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出寫)/출사(出寫)

10.05.23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1주기 : 나홀로)

동선(冬扇) 2010. 5. 23. 23:43

 

오늘 저녁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기념식 행사의 하나로 부산대학교에서 " power to people 2010 " 공연이 있다.

낮에는 봉화마을에 갔다 왔고, 저녁에는 이 공연을 보기로 했었다.

이런 행사를 한 번 구경하고, 참여하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아서다.

무슨 사람들이 그리 많이 왔는지...내심 놀랐다.

도종환 시인이 노 전대통령을 그리면서 지었다는 시 " 얼굴 "을 낭송할 때 내 닉인 " 하로동선 " 이라는 낱말이 나오니 왠지 내 가슴이 찡하는 것 같았다.

가끔은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고, 신나는 노래가 흥겹기도 했는데, 맘 한구석에는....

 

 

 

 

 

 

 

 

 

 

 

 

 

 

 

 

 

 

 

 

 

 

 

 

 

 

 

까까머리 학생이던 때 그의 얼굴에는

차돌처럼 반짝이는 단단한 은빛이 배어 있다

상고를 졸업하고 군복을 입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읍내와 면소재지의 경계쯤에 자리 잡은

투박한 냄새와 과수원 냄새 같은 게 스며 있다

지방변호사가 되어 최루탄 묻은 아스팔트 냄새를

바지에 묻히고 다닐 때나

역사를 야만으로 바꾼 자들에게 명패를 집어 던질 때

그에게는 질주하는 야생의 냄새가 났다

실패는 많았지만 패배주의에 젖지 않던 시절

쉽게 타협하지 않아 하로동선夏爐冬扇처럼

버려져 있던 날

그런 날도 그에게선 참나무 냄새가 났다

화로처럼 타던 그의 가슴 안쪽이 겨울과 만났을 때

사람들은 그를 향해 손수건을 흔들었고

그의 얼굴에는 참나무 숯이 타면서 내는

따뜻하고 붉은 온기가 오래 머물러 있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면서도 비주류라서

나무 끝에 앉은 새처럼 흔들리고 있던 시절

다시 법정에 선 변호사 어투가 흘러나오던 시절

억울해 하는 얼굴에 스며드는 그늘 같은 게 보였다

 

그의 생애 중에 가장 좋은 얼굴을 만난 것은

대통령 일을 그만 두고 낙향한 뒤부터였다

밀짚모자를 쓰고 오리와 함께 돌아올 때나

자전거 뒤에 풀빛을 태우고 마을을 돌 때

그의 얼굴에는 갓 캔 감자줄기에 따라온

풋풋하고 건강한 흙냄새가 살아났다

구멍가게의 나무의자 냄새가 났고

낮은 신발로 갈아 신고 만나는 오솔길 냄새와

잘 익은 사과의 얼굴위에 내려앉은

가을햇살의 표정 같은 게 있었다

수많은 얼굴을 녹여 낸

가장 편안한 얼굴이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이다

벼랑은 다시 예전의 벼랑으로 돌아가고

허공도 다시 허공이 된 뒤

밀물 같은 슬픔의 물살 출렁이다 빠져나가고 나면

우리는 어디서 다시 그의 편안한 얼굴 만날 수 있을까

풀밭에 앉아 푸른 세월을 건너다보던 얼굴

놓쳐버린 우리의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