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行)/ㅊ,ㅋ,ㅌ

09.09.20 (천성산 : 가족이랑)

동선(冬扇) 2009. 9. 20. 17:39

 

 용소마을 - 용소1폭포 - 용소2폭포 - 전망바위 - 화엄벌 - 천성1봉(920) - 원효암 - 홍룡폭포 - 홍룡사 주차장

(산행 시간 : 6시간 40분)

 

 

"세상을 잊기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것이 있다는듯

 버리지 않으면 않되는 것이

 있다는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것이 있다는듯

 채워야할 빈 자리가 있다는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걸

 바라봐야 할 시간.

 

-류시화-

 

 

08:00  집에서 출발

08:40  용소마을 도착

08:47  산행시작

08:53  용소 1폭포 도착

이 코스를 산행하는 사람들 중에 이 폭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제신문 근교 산행안내에서도 이 폭포는 소개되지 않았다.

높이는 5미터 내외지만 물의 깊이는 알 수 없고, 물 색깔 또한 검고 푸른 빛이라 가까이 가보면 으시시한 느낌 마져 든다.

아마 비가 오거나, 안개가 짙어 있을 때는 가까이 가고 싶은 맘이 생기지 않을 것 같은 폭포다.

이 폭포는 용소마을이 끝나는 지점쯤 밭길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주산행길이고, 우측 개울쪽으로 길을 따라 3 ~ 4분 가서 계곡쪽으로 내려가면 있다.

지금은 가뭄으로 물이 흐르는 흔적만 보이지만 물이 제법 많이 흘퍼 내리는 폭포다.

용소마을은 아마 이 폭포를 보고 이름을 명명했지 않을까 싶다.

 

09:17  용소 2폭포 도착

          이 폭포 역시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10:30  전망바위 도착

11:30  화엄벌 도착

12:00  천성1봉 도착 및 점심

          위 국제신문 산행코스 사진에는 화엄벌을 지나면서 천성1봉 8부 능선에서 우측으로 바로 원효암으로 안내되어 있었지만

          난 직진해서 천성1봉을 한바퀴 돌아 원효암으로 갔다.

          가다 작은 개울이 있는 곳에서 점심도 먹고..

12:50  천성1봉 출발

13:00  1봉 갈림길 도착

          1봉 갈림길을 지나서 원효암으로 막 출발하여 가는데, 어라~ 양산시내 사는 초등학교 친구 한명을 만났다.

          짝지랑 산행을 왔단다. 평소 산행을 하지도 않는 친구다. 술을 더 좋아하는 친구인데 요즘은 가끔 산에 다닌다고 한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건강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반가웠다.

          담에 한번 같이 가젠다.

13:35  원효암 도착

          원효암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가입했었던 카페(일명: 금일모)의 회원들인데,

          오늘 내가 한 코스와 같은 코스로  산행을 하고 있단다.

          예전부터 그 산방에 있는, 61산방 회원도 한명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다, 특히 반가운 사람들도 있었다.

          늘 미안하다. 가끔 참석해서 인사도 해야 하는데..

14:06  원효암 출발

14:50  홍룡사 도착

          홍룡사에 도착하여 홍룡폭포를 구경하고, 내려오는데 또 아는 사람을 만났다.

          전에 61산방에 있었던 남여 친구다. 산악회에 참여하여 왔단다.

          혼자 산행을 할 때면 거의 아는 사람을 못 만나는데 오늘은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네.

15:23  홍룡사 주차장 도착 및 산행 종료

16:30  집 도착

          집에 도착하여 얼른 정리하고, 씻고, 사진 정리를 하면서 야구를 봐야지.

          또 한번의 산행을 마치면서...

 

 

 

 

 

 

 

 

 

 

 

 

 

 

 

 

 

 

 

 

 

 

 

 

 

 

 

 

 

 

 

 

 

 

 

 

 

 

 

 

 

소금강산 천성산!!
원효산과 통합하여 일컫기 전에는 원효산이라 불리던 산이다. 양산의 최고 명산으로 웅상, 상북, 하북 3개 읍면에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해발 922m이다. 또, 천성산은 예로부터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고 또한 경치가 빼어나 소금강산이라 불리었으며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당나라에서 건너온 1천명의 스님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모두 성인이 되게 했다고 하는데서 천성산이라 칭한다.

또한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꽃이 만산홍을 이루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화엄늪과 밀밭늪은 희귀한 꽃과 식물(끈끈이 주걱)등 곤충들의 생태가 아직 잘 보존되어 있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생태계의 보고이며, 천성산 산나물은 예부터 임금님의 수라상에 진상할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며, 가을이면 긴 억새가 온산을 뒤덮어 환상의 등산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이곳 정상은 한반도에서 동해의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이나 전국에서도 해돋이 광경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외에 원효산과 함께 통합하여 천성산이라 불리기 이전, 하북면과 웅상지역(평산동, 소주동)의 경계에 있는 산을 천성산이라 불렀다. 이 산은 해발 817.9m로 북북동쪽으로 정족산(700.1m)에 이어지고, 남남서쪽으로는 천성산(922.2m)과 능선으로 연결된다. 옛날에는 원적산으로 불렀다. 양산시의 동부를 북북동-남남서로 달리는 천성산맥의 준봉의 하나로 소금강산이라고도 부른다.

 

 

 

 

 

 

 

 

 

 

 

천성산1봉(옛 원효산) 정상은 서편의 화엄벌과 남쪽의 원효암 등 신라 때 고승인 원효대사의 행적과 관련된 곳들로 둘러싸여 있다. 특히 당나라 태화사 승려 1000명이 원효대사의 신통력으로 목숨을 구한 뒤 건너와 대사로부터 화엄경 설법을 듣고 성인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화엄벌(늪)은 고산 습지로서의 생태학적 가치 외에도 불교계의 중요 유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원효암은 신라 선덕여왕 15년(651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특히 원효암 오른쪽 사자봉 바위에 있는 천광약사여래불은 지난 1991년 7월 20일 오후 8시께 비가 오지 않는 가운데 2시간 동안 계속된 천둥과 번개가 멎은 뒤 부처님이 앉아 있는 모습이 드러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고도 전해진다. 당시 통도사 방장이던 월하(月下) 대종사가 이 소식을 듣고 직접 방문해 친견한 뒤 '동방만월세계유리약사여래불'이라는 명호를 직접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원적산에는 원효암이란 암자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천3백년 전 원효대사가 기장의 천백암(千百庵)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암자에서 서쪽 하늘을 혜안으로 바라보니 중국 산동성에 있는 법운사에 천명의 신도가 불공하고 있는데 그 절이 곧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다. 그 원인은 그 절의 법교(法敎)가 죄인으로서 벼락을 내려 천벌을 주려는 찰나였다. 따라서 천명의 신도들도 법교를 따라서 억울한 죽음을 당할 형편이었다. 그때 원효대사는 “해동원효(海東元曉)”라고 새긴 판자를 던지니 갑자기 법운사 주위가 금빛으로 변하였다. 신도들은 환한 금빛을 보고 이상히 생각하여 전부 밖으로 뛰어 나오자마자 그 절은 무너지고 신도 천명은 고스란히 목숨을 건질 수가 있게 되었다. 이것을 일컬어 “해동 원효 척판 구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천명의 신도들은 수륙만리 해동의 원효를 찾아 와서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원효대사는 천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천백암을 떠나 지금의 동래 범어사 쪽으로 가는 도중 하북면 중방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호랑이가 대사 앞에 무릎을 꿇고 나타나 몸과 꼬리로써 천성산을 가리켰다. 이상히 여긴 대사는 지금의 내원암으로 가니 동지섣달의 찬 겨울이었음에도 칡꽃 두 송이가 피어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 자리를 정하였는데 식량이 곤란하여 지금의 상북면 대석리 모래불이라는 동리에 거부(巨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쌀 한되 가량 넣을 수 있는 바랑을 가지고, 그 집으로 동냥을 구하러 갔다. 하인이 쌀 한 되를 갖고 나와 부으니 반에 반도 못 찼다. 이상히 생각한 하인은 또 한 되, 또 한 되, 아무리 넣어도 그 정도라, 너무도 이상히 생각한 하인은 주인에게 고하였다. 주인은 도사임을 깨닫고 허리를 굽혀 그 소원을 물은즉, 대사는 일천 명 제자의 식량이 부족하다는 사유를 말하자 주인은 쾌히 해결해 줄 것을 승낙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화엄벌’에 집을 짓고 일천 명 제자를 가르치고, 자신은 보임(保任)공부를 하였다. 그 이후부터 그 산을 천성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또 절을 지어 원효암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도 천성산 일대의 칡덩굴은 다른 곳에 비하여 매우 짧은데 그 이유는 대사가 제자와 더불어 수도할 그 당시 한 제자가 마을에 동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만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자 쌀, 밥 할 것 없이 모두 쏟아진 일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대사는 그 이튿날 그 제자에게 흰 종이를 한 장을 주어 그 자리에 가서 버리고 오라고 말하였더니 제자가 그리하여 그 이후부터는 칡덩굴이 길게 뻗어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화엄벌에는 지금도 사육배판(四六倍版) 정도의 면적에 풀이 안 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곳은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강독한 장소라고 한다.

 

 

 

가지산 도립공원내의 원효산 골짜기의 계곡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홍룡폭포이다. 홍룡폭포는 보기드물게 상.중.하 3단 구조로 되어 있어 물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물보라가 사방으로 퍼진다. 이 때 물보라 사이로 무지개가 보이는데 그 형상이 선녀가 춤을 추는것 같고 황룡이 승천하는 것 같다고 하여, 이름이 무지개 "홍" 자 및 용 "룡"자를 써서 홍룡폭포이다. 폭포아래는 홍룡사 라는 아담한 사찰이 위치해 있다

 

 

 

 

 

 

 

 

 

 

 

 

 

 

 

신라 문무왕 때(661∼681)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원효가 당나라의 승려 1천 명에게 천성산에서 《화엄경》을 설법할 때 낙수사(落水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는데, 당시 승려들이 이 절 옆에 있는 폭포에서 몸을 씻고 원효의 설법을 들었다 하여 이름을 낙수사라고 하였다. 또 산 이름은 본래 원적산이었으나 1천 명이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천성산(千聖山)이라고 바뀌었다고 한다. 원효는 산내에 89암자를 지어 1천 명의 대중을 가르쳤으며, 당시 각 암자에 흩어져 있는 대중을 모으기 위해 큰 북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북을 매달아 두었던 집북재와 《화엄경》을 설법하던 화엄벌 등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수백년 동안 절터만 남아 있다가, 1910년대에 통도사 승려 법화(法華)가 중창하였다. 절 이름 홍룡(虹龍)은 폭포 이름에서 유래한다. 홍룡폭포는 제1폭포와 제2폭포가 있는데, 옛날에 천룡(天龍)이 폭포 아래에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1970년대 말 우광(愚光)이 주지로 부임한 뒤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종각·선방·요사채 등이 있고, 폭포 옆에 옥당(玉堂)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