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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사자성어

동선(冬扇) 2008. 1. 1. 10:03

 

<교수들도 모르는 '올해의 사자성어'>


 

2004년 이후 '난해한' 말들로 변모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교수신문이 매년 연말에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작년에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을 선정했다. 그대로 옮기면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지만 이를 더욱 실감있게 번역하면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가 된다.

이는 결국 자기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세태를 풍자하는 말로서 출전은 성리학의 대성자라 일컫는 주희의 어록집인 주자어류(朱子語類).

이 말을 제안한 이는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 2004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당동벌이'(黨同伐異) 제안자이기도 하다. 당동벌이는 이해를 같이 하는 사람끼리는 파벌을 지어 뭉치면서도 그것을 달리하는 사람을 배척하는 일을 말한다. 출전은 후한서(後漢書) 중 당동전(黨同傳).

2005년과 2006년도 사자성어는 각각 상화하택(上火下澤)과 밀운불우(密雲不雨)였다. 전자는 위에는 불, 아래는 연못이라 해서 사람이나 사물이 함께 하지 못하고 이반하고 분열한다는 비유이며, 후자는 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암울한 상황을 뜻한다. 두 단어 모두 출전은 사서오경 중에서 가장 난해하다는 주역(周易)이다.

교수신문은 나아가 2008년 '희망의 한자성어'로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정재서 교수가 추천한 '광풍제월'(光風霽月)을 선정했다.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인 황정견이 당시의 저명한 철학자 주돈이의 인품을 묘사하면서 쓴 말로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한 인품을 뜻하는 말이다. 출전은 송서(宋書) 주돈이 열전.

이 한자성어들이 나온 원전은 주역을 제외하고는 국내 완역본이 아직 단 한 종도 없다. '자기기인'의 원전인 주자어류는 국내에 초역본이 있기는 하나, 그 분량이 워낙 방대한 데다, 당시 백화체(구어체)가 많아 완역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당동벌이의 원전인 후한서 또한 전체 120권 중에서 국내에는 '동이전' 하나만 번역돼 있는 정도며, 후한서보다 분량이 두 배 가량 많은 송서 또한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 한자성어들은 한학에 조예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 뜻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그래서 국내 교수진 절대 다수가 정확한 설명이 있기 전까지는 그 정확한 의미를 모른다.

그럼에도 2004년 이후 매년 선정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그 해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 혹은 과제를 비교적 정곡을 찔러 표현했다는 평가를 듣곤 한다.

언뜻 보면 무슨 의미인지 종잡을 수 없지만, 듣고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 2004년 이후 매년 선정되는 올해의 사자성어 혹은 희망의 사자성어가 지닌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일지 모른다.

하지만 '올해의 사자성어'가 매번 이렇게 어려웠던 것만은 아니다. 2003년 이전을 보면 오리무중(五里霧中.2001), 이합집산(離合集散.2002), 우왕좌왕(右往左往.2003) 등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평범한 성어가 선정됐다.

올해의 한자성어가 왜 2004년을 고비로 이렇게 어려운 말로 변했을까?

이 일에 관여하고 있는 안대회 교수는 "오리무중이니 우왕좌왕이니 하는 말은 쉬워서 대번에 와 닿기는 하나, 그냥 한번쯤 웃고 지나가고 마는 정도인 데 비해 당동벌이와 같은 말을 들으면 그래도 한 번쯤 그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하는 효과는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학에 조예가 깊은 몇몇 교수에게서 추천받은 몇 개 후보를 교수들에게 돌려 고르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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