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히 섞으세요 의외의 요소를
어느덧 나뭇가지 끝에 물기가 돌고 초록 순이 움트는 계절이 왔다. 이맘때가 되면 모두 카메라를 들고 숲이나 공원으로 나가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이 렌즈를 가까이 들이대는 대상이 바로 꽃이다. 갓 터진 꽃망울을 가까이 찍기도 하고, 멀리서 꽃밭 전체를 담을 때도 있다. 하지만 찍고 나서 이런 하소연을 많이 한다. "눈으로 볼 때보다 예쁘게 나오지가 않네. 재미도 없고."기억에 남는 봄 풍경 사진을 만들려면 사실 '꽃' 이상의 것이 필요할 때가 많다. 마치 소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때론 곁에서 조는 할머니가 필요한 것처럼. 꽃밭이나 숲 같은 자연 풍경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재미있게 찍고 싶다면 '인공적인 요소'를 넣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꽃을 찍기 위해 바짝 들이댄 카메라 몸체, 숲 속 이끼 낀 바위 위의 MP3 플레이어, 성큼 끼어든 새빨간 운동화 같은 것. 풍경 안에 이런 요소를 과감하게 섞어주면 확연히 대비되면서 찍고 싶은 부분이 오히려 눈에 더 잘 들어오는 '의외의 효과'를 낼 수 있다.
2005년 3월 '주말매거진' 커버스토리용으로 찍었던 유채꽃 사진도 마찬가지다. 주제는 '이른 봄꽃 소식'. 그렇다면 봄꽃만 찍어야 한다는 얘기일까? 유채꽃만 일렁이는 꽃밭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한가득 품고 제주도로 떠났다.
일본인 여성은 흔쾌히 응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바람이 약하게 불었다. 치맛자락이 가볍게 흩날렸다. 그 옷 위에 새겨진 '인공의 꽃'이 자연의 꽃 위에서 춤을 췄다.
얼른 한쪽만 초점을 잡는 망원 렌즈 대신 와이드 렌즈(16㎜)로 바꿔 끼웠다. 치맛자락과 유채밭을 모두 선명하게 찍고 싶어서다. 찍다 보니 좀 더 대담한 장면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여자의 뒷모습, 상체를 아예 프레임에서 빼버린 것이다. 어쩌면 이 사진은 여자도 꽃도 제대로 찍지 않은 사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선 그 어느 것보다 '눈에 띄는' 봄 풍경을 찍은 사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