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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또 기다리는 편지

동선(冬扇) 2007. 10. 5. 20:47
또 기다리는 편지 

          정호승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 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이 시는 하루 종일 외로운 사람들을 사랑하며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을 슬퍼하며 울지만 외롭게 죽은 사람들이 하늘 어디엔가 모여서 외롭지 않게 지내고 있음을 첫눈으로 알리기 때문에 이들의 외롭지 않은 소식을 담고 오는 첫눈을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다는 내용이다.

      이 시를 해석하는 데는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기다리는 편지’는 편지가 오지 않았는데 다시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편지가 왔는데 한 번 더 오기를 기다리는 것인 알아야 한다. 이 부분이 이 시 해석의 열쇠이다. 편지가 안 왔다면 화자는 오지 않는 편지를 날마다 기다리는 것이고 편지가 왔다면 다시 올 편지를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평자들은 편지가 오지 않은 것으로 해석해왔다. 이로 인하여 이 시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굴절되었다. 화자가 ‘또 기다리는 편지’는 편지를 받고 다시 기다리는 것이다. 화자가 받은 편지는 ‘해마다 첫눈’으로 내린다.

      화자에게 ‘첫눈’으로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서 외롭게 죽어간 사람들이다. 화자 과거에 사랑한 ‘저문 섬’이다. 화자가 지금 사랑하는 것은 ‘그대’인 ‘저무는 섬’이다. 화자는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다. ‘섬’이 저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저무는 섬’은 비유이다. ‘섬’은 사방이 바다로 고립된 소통이 두절된 장소로 ‘외로운’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화자가 사랑하는 ‘그대’이다.

      ‘저무는’의 사전적 의미는 ‘ꂿ①해가 져서 어두워지다. ②계절이나 한 해가 거의 다 지나게 되다.’이다. 빛이 사라지고, 세월의 끝에 가까웠음을 말한다. 시어의 뜻을 정확히 반영한 항목은 없지만 ①②의 의미를 바탕으로 생각하면 ‘주체’(‘해’와 ‘계절’ 등)가 ‘사라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저무는 섬’은 ‘사라지는 섬’ 또는 ‘없어지는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사라진 것은 7행의 ‘외로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저문 섬’이다. 어디론가 사라진 외롭게 죽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화자가 사랑하는 ‘그대’는 ‘저문 섬’이 아니라 ‘저무는 섬’이다. ‘저무는’의 ‘-는’은 현재진행 중임을 말한다.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화자는 혼자서 죽어가고 있는 ‘그대’를 생각하면서 ‘새벽보다 깊은 새벽’부터 ‘지는 저녁해를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그대를 사랑’한다. ‘지는 저녁해’는 그대를 사랑하는 행위가 저녁까지 계속됨을 말한다. 이러한 사랑은 ‘오늘도’의 ‘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동안 계속되어온 일이다. 아니 ‘그대’를 달리하여 ‘해마다’ 계속되어온 일이다.

      ‘날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는 때는 화자가 말하는 ‘새벽보다 깊은 새벽’이다. 모두들 ‘잠든’ 때이다. ‘하늘에 별들’이 보이지 않고 ‘새벽달’만 ‘빈 길에’ 떠 있는 때이다. 화자는 ‘새벽보다 깊은 새벽’에 ‘섬기슭에’ 나가 앉아’서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외롭게 죽어갈 ‘그대’를 생각하며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서 울기 시작한다. ‘사랑과 어둠’은 대립되는 단어이다. ‘바닷가’는 ‘그대’가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장소이고 ‘그대’가 외롭게 죽어가는 데도 지켜만 봐야하는 ‘어둠’의 장소이다.

      화자는 ‘그대’처럼 외롭게 죽어간 사람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하면서 간 곳을 모른다고 하지만 실제는 알고 있는 것이다. ‘첫눈’이 하늘에서 내린다는 것은 ‘첫눈’이 ‘외로운 사람들이’ 간 곳에서 보낸 편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은 하늘로 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외로운 사람들’의 ‘들’을 보면 복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지상에서 외로운 섬이었지만 하늘에서는 함께 있는 것이다. 함께 있기에 외롭지 않은 상태로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보낸 편지는 ‘첫눈’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심정처럼 설레고 기다려지는 긍정적인 것이다. ‘저무는 섬’이 ‘저문 섬’이 되어 하늘로 가면 부정적인 상태에서 긍정적인 상태로 변한다는 것을 ‘그대’가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다는 역설적인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은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만 그대는 외롭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보다는 그대가 죽어 하늘에 가서 외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외롭지 않게 살고 있다는 편지를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는 것을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한 것이다. 나는 ‘그대’가 존재하지 않아서 슬프지만 이 슬픔보다는 ‘그대’가 외롭지 않은 것이 더 행복하니까 말이다.

      여기서 두 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는 시제이고 하나는 화자가 있는 곳이다. 이 시는 모두 3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술어는 ‘사랑하였습니다’, ‘울었습니다’, ‘행복하였습니다’로 모두 과거시제이다. 이것은 이미 화자가 ‘저무는 섬’이었던 ‘그대’가 죽어 하늘에 가서 ‘첫눈’으로 외롭지 않게 잘 있다는 편지를 보냈고 이 편지를 받은 것이다. 지금은 ‘또’ 그대가 보내는 편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화자가 ‘섬기슭에 앉아’ 있다는 것으로 보면 화자도 ‘그대’처럼 ‘섬’에 있는 것이다. 화자도 외로운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자신의 외로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그들의 상태를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의 고결한 정신이 느껴진다. 그런데 화자도 섬이고 이 모든 일이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면 혹시 화자도 '저문 섬'이 되어 하늘 어디에 있는 외로운 사람들이 간 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는 외로운 상태에 있는 화자가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을 사랑하고 슬퍼하다가 그들이 죽어서 하늘 어딘가에 같이 모여 외롭지 않게 있다는 편지를 첫눈으로 받고 나서 이들의 편지를 또 기다리는 것이 행복하다는 심정을 나타낸 시이다.

       
      출처 : 또 기다리는 편지
      글쓴이 : 김희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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