시스템과 연결하며 여기서 다시 한글의 제자원리를 설명한다. 본격적인 그림 이야기로 들어가면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 <송하맹호도>를 예로 들어 한국 사람의 치밀함과 섬세함을 말하고, <백자 달항아리> 속에 담긴 성리학의 가르침을 전한다. 일본식 표구 때문에 본래 기백의 반도 전하지 못하는 경우를 안타까와 하고, 일본식 미감을 우리것이라 이해하는 것을 꾸짖기도 한다.
세번째 장에서는 그림을 통해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하나하나 살펴본다. '고대사는 아무리 자랑스러워도 덜 가르치고, 근대사는 아무리 본받을 것이 적어도 많이 가르쳐야 한다는' 기계적인 생각 때문에 폄하되는 조선이지만, 저자가 옛그림을 공부하면서 다시 곰곰히 따져본 조선은 519년간 계속된, 검소하고 도덕적이면서도 문화적인 삶을 영위한 나라였다. <이채 초상>을 비롯한 극사실 초상은 조선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터럭 한오라기가 달라도 남이다'라는 마음을 바탕에 깐 이 초상들은 예쁜 모습보다 진실한 모습, 참된 모습을 중시했던 조선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처음에 말했듯이 이 책은 강연 형식으로 되었기에, 그 어느 미술 감상서보다 편하게 다가온다. '청중 웃음' '청중 큰박수' 등 양념처럼 끼어 있는 말이 글의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고 흥겹게 한다. 저자가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부터 계속 인용해온 공자님의 글 하나.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우리 것을 알고 싶고, 좋아하고 싶고, 언젠가 즐기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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