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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사망(2011.10.06)

동선(冬扇) 2011. 10. 6. 11:51

성공·실패·도전..스티브 잡스의 '드라마'

"그는 우리의 삶과 생각과 관계맺음을 변혁했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세계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6일(현지시각) 애플은 자사 홈페이지에서 스티브 잡스의 사망을 알렸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 아래 1955~2011이라는 생몰년도가 기록됐다. 향년 56세. 애플은 "비전을 지닌 창의적 천재를 잃었다"며 "세계는 한 위대한 인간을 잃은 것"이라고 그를 기렸다.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직후 바로 입양됐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이미 세계 IT산업의 '수도'로 급성장중이던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자라며 컴퓨터 기술과 쉽게 친근해졌고, 1969년에는 애플을 공동 창업한 스티브 워즈니악과 가까워졌다. 이후 오레곤주에 위치한 리드 대학(Reed colloge)에 입학했으나 학비를 댈 능력이 없어 단 한 학기만을 다닌 뒤 대학을 그만둔다. 그를 매료시킨 것은 워즈니악과 함께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차고에 컴퓨터 가게를 차려 판매에 나섰고 이것이 애플사의 시작이었다. 1977년 '애플II'를 탄생시킨 잡스는 애플 컴퓨터라는 기업을 설립, 본격적 자리매김을 위해 벤처 자금을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2년 후에는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리스트에 포함될 정도로 성장했다. 애플의 성장은 엄청났다. '애플II'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서막을 연 애플은 창업 4년만인 1980년 주식 상장을 하게 됐고, 잡스는 불과 25세에 20억달러 규모의 자산가로 변모한다.

그러나 공룡기업인 IBM이 1981년 PC시장에 진입하며 녹록치 않은 상황이 펼쳐졌다. '애플III'가 부진했던 데다가 1984년 출시한 '매킨토시'도 IBM PC에 밀리며 애플의 전성기가 일찍 저물기 시작한 것이다. 매킨토시는 잡스가 '토스터만큼 쓰기 쉬운 컴퓨터'를 모토로 개발에 몰두했던 제품이었다. 결국 1985년 잡스는 허울뿐인 이사회 의장직만을 남기고 모든 직위를 박탈당한다. 애플에서 퇴출당한 것이다. 잡스는 특히 자신이 고용했던 CEO 존 스컬리가 퇴출에 앞장섰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존 스컬리는 수년 후 "이사회의 잡스 퇴출 결정은 실수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잡스의 인생은 드라마틱하다. 실패와 성공이 교차된다.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는 1986년 애니메이션 업체인 '픽사(Pixar)'를 인수하고, 직접 컴퓨터 업체인 '넥스트(NeXT)'를 차린다. 그런데 넥스트의 성과는 보잘것없었다. 1993년에는 하드웨어 제조에서 아예 발을 빼고 소프트웨어 개발만 하기로 규모를 축소했다. 재기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95년이었다. 픽사와 디즈니가 손잡고 제작한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Toy story)'가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픽사를 바로 상장시킨 잡스는 애플에서 번 것보다 5배나 많은 1.5조 달러 자산을 손에 쥐게 된다.

한편 잡스 퇴출 이후 부진의 늪을 헤매던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우 출시 이후 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1996년 애플의 신임 CEO 길 아멜리오(Gil Amelio)는 스티브 잡스를 비공식 고문으로 재영입한다. '불사조' 잡스의 재기였다. 1997년, 잡스는 애플 구조조정과 함께 임시 CEO로 복귀했고 6개월만에 회사를 흑자로 바꿔놓는다. 1998년부터 잡스는 아이맥, 아이북 등 혁신적인 제품을 쏟아내며 애플이 세계 최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닦았다. 실패로 여겨졌던 넥스트의 기술력도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 넥스트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현재 맥 운영체제(OS)인 OSX를 만드는 데 사용된 것이다.

2001년에 내놓은 MP3 플레이어 '아이팟'은 애플을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끌어올린 시발탄이었다. 2005년에는 시장점유율 75%를 확보, 아이팟으로 올린 수익이 컴퓨터 매출액을 넘어설 정도였다. 지난해까지 팔려나간 아이팟 누적 판매량은 2억 7500만대에 달했다. 연이어 2007년 1월 출시한 '아이폰'은 세계적으로 애플 천하를 열었다. 첫 등장 당시 평가절하당했던 아이폰은 모바일 산업에서 애플이 거대기업으로 군림하는 첫 단계였다. 특히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무기로 현재 모바일 산업의 흐름 자체를 바꿔놨다. 출시 4년이 지난 지금 아이폰은 전세계 누적 판매량 1억대를 돌파했으며 전세계 91개국에 진출, 모바일 산업의 최전방에서 혁신을 주도하는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태블릿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아이패드도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2010년 출시된 아이패드는 약 1년만에 1900만대를 판 것으로 집계됐고 올해 총 3000만대가 팔려나갈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올 연말까지 아이패드의 태블릿 시장 점유율이 73.4%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애플의 이러한 성공에는 잡스의 리더십과 통찰이 바탕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특유의 직관력과 꼼꼼한 관리가 빛을 발한 것. 잡스가 빅 군도트라 구글 부사장에게 주말에 직접 전화해 "아이폰에 탑재된 구글 로고 중 두번째 알파벳 O의 노란색이 정확하지 않으니 바꿔달라"고 주문했던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지난해 애플 세계개발자대회에서 "애플의 제품은 인문학과 기술의 갈림길에 위치한다"고 말한 발언도 '융합'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널리 회자됐다.

이미 많은 이들이 잡스를 추모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우리는 처음 만난 이후 30년간 친구였고 경쟁자였으며 동료였다"며 "스티브 잡스만큼의 영향력을 지닌 사람을 다시 접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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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남긴 흔적들!

 

애플의 성공신화를 일궈온 스티브 잡스 애플 전 최고경영자(CEO)가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스티브 잡스는 30년 가까운 긴 세월을 애플과 함께 해왔다. 애플은 그에게 삶이자 자식과 같은 존재다. 애플은 그와 함께 할 때 성공했고, 그가 떠났을 때 좌절했다. 잡스의 사망 소식에 업계가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1975년에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위즈니악, 마이크 마쿠라 등과 애플이란 회사를 세우고 개인용 컴퓨터를 공급했다. 애플은 애플 2 시리즈 판매에 성공하면서 컴퓨터 사업을 본격화 할 수 있었다.

잡스는 1980년대초에 마우스를 이용한 그래픽사용자환경(GUI)의 잠재력을 인지하고 이를 매킨토시에 도입해 큰 성과를 거뒀다. 잡스는 애플을 주식시장에 상장해 젊은 나이에 백만장자로 올라섰고, 대표적인 성공한 기업가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1985년 이사회와의 갈등으로 결국 애플에서 추방되는 수모를 겪었다. 자신이 영입한 스컬리 CEO가 잡스 퇴진을 주도했고, 이사회가 스컬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애플을 떠난 잡스는 교육시장과 법인시장을 타깃으로 한 컴퓨터 플랫폼 개발회사인 넥스트(NeXT)를 세우고 재기에 나섰다. 이런 잡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잡스의 추방과 복귀

몰락 위기에 놓인 애플이 잡스의 복귀를 간청한 것이다. 잡스는 1996년 넥스트를 4억2천900만 달러에 애플에 넘기고 1997년부터 최고경영자(CEO)로 다시 복귀해 구세주 역할을 시작했다. 잡스가 애플을 떠난 것이 손해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투자자 기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잡스는 애플에 복귀하기전인 1986년에 루카스필름의 컴퓨터그래픽스그룹인 픽사 에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인수했다. 그는 2006년 이 회사를 월트디즈니에 매각해 큰 이익을 올렸다. 매각 당시 픽사는 74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픽사는 1995년 토이스토리 흥행을 시작으로 벅스라이프(1998년), 토이스토리2(1999년), 몬스터(2001년), 니모를 찾아서(2003년), 인크레더블(2004년), 카(2006년), 라타투레(2007년), 월E(2008년), 토이스토리3(2010년) 등 흥행작을 잇따라 발표했다.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월E, 토이스토리3 등은 아카데미 최우수 에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잡스는 픽사를 월트디즈니에 매각하면서 디즈니 주식 7%를 받고 디즈니 이사회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잡스는 디즈니 이사회 멤버의 연줄을 이용해 콘텐츠 업계와의 아이튠스 라이선스 계약을 유리한 입장에서 풀어갈 수 있었다.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애플 성공신화 창조

잡스는 1997년 애플에 복귀한 후 넥스트 운영체제를 맥 OS X에 통합해 성능을 강화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채택한 아이맥과 같은 새로운 브랜드 상품을 출시해 재도약을 시도했다.

잡스는 수년간 아이팟 휴대형 뮤직플레이어를 비롯해 아이튠스 음악 소프트웨어, 아이튠스 스토어 등을 선보여 디지털 음악 시장을 장악했다. 2007년에는 멀티터치기반 스마트폰아이폰을 출시해 새로운 대박신화를 창출했다. 아이폰은 모바일 인터넷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혁신성을 구현해 스마트폰 시대를 새롭게 쓰게 만들었다.

아이폰 돌풍에 통신시장이 재편됐다. 노키아와 RIM이 추락했고, 구글과 HTC가 신흥 강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애플은 그 후에도 아이패드를 비롯해 아이폰 차세대 제품을 선보이며 관련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애플은 명실공히 최고의 IT 기업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건강에 발목잡힌 잡스 CEO

잡스는 이런 축복을 뒤로 하고 이제 최고경영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이미 알려진 바대로 건강상의 문제 때문이다.

잡스의 건강 문제가 공개된 것은 2004년 중반이다. 잡스는 애플 직원들에게 췌장암 수술을 받기 위해 자리를 비우게 됐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그후 잡스는 수술을 끝내고 업무에 복귀했다. 2006년 WWDC 행사에서 잡스가 삐쩍 마른 모습으로 기존연설을 진행하면서 그의 건강 악화설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애플이 2008년 12월 다음해 맥월드 행사에서 기존연설을 필쉴러 부사장이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잡스 건강 악화설은 더욱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 잡스는 간이식 수술을 받았고, 올해초에는 3번째로 병가를 내고 애플의 일상적 경영을 팀쿡 현 CEO에게 맡겨 왔다.

잡스는 지난 8월 CEO 직책을 팀쿡 CEO에게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후 그는 건강악화로 두 달만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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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물이나 팔며 인생을 마칠 것인가" 스티브 잡스 말말말

 

"그 때 만큼(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 죽음에 가까이 가본 적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죽음'을 머리로 알았을 때보다 나는 더 정확히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그건 다른 사람이 생각한 대로 사는 것입니다. 진정 당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스티브 잡스의 2005년 6월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 中)

우리는 숨기지 않고 말하는 직설적인 그의 화법에 매료됐고, 제품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에 환호했다. 무엇보다 말과 다르지 않은 삶의 태도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기술로 인간의 삶을 바꾼 혁명가, 대중을 사로잡는 탁월한 프리젠테이션의 달인이자 마케팅 천재 스티브 잡스. 그의 발언은 불꽃처럼 살다간 그를 대신한다. 잡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 사랑하는 일을 찾아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 애플을 창업한 직후

"나머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면서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꿔놓을 기회를 갖고 싶습니까?"(1980년 애플에 당시 최고 마케팅 실력자였던 존 스컬리 펩시콜라 사장을 영입하기 위해 한 말)

"웰컴, IBM."

(1981년 애플을 겨낭해 컴퓨터 공룡 IBM이 PC 시장에 진출하자)

"우리는 우리의 비전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는 편이 '미투(me too)'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제품은 다른 회사들이나 만들면 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 다음의 꿈'입니다." (1984년 매킨토시 발표할 당시 잡스가 인터뷰 중에 한 말)

◆ 애플에서 쫓겨난 후

"나는 언제나 애플과 연결돼 있을 겁니다. 내가 희망하는 건 오직 하나, 내 인생이 하나의 실이라면 애플과 엮여 짜여져 있었으면 하는 겁니다. 내가 애플에 없을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언제나 (애플로) 다시 돌아올 겁니다."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났을 때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무덤에서 이 나라 최고 부자가 되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우리는 정말 놀랄만한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중요합니다." (1993년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 애플에 다시 복귀한 후

"위대한 제품을 만듭시다. 사람들이 응답해줄 것입니다." (1997년 애플에서 쫓겨난 지 12년만에 애플 CEO로 복귀하며)

"끊임없이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밥 딜런과 피카소는 언제나 실패의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1998년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 아이팟, 아이폰을 출시한 후

"혁신이야말로 누가 리더인지 누가 모방자인지 분명히 구별시켜줍니다." (2001년 mp3 플레이어 아이팟을 소개하며)

"델, 당신은 틀렸어." (2004년 애플 시총이 델 시총을 넘어서자 차라리 회사를 파산시키는 편이 낫다며 자신의 애플 복귀를 폄하했던 델 CEO를 향해)

"항상 배고파하십시오. 늘 바보스럽게 우직하게 살아가십시오." (2005년 6월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장 연설)

"지금 당장은 위험한 것 같지만 그것은 언제나 좋은 징조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다른 측면에서 꿰뚫어볼 수 있다면 큰 성공을 이뤄낼 수 있을 겁니다." (2007년 D5콘퍼런스에서)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데 그게 상당히 괜찮은 일이라면 당신은 다른 일, 뭔가 멋지고 놀랄만한 일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 일에 오래 머무르지 마십시오. 다음 번에 어떤 일이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NBC 뉴스, 2006년)

"혁명적인 제품은 모든 것을 바꿉니다." (2007년 아이폰 1세대 모델을 소개하며)

"우리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실수를 합니다. 우리는 실수를 빨리 알아내죠. 바로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고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최고의 회사가 된 이유입니다." (2010년 신형 아이폰 발표회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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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세상을 바꾼 남자] PC·스마트폰 시대 열고… 인류의 라이프스타일 바꿨다

스티브 잡스가 만들고 변화시킨 것은 매킨토시·아이폰·아이패드 같은 단순한 IT기기(器機)가 아니다. 잡스는 인간이 소통하는 방식, 음악과 동영상 등 문화를 즐기는 수단,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채널을 바꾸었다. 궁극적으로 잡스 시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해 냈다.

◆애플II(1977년), 개인(個人)에게 컴퓨터를 주다

컴퓨터는 소수의 정부기관이나 대학 연구소의 전문가 집단만이 접근 가능한 대형 '설비'였다. 잡스가 애플II를 만들면서 컴퓨터가 새로운 역사의 문으로 들어섰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신에게서 불을 가져다가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처럼 잡스는 컴퓨터를 전문가의 독점물에서 누구나 쓸 수 있는 개인 기기로 만들었다.

애플II는 세계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다. 일반인이 컴퓨터를 쓰면서 '교육용 프로그램'과 '컴퓨터 게임'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했다. 워드프로세서와 컴퓨터용 프린터와 같이 지금은 일반화된 사무용 도구 역시 애플II에서 비롯된 것이다.

◆매킨토시(1984년), '클릭' 한 번으로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게 하다

개인용 컴퓨터(PC) 시대가 열렸지만 PC는 여전히 사용하기 어려운 도구였다. 미리 정해져 있는 복잡한 명령어를 외워서 키보드로 입력해야 컴퓨터가 실행되었다. 잡스가 1984년 내놓은 매킨토시는 어린이까지 PC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화면에 있는 아이콘을 마우스로 선택해서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지금은 일반화된 이 기능을 잡스의 애플이 만들었다.

토이스토리(1995년), 디지털 애니메이션 장르를 만들다

잡스는 경영권 분쟁으로 애플에서 밀려난 후 1985년 컴퓨터 그래픽 회사 '픽사'를 사들였다. 당시 픽사는 그래픽용 고성능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였다. 잡스가 주목한 것은 이 회사가 컴퓨터 판촉용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다. 픽사는 잡스의 지휘 아래 애니메이션 회사로 변신했다. 이후 내놓는 단편 애니메이션마다 오스카상을 받으며 성공을 거뒀고 1995년 장편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로 큰 성공을 거뒀다. 토이스토리 이후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일반적인 영화의 한 장르가 됐다.

◆아이맥(1998년), PC를 가전제품처럼 쉽게 만들다

잡스는 복잡한 PC를 가전제품처럼 만들었다. 아이맥 이전의 PC는 설치 과정이 복잡했다. 모니터와 본체를 여러 개 선으로 연결하고 전원선도 각각 연결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맥은 컴퓨터를 사다가 탁자에 올려놓고 코드만 꽂으면 작동한다. 본체와 모니터를 하나로 합쳐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많은 PC 제조업체들이 아이맥을 따라 코드만 꽂으면 작동하는 PC를 내놓았다. 흰색과 반투명 플라스틱으로 꾸민 겉모습 역시 PC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이팟·아이튠스(2001년), 음악을 즐기는 방식을 바꾸다

잡스는 아이팟과 함께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를 만들어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이전의 MP3 재생기 회사들은 '우리는 기계만 팔 뿐 음악은 알아서 구하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음악을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장터까지 만들었다. 저장장치로 하드디스크를 채택해 많은 노래를 한 번에 가지고 다닐 수 있게 했다. 이전의 MP3재생기는 불과 10여곡밖에 담을 수 없었다. 아이팟이 등장한 이후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CD플레이어는 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본격적인 디지털 음악 감상시대를 연 것이다.

◆아이폰(2007년), 손 안에 정보의 바다를 쥐게 하다

아이폰 이전에도 스마트폰은 있었다. 하지만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에야 비로소 스마트폰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전의 스마트폰은 문자 그대로 '들고 다닐 수 있는 PC'였다. PC를 쓰는 것처럼 복잡하고 에러도 잦았다. 전문가만이 쓸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진정으로 한 손에 전 세계 네트워크가 들어왔다. 정보의 바다가 손바닥 위에 올려진 것이다.

잡스는 온라인 장터 '앱스토어'도 만들어 개인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응용 프로그램(앱)을 만들 수 있게 했다. 애플·개발자·사용자가 함께하는 '앱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앱스토어는 IT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마이크로소프트 윈도폰7 OS 등에도 비슷한 온라인 장터가 있다.

◆아이패드(2010년), 태블릿PC 시대를 열다

아이패드가 나오기 전 전문가들은 '과연 키보드 없는 태블릿PC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의심했지만 잡스는 애플II로 PC시대를 열었듯 아이패드로 키보드 없는 PC시대, 태블릿PC 시대를 또 열었다. 아이폰과 마찬가지로 아이패드는 최초의 쓰기 쉽고 가볍고 싼 태블릿PC였다. 인터넷·동영상·사진 등 PC에서 하는 간단한 작업을 모두 할 수 있다. 아이패드가 등장한 이후 노트북PC 수요는 급감했다. PC시대를 연 잡스는 아이패드를 만들어내면서 스스로 PC시대의 종식을 눈앞으로 당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